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바마를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바마가 부른다면...


분류없음 2009/01/26 11:53

최근 워싱턴에 사는 사람들 몇 명을 직접 만나기도 하고, 간접적으로 얘기를 건네 듣기도 하였다. 이중에는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인 한국인도 있고, 미국 공무원들도 몇 명이 있었고, 또 권위있는 분석가들도 있었다.

이들이 하는 얘기를 모아보면,

"나는 오바마를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바마가 부른다면 기꺼이..."

이런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몇 번의 정권 교체에서 한국에서 소위 진보 진영에 있던 사람들이 했던 얘기와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DJ 때는 어땠을까?

"나는 DJ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정권에는..."

DJ 때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많이 떠돌았다. 그러나 정권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미덕처럼 되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나는 그 시절, 현대를 그만두고 정부기관으로 자리를 옮겼었고, 정권 내부에서 꽤 많이 움직인 편이다.

노무현 때에는...

"나는 노무현을 좋아할 뿐이고, 다만 좋아할 뿐이고."

이런 열풍이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정권을 가졌던 것과 비교하면, 어려웠던 승부를 가까스로 역전을 했다고 생각한 많은 사람들은 이제 한나라당은 곧 역사 속에서 사라질 것이고, 민주당, 민노당 그리고 시민정당 혹은 녹색당, 이렇게 3분 체계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지금 회상해보면, 사람들은 "기다리면 모든 것이 좋아질 것이다"라는 너무 강한 낙관론으로 빠져들었던 것 같다.

김진표의 정권인수위원회는 그런 낙관론의 귀결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나는 그걸 보고 "이제 망했다"라고 생각하고 공직 생활을 정리하고 시민단체 활동을 시작했다. 노무현 초기 2년, 소위 좌파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국강병'을 외칠 때, 좀 괴로웠다. '골프장 좌파'들이 득세할 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다.

이명박 때에는 어땠을까?

절망과 좌절이 한 번쯤 흘렀던 것 같은데, 내 주변의 우파 인사들은 어떻게든 줄을 대서 청와대에 들어가 보고 싶어하던 인간들과, 역시 이명박은 내 스타일 아니다라고 선거에서 이기자마자 선을 긋고자 했던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어차피 모두가 원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일은, 이 세상에서는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일은 정의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최근의 용산살인 사건을 보고, 자신의 입장을 결정하기는 한 것 같고, 미처 정리하지 못한 우파 인사들도 이 사건으로 꽤 입장을 정리한 것 같다.

어쨌든 공과에 대한 평가는 몇 년이 지나야 제대로 나올 것이지만, 살인 정권과 이름을 같이하기는 좀 어려운 것 아닌가?

가끔 남재희 장관과 이것저것 얘기할 기회가 있기는 한데, 이 양반이 전또깡 시절의 얘기가 나오면 상당히 괴로워한다. 아무리 보수 인사라도 살인정권에 대한 협력은 결국 자신의 자서전을 쓰는 순간에 어떻게든 변명하든, 미화하든, 하여간 설명을 위해서 각별히 노력을 해야하는 순간이 오게 된다.

타칭 이명박노믹스라고 하는 것이 기초 설계자의 한 명이라고 하는 사람을 잘 안다. 타칭인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데, 본인은 그냥 깃털이라고 극구 부인하기 때문이다.

촛불이 한참일 때, 어느 방송국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꽤 길게 이 양반하고 이것저것 길게 논의할 시간이 있었는데, 그는 그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열심히 준비한 경제정책들이, 촛불에 바베큐 되어버렸다.

그러나 곧 촛불이 잣아들면, 우리의 정책이 본격가동될 것이다.

그 때 내가 한 질문은, 그 경제정책이 본격 가동되면 한국에 본격적으로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지는 않으셨나요?

그럴리가 없다고 대답한 기억이다.

지금 자신들이 만든 이명박 정권을 기본적으로는 자랑스러운 정권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용산 살인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다시 한 번 물어보고 싶기는 하다.

오바마라고 특별히 지금의 미국 정치의 의사결정 과정이나 권력의 균형 속에서 아주 다르게 하지는 못할 것이고, 특히 이스라엘 문제 등 결국 보수로 상당 부분 회귀할 것이라는 게 워싱턴에 있는 많은 오바마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입장인 것 같다.

그건 객관적이지만, 혹시라도 오바마가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면 언제든지 도와주겠다...

그게 한나라당이든, 민주당이든, 혹은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이든, 다음 번 정권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입장을 가지도록 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

그게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일종의 대의이고, 대세일 것 같다.

오세훈을 믿지는 않지만, 오세훈이 부른다면?

동대문 운동장 부수고, 서울시청 부순 파괴 대마왕 오세훈이 부르면, 지금에 와서야 웃기지 마라고 얘기할 사람이 더 많지 않나?

박근혜가 부른다면?

야야, 웃기지 마라, 할 사람이 많아 보인다.

정세균이 부른다면?

새만금부터 정리하고, 경인운하 정리하고... 대답이 복잡하다.

심상정이 부른다면?

묘한 페이소스가 흐를 것 같다.

노회찬이 부른다면?

많은 사람이 오바마와는 반대로, 노회찬은 믿지만, 불러준다면, 에, 사양의 미덕을... 이러지 않을까 싶다.

참 어려운 조건인데, 개인은 믿지 않지만, 부른다면 자신의 것들을 기꺼이 내놓겠다는 이 조건이 약한 점 하나가 광야를 불사르는 일이 벌어질 때의 사회적 조건 혹은 정치적 조건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보자면, 지금 이 조건에 가장 가깝게 간 사람이 강기갑 의원 아닐까 싶기도 한다.

강기갑 개인이 뭘 잘 할 것 같지는 않아보여도, 그래도 도움을 청한다면 이 국면에서는 뭐라도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는 않을 것 같다.

하여간 한국 정치인들은 "믿어주세요"라는 말을 맨 앞에 꺼내기는 하는데, 믿지는 못해도 도와주기는 하겠다는 이 묘절한 조건, 그게 최근 오바마 취임을 전후해서 워싱턴의 정가와 시민사회에 묘하게 흐르는 기저인 것 같다.

다음 총선 때 일본에서는 드디어 자민당 정권이 민주당 정권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많다고 한다.

솔직히 오자와가 다른 자민당 인사와 뭐가 근본적으로 다른지, 혹은 민주당이 어떤 정책 기조를 펼칠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유야 어쨌든 최근 일본인들과 일본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 것에 대해서 논의할 때, 고이즈미와 '네오 리베'라는 표현을 하면 약간 폭넓은 동의가 나오는 것 같다.

그 고이즈미와 오자와가 정책 기조가 어떻게 다를지, 나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여간 천년만년 갈 것 같은 자민당이 금년 상반기의 총선 때 정권을 내놓게 된단다.

이 오자와에게도 많은 일본인들은 유사한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면, 오자와는 믿지 않지만, 아소 다로 가지고는 어렵지 않나? 그래서 표는 오자와에게 주겠지만, 내가 뭘 적극적으로 이 민주당 정권에서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한 마디들을 덧붙였다. 어쨌든 자민당은 좀 집으로 보내야 하지 않겠냐...

아사히나 동경신문 기자들 같이 현장에서 취재하는 사람들은 물론, 아직도 바닥에서 움직이고 있는 파견 마을의 조직가들이나 활동가들도 유사한 얘기를 하는 것 같다.

용산 살인 사건, 하여간 이 가슴아픈 사건을 경계로, 한국에서 묘한 흐름의 전환 같은 게 생겨나기는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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