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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 퐁스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9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정예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평점 :
저 멀리 퐁스가 신이 나서 걸어오고 있다. 콧구멍이 벌름거리도록 만족스러운 예술품을 손에 쥔 것이다. 대중극장의 지휘자로 여생을 보내고 있는 실뱅 퐁스. 이제는 노파들이 젊은 시절 유행하던 옷으로나 기억할 법한 스펜서를 입고 다니는 노총각인 그는 입고 먹는 데 들어갈 돈까지 아껴 예술품을 사들인다. 그렇다고 굶고 살 순 없는 노릇 아닌가. 퐁스 선생에겐 다 계획이 있다. 바로 자기를 불러주는 파리 사교계와 친척 집을 돌아다니며 숟가락만 얹는 것! 눈칫밥이 대수랴, 한 움큼의 즐거움을 선사해 줄 작품도 손에 넣고 미식을 즐길 수 있다는데! 아니, 그런데 발자크 너무하다. 곧 퐁스에 대한 얼평이 시작되는데 좋은 게 하나도 없다. 듣기만 해도 울적해지는 눈, 코, 입, 눈썹, 얼굴형 묘사에 이어 여성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는 말 안 해도 알 법한 상태(?)를 굳이 또 언급하며 소개에 정점을 찍는다. 그래도 삶의 즐거움을 찾고, 또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내뿜는 열정 때문인지 시작부터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었다.
한때 전도유망했던 퐁스가 이제는 입에 풀칠하기 위해 싼값에 음악을 넘기는, “낡아빠진 8분 음표 (p. 15)” 같은 무명의 삶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위안이 돼줄 만한 게 있다면 그의 집에 빼곡히 차 있는 예술품들이라고 해야 할까? 부모에게 상속받은 재산마저 오직 ‘아름다움’을 소유하기 위해 고스란히 바친 퐁스가 무모해 보이기도 하면서 고독한 예술가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예술품 못지않게 퐁스가 사랑한 건 음식, 한마디로 그는 식도락가였다. 왕실의 화려함이 남아 있던 제정기 시절엔 손님 대접도 후했기에 퐁스는 젊고 잘나가던 예술가로서 귀한 대접을 받으며 파리 사교계의 풍성한 식탁에 당당히 초대받았다. 퐁스 역시 감사의 표시로 자신이 작곡한 연가를 들려주거나, 소소한 잔심부름을 해주는 것으로 서로 기분 좋게 밥값을 톡톡히 하곤 했다. 하지만 그의 명성이 시들해지자, 사람들의 인심 역시 야박해졌다. 점점 퐁스를 부르는 초대장은 뜸해졌고, 한때 품격을 위해 모셔가던 예술가를 이제는 그저 공짜 밥이나 바라는 처량한 식객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제는 맛있는 냄새를 쫓아 경쾌하게 달리던 두 다리 대신, 야윈 손으로 낡은 지팡이를 의지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이 고독하고 처량한 노년의 길을 퐁스는 혼자 걷지 않는다. 중년의 길목에서 만난 영혼의 단짝, 독일인 음악가 슈뮈크가 있기 때문이다.
두 친구 중에 한 명이 다른 한 명보다 스스로 우월하다고 믿을 때만큼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하는 것은 없다. (p. 28)
발자크는 우정을 완전한 평등의 관계로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이상보다 현실을 본 걸까. 그렇다고 퐁스와 슈뮈크의 우정이 불편하게 그려지는 건 아니다. 서로에게 동정심을 느끼며 상대에게 으스대지 않으면서도 ‘저 녀석 내가 잘 품어줘야지’와도 같은 나쁜 의도가 없는 보호 본능과 염려에서 나오는 배려가 애틋했고, 참 섬세한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충분히 공감했다. 이런 모습은 사실 우리 삶에서도 흔히 볼 수 있으니까. 부모 자식 간에 ‘필수적인 존재’에서도 그렇듯이, 누군가를 온전히 품어줄 만큼 든든한 존재가 되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내가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사물이든 사람이든)이 곁에 있길 바라고, 거기에 의존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 문장 안에도 사람을 여러 방향으로 들여다보는 시선이 담겨 있어서인지, 다시 곱씹게 되는 문장들이 많다.
