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면봉
일요일 아침 일찌감치 일하러 나가려 세수를 했는데
면봉이 단 하나 남았다 .
썼다 .
1시간쯤 지나 딸에게 문자가 왔다 .
-엄마 ! 면봉 어딨어 ?
-엄써.
-헉~ 그럼 귓속 물은 어떡해 ?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여.
묵묵부답.
나중에 어떻게 했냐고 물어보니까 ,
-화장솜을 이용했어.난 그렇게 어리지 않아 .
2. 쌀어묵
생협 쌀어묵은 데워서 그냥 먹어도 맛있다 .
며칠 전 저녁도 못 먹고 늦게 들어왔는데
밥 차려 먹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쌀어묵을 봉지 째 데워
포크 하나 들고 컴 앞에 앉아 먹었다 .
이 쌀어묵은 지름3센티 정도 원반형으로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다 .
거의 다 먹었는데 딸이 제 방에서 나오면서
“ 엄마! 이거 쌀어묵 냄새 ? 설마 엄마 혼자 ?”
하길래 남은 것 다섯 개를 포크로 꿰어 고정시켜 바닥에 놓고 꽉 눌렀다 .
“ 엄마! 이럴 수가!”
“ 넌 살 날이 많이 남았잖아!”
3. 팔공산 기돗발
예전 수강생 어머니를 만났다.
그 어머니는 얼마 전 밤 9 시에 북문 농협 옆에서 2만원주고
전세 버스 타고 대구 팔공산까지 갔다고 한다 .
그리고 거기서 자정 넘어 한밤중 백팔 배 절하고
아들 원하는 대학에 붙게 해달라고 기원한 뒤
버스 타고 돌아오면 새벽 6 시라고 한다 .
그래서 고3 아들 아침밥 해먹여서 등교시켰단다 ....
나는...
딸아이가 공부하는데 피곤하다고 하면,
-그럼 내가 공부할테니 네가 돈벌어와라.
수능이 빨리 끝나면 좋겠다고 하면,
-나는 십 년 넘게 수능 공부하는 데 일 년 갖고 뭘 그래 ?
무슨무슨 대학에 못 가면 어떡하냐고 끌탕하면,
-나는 지방대나와도 별 상관없던데 ......
자정에 아파트 정문 앞으로 데리러 나오라고 전화하면,
-넌 혼자서도 올 수 있는 애잖아. 기운내!
4. 나쁜 걸, 이상한 걸, 싸가지 없는 걸,
친구가 어떤 기이한 단체에서 일을 한다 .
이게 왜 기이하냐면 겉으로는 뽀대나는 교육사업인 척 하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거의 <사설 +봉사 +사교육업체 트랜스포머 >이기 때문이다 .
그런데 그 단체 책임자 여성이 급여를 열흘 밀리는 건 예사고
두 달 밀려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원래 봉급생활자건 일급생활자건 급여는 정해진 날짜에
따박따박 줘야 경제생활을 설계할 수 있는 거다 .
또 사정이 있어서 못주면 ‘사정이 이러저러하다’ 고
양해를 구하는 게 노동자 인격을 존중해주는 첫걸음이다 .
얄궂은 건 그 책임자여성이 내 친구보다 젊고
명랑하고 똑똑하고 부유하고 행복한 처지라는 사실이다 .
예전 내 성질 같았으면 당장 전화해서
“ 이 나쁜 여성아! 진보입네 떠들면서 노동자 급여 날짜도 못 챙겨 주냐 ?”
고 단칼에 ....그러나 갑신정변 이후로 나도 많이 퇴화해서
그냥 여기에 욕하고 만다 .
“ 이 나쁜 걸, 이상한 걸, 싸가지 없는 걸아!
노동자 임금은 좀 제때 주고 살아라. 너같은 것들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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