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反論] 金炯國 지속가능발전위원장의 <물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苦言>을 읽고
 

대운하 찬반 양측 모두 과학적 근거 부족
 

이왕 필자의 강연내용을 김 위원장이 인용한다면, “대운하사업을 추진하는 측도 확고한 과학적 근거나 자료 없이 ‘찬성을 위한 찬성’만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면, 필자의 취지가 조금이라도 더 공정하게 전달됐을 것이다.

李正典 서울대 명예교수
⊙ 1943년 만주 선양 출생.
⊙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美 아이오와대 경제학 박사.
⊙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한국자원경제학회장, 한국공공선택학회장,
    지속가능발전委 수자원분과위원장, 서울시 도시계획위원 역임.
⊙ 現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환경정의 공동대표.





2008년 1월, 시민단체 회원들이 대통령직인수委 앞에서 대운하반대 집회를 갖고 있다. 대운하에 찬성하는 측이나 반대하는 측의 주장 모두 과학적 근거는 충분치 못하다.

 2009년 1월호 月刊朝鮮에 실린 金炯國(김형국) 지속가능발전위원장의 <물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한 苦言(고언)>을 읽었다. 이 글은 크게 5 꼭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운하에 관한 부분을 빼고는 나머지 대부분은 귀에 익은 원칙론적인 내용을 위원장 특유의 설득력 있는 필치로 일반인들도 알아듣기 쉽게 정리한 것들이다.
 
  김 위원장의 글은 한국의 大(대)가뭄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부터 시작된다. 사실 한반도 대가뭄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건설교통부(지금의 국토해양부)가 틈만 나면 강조했다. 그리고 그 대책으로 제시된 댐 건설 역시 건교부의 단골 메뉴였다. “물 가뭄에 대하여 그것밖에 할 얘기가 없느냐”는 여론의 질타를 집중적으로 받아 지난 수년간 댐 건설 얘기가 잠잠해지는 듯하더니 최근에 다시 불거지고 있다.
 
  물론, 댐 건설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물 가뭄 정책기조의 균형과 정책의 다양화다. 오늘날과 같이 복잡한 사회에서는 한 가지 정책수단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책을 쓸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책을 동원해야 한다.
 
  댐 건설은 소위 공급위주의 사고방식 즉, 무엇이든 부족하면 더 많이 공급해서 그 부족을 메운다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대책이다. 1990년대 文民(문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정책은 이런 공급위주 사고방식의 지배를 받았다. 물 정책이 그랬고 에너지 정책이 그랬고 토지 정책이 그랬다.
 
  물 문제의 경우 공급위주의 정책은 성공적이었다. 그 결과 물 가뭄이 상당한 정도로 해소되었고, 1인당 물 이용량이 미국·일본을 제외한 유럽 선진국을 훨씬 상회할 정도로 물을 풍족하게 쓰는 나라가 되었으며, 단위 면적당 댐의 숫자가 세계적으로 매우 많은 나라가 되었다.
 
 
  물정책, 댐 건설 일변도에서 탈피해야
 
  그러나 너무 많은 댐이 건설되면서 1990년대 이후 댐 건설의 부작용(환경파괴, 수질오염, 안전, 지역갈등 등)이 표면화됐다. 종래 공급위주의 정책을 반성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조성되면서 수요관리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공급을 늘리는 것과 수요를 적절히 통제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물 문제 해결에 효과적이냐”가 1990년대 내내 영월댐(동강댐) 건설 논쟁의 핵심이었다.
 
  공급위주의 정책이 너무(?) 성공한 결과 우리 국민은 물을 무척 낭비하는 국민이 되었다. 우리 국민의 1인당 국민소득은 프랑스에 비해서 훨씬 낮으면서도 1인당 물 소비는 프랑스 국민의 1인당 소비량의 거의 2배에 달했다. 우리 국민이 서구 선진국 국민에 비해서 물을 너무 헤프게 쓴다는 얘기는 외국 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이나, 외국에 오래 살던 사람들로부터 자주 듣는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일상생활에서 물을 가장 많이 쓰는 용도는 변기세척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변기를 물 절약형으로 개조하여 변기 한 번 쓸 때마다 내려가는 물의 양을 일본에서 보통 쓰이는 변기의 물 사용량 수준으로 줄이면, 1년에 절약되는 물의 양은 영월댐의 1년 공급량과 맞먹는다. 변기 개조에 들어가는 비용은 댐 건설 비용의 10분의1도 안 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이뿐이 아니다. 샤워꼭지나 수도꼭지 개선과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中水道(중수도) 이용, 빗물 이용, 폐수 재활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책을 잘 배합해서 효과적으로 추진한다면 댐 건설의 필요성은 크게 줄어든다. 돈도 절약하고 물 이용 관련 산업도 육성된다. 이것이야말로 녹색성장의 진수다.
 
