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책 읽기 딱 좋은 계절이다.

앞에 어느 달을 갖다 붙여도 어울릴 문장이겠지만, 5월이니까 한번 적어봤다.

작년 5월 내 생일날 나에게 주는 선물로 파스칼 메르시어의 《언어의 무게》를 샀었는데, 이번에는 식구가 조금 더 늘었다. 새 책을 들이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법. 아직 첫 페이지도 열어보지 못한 책들이 태반인 마당에, 내가 덥석 도전해도 될까 싶은 책들이 줄줄이 이어져 위압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뭐, 글자가 나를 잡아먹는 것은 아니니까. 어쨌든 ‘축하의 명분’으로 모인 책들이다.



저메이카 킨케이드 《지금, 그리고 그때》

나는 남의 감정에 꽤 영향받는 인간이라, 일상에서든 책에서든 같은 말도 꼭 상처처럼 던지는 사람을 마주하면 금세 피로해진다. 이런 감정은 꼭 젖은 솜처럼 달라붙는다. 달라져야지, 몇 번이고 되뇌어봐도 별도리가 없다. 그래서일까.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갈 길을 가는 무심한 문장들이, 나를 붙잡곤 한다. 그래서 킨케이드의 신간 소식이 반가웠고, 다시 또 만났다.

제목에 미래를 뜻하는 단어는 빠져있다. 내가 느낀 킨케이드라면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믿을 수 없는 시간이라 여기는 사람에 가까워서, 미래 대신 ‘지금’과 ‘그때’에 더 의미를 둔 걸까, 하는 별 중요하지 않은 혼자만의 넋두리를 덧붙여본다. 킨케이드의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자전적 성격이 짙고 카리브해 앤티가섬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한 중년 여성의 삶을 전지적 시점으로 쓴 소설이다. 작곡가인 남편 미스터 스위트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내 미시즈 스위트. 행복한 결혼생활?

지금 내 아내인 저 여자, 하지만 처음 만났던 그때는 그저 빼빼 마른 소녀였지. 전지가위를 기다리는 삐져나온 나무의 삐져나온 나뭇가지 혹은 잡초처럼, 진정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치워버려도 되는 존재. 아, 그래, 저 여자에게서 벗어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p. 34)

남편이 아내를 바라보며 속으로 삼키는 이 잔인한 생각만 들여다봐도 이들의 관계가 전혀 달콤하지 않다는 것쯤은 알 수 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녹턴뿐이었다. 이 곡에 〈이 결혼은 끝장이야〉라는 제목을 붙이며 온갖 방식의 분노를 집어넣고, 언제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시한폭탄처럼 자신들의 관계가 파국에 이를 것임을 알려준다. 안 그래도 책 소개 글을 읽어보니 미시즈 스위트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이후로, 어머니를 떠올리며 글을 써 내려간다는데? 여기서 어머니란,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다. 나를 버리고 간 망할 엄마다.



하인리히 뵐 《여인과 군상》

최근 《천사는 침묵했다》를 읽었는데, 어쩐지 더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나라도 제대로 읽어보고 난 뒤 천천히 읽어봐야지 했는데 어디 그게 맘처럼 쉽나. 고민이야 평상시에도 숱하게 하는 게 고민이니, 책 사는 데서라도 덜 하자 싶어, 그냥 샀다.

소설은 화자가 ‘레니 파이퍼’라는 48세 독일 여성의 삶을 추적하는 보고서 형식으로 시작된다. 1941년, 하사관과 단 사흘간의 결혼생활 끝에 전쟁 미망인이 된 레니는 연금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완전히 무너져 있다. 하나뿐인 아들마저 감옥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화자는 레니를 아는 주변 인물을 인터뷰하고 서류를 뒤져가며 그녀의 삶을 복원해 나간다.

소설의 시작점은 1970년대 초반이지만, 이야기는 곧 레니의 어린 시절과 제2차 세계대전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런데 화자는 왜 하필, 이토록 무너져 버린 레니의 삶을 그토록 집요하게 좇는 걸까? 다른 건 몰라도 세상이 보는 레니와 실제의 레니 사이에는 거대한 간극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막스 프리슈 《슈틸러》

또! 또! 또! 하나라도 진득하게 읽어보고 나서 사도 될 것을, 책이 어디 도망이라도 가는 것도 아니고, 선착순으로 손들고 사야 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이렇게 성급한 마음을 누르지 못하고 《호모 파버》를 인연으로 이 책까지 책장에 날름 채워 넣었다.

