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선생님과 아이들은 언제까지 눈물로 만나야 할까?
-성태에게(1)

겨울 방학을 앞둔 2008년 12월 10일 신문, 방송에서 ‘엉뚱한’ 교육 소식 하나가 튀어나온다. ‘서울시 교육청은 징계위원회를 열고 일제 고사를 앞두고 학부모들에게 불법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체험 학습을 안내하여, 공무 집행을 방해한 교사 일곱 명에 대해서 파면, 해임을 의결했다’고 하는.

이 소식이 ‘엉뚱한’ 것은 일제 고사를 앞두고 가정통신문을 보낸 일, 일제 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할 수도 있다는 안내를 한 일이 ‘공무집행 방해’에 해당하며, 그렇다고 교사로서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파면 해임을 의결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에 있다.

이 일을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자. 2008년 10월 14일~15일 이틀 동안 온 나라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서 ‘일제고사’(학업 성취도 평가)가 치러졌다. 이 시험을 앞두고 꽤 많은 선생님들은 ‘전국 단위 일제고사’가 아무래도 아이들한테 도움이 되지 않을 거 같다는 ‘교사 양심에 따른 판단’에 따라, 반 아이들과 일제 고사의 문제점을 토론하고, 학부모님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일제고사에 대해서 잘 판단해 보시고,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지 않으면 다른 길도 있으니, 현명하게 선택하시기 바란다’고 안내를 한다.

그 일곱 선생님 가운데 한 분이 보낸 ‘일제고사에 관해 알려드립니다’를 읽어 보자.

(앞 줄임)
  다름 아니라, 일제고사에 대한 학부모님의 의사를 여쭙기 위해 이렇게 편지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언론보도를 통해 이미 알고 계시다시피, 교육부는 오는 10월 8일, 14~15일에 일제고사를 치를 계획입니다.
그런데 연구자료 추출을 위해 표본 집단 학교만을 대상으로 했던 예년과는 달리, 올해 치러지는 시험은 모든 학교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제고사’ 방식입니다. 표본 집단이 아닌 학생들도 똑같이 시험을 치르고, 성적자료를 모아 통계를 낸 뒤 교육청과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활용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시험성적이 공개될 경우 성적에 따른 학생 서열화는 물론, 지역에 따른 학교 서열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또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 경쟁이 붙어 학부모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사교육 열풍이 불어 닥칠 것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날로 극심해지는 입시 경쟁 속에서 어린 아이들이 감당해야 할 심리적 중압감입니다.
하지만 비표집학교의 경우 일제고사는 반드시 치러야 하는 의무사항은 아닙니다. 학생과 학부모가 원치 않을 경우, 시험 대신 다른 대체 교육 프로그램을 요청할 수도 있고, 체험학습을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아래 양식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말씀해주시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편지는 이어서 ‘회신서’를 보내 달라고 부탁한다.

일제고사 참여 여부(하나만 선택하여 주십시오)
1. (     ) 일제고사에 참여 하겠다.
2. (     ) 일제고사에 참여하지 않겠다. (체험학습 희망)
3. (     ) 일제고사에 참여하지 않겠다. (대체 프로그램 희망)

이런 편지를 받은 부모님들과 아이들은 어김없이 집마다 둘러 앉아, 일제고사 참여 여부를 길게 토론하고, 드디어 아이, 부모가 합의하여, 표시를 한 뒤, 담임선생님에게 ‘회신서’를 전해드린다. 일제고사 날에는 시험 볼 아이는 시험을 보고, 체험학습을 떠날 아이는 부모님과 함께 다녀오고, 또 어떤 아이들은 학교도서관에서 시험 대신 책을 읽었다. 그리고 두 달 뒤 어느 날 ‘자신들이 일제 고사 대신 체험 학습을 간 일’ 때문에 담임선생님 목이 뎅겅 날아가는 일을 눈뜨고 봐야 하는 일을 당하게 된다. 그것도 초등학교 졸업을 바로 얼마 남겨 놓지 않고서.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서울시교육청은 12월 10일 징계 의결 사실을 언론에 알리면서 ‘징계 대상 교사 가운데는 자기 아이는 일제고사에 응시한 경우도 있었다’고 해서, 마치 일곱 선생님들이 ‘자기 자식은 시험을 보게 하고, 남의 자식들은 시험을 못보게 망친 파렴치한 사람들’이란 낌새를 흘리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 나라에서 가장 힘이 세다는 신문들은 이를 아주 굵은 글씨로 퍼다나르기도 했다. 내친 김에, 서울시교육청이 내놓은 ‘징계요구서’도 같이 읽어 보자. 여기에는 일곱 선생님들 죄목을 ‘성실 의무 위반’, ‘복종 의무 위반’으로 들었다.

