한때는 간절한 마음이 전부였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건만 이제는 서로를 비추는 두 개의 거울처럼, 서로의, 서로에 대한 기억들만이 원망의 목소리도 흐느낌도 한숨 소리도, 웃음소리도 없이 순수한 묵음으로 남아있을 뿐이니. - P173

거기에는 그저 어둠뿐이었어. 세상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그저 캄캄한 밤바다. 그런데 가만히 바라보노라니까 그 어둠 속에도 수평선이 있어서 어둠과 어둠이 그 수평선을 가운데 두고 서로 뒤섞이는 거였어.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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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로 우리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인생도 바꿀 수 있지 않겠어? 누가 도와주는 게 아니야. 이걸 다 우리가 할 수 있어. 우리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힘이 있어. 그게 나의 믿음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순간은 찾아와. 그것도 자주.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 P121

그가 늘 믿어온 대로 인생의 지혜가 아이러니의 형식으로만 말해질 수 있다면, 상실이란 잃어버림을 얻는 일이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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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과 함께 온 책 그리고 끄적거림 -

김연수 작가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고 있다.
아직 진도가 많이 나간 건 아니지만 삶의 본질을 알려주는 내용이 철학적으로 다가왔다. 부담스럽지 않고 딱딱하지 않으며 다정하다.

(P. 58) 섣불리 희망을 가질 수도,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절망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 속에서 일희일비하는 동안 검게 물든 삶은 느리고 더디게 흘러갔다.


원치않는 이별로 황망함에서 빠져 나오지 못 한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영혼이 죽어버린 것 처럼 삶의 비관과 낙담으로 일말의 기대없이 어쩔 수 없이 매일 아침 눈이 떠져서 사는 사람들 분명 있을 것이다. 행복을 꿈꾸기에 불행을 느낀다.

진부한 말이지만 내 맘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책을 만났다.
이럴 때 나는 ‘안심’을 하게 된다. 내가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겪고 사는 감정을 느끼며 살고 있구나 하는 안심.
여러 감정 중 내 안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상실감의 귀퉁이 하나라도 닮은 모양만 발견해도 그게 그렇게 반갑다. 그리고 내 맘에 꽂히는 단어 하나에도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나는 그렇다.

필요한 건 하나였다.
남아있는 의심이나 삶의 대한 회의감을 아직 말끔히 치우지 못 했어도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만큼의 자리는 남겨둘 수 있도록, 스스로 마음 청소를 해야 한다는 것.

비관적이고 낙담했던 내가 그리고 당신이, 이 책까지 마음에 품을 수 있다는 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삶의 본질을 알아가는 중이라는 ’신호‘ 아닐까? 후훗.


(P.70) 그 막막한 자유속에서 그녀는 끊임없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변화’가 절실했던 시기가 있었다. 내 삶의 우선순위에 일, 연애, 여행 말고 ‘가족’이 빠져있던 그때. 매일같이 휘몰아치는 업무에 눈이 빠져라 규정은 들여다봐도 ‘책’은 적당히 몇 권 책꽂이에 꽂아두고 장식처럼 방치 하면서, 놓치고 있는게 뭔지도 모르고 꽤 괜찮은 삶인 줄 착각하며 해망쩍은 생각을 하며 살았던 그때.
망아지 날뛰듯 했던 그때를 떠올리니 겪어보지 않고도 깨달을 수 있는 지혜가 인생에 딱 한번 선물로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난 숫제 후회의 길을 들어서지도 않았을텐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또 잠시 젖어본다.

(P. 23) 시간의 끝에,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가장 좋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를


기다리던 소식과 함께 반가운 책들이 도착했다.
괴나리봇짐 둘러메고 어디 한적한 곳에 틀어박혀서 먹을 것 잔뜩 옆에 두고 책만 읽으면 딱 좋겠다......찡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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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04-03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다정한 김연수 작가님입니다 ㅋ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를 잘 쓰셨네요~!! 책탑에 반가운 책들이 많이 보입니다~!!