방금 집어 든 《여인과 군상》이 주변 사람들의 기억 조각들을 모아 ‘레니’라는 한 여자의 삶을 외부에서부터 짚어 들어간다면, 이 책 《슈틸러》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시작된다. 감옥에 갇힌 한 남자가 “나는 슈틸러가 아니다!”라고 처절하게 외치며, 세상이 강요하는 ‘슈틸러’라는 이름과 정체성을 온몸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꾸만 그를 6년 전 행방불명된 스위스인 조각가 ‘아나톨 슈틸러’라고 부르고, 자신을 미국인 ‘화이트’라고 주장하는 이 남자는, 자신의 정체를 증명하기 위해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아니, 그런데, 그 와중에 30센티미터가 조금 못 되는 자기 구두로 감방 크기를 재보는 게 아닌가?

길이 3.10미터, 폭 2.40미터, 높이 2.50미터...

이 대목에서 앞서 펼쳐봤던 《호모 파버》가 머릿속을 스친다. 비행기가 사막에 비상 착륙하는 난리통 속에서도 엔진 결함을 숫자로 계산하고 있던 그 남자! 막스 프리슈의 주인공들은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상황에 안 맞게 이성적이고 치밀한 건지 모르겠다.



미셸 투르니에 《마왕》

제목을 보는 순간 슈베르트의 가곡 〈마왕〉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괴테의 시에 영감을 준 게르만 신화와 유럽의 식인귀 전설, 그리고 소년 예수를 어깨에 태워 강을 건넌 성 크리스토프의 생애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덕분에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슈베르트의 긴박한 반주 소리와 함께 아이를 유혹해 데려가는 존재라는 이미지가 겹치면서, 소설이 어떤 분위기로 흘러갈지 어렴풋이 느껴볼 수 있었다.

이야기는 ‘아벨 티포주’라는 기이한 남자의 일기로 시작된다. 말 못 해 죽은 귀신이 붙었는지 말이 엄청 많다. 물론 초반이 일기 형식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말이 너~무 많다. 더욱이 자신을 세상의 징후를 읽어내는 특별한 존재라 믿으며 지극히 사소한 것들까지 장엄한 서사처럼 떠들어댄다. 망상증인가? ㅋㅋㅋ

사실 이 지독한 집착의 뿌리에는 어린 시절 기숙학교에서 만난 절대적 권력자, ‘네스토르’가 있다. 같은 학생이었지만 티포주에게는 신이나 다름없던 존재. 세상의 모든 우연을 자신들만의 특별한 운명으로 해석하는 법을 가르쳐준 그는, 티포주의 자아 형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인 것 같다.

초반에는 약간 “뭔 소리지?”라며 미간에 살짝 힘을 주고 읽게 할 만큼 몰입력을 요하는데, 이게 단순히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소설들과는 결이 좀 다르다. 오히려 한 남자의 내면을 아주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기분이라 전개가 묘하게 흥미롭다.
나중에는 전쟁의 발발과 함께 징집되고, 나치의 엘리트 교육 기관인 ‘나폴라’에서 소년들을 선발하는 역할까지 맡게 된다는데, 슈베르트의 마왕과 성 크리스토프의 생애 그리고 티포주의 기괴함까지 이 삼박자가 본격적으로 읽기 전 약간의 흥분을 주는 데는 틀림없다.



시어도어 드라이저 《아메리카의 비극》

대공황이 터지기 전, 성공과 돈에 눈먼 인간들의 탐욕이 절정에 달해 있던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어릴 때부터 초라한 현실과 번쩍이는 상류층 세계 사이의 간극을 뼈저리게 느끼며 자란 ‘클라이드 그리피스’는 거리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전도하던 부모 밑에서 자랐다. 가난과 궁핍을 견디기보다 어떻게든 다른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 난 청년이다. 호텔 벨보이 일을 하며 번쩍이는 옷차림과 돈 냄새, 부유한 젊은이들의 삶을 가까이서 본 뒤부터는 더더욱 그렇다.

‘저 세계에 들어가고 싶다’라는 감각만을 따져본다면, 슈테판 츠바이크의 《우체국 아가씨》 속 크리스티네가 떠올랐다. 단 한 번 맛본 화려한 세계 때문에 평범한 일상이 더없이 초라하고 견디기 힘들어져 버린 크리스티네처럼, 클라이드 역시 호텔의 돈 냄새를 맡은 순간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게 아닐까.

이 얼마나 화려한가! 정말로 부자라는 것이, 또 이 세상에서 출세한다는 것이, 한마디로 돈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웅변적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그것은 곧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으며 자기와 같은 다른 사람들의 시중을 받는 것을 뜻했다. 이런 모든 사치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것은 가고 싶을 때 가고, 가고 싶은 곳에 가며, 가고 싶은 방식대로 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p. 91)



오노레 드 발자크 《사촌 퐁스》

슈테판 츠바이크가 이 작품을 발자크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했다고 하니 요거 은근히 기대를 안 할 수가 없군! 책 소개 글에 “유행에서 뒤처진 노총각이자 식충 취급을 받는 퐁스의 비극적 일대기”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시작부터 인간 취급이 영 박하다. 뭘 얼마나 잡수시길래 식충소리까지...