어느 날, 퐁스는 체면을 생각해서 밥 한 끼 내어주는 유일한 사촌인 법원장 집으로 발길을 서두른다. 오늘은 명분이 그럴싸하다. ‘비루한 식객’쯤으로 여기는 법원장 부인에게 부채를 선물로 건네기 위해서! 겉은 화려하게 치장했지만, 예술을 누리며 자라온 뼛속부터 명문 귀족이 아니었기에 마리 앙투아네트의 부채를 한물간 고물 취급하는 부인에게 퐁스가 눈을 반짝이며 부채의 진가를 조목조목 짚어주는 장면은 마치 <진품명품> 파리 특집을 보는 것 같았다. ㅋㅋ 안타깝게도 이날 퐁스는 쫓겨나다시피 밖으로 내몰린다. 사람들의 냉소적인 시선을 그대로 흡수해 버리는 ‘습자지 같은 감성’의 소유자 퐁스의 두 줄기 굵은 눈물에 내 마음마저 미어졌다는... 흑흑.
치사스러워서라도 안 먹고 말면 되는데, 그에게는 식도락이라는 운명이 너무나 가혹하게 발목을 잡는다. 사람들 눈총을 받으면서도,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코를 찌르는 고급 요리의 냄새를 맡는 순간 이성이 마비되고 마는 이 지독하고도 슬픈 미식가의 본능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만,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공짜 최고급 요리에 목을 매는 그 구차함에는 속이 터진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의 판이 완전히 뒤바뀌는데, 퐁스가 평생 방구석에 모아온 예술품들이 실은 어마어마한 가치를 지닌 보물이었다는 것! 모든 가치가 돈으로만 환산되던 세상에 이런 빅 이슈가 터졌으니 냄새 맡은 하이에나들의 등장 또한 당연? 게다가 재산이 ‘유산’의 의미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겠지?
줄거리 자체는 퐁스의 ‘예술품 컬렉션’ 뒤로 각각 다른 종류의 ‘탐욕 컬렉션’이 펼쳐지는 익숙한 설정인데, 인간 내면의 허영심과 위선, 어설픈 우월감, 속물근성 등을 여러 인물의 삶 속에 채워 넣어서인지 마냥 꿀떡꿀떡 읽히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결국 온갖 감정이 쌓이다가, 한낱 먼지인 인간이란 뭐고, 산다는 게 대체 뭐길래와 같은 허탈감에 마음이 바닥으로 툭 내려앉고야 말았다.
입에 자물쇠라도 채우고 싶은 분노 유발자가 꽤 많이 나오는데,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나 역시 여러 가능성이 내 눈앞에 놓였을 때 결국 나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아 보이는 쪽, 더 유리한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때로는 그런 기대가 썩 떳떳하지 않은 선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환경에 따른 고유한 차이들이 있겠지만, 같은 결과들이 되풀이 된다. (p.150)”는 문장이 내 마음 귀퉁이 한 부분을 찝찝하게 만들었다. 백번 천번 양보해서 인간의 보편성으로 들여다보려다가 결국 내 안의 속물성을 발견한 꼴.
책을 덮고 나서도 마음 한구석 깊게 맴도는 건, 퐁스와 슈뮈크의 관계에서 본 결핍과 사랑(우정)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닌 예술품을 수집하는 데 평생을 바친 퐁스, 그리고 정서적으로 온전히 발붙일 곳 없던 세상에서 오직 퐁스라는 인간의 마음 하나만을 수집하고 간직하며 그것에 자신의 온 영혼을 바친 슈뮈크. 두 사람은 결핍을 충족시키는 방법뿐 아니라 자신을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을 지키는 방식 또한 달랐다. ‘계속 잘 먹고 살기 위해’ 자존심을 버리면서까지 잘 차려진 밥상을 포기할 수 없었던 퐁스였고, 또 그런 친구를 위해 매일 별미를 준비한 슈뮈크였다. 하지만 발자크는 세속적인 세상과 대비되는 이들의 우정만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행복의 원천이 도리어 슬픔의 원인이 되는 모순적인 과정까지 담아 가슴을 훑어놓는다. “사람은 어떤 종류든 만족을 느끼며 살아야 진정으로 존재한다(p. 23)”는 전제하에. 더욱이 그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서도 하필 가장 연약하고 선한 두 사람을 통해서 말이다.
처음엔 이 소설이 탐욕을 다룬 이야기 위주일 것 같았는데, 막상 읽어보니 줄거리 이면에 얽힌 시선들이 워낙 복합적이라 퐁스와 슈뮈크, 이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감상 위주로 채워봤다. 그런데도 말이 길어졌다. 겨우 이 소설 한 권 읽어보고 다 알 순 없겠지만, 발자크가 인간도 세상도 그리 믿는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평생을 거대한 ‘인간 희극’에 바친 걸 보면, 포기할 수 없었나 보다. 인간을.
“집구석에서 몇 명에게 사랑을 받는 것이 내 야심의 전부였건만! 모두에게 인생은 쓴잔과 같지.” (p. 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