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칼럼]대전환
입력: 2008년 12월 02일 18:03:02
 

1944년 칼 폴라니가 낸 책 <대전환>은 시장만능의 세계가 몰락하여 곧 사회주의로 전환되리라고 예언했다. 여기서 사회주의란 당대에 현존했던 ‘국가사회주의’가 아니고 사회로부터 이탈한 시장을 다시 사회와 자연 안에 착근시킨 ‘민주적 사회주의’이며, 요즘 용어로 ‘생태 사회주의’ 이상의 요소도 충분히 담고 있다. 어떤 사회주의든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빗나간 예측이라 해도 할 말이 없겠지만 1940년대에는 훗날 <경제학>으로 신고전파 종합을 이룬 새뮤얼슨마저도 자본주의가 아닌, 그 어떤 사회를 전망하는 분위기였다.

‘시장주의 몰락’ 예언한 폴라니

‘역사로서의 현재’ 역시 폴라니의 시대와 같은 위치에 놓여 있다. 19세기와 1920년대를 지배했던 시장만능론이 회춘하여 지난 30년을 쥐고 흔든 뒤 이제 마지막 숨을 몰아 쉬고 있다. 그러나 지금 폴라니와 같은 대 예언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당대의 세 천재 중, 케인스, 하이예크가 차례로 30년간을 지배했고 이제는 폴라니의 시대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미래학자들은 깊이가 없으며 경제학자들은 편협한 기술적 해법에 빠져 있다.

현재의 위기는 약 10년마다 오는 산업순환 상의 위기에, 시장만능론이라는 30년짜리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기, 그리고 100년에 한번쯤 오는 패권국가의 위기가 겹쳐진 것이다. 10년짜리 위기야 미국의 부동산 문제가 한번 정도 더 터지고 나서 어찌 어찌 수습되겠거니 낙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번 흔들린 달러 패권이 재무장하는 건 불가능해 보이고 그렇다고 중국 등 신흥 패권이 대체하기는 아무래도 시기상조이다. 케인스의 주장이 다시 한번 힘을 발휘하려면 미국 내외의 계급역관계가 모두 변해야 하는데, 오바마의 이번 인선을 보면 그것도 비관적이다. 복합바스켓 통화제도와 같은 포스트 브레턴우즈 체제, 즉 국제경제의 공존을 위해서도, ‘메인스트리트’나 노동자로 향하려는 국내 개혁을 위해서도 월스트리트의 제압이 필수적인데 바로 그 거리 출신 귀족들이 내각을 채웠으니 하는 말이다.

이 위기의 시대에 ‘미국보다 더 미국스러운’ 한국에서는 오히려 기세등등 시장만능론과 극우의 역사관이 날개를 활짝 펴고 있으니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더 망해야 하는 걸까. 일개 정부 부처가 역사를 고치려 들고 자살로 항거하는 아이들을 기어코 타살하려고 경쟁을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결혼제도가 세금으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종부세가 안락사했다. 이번 위기의 주범인 미국식 투자은행체제를 만들기 위해 자본시장 통합법을 제정하고 금산분리와 출자총액제한제도는 폐기하려 든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선비준해야 하고, 전략적 유연성 등 군사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하니, 이 모두 명·청의 교체기에 명나라보다 더욱 명나라스러웠던 조선시대 위정자들의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 무엇인가.

明·淸 교체기 조선 닮은 한국

건설자본의 비중을 줄일 수 있는 호기에 9조원을 투입해서 부실기업을 살린다 하다가 이제는 ‘대주단’ 협약이라는 미봉책에 기대고 급기야 한반도 대운하를 다시 꺼내 든다. 하기야 사르코지 앞에서는 포스트 브레턴우즈에 찬성하곤 부시의 무릎 위에서 국제기구의 강화를 역설하고, 심지어 오바마까지 닮았다는 실용(失容)의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무엇을 더 기대할까? 한국의 대전환은 촛불이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서 부질없는 희망의 눈길을 돌리기만, 아니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정태인|경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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