  수요관리 정책은 1992년 지구정상회담에서 ‘지속가능발전의 원칙’이 천명되고, 이 원칙의 행동지침서인 <의제 21>이 채택되면서 부쩍 힘을 받기 시작했다. 수요관리는 지속가능발전 원칙의 핵심이며, <의제 21>이 초점으로 삼은 주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도 아닌 지속가능발전위원장의 글에서 ‘수요관리’라는 말이 한마디도 없었던 것은 아쉽기 짝이 없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진정 세계의 흐름에 따라 지속가능발전을 추구한다면 수요관리가 그 핵심 과제가 되어야 한다. 요컨대, 물 가뭄 문제에 관해서는 댐 건설 일변도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수요관리 대책을 포함하는, 보다 더 발전된 정책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4대강 支流의 수질에도 관심을
 
  하천관리는 최소한의 국가과제임은 굳이 老子(노자)의 말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지당한 것이다. 다만, 지속가능발전위원장은 4大江(대강)의 水質(수질)만 언급했을 뿐, 그 4대강에 유입되는 支流(지류)의 수질이 4대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럽다는 사실은 언급하고 있지 않다. 아마 정부가 화급하게 추진하고 있는 4대강 정비사업에 힘을 실어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수질에 관해 우리나라 최고 권위자의 한 사람인 金丁勖(김정욱) 서울대 교수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고인 물은 썩는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4대강의 물이 더럽다면 그 주된 이유는 더 더러운 지류의 물이 유입되기 때문이요, 4대강 下流(하류)의 물이 더러운 이유는 댐에 막혀 물이 잘 흐르지 못하고 썩기 때문이다. 治水(치수)와 관련해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중점적으로 살펴봐야 할 사항은 4대강 지류의 홍수와 지류의 수질이다.
 
  끝으로, 김 위원장은 물 관련 행정기구의 정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문제는 일선 부처들 사이의 영역다툼에 관한 민감한 사항이라서 지속가능발전위원장이 구체적인 언급을 하기에는 버거운 문제라고 본다.
 
  그러다 보니 김 위원장은 “관련 부처 간 협조 절실”이라는 정도의 원칙적인 얘기만 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세상에 ‘관련 부처 간 협조’처럼 어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金炯國 위원장의 잘못된 해석
 
댐 건설 등 공급위주의 물 정책에서 벗어나 수요관리 등 다양한 물 정책이 필요하다. 사진은 양양 양수발전소 건설을 위해 축조된 하부댐.

  김 위원장은 글의 冒頭(모두)에서 한국의 물 가뭄을 경고하고 나서 곧장 대운하 사업으로 말머리를 돌리면서 이 사업이 “하천 내지 수자원관리의 획기적 이정표가 될 만했다”고 평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김 위원장은 대운하 사업의 주목적이 물 가뭄 해소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는 측은 타당성 공격을 받을 때마다 이 사업의 목적을 애당초 物動量(물동량) 운반에서부터 관광진흥, 지역개발 등에 이르기까지 수 차례 바꿔 국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대운하 사업의 주목적이 가뭄해소라면 또 한번 더 어리둥절해진다.
 
  김 위원장은 대운하 사업이 추진되지 못했음을 못내 아쉬워하며, 반대론자들의 집요한 반발로 촉발된 民心(민심)의 離反(이반)이 그 원인이었다고 보았다. 이어서 그는 마치 필자가 “대운하 반대론자의 주장이 ‘반대를 위한 반대’논리였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필자의 退任(퇴임) 강연 내용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다.
 
  <李正典(이정전) 전 서울대 교수는 대운하 반대론자의 논거에 과학적 신빙성이 없었다고 지적한다.… 강연 가운데 대운하 관련 요지는 “… 반대론자들이 심각할 것이라 주장하는 수질 오염, 생태계 파괴도 축적 자료가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희떠운 말이고 보면, 결과적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논리”라는 것이었다.…
 
  “엄밀한 과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저번 대운하 사건은 애당초부터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필자는 강연에서 한번도 대운하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반대를 위한 반대’ 논리라고 말한 적이 없다(정확한 내용은 필자의 홈페이지 jjrhee.net에 실린 정년퇴임 강연원고 참조바람).
 
