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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한 마리도 죽지 않던 날 (반양장) ㅣ 사계절 1318 문고 2
로버트 뉴턴 펙 지음, 김옥수 옮김 / 사계절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아마도 지금은 돌아가셨을 할아버지는 개성 사람이다 . 정확하게는 ‘개풍군’ 사람인데 아버지는 자신이 고려의 도읍이었던 개성사람이라는 걸 꽤 자랑스러워했다 . 그리고 할아버지가 인삼 농사와 각종 채소 농사를 짓던 채농이었음을 돌아가실 때까지 자랑스러워 하셨다 . 그 지난한 일제 시대에도 할아버지는 쉬지 않고 농사를 지어 열둘이나 되는 자식들을 키웠음을 아주 오랜 세월 잊지 않았다 . 그리고 늘 자랑스러워 하셨다 .
- 우리 아버지는 농림부 장관상 감이셨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셨던지.....
아버지는 삼 년 전 결국 고향땅을 밟지 못한 채 안타깝게 생을 마치셨다 . 이제는 고향에 맘대로 가셔서 그 그립던 산하를 혼으로나마 보셨을 것이다 .
지금 우리 사회는 일하지 않고도 돈 많이 벌고 호화롭게 사는 사람을 숭앙하는 기형적인 풍조가 가득하다 . 모든 능력은 자본으로 환치되고 ‘부자 아빠’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한 아비들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괴상한 종족으로 취급받는다 .
미국 버몬트에 살던 소년 로버트와 그의 가족은 셰이커 교도로 살아 간다 . 지금 미국 사회가 보여주는 물량과 황량함과는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인다 . 셰이커교도는 절제된 삶을 몸소 실천하며 산다. 유행을 따르거나 사치를 부리지 않는다. 1930 년대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개성에서 그렇게 살았듯이 .
로버트네는 5년 후 은행 빚을 다 갚으면 농장과 가축이 자기네 것이 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산다 . 이들은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지으며 정성을 들여 천지 사물과 조화로운 삶을 추구한다 .
어느 날 로버트는 우연히 옆집 태너 아저씨네 소 '행주치마'가 새끼를 낳으려는 걸 본다.그래서 행주치마가 새끼 낳는 걸 돕고 목에 걸린 혹까지 떼어내 주어 상처를 입는다 . 하지만 . 그 대가로 태너 아저씨한테서 새끼 돼지를 상으로 받는다 . 돼지를 받은 로버트는 핑키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모든 정성을 다해 키운다 .
그러나 로버트네는 가난하다 . 가난하지만 비참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 전망이 있기 때문이다 . 가난 때문에 핑키를 도살해야했지만 로버트는 일하는 아빠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
아빠 손에서 냄새가 나는 걸 싫어하지 않는다 .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아주 퀴퀴한 냄새였지만 그게 아빠가 정직한 노동을 한 결과라는 걸 잘 안다 .
그래서 “...아빠의 온 몸에서는 열심히 일한 냄새만 가득할 뿐이.” 라고 생각한다 .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도 아이들이 이런 인식을 갖도록 하는 일이 아닐까 ?
아이들이 몇 평 아파트와 권상우폰과 몇 시시 자동차, 어학 연수 , PDA, 놀이공원에서 놀아주는 아빠 같은 걸로 자신의 부모가 지닌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아무래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 물론 아이들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준 것은 아마도 어른들 일 것이다 . 아니, 더 정확하게는 상업 자본이 지배 하는 미디어이겠지만 그 모든 것이 다 생각 없는 어른들 책임이다 .
이 문제는 간단하게 끝나지 않는다 . 머잖아 아이들이 자라면 여전히 ‘부자 아빠, 예쁜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쓸 것이고 그것은 영원히 자본만이 발언권을 갖는 참담한 사회가 도래한다는 어두운 예단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
그래서 이 책은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 나는 부자 엄마도 예쁜 엄마도 아니기에 우리 아이가 이 책을 읽고 ‘일하는 삶이 아름답다 ’ 는 걸 깨닫길 바랐다 . 아비와 어미가 힘들게 일하고 어렵게 벌어온 돈을 아껴 쓰고 가치 있게 쓰기를 기대 한다 . 이 시대 모든 아이들이 핸드폰과 PDA와 디카, 전자수첩을 갖고 있더라도 꼭 필요한 게 아니라면 욕망을 자제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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