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잠에서 깰 때마다 시계를 보았다. 그녀는 시간이 흐르는 게 두려웠다. 시곗바늘이 돌면서 시간이 흘러간다는 사실, 시침과 분침이 시시각각 낯선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잠을 자면서, 밥을 물에 말아 먹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바흐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을 들으면서 흘려보낸 그때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몸이 나아지고 마음이 아물고 시나리오를 다시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프지 않고 울지도 않고 글을 다시 쓰게 될 그 시간, 그때의 시곗바늘이 어디를 가리키게 될지 알지 못해 그녀는 못 견디게 불안했다.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거칠고 두터운 시간이 흘러갔다. - P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