  잘 알려져 있듯이 대운하를 둘러싼 찬반 양측의 논쟁이 과열되어 노골적으로 상대방을 묵살하는 언사가 난무했다. 필자는 강연에서 “그렇게 상대방을 묵살할 수 있을 정도로 대운하에 대한 양쪽의 주장이 과학적 사실에 확고하게 定礎(정초)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과연 어느 쪽이 옳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아주 기초적인 자료조차 축적되어 있지 못한 우리의 슬픈 현실을 고발했다.
 
  아마도 김 위원장은 “상대방을 묵살할 만한 과학적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한 말을 “‘반대를 위한 반대논리’를 펴고 있다”고 해석한 것 같다.
 
 
  척박한 현실
 
  그런 해석은 지나친 비약이다. 확고한 과학적 근거 없이 얘기한다고 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있다”고 해석한다면, 이 세상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필자는 대운하에 관한 전문가들의 연구회에 10여 차례 참관했는데, 과학적 근거와 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참여자들의 노력이 돋보였다.
 
  물론, “강연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듣는 사람의 자유”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이 지속가능발전위원장과 같은 고위직 공직자에게 기대하는 것은 공정한 해석과 판단이다.
 
  이왕 필자의 강연내용을 김 위원장이 인용한다면,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는 측도 확고한 과학적 근거나 자료 없이 ‘찬성을 위한 찬성’만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면, 필자의 취지가 조금이라도 더 공정하게 전달됐을 것이다. “대운하를 추진하는 측의 공사비 산정은 서울에서 부산에 이르기까지 물길의 강바닥 6m 이하가 마치 모두 모래나 자갈로 차 있는 것처럼 假定(가정)하고 있는데 이것 역시 과학적 근거가 박약하다”고 김 위원장이 언급했다면, 필자의 강연취지가 훨씬 더 공정하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地質學(지질학) 전문가에 의하면, 우리나라 강바닥 밑을 2~3m만 파고 내려가면 온통 암반뿐이라고 한다. 그 암반을 모두 깨내야 하는데 그렇다면 대운하를 추진하는 측이 산정한 것보다 공사비가 훨씬 커진다.
 
  다만 공사비가 정확하게 얼마나 더 불어날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강바닥 밑에 대한 세밀한 조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우리나라에는 기초자료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는 바로 이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런 자료부족 현상은 대운하 토론회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했던 수질오염, 홍수, 생태계 파괴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쪽에서는 “대운하를 건설하더라도 수질오염 문제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반대 측에서는 “수질오염 문제가 대단히 심각할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양쪽의 주장을 잘 파악하고 있는 중립적 전문가에 의하면, 솔직히 말해서 대운하 건설이 어느 정도의 수질오염을 초래할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엄밀한 대답을 하기에는 현 시점에서 축적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는 “수질오염을 예측하는 모형은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지만, 그 모형에 집어넣을 기초적 자료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적대적 공동연구’ 필요
 
  찬성하는 쪽이든 반대하는 쪽이든 대부분 자기 분야에서 일가견을 가진 과학자들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과학적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상대방을 압도할 정도로 충분치 못할 뿐이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글에 썼듯이 “대운하 반대에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거나, “대운하 사업이 애당초부터 논쟁거리도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대운하에 대한 찬반 양측의 열띤 논쟁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어떤 견해의 차이가 발생했는가를 양측뿐만 아니라 제3자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런 점에서 큰 성과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다만, 더 이상 상대방을 묵살하는 소모적 논쟁을 거두고 이제부터는 대운하 사업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떠나 정말 객관적인 입장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과학적 근거와 자료를 축적해나가야 한다는 점을 필자가 정년퇴임 강연에서 간절히 호소하고 싶었다.
 
  과학적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적대적 논쟁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채 상처만 남길 뿐이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다니엘 카네만 교수는 “‘적대적 공동연구(adversarial collaboration)’를 시도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적대적 공동연구’란 ‘信義誠實(신의성실)의 원칙’ 아래 말 그대로 적대자들이 공동연구 사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카네만 교수는 “제3의 중립적 인사가 자료수집과 연구수행을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대운하 건설처럼 견해가 크게 엇갈리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우리 학계에서도 카네만 교수가 말하는 적대적 공동연구를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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