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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 벌레 이야기
이청준 지음, 최규석 그림 / 열림원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나도 예전에 교회에 다녔다 . 목회자가 믿음직한 분이었고 내세에 구원을 얻으라는 강요를 받지는 않았다 . 또 교회를 짓는다고 건축헌금을 은근히 유도하지 않는 바람직한 교회였다 . 그러나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교리가 '우리는 원래 죄인' 이라는 거였다 .
그런가 ? 이 소설에서는 인간은 원래'타고난 죄인' 이라는 원죄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 화자는 약국을 운영하는 (아마도) 약사다 . 아내는 약국일을 도와주며 아들 하나를 키우는, 단란한 가족이었다 . 영화 밀양에 나오는 신애가 ,남편은 외도하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재산은 없으며 단 하나 있는 아들을 유괴살해당한 불행한 처지에 비하면 화자의 '아내'는 별로 부러울 것 없이 살던 중산층이었다 . 그러다 어느 날 영화 밀양의 아들처럼 화자의 아들도 주산학원 원장에게 납치되어 살해당한다 . 그리고 그 뒤 행적은 영화 밀양의 신애와 비슷하지만 대단원은 현저하게 다르다 .
영화에서 신애는 살인범을 용서해주러 갔다가 그가 이미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아 마음의 평화'를 얻은 걸 보고 절망하여 정신착란을 일으킨다 . 극심한 분노때문이다 . 하지만 소설에서는 조금 다르다 . 아니, 사실은 아주 다르다 . 아내는 교도소로 '놈'을 면화하러 갔다가 그가 이미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고 당신에게 새삼 용서받을 필요없단 말을 듣자 분노하고 절망하여 자살해버린다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살인범을 용서하여 '비밀스런 빛密陽'을 목도할 것인가 아니면 그런 놈은 절대 용서받아서는 안된다고 단정하여 자살함으로써 신권에 도전할 것인가 ?
나라면 어땠을까 ? 과연 신의 뜻이라는 걸 인정하여 정신적인 착란을 겪고 결국은 살인범의 딸에게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그 소녀가 '용서해달라'는 고죄를 하자 용서할 것인가 아니면 절대로 용서가 안돼, 그 놈을 용서한 신에게 대항하여 자살이라도 할 것인가 ?나라면 절대 용서하지 않고 그 놈이 나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사적으로 처벌을 내리겠다 .영화 '세분즈 데이'에 나오는김미숙처럼 놈을 납치해 묶어놓고 불에 태워죽이겠다 . 아니면 '친절한 금자씨' 처럼 놈을 폐교에 납치해놓고 찌르고찌르고 또 찔러 출혈로 고통받으며 천천히 죽어가는 것을 보겠다 .그것이 인간적인 복수다 . 나는 그냥 보통 인간이니까.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 나같이 간이 작은 사람은 사악한 놈들이 떳떳하게 살아가는 걸 보고 마음만 끓일 뿐이다 . 그래서 이청준은 절망하여 '아내'에게 자살을 선택하여 진짜 용서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것이다 . 아무 죄도 없는 내 자식을 납치해다가 죽여서 암매장한 놈이 그렇게 쉽게 신에게 구원받고 영접하면서 맘편히 지내게 할 수 있단 말인가 ? 그렇다면 신은 뭣땜에 인간을 세상에 나게하고 그렇게 불합리한 시련을 내리며 그렇게 말도 안되는 용서를 남발하는가 ? 자식을 잃은 어미가 놈을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신이 용서를 해서 놈이 룰루랄라 살도록 해준단 말인가 ?
그래서 영화'해바라기'는 훨씬 인간적이다 . 그래서 납득이 가능하다 . 김해숙의 개차반 아들을 김래원이 살해한다 . 김래원은 10 년형을 받고 복역하던 중 김해숙이 내 아들 죽인 놈 얼굴이나 보자고 간다 . 그런데 김래원은 운다 . 울고울고 또 운다 .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 그래야 정상아닌가 ?인간은 잘못할 수도 있고 살인을 저지를 수도 있다 . 그런 다음 잘못을 뉘우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비는 수순을 밟아야 정상이다 . 그런데 주산학원 원장은 그 스스로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았다고 씨부린다 . 그걸 어미로써 어떻게 용서한단 말인가 ?용서할 수 없다 . 남편을 죽인 죄인이라면 용서할 수 있을지 ? 그러나 자식을 죽인 범인을 용서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
우리는 흔히 인간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인간이 해결하기보다는 신에게 단죄를 맡긴다 . 그런데 신이 너무 바쁘다 .하지만 많은 인간이 잘못을 저지른 다음 교회나 절에 가서 '면벌부'를 산 다음 자신은 용서받았다고 자위한다 . 그래서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죄악이 용서받고 횡행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 도대체 누가 용서를 했단 말인가 ? 목사나 신부나 승려가 무슨 수로 내 자식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
이청준은 인간에 대한 성찰이 뛰어난 작가다 . 그래서 그는 '아내'가 자살할 수 밖에 없다는 결말을 쓴 것이다 .그 분노와 고뇌를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 . 분노로 날뛰다 미치지 않으면 죽는 수밖에 없다 .신애는 분노로 날뛰다 미쳐서 정신치료를 받는다 . 그리고 모든 걸 체념한 상태에서 퇴원하는 것이다 .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자식을 잃고도 살 것이다 . 밥도 먹을 것이다 . 또 자식을 낳고 이미 잃은 자식에 대한 분노를 조금씩 잊어갈 것이다 . 하지만 깨끗이 잊을 수는 없다 . 그래서 한국전쟁에서 군의문사로 민주화운동과정에서 광주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분노는 여전하다 . 늙어서 기운이 없을 뿐이지 그 분노와 슬픔은 영원히 유효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함부로 용서를 논하지 말라 . 어머니들은 자식을 가슴에 묻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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