곰돌이 2025-04-03 09:20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덕분에 <빈 자리> 잘 모셔왔습니다 :) 김연수 작가님 책 너무 잘 읽고 있어요. <일곱 해의 마지막> 도 제가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기웃기웃..ㅋㅋ
 

시간의 끝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에 이르렀을 때 이번에는 가장 좋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기를. - P23

언제부터인가 그는 세상을 거울이라고 생각해왔다. 자신의 내면에 어떤 문제가 생긴다면,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의 모습도 어딘가 뒤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믿음에 가까웠지만, 그는 늘 눈앞에 펼쳐진 세계의 모습을 통해 지금 자신의 내적 상태를 점검하곤 했다. 거리의 풍경을 면밀히 살펴보거나 들리는 소리에 자세히 귀를 기울이는 건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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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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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마감하려는 그 순간, 수학교사 ‘이시가미’의 고독과 휘휘한 공기로 가득 한 집에 벨이 울린다. 그의 눈 앞에 나타난 예쁜 눈을 가진 두 모녀. 운명의 순간이다. 이사 왔다며 인사하는 그들의 모습만 바라봐도 다시 삶의 기쁨을 얻는 것 같다.

(P. 326) 다른 것을 일절 생각할 필요가 없고 잡다한 일에 시간을 빼앗기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난제를 푸는 데 몰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시가미는 때로 그런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과연 살아 있을 동안 이 연구를 완성할 수 있을까 싶어 불안이 엄습할 때면 그것과 아무 관계가 없는 일에 낭비하는 시간이 아깝기 그지 없었다.

‘이시가미’는 건조한 가을 바스라지는 낙엽만큼이나 메마르고 허우룩한 마음으로 매일 수학 이론과 함께 죽음를 생각했다. 그의 삶에 있어 낙원이란 그저 종이와 펜 없이도 수학문제와 싸울 수 있는 그의 두뇌 뿐.
그런 그에게 운명처럼 나타난 두 모녀에게 뭐든지 해 주고 싶다. 당연하다. 자신을 다시 살게 해줬으니까......

(P. 438) 사람은 때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시가미’의 헌신적인 사랑을 들여다보는 동안에 내 머릿속에는 양귀자 작가님의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주인공 ‘강민주’에게 헌신하는 그녀의 심복 ‘황남기’가 자꾸 떠오른다.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 보통의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과 그 과정들에서 오는 혼란과 ‘집착’하는 심리 때문일까?
어둑발이 내려앉은 듯한 사랑의 결말이 예상되어서 인가보다. 그 허망함.


이 책에서 다루는 살인사건을 흥미롭게 바라보는 인물이자 수사에 난항을 겪는 경찰들이 자문을 구하는 물리학자인 ‘유가와’(이시가미와 동창)는 예리한 직감을 통해 이미 사건의 용의자를 알아낸다. 수학교사 이시가미와 물리학자 유가와, 이 두 천재의 대화 그리고 그들의 치밀함과 이론적으로 파고드는 과정속에서 전달되는 에너지가 굉장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유가와는 이시가미의 모녀를 향한 이성 잃은 희생을 알아보고 안쓰러워한다. 그런 마음이 참 고마웠다. 곁에 아무도 없는 이시가미를 착잡한 마음으로 걱정하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자체만으로. 그 안에는 잃고 싶지 않은 수학자이자 친구를 향한 연민이 담겨 있다.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유가와로 인해 이시가미가 설계한 철저한 알리바이는 선입견을 지우니 그 속에 모녀를 향한 배려를 더욱 드러나게 한다. 그러나 신체를 구속 당하는 일쯤이야 애초에 상관 없었던 이시가미다. 이미 다 각오한 일. 정작 그를 포효하게 만드는 일은 그런게 아니니까.

무모한 사랑에 의구심이 생길 법도 하다. 그래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면, 이 책 마지막을 읽고 ‘그래...그럴수도 있겠다’라고 납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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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5-04-01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히가시노 게이고의 많은 작품들 중 최고라고 생각했던 작품입니다
그만큼 그 반전이 소름이었거든요!

곰돌이 2025-04-01 14:04   좋아요 1 | URL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읽었는데 매번 그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멈춰야 할 때가 아주 아쉽더라고요. 추리 내용만 담은 소설이 아니라서 더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