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닉네임을뭐라하지 > [우리시대의 논리] / 후마니타스
서점 근로 초기에 출판사 후마니타스에서 영업하시는 분이 찾아온 적이 있다. 첫 눈에도 신입, 같아 보이던 그 분은 아니나 다를까 "출판사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됐"다고 말하며 내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당시에 그가 온 이유는 최장집 교수 외 여러 분들이 쓴 글을 모은 [위기의 노동]에 띠지를 두르기 위해서였다. 얼마 되지 않는 책들에 띠지를 두르며 그와 나는 이런 저런, 이를테면 -
"후마니타스 책 좀 잘 팔리나요?"
"후마니타스의 의미는 말이죠..."
-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짧은 만남 후, 그는 다시 한번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최근 후마니타스에서 새로 발간된 책을 소개하려니 예전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 서두가 길었는데, 이젠 본격적으로 책을 소개해 보아야겠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책이라기보단 <우리시대의 논리>라는 타이틀이다.
우선, 책 뒷날개에 있는 글을 참고하면, <우리시대의 논리>가 갖고 있는 의의는 -
"한국 사회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대면하고 있는 저자들의 작업을 모으고 있다.
사건을 바라보는 독창적인 해석, 우리시대에 대한 생생한 증언과 기록은 물론,
현실의 표면에서 보이지 않는 심층을 발굴하려는 시도를 담고자 한다.
이는 '내용 없는 수사학'에 머물고 있는 이 시대 글쓰기 문화를 대신해,
'칼럼·에세이'문화의 새로운 전범을 만들려는 하나의 시도이다.
'우리시대의 논리'를 통해, 우리는 주제를 풀어내는 빼어난 논리와 사회를 보는 비파적인 시각 모두를 경험할 수 있다."
- 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현재 손석춘의 [과격하고 서툰 사랑고백]과 하종강의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 발간되어 있다. 근간 예정으로 [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와 최장집의 [민주주의와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 있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마음에 들었던 건 우선, 책의 판형과 분량 - 400페이지가 조금 못 되는 어느 정도의 묵직함과 가장 선호하는 책 싸이즈(A5신) - 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책의 크기. 게다가 아날로그적이면서도 디지털적인데다 포스트모던적(?)이기까지 한 표지 디자인도 눈길을 끈다.
글의 질적 우수함이야, 각 제 분야에서 활발히 움직이며 글을 쓰는 필자들이라 굳이 의심할 바 없겠다.
손석춘은,
"칼럼 한 편 한 편을 쓸 때마다 저자는 그것이 독자에게 보내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랬다. 독자에 드리는 서툰 사랑의 편지, 연서였다."
라고 말하며,
"그럼에도 아직은 붓을 놓을 때가 아님을 스스로 확인하고 있다. 독자에게 드리는 저자의 사랑을 책으로 묶는 데도 동의했다. 동시대를 기록하는 역사가인 언론인의 글은 어차피 역사가 최종 평가할 수밖에 없다. 우리 시대를 기록한 저자의 '문집'도 예외는 아닐 터이다. 그 평가를 겸허하게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리고 살아 있는 동시대인들 앞에 심판을 받는 마음으로 책을 펴낸다. 중년의 언론인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분께 띄운 서툰 사랑의 고백에 부디 눈 흘기지 말기 바란다."
고 책머리(여는 말)에서 당부하고 있다.
하종강은,
"혹시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권리는 정상회되기도 전에, 흔히 말하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이르기도 전에 다시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이야기들을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습니다."
라고 말하며,
"그렇게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됐습니다. /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부끄러운 많은 것들을 '자연스러움'과 '담백함'이라는 단어 뒤에 감춥니다."
고 글의 서두(들어가는 글)에서 고백하고 있다.
사실 칼럼들을 모아 펴낸 책은 독자로선, (오로지 그 저자를 보고 읽는 책이라면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의 위험성을 감내해야 한다. 진중권이 [시칠리아의 암소] 들어가는 말에 쓴,
"이 글들은 대부분 그때그떄 청탁을 받아서 쓴 것이다. 그 중에는 구미에 당겨서 쓴 것도 있지만, 어느 것은 오로지 청탁이 들어왔기 때문에 쓴 것도 있고, 심지어 쓰고 싶지 않은데 청탁을 거부할 만큼 모질지 못해서 쓴 것도 있다. 원고를 쓰는 게 실은 얼마나 괴로운지 아는가? 이런 글을 쓰다 보면 도대체 일관된 사고를 할 수가 없다. 매번 주제가 달라지고, 그러다 보면 정작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일관된 사유의 선이 번번이 끊어지면서 머릿속이 온통 포탄을 맞은 것처럼 파편이 되어 산만하게 흩어진다."
라는 언급에서도 알 수 있듯, 칼럼 모음집은 통일된 하나의 책이라는 측면으로 봤을 때, 그 농밀함이 조금 옅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하종강은 앞서 '들어가는 말'에서,
"제가 너무 바빠서 도저히 원고를 정리할 시간이 없다고 했더니 자기들이 내 글을 모아서 원고를 마련하는 수고를 감당하겠노라고 …. 벌써 책 한 권 분량의 글들을 모아서 직원들이 모두 돌아가며 읽었노라며 그럴 듯하게 제본된 책을 한 궈 내밀었습니다. / 이야기를 나눈 시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80년대의 헌신성'이 느껴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이렇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나' 싶었습니다."
라고 하며, 후마니타스 출판사 직원들에 대해 호감이 가득 실린 이야기를 하였다.
(여기서 '저자'라는 개념에 대해 되새겨보고 싶으나 곁가지가 너무 커질 것 같고, 어쨌거나 요는,)
믿음직한 출판사에서 나온, 굉장히 마음에 드는 책이고, <우리시대의 논리>라는 타이틀로 곧 나올 다른 책 또한 무척이나 기대된다는 소리.
(장황한 듯 보이지만, 결국엔 이런 간명한(허무한)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