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6 - 정조실록 - 높은 이상과 빼어난 자질, 그러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6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비가  슬프게 죽었는데 그 죽음을 재촉한 자가  조부와  어미라면  자식은 어떤 심정을 가지고 일생을 살아야하는 걸까 ? 왕후장상의 씨앗이 따로 있어  왕조를 이어가기는 한다지만 그 왕조를 잇기 위해 숱한 고뇌가 따른다면 왕족들은  기어이 그 길을 가야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일까 ? 

조선왕조는 특히나  혈육간에 골육상쟁을  당연시하며 이어진 왕조이지만 정조에 다다르면 그 고뇌의 긑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   대저 권력이란 게 뭐기에  노론이며 소론, 시파며 벽파로 갈리어  다툴 때 아비조차도 제 아들을 미워하고 경계하여  뒤주로 들어갈 것을 명하고 그 공간에서 죽을 때까지  가혹하게  놔둔단 말인가 ? 하기야   요즘도 아비와 아들이 불화하여 아비가 아들을 죽이거나 아들이 아비를 죽이는 일은 드물지 않다 .  하지만 범부가 아니라 왕족이었다면   그 의미가 살짝 다르다 .  종자가 귀해 왕을   여러 경로를 통해  꿔오기도 하던  조선왕조가 아닌가 ? 그들이 생각하는 정통성이란 장자가 유력한 가문의 혈통좋은  본처를 통해서 낳아야만   왕이 될 수 있다고 여긴 모양인데 21 세기에  핏줄에  고급과 저급이 존재한다는 건  좀  어폐가 있다 . 어쨌든 정조는 아비의 죽음을  늘 의식하며 조부에게 잘 보여야했고  왕세자 교육을 받으면서  자기를 바라보는  뭇시산의  복합감정을 견뎌야 했다 . 그래서 결국 그는 화성을 지어 거기 물러안장 비병에 간 아비를   기억하고 추모하며  그 한을 풀어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훌륭한 제왕이라기보다는  효성 지극한 자식이었고  그 덕분에 화성은 오늘 날 유네스코에 등록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 아쉬운 것은  화성이  본 모습을 간직하지 못한 채  21 세기  재료로 복원되었다는 점이고  그 복원된 모습은  막 시장에서 사와 공장 냄새가 가시지 않은 채  몸에 걸친 의류처럼 겉돈다는 사실이다 .  

 

정조는  자신이  겪은 비극을 간직한 채 지금도 화성의 하늘은 배회하고 있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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