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태풍 사계절 1318 문고 89
이상운 지음 / 사계절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태풍이 불면 세상이 바뀐다

-내 마음의 태풍을 읽고

                                                                     

중 2 딸에게 이 소설을 읽어보라고 주면서 74 년 고등학교 시절이 떠올랐다 . 민기는 아마도 강릉이나 속초 정도 고등학교를 다녔나 본데 나는 수원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 강릉이나 수원이나 유신시대 인문계 고등학교 풍경은 다 똑 같을 것이다 .그리고 민기가 시험에서 23 등을 한 것은 유신 시대를 겪은 많은 고등학생들 경우일 것이다 . 우리 학교는 더 극심해서 우열반을 갈라 감수성이 민감한 여자 아이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었다 . 소위 ‘우등’ 반에 들어간 아이들은 ‘열등반’ 아이들을 ‘돌반’ 이라고 비웃었고 ‘돌반 ’ 아이들은 여기가 세상의 끝이라는 태도로 아침을 맞는 것이 두려워했다 . 문제는 , ‘우등반’ 은 두 반 뿐이고 나머지 다섯 반은  ‘열등반’ 한 반은 ‘취업반’ 이었다 .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아예 ‘취업반 ’ 으로 들어간 아이들과 ‘돌반’ 으로 불리는 아이들의 일상은 인간도 성적으로 등급을 매길 수 있다는 사실을 단칼에 보여준 것이었다 .

거기서 ‘돌반 ’ 에 들어갔던 내가 당황스러웠던 것은 , 내가 가진 개성과 인간성, 10 대 특유의 고민과 열정같은 걸 단지 수학, 영어 점수로 환치해서 평가한다는 사실이었다 .

‘내 마음의 태풍’ 은 당시 고등학생의 삶을 잘 보여 준다 . 2004 년 대한민국 고등학생이 보면 잘 이해가 안 갈 일들이다 .  하지만 민기나 경민이 가지는 생각과 삶은 그 시절 많은 아이들이 고민했던  것들이었다 . 그래서 그 아이들은 대학에 진학하면 사회 과학을 공부하게 되고 박정희와 전두환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었던 것이다 .

이 소설을 읽고 씁쓸했던 점은 ‘폭력이 대물림된다는 사실’ 이었다 . 70 년대 당시에 중고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자라나 지금 교사가 되었다 . 그런데 내 동창들을 포함하여 지금 중고등학교 교사이거나 학부모가 된 사람들도 당시의 교련, 국사, 수학 선생님들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 그건 독재자들은 죽거나 물러났지만 그들이 학습시킨 폭력과 억압이 고스란히 내면에 침착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 학생은 공부가 우선이야, 좋은 대학을 나와야 취직도  잘하고 돈도 잘 벌잖아 ,  말 많으면 빨갱이야, 전교조 교사가 학교 분위기를 다 망쳐 , 특목고를 위해서라도 고교 등급제는 필요해, 실력있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고교평준화는 해제되어야 해......

나도 중 2 딸아이에게  왜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말해주어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 . 점수가 잘 나와야 좋은 고등학교에 가고 (평준화되어도 좋은 고등학교가 있다!)그래야 ‘sky대학’에 간다, 그래야만  대기업에 취업하고 연봉도 수천만원이 될 것이며 좋은 남편감을 만나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의 품격을 말해준다는 뭔뭔캐슬 아파트에 살아야 하고 신차 발표회에 드나 들고 해외 여행을 가며 아이들은 조기 해외유학을 시킬 수 있다, 라고는 말할 수 없다 . 나는 인간이 지닌 고귀한 가치가 자본으로 환치되는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아이에게 말해줄 수가 없다 . 나는 내 아이가  중고교 점수가 안 좋아서 제조업체, 말하자면 공장에 가도 좋다 . 거기서 생산직직원 즉 제조업 노동자가  되어도 좋다 . 그렇게 살아서 내 아이가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건강한 노동자가 된다면  친구나 친지들에게 손톱만치도 ‘쪽팔릴’ 거 없다 .

내가 내 딸에게 이 책을 읽도록 하고 , 나는 네가 공장에 가도 좋다, 고 하니까 “ 그건 내가 싫어. 난 교사가 되어서 전교조가  될 거야! ” 하고 눈을 흘긴다 . 내 딸이 다니는 중학교는 내 아이에게 성적이 잘 나와야 한다고 강조 한다 . 고등학교에 가도 아마 그럴 것이다 . 나는 내 딸 친구 가운데 정희나 재국이나 경민이나 민기같은 아이들이 있어서 ‘태풍’ 이 아니면 ‘높은 파도 ’ 라는 문집을 만들자고 모의하기를 바란다 . 그런 것 때문에  교사에게 ‘찍힌다’면 내가 교육청 앞에 가서 1 인 시위를 할 것이다 . 학교는 아이들에게 사람답게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 중고등학교 학습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아이들을 6 년 동안 옭아매는 올가미가 된다면 아이들의 청춘이 너무나 가엾다. 이것을 바꾸기 위해서 애 쓰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이 책이 아이들에게 그런 생각을 하는 동기가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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