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일제고사 반대하면 퇴학?”

 이성희기자 mong2@khan.co.kr

똑 부러졌다. 앳된 얼굴이었지만 일제고사에 대한 반대 의사는 분명했다. 일제고사 반대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퇴학 위기에 놓인 정재호군(18·백암고 2학년). “잘못한 게 없으니 당당하다”는 그는 22일 저녁에도 ‘부당징계 철회· 일제고사 중단’ 촛불을 들었다.





-“일제고사 반대운동 하지않겠다는 서약서 요구”-

정군의 일제고사 반대활동이 문제(?)된 것은 지난 10월 처음 실시되는 일제고사를 앞두고 서울 오류중학교 앞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는 것을 체육교사가 봤던 것. 거기다 일제고사를 보는 학년은 아니었지만 학생을 일렬로 줄 세우는 교육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등교거부를 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학교 측은 진술서를 요구했고 ‘또 일제고사 반대운동을 할 때는 퇴학을 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그는 일제고사 반대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19일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 모임인 ‘Say No’를 도와 자신의 학교 앞에서 유인물을 나눠주다 담임교사에게 적발됐다. 정군에 따르면, 당시 다른 친구들이 있는 앞에서 ‘홍보활동을 그만두지 않으면 퇴학을 시키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학교 측은 ‘일제고사 반대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라’고 요구했다. 시위 선동이 징계 사유였다.

“일제고사를 반대하고 알리는 게 청소년이 해야 할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해요. 청소년은 마음껏 뛰어놀고 원하는 것을 해야 하는데, 일제고사와 영어몰입식 교육 때문에 더 심한 경쟁체제에 내몰리고 있잖아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못하고 부모님이나 학교, 학원 등에 속박돼 있는 상황인 거죠.”

이날 정군은 결국 서약서를 쓰지 않았다. 대신 ‘일제고사 반대활동에 대한 반성을 할 것이 없다’는 반성문 아닌 반성문을 작성했다. 이에 따라 학생부 교사들이 주축이 된 징계위원회가 구성돼 곧 징계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일제고사 대신 현장체험학습을 허락했다는 이유로 교사들이 파면·해임됐지만, 학생이 징계위기에 놓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생님들을 징계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도 참 답답했어요. 일제고사를 볼지, 체험학습을 갈지 선택권을 준 것 뿐인데 그걸로 징계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교사·학생 1000여명이 지난 17일 저녁 촛불을 들고 서울 신문로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을 허용한 7명 교사의 파면·해임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서약서를 쓰지 않은 것도 ‘또 다른 시작’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부당하다고 생각한 것도 있지만, 제가 서약서를 쓰면 곧바로 다른 학교 친구들의 일제고사 반대활동도 문제 삼을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저와 학교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명박 대통령과 공정택 교육감, 그리고 이들의 교육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의 문제인 거죠.”

-해임교사 “교사 징계보다 가혹”-

아직 징계여부가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정군은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다. 퇴학처분이 내려지더라도 일제고사 반대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다. 일제고사 때문에 징계를 받은 교사들이 ‘출근투쟁’을 하듯, 자신은 ‘등교투쟁’을 할 계획이다.

일제고사 사태로 파면통보를 받은 송용운 교사(선사초)는 정군의 소식을 듣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함께 소식을 전해들은 촛불문화제 참가자들도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제고사가 정착되면 전국의 학생들이 무한 경쟁시대에 돌입하게 됩니다. 당사자인 학생들이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거죠. 그런데 일제고사 반대의사를 표현했다고 퇴학을 운운한다는 것은 교사들을 파면·해임한 것보다 심각한 수준입니다. 지금 당장 중지해야 합니다.”

정군의 꿈은 청소년 인권활동가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고사 반대운동을 더욱 그만 둘 수 없다. 그는 일제고사를 “멍청한 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일제고사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아이들과 징계를 받은 교사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안다면 이렇게 무리하게 추진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누구를 위한 교육정책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중학교 1, 2학년을 대상으로 ‘전국 시도연합 학력평가’가 열리는 23일에도 일제고사 반대운동에 ‘올인’한다. 이날 오전부터 등교거부를 시작으로 촛불문화제가 열리는 저녁 때까지 ‘일제고사 반대’를 외칠 계획이다.

<이성희기자 mong2@khan.co.kr>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