얕은 잠에서 깰 때마다 시계를 보았다. 그녀는 시간이 흐르는 게 두려웠다. 시곗바늘이 돌면서 시간이 흘러간다는 사실, 시침과 분침이 시시각각 낯선 시간을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다. 잠을 자면서, 밥을 물에 말아 먹으면서, 책을 읽으면서, 바흐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을 들으면서 흘려보낸 그때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르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몸이 나아지고 마음이 아물고 시나리오를 다시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아프지 않고 울지도 않고 글을 다시 쓰게 될 그 시간, 그때의 시곗바늘이 어디를 가리키게 될지 알지 못해 그녀는 못 견디게 불안했다. 결코 익숙해질 수 없는 거칠고 두터운 시간이 흘러갔다. - P34

단단한 불신과 의혹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채 하염없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유리 밖 어두운 공간을 바라보았던 것일까.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자 마치 언젠가 그녀 자신이 자신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던 것만 같은 달콤한 기시감이 강물처럼 그녀를 감쌌다. - P40

현실의 시간은 밤이지만 이곳에서 나는 기억의 한낮을 산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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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25-08-28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집, 정말 좋아요!
곰돌이 님의 리뷰 기대해요^^

곰돌이 2025-08-2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맨 처음에 실린 ‘빈 찻잔 놓기’만 읽고 언저리에만 맴돌았을 뿐인데도 좋네요. 이따금 자목련님이 예전에 올려놓으신 글을 읽어보는데, 그것 또한 잘 읽고 있어요. 글이 너무 좋아서 흔적을 남기고 싶었지만 참았고요! (혼자 몰래 야금야금) 앗참!! 저의 리뷰는 절대 절대 기대하지 마시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