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김중배 선생이 내 치기를 우려해서 독설을 최대한 줄이고 정중하고 우아한 글을 쓰라는 ‘교시’를 내렸다. 지금 이 순간만큼 그 충고의 말씀이 원망스러운 적은 없었다.

이명박대통령은 심각한 인지부조화 상태다. 자신이 틀릴 리가 없는데 실제로는 틀려도 이만 저만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갖가지 인지부조화의 증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은 바보의 행렬에 합류시켰다. 우기고 또 박박 우기다가(인지부조화의 부인 단계) 이젠 모두 틀렸으니 괜찮다는 얘기다(합리화 단계). 천만에... 스티글리츠나 루비니교수, 또 국내외의 정치경제학자들을 거론할 것도 없이 내가 재작년과 작년에 이 지면에 쓴 글에도 경제위기에 관한 얘기는 무수히 등장했다. 아예 만보쯤 물러서서 대통령의 말을 받아들인다 해도 10% 이상의 차이로 틀린 곳은 아무데도 없다.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한나라당의 인지부조화는 이제 내년의 경제성장율 예측으로 향한다. IMF가 금년에 -4% 성장을 하지만 후년에는 4.2%로 성장률이 껑충 뛸 것이라는 예측을 했으니 ‘합리화’가 더욱 힘을 얻는다. 또 한번 천만의 말씀이다. 30년 가까이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단언한다.  아마도 IMF는, 그리고 여러 경제예측기관은 현재의 상황을 단기적  충격의 외생변수로 처리한 모양인데 내가 보기에는 각종 함수의 탄력성 계수가 모두 변한 상태이다. 이걸 수정하지 않으니 충격 후의 성장률이 높게 나올 수 밖에...

인지부조화는 모든 사실과 합리적 예측을 무시한다. 전국에 걸친 미분양 사태가 주택의 과잉공급을 증명하고 텅빈 고속도로 수준의 지방도로가 널렸는데도 전국에 또 삽질을 한다. 국토의 70%가 산이고 대부분의 강은 천정천이라는 ‘사실’은 초등학교에서 배웠는데 이명박정부의 머릿속에는 인지부조화의 지우개가 들어 있는 게 틀림없다. 촛불에 밀려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하지 않겠다”던 대운하 사업을 강행하고 심지어 참여정부에서 중단됐던 경인운하까지 판단다.

컴퓨터로 계산해낸 파생상품이 리스크를 분산시킬 것이라는 거짓 이론을 믿고 투자은행의 규제를 풀고 자산시장의 왜곡된 유인체계를 법제화한 결과가 현재의 금융위기인데도 자본시장통합법을 시행한다. 기재부 관리들과 일부 금융자본가들은 기어코 수영을 배워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온 국민을 바다에 빠뜨릴 난파선을 기어코 출범시켰다. “재벌에게 은행을 주는 법이 어떻게 경제살리기법이냐”고 비판하는 이동걸박사를 기어코 몰아냈다. 인지부조화를 깨우치는 목소리만큼 듣기 싫은 게 또 어디 있을까? 급기야 검찰은 용산참사를 찍은 칼라티비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인지부조화’의 사실 그 자체를 담은 영상마저 무서운 것이다.  

“포도원을 빼앗으려고 임금이 농부를 죽였습니다”

2월 2일 밤, 천주교의 사제들이 시국미사에서 맨 앞에 내세운 만장의 글귀다. 대통령은 자신의 인지부조화로 인한 모든 오류를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 스스로 뉴타운의 입안자니 그로 인한 부작용을 어찌 인정할 수 있겠는가? 생존을 건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특공작전’에 의해 철저히 막아야 한다. 10년 전의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기억하는가? 영세 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실업자와 무직자 등이 차례로 용산 세입자들의 뒤를 이을 것이다. 그 때마다 인지부조화의 정신병은 특공대를 동원할 것이니 어찌 성직자들이 거리로 나서지 않을 수 있겠는가?

수많은 이들의 생명, 그리고 죽음같은 후유증을 감당해야 할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선 대통령과 주위의 집단적 인지부조화부터 빨리 치료해야 한다. 사제들의 치료법은 이렇다. “어리석은 통치자에게 더 이상 사람의 길, 생명의 길, 사람의 길을 찾아달라고 부탁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힘으로 되찾읍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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