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경제신문 칼럼 - 좋은 경제로 가는 길
우석훈

자기 직업과 자기 생각이 얼마나 일관되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좀 의문이다. 스스로 ‘엔지니어’라고 말하면서 말끝마다 ‘엔지니어적인 생각’이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진짜로는 돈만 생각하는 사람을 종종 본 적이 있다. 경제학자 중에서도 말로는 맨날 경제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경제 보다는 이념을 훨씬 많이 생각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았다. ‘좋은 경제’라는 말은 지난 몇 년 전부터 나도 종종 쓰는 개념인데, 이 단어를 정의하기가 참 어렵다. 올해 KBS 신년 토론회에서는 “조금 가더라도 더 많은 사람을 태우고 가는 배”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나답지 않게 철학적으로 이 개념을 정의한 셈이다. 한 달 전 동경신문의 전 편집국장과 긴 시간 식사를 같이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일본을 신뢰의 자본주의로 본다”라는 한참 일본이 좋았을 때의 일본 자본주의에 대한 유럽의 시각을 전달한 적이 있다. “일단 그 안에서 태어나면 밥은 먹여주는 경제”, 그런 정의를 쓴 셈인데, 일본 사람에게도 이 얘기가 간만에 듣던 얘기였는지, 신문에 짧게 언급이 되었다.

경제학자로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쮜리히의 어느 젋은 커플을 보았을 때의 일이었다. 오전에 코와 뺨에 피어싱을 하고 스켄 헤드를 하고 있던 이 커플은 누가 보아도 극우파 패션을 하고 있었고, 아마 분명히 넉넉하지는 않을 것이고, 또 정치적으로도 외국인을 미워하는 그런 정치적 흐름에 속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스위스는 극우파 정당이 단일 규모로는 최대이고, 이런 극우파 흐름의 본산지가 쮜리히다. 그러나 버스를 타기가 너무 어려웠고, 버스 정류장마저 복잡했는데, 길거리에는 다른 사람이 없었으므로,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이 커플에게 버스 타는 법을 물어보고야 말았다. 늘 모르는 도시에 가면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기는 하는데, 나는 독일어로 길을 물어볼 정도는 안 되니까, 영어로 물어봤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경우는 이 경우가 처음이었다. 결국 이 커플은 10분 거리에 있는 다른 버스정류장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나중에 어떻게 이 극우파 커플이 그렇게 친절할 수 있는지, 쮜리히 시와 찌리히 경제 그리고 스위스의 사회교육 등 관련된 맥락을 연구를 했는데, 이 연구가 졸저 <88만원 세대>의 첫 모티브가 되었다. 극좌에게 극우까지, 서로 정치적 지향은 다르지만 국민경제라는 틀 내에서 새로운 다양성을 만드는 경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국민경제의 한 조건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국민소득 4만불을 넘는 나라의 특징이, 50% 이상이라고 생각하는데, 하여간 많은 국민들이 ‘경제적 동기’가 아닌 다른 동기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이다. 당연한 것이, 이 조건 내에서만 국민들의 ‘열정’을 제대로 끌어내면서도 이것이 다양성의 지식체계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의 청소년 경제교육이 드디어 어린이 경제교육까지 내려왔고, 사실상 한국은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돈’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다. 이러면 국민경제가 곧 지옥과 같아진다. 지식은 나오지 않고, 효율성은 떨어지고, 그걸 채우기 위해서, 임금을 낮추거나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다시 효율서은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삶을 보람으로 여기는 사람’ 그러나 돈에 목 매지 않은 국민, 이런 사람이 많아야 경제가 잘 되는데, 이런 사람이 점점 줄고 있다.

결국 “돈이 최고야”, 이런 나라는 중남미에 가면 많다. 한국 경제 위기에서 ‘돈독’ 오른 사람들이 더 늘어나는데, 이게 새로운 함정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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