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마음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에게 읽히기 전에 내가 먼저 아이 책을 읽곤 한다 . 그래서 하이타니 ㄱ ㅔ ㄴ지로 작품은 네 편 읽었다 . 태양의 아이, 모래밭 아이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 그리고 소녀의 마음......

그런데 ‘소녀의 마음’을 들고 읽는 순간 가슴이 철렁, 했다 . 가스리처럼 우리 집에 사는 소녀도 이런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일까 싶어서 .

나 역시  아이 아버지와  따로 살기로 결심했을 때,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것이 가장 걱정스러웠다 . 이  세상에 이혼이 몇 퍼센트이건 그건 상관없다 . 다만 내 아이가 제 아비, 어미의 이혼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깊게 생각해야만 했다 . 그러나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는 오만 사천 가지 사유가 생겼을 때 마음으로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
 아이 아비는  아이를 데려가기를 원했다 . 아이를 주지 않으면  헤어질 수 없다고  했다 .  나는 그가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걸 알았고 아이 아비는 아이를 데려갔다가 사흘 만에 다시 데리고  왔다 . 혹시라도 다시는 아이를 볼 수 없을까봐 가슴 졸이던 나는 눈물을 흘렸다 . 끝까지 살아내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과  아이가 이제 다시는 제 아비와 함께   단란한 추억을 만들어가지 못할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 이었다 .

 이 책을 읽으며 그 날이 떠올랐다  . 돌아온 아이를 안고 눈물을 흘리던 그 날 . 
 세상에는 수많은 부부가 있고 또  헤어지는 많은 부부가  있다 . 한국 땅에서 바다 건너   있는 일본 땅, 거기서  미네코와 만조가 헤어졌다 .  그리고 가스리는 그런 부모를  바라보며 컸다 .  엄마는 미술대 교수니까 외피는 멋진 여성이다 . 하지만 이혼 후에도 단지  딸만을 바라고 사는 그런 평면적 성격의 여성이 아니다 . 그런 엄마가 불만스러워서  가스리는 엄마에게  당돌하게 대들곤 한다 . 또 가스리는 아버지 만조를 만나러 간다 . 판화가인 아버지는 역시 아키코란 여성을  사귀고 있다 .  우리나라 이혼 부모 밑 자녀들은  많은 경우 새엄마 후보와 마찰을 빚는다 .   하지만 가스리는 그렇지 않다 . 어느새 가스리는 부모가 이혼한 뒤 따로 살아가야 한다는 걸 이해한 셈이다 .
 내 아이는 열여덟 살이 된 지금까지도 , “ 엄마! 난 새아빠 필요 없어 . 우리 둘이만 살아!” 하고 다짐을 두곤 한다 . 그런 면에서 보면 가스리는 훨씬 심리적으로 성숙한 아이다 . 하지만  그만큼 가스리는  아픔을 속으로 삭이는 셈이다 . 아버지에게 가서 자게 된 날 , 아키코와 아버지가   자는 방을 통과할 수  없어서 그냥 옷에다 오줌을 싸고 마는 가스리를  보면서 나는 나직하게 울었다 . 가여운 것...의젓한 척  하지만 가스리는 아키코라는 존재가 낯설고 어려웠던 것이다 . 그것을 의연하게 참느라고 그 어린 것 마음이 얼마나 타들어가듯 쓰라렸을까 ?

가스리가 사귀는 우에노 역시   평탄한 가정에서  자라는 속편한 아이가 아니다 . 우에노는  알콜 중독인 어머니에게 마구 퍼붓는다 . 하지만 그건 우에노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 남들이 보기엔 어색해도 우에노는 그렇게  어머니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 만일 견디기 어려웠다면 어차피 우에노는 문제아니까 도망쳐 버렸을 것이다 . 그렇게나마 어미니를 사랑하는 우에노 역시 어린 마음에 상처를 입으며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이다 . 얼마나 마음 아픈 현실인가 ? 어른들에겐 비밀이 있다는 걸 10 대 어린 아이들이 눈치 채야 한다는 게.......