성실 의무 위반
-학업성취도평가와 관련하여 학교장 결재 없이 임의로 제작한 평가관련설문지를 배부하여 평가 응시 참여 여부를 선택·회신하도록 하는 등 고의로 학생들의 응시 거부를 유도함.
-담임 임의의 평가관련설문지에서 체험학습을 선택하도록 하고 체험학습을 선택한 학생에게는 일부 단체가 실시하는 체험학습에 참가하도록 안내함으로써 학교장의 승인 없는 비정상적 체험학습을 학생들이 참여하도록 조장함.

복종 의무 위반
-학교장이 미응시 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도록 지시하고 담임 명의의 평가관련 설문지를 발송하게 된 경위 및 학생들의 미응시 관련하여 확인서 제출을 요구하였으나 이에 불응함.

교육청이 일곱 선생님들이 교사로서 한 교육 행위를 두고 들이민 ‘성실과 복종의 의무 위반’이라는 잣대는 마치 전쟁 상태에서 명령을 받아서 움직여야 하는 군인들에게나 어울릴 법한 내용이다. 이십년 전에 천오백 명이 넘는 ‘전교조 가입 교사들’을 강제 해직시킬 때도 같은 잣대를 내세워서 그랬다. 일제 고사의 문제점을 알리고, 이를 학부모가 아이들 하고 의논해서 다른 길도 선택할 수 있다고 알린 것이 ‘응시 거부 유도’, ‘비정상적인 체험학습 참여 조장’, ‘정상적인 성취도 평가 시행 방해’에 해당하기나 할까.

몇 걸음 물러나서 교육청이 주장하는 대로 그렇다고 하자, 그러면 그 편지글 읽고 체험학습을 가겠다고 결정한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또 뭔가? 일제 고사 첫날 교장 교감 선생님들이 학부모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고(이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아이들을 불러서 다그치고(거의 협박 수준이었다고 한다.)했는데, 둘째 날에도 체험학습을 떠난 아이들이 꽤 되는 것은 선생님의 유도와 조장에 따라 움직인 ‘로봇’이란 말인가? 따져보면 볼수록 말이 되지 않는, 아이들 말대로 ‘개념이 없는’ 교육행정당국의 ‘관료주의’가 답답하고, 슬프다.

또 하나 아무리 일곱 선생님의 행동이 지나쳤다고 해도, 교사로서 생존권 박탈에 해당하는 파면, 해임 처분은 정당한가?에 대해서는 더 많은 비판이 쏟아져나왔다.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도 훨씬 낮은 처분을 받고 교단에 서 있는 교사들이 있는 경우에 비추어서도 그렇다.

이번 ‘일제고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을 곱씹어보면, 일곱 선생님과 그 반 아이들, 학부모님들이 당한 어처구니 없는 일은 어쩌면 시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년 지금 정부가 들어선 뒤부터 벌이고 있는 일제 고사 부활, 영어 몰입 교육, 국제중학교 설립 강행, 자립형 사립고 늘리기 같은 정책은 한결같이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에게 지금까지보다 더 힘든 경쟁의 길로 가도록 내몰고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좀더 높은 점수를 따는데 매달리도록 하는 일, 그것은 아무리 좋은 말로 둘러댄다 해도 ‘교육’이 아니라 ‘입시 공부 기계’를 만드는 일이다.

공부를 못해도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꿈을 키워가도록 하고, 내일이 아닌, 바로 오늘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학교. 시험 점수 1, 2점으로 석차가 바뀌는 경쟁 상대자가 아니라 참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는 교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움직이는 공교육이 가야할 길 아닌가? 그걸 가로막는 교육 행정 당국의 일방 통행 정책에 맞서서 일곱 선생님과 아이들, 학부모들이 흘린 눈물은 거꾸로 언젠가 밝고 환한 웃음으로 다시 피어나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 어떻게 희망을 두고 살아갈 수 있을까?

이제 답은 교사들, 학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찾아 나서야 한다.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기계’가 아니고, 스스로 자기 생각을 갖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기르는 교육을 위해 여럿이서 함께 할 수 있는 길은 엄청나게 많다.  

‘해직당한’ 일곱 선생님들이 소청심사위원회와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받아서 어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실 수 있기를, 그리하여 아이들과 학부모들과 손잡고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고’ 즐겁게 지내는 날이 오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빈다.

*선생님 일곱 분(최혜원, 설은주, 박수영, 송용운, 김윤주, 정상용, 윤여강)과 아이들 모두 힘내시라 응원하는 말 한 마디 건네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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