부르주아적 물질주의가 사회를 지배하던 1840년대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젊은 시절 예술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로마 유학까지 다녀온 작곡가이자 지금은 대중극장의 지휘자로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주인공 실뱅 퐁스는,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옷을 입고 다니는 노총각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먼 친척 집들을 전전하며 ‘식충’ 소리까지 듣는 궁색한 처지의 인물이다.

상상해보라, 1844년에 스펜서를 입은 사람의 출현은, 마치 두어 시간 동안 나폴레옹이 부활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p. 8)

겉보기엔 그저 친척 집 식탁을 전전하는 ‘프로 수저러’ 같지만, 퐁스 선생에겐 다 계획이 있다. 한 끼 식사값, 낡은 외투를 새로 맞출 돈까지도 아껴 예술품을 사들이는 것이다. 남들은 근사한 저녁 식사에 쓸 돈으로, 퐁스는 예술품 한 점을 꿈꾸는 인간이랄까.

보물이 대놓고 “나 보물이다~” 하고 굴러다닐 리 없으니, 퐁스 선생은 극장 업무 외의 시간을 죄다 작품을 찾아다니는 데 바친다. 일찍이 유학 시절부터 다져온 안목 덕분에 그의 집은 어느새 온갖 걸작들로 빼곡해진다. 정작 본인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스펜서를 입고 친척들의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말이다. 게다가 웃을 때 드러나는, 희고 튼튼한 치아는 상어도 부러워할 만했다고 하니, 저작기능도 타고 나셨군! 식도락가에게 이보다 더한 축복이 또 있을까 싶다.

보통 전지적 시점이라고 하면 한 발짝 떨어져서 보는 느낌인데, 이 소설은 화자가 내 옆에 딱 붙어서 팔짱을 끼고 끊임없이 속삭이는 느낌이라 파리 한복판에서 퐁스의 뒤를 몰래 밟고 있는 스토커가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소설의 앞부분은 순수한 영혼인 퐁스 선생을 알아가는 재미로 평화롭게(?) 즐기기만 하면 되는데, 책 소개 글을 참고하니 퐁스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충격을 받고 몸져눕는가 보다. 흑흑.

그런데,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평생에 걸쳐 수집해 온 예술품들이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보물이라는 것! 이 사실이 드러나자, 사람들이 하이에나처럼 모여든다는데 아휴, 징글징글하다 정말. 발자크는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애정보다 돈이라는 사실을 들춰내려는 걸까.



옌롄커 《딩씨 마을의 꿈》

결국 여기에서도 사람을 움직이는 건 돈이었다. 피와 맞바꾼 돈 때문에 죽음이 코앞에 닥쳐와도 멈추지 못하는 욕망이라니.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소박한 꿈은 결국 마을 전체를 재앙으로 몰아넣는다.

갑자기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에서 근룡이와 방씨를 따라 얼떨결에 매혈하러 가던 허삼관도 떠오른다. 하지만 그 인간적인 온기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최근에 읽은 옌롄커의 《물처럼 단단하게》에서는 인물들이 풍기는 강렬함을 통해, 후끈, 아니 거의 화끈거리는 감정들을 느꼈었는데, 이번에도 꽤 지독한 인간 군상을 보여줄 것 같다. 어쩌다 보니 이번 책장엔 인간 욕망 파멸 세트가 잔뜩 모였다.



마지막으로, 《사촌 퐁스》에서 발견한 몹시 위험한 문장을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실제로 어떤 고민도, 어떤 우울도 마음에 뜨는 뜸과 같은 기벽 앞에선 저항하지 못한다. 어느 시대에서나 ‘쾌락의 술잔’을 들이켜지 못하는 이들이여, 무엇이든(벽보를 수집하기도 한다!) 수집하라. 그러면 행복이라는 금괴를 잔돈으로 얻을 것이다” (p. 19)

아니, 행복이라는 금괴를 잔돈으로 얻을 수 있다니. 이보다 실속 있는 기쁨이 또 있을까. 비워도 자꾸만 채워지는 장바구니 아닌가... 흠, 그래 좋다. 안 그래도 읽고 싶은 책만 잔뜩 쌓였는데, 앞으로도 ‘마음의 뜸’이라 생각하며 책을 사겠다. 끄떡끄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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