그뿐이 아니다 . 가스리는 엄마의 애인 ‘구니오’ 아저씨가 엄마를 떠나는 걸 지켜보면서 태연한 척 해야 했다 . 그리고 엄마가 또 가정 있는 남성과 사귀는 것을 보고도 감당해야  했다 . 어쩌면 미네코는 감성이 풍부하다 못해 넘쳐서 어린 딸이   마음 다칠까봐 배려하기에 앞서 그 자신의 문제만으로도 감당 못해 헐떡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 이건 어미와 딸이 그냥 자리가 바뀐 것 같다 .  언젠가 ‘ 가족의  탄생’ 이란  영화를  보았다 . 거기서도 보면   선경의  엄마 매자는 그냥 어린 선경을 키우며 다소곳하게 살기보다는 여러 남자를 편력하며 자기 마음 가는대로 산다 . 그걸 견디지 못한 선경은 집을 나와 혼자 산다 . 그러나 시시때때로 엄마를 찾아가  마구 퍼 붓는다 .  꾼 돈 635 만원을 갚으라고도 하고 가정있는 남자의 사생아를 낳은 엄마를 경멸하고 쏘아붙이기도 한다 . 엄마는 나를 모른다고 . 엄마가 나에 대해 뭘 아느냐고 . 엄마는 엄마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니까 좋으냐고 . 하지만 선경도 엄마를 사랑한다 . 다만 자신을 더 사랑해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것이다 . 그래서 엄마가  암으로 죽자 엄마가 남기고 간  가방 속에서 나온 어린 날의 자신의 물품들을 보면서 몸을 새우처럼 구부리고 우는 선경은 가스리와도 닮아 있다 .  선경은 어린 사생아 동생이 남자 자기  자식처럼 정성들여 키운다 .

일본에 사는 가스리나 한국에  사는 선경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 이 아이들은 아버지가 없는 자리에서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면서  성숙해지는 것이다 . 가스리는 아버지가  살아가는 세상도 이해하려고 애 쓴다 . 정분 때문에 괴로워하는 엄마와  자기 세계를 지키려고 사랑하는 아키코를 떠나보내는 아버지를 동시에 이해하느라 가스리는 얼마나 힘겨울까 ? 그래서 가만히 가스리 손을 잡고 말해주고 싶다 .

- 가스리! 네가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한 가지 더, 어른에겐 비밀이 있단다 . 처음에는 좋아서 혹은 죽고 못 살 정도로 사랑해서  결혼하는 거란다 . 하지만 인간이란 이상하게도 살다 보면 함께 사는 게 그냥 그래지거나 혹은 절대로 같이 못 살 정도로 견디기 힘들어지는 순간이 오기도 한단다 . 그래도 그냥 참으면서  여생을 함께 사는 부부가 더 많지만 가끔은 네 부모나 나처럼  차라리 헤어져서 사는 게 서로에 대해 그나마 좋은 기억을 간직할 수 있는   좋은 선택이 되기도 한단다 .
 자식들의 마음은 생각해 봤냐고 ? 당연히 생각해봤지 . 안 그러면 어른이 아니다 .  하지만 어른들도 때로는 사는 게 힘겹고 지루하며 어린애처럼 아무렇게나 저질러버리고 후회하는 일도 많단다 . 네가 더 커서 나중에 어느 순간에 너의 부모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순간이 올 거야 . 아이들처럼 어른들도 때로는 사/는/ 게 /무/섭/단/다 .
 네가 건너가는 성장이라는 사막은 그 다음 여정에 샘물이 있단다 . 이런  아픔을 겪지 않고 크는 아이들보다는 네가 훨씬 깊고 서늘한 기쁨을 알 수 있단다 .그러니까 가스리, 엄마와 아버지를 너그럽게  안아주기를 바란다 .

언젠가 내 아이도  어미와 아비가 따로 사는 게 더  좋다는 걸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 지금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