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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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어른들은 자식을 많이 낳으면서 각자 저 먹을 걸 갖고 태어난다고 했다 .

아마도 그건 농경시대 혹은 수렵시대에 제 몸으로 먹을 걸 만들어야 하니까

오랜 경험을 통한 당연한 진리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

 

그런데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어떨까 ? 지금은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아야 할 것같다 .

부모를 잘 만나면 좀 더 먹고 살기가 좋고

아주 잘 만나면  이제는 父情이 넘치는 아비가 된 누구처럼

29 세에 대기업 회장도 될 수  있으며

잘 못만나면 이 책 '소금꽃나무 ' 저자 김진숙처럼 처녀 용접공이 되어야 한다 .

 

나도 지금까지 예닐곱가지 직업을 거쳤지만

김진숙이 어린나이부터 겪어야했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

아, 공통되는 부분도 없잖아 있긴하다 . 그러나 이렇게 치열하게 살지 못한 것,

절박하게 살지 못한 것, 기막히게 살지 못한 걸 반성하며

아는 사람에게 물어봐서 저자 전화번호를 얻고 싶었다 .

저기요 , 제가  언제 한 번 만나서 맛있는 밥도 사드리고 싶고요 ,

원피스 입고 삼랑진 딸기밭도 함께 가보고 싶고요 ,

혹시 우리 동네 오시면 집회 끝나고  아무 때나 저희 집에서 자고 가세요.

그런 말을  하고 싶어서 .......

 

<하나/이 땅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것 >을 읽으며 나는 가슴을 자꾸 쓸었다 .

이  부분은 이 강철소녀(내게는 소녀로 보인다 ^^)가 우뚝 선 노동자로 진화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그 숱한 세월들, 아픔과 슬픔, 그리고 각성이 고귀한 보석으로 정련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

-어차피 니가 여기 온 건 아무도 몰라 . 니 하나 죽으면  돌멩이 매달아 바다에 던지면 그뿐야 .

순순히 불어  . 여기서 살아나간 사람 벨로 없어 .(28쪽)

민주노조를 만들려고 했다가 잡혀가서 소녀는  이런 공포를 맛본다 .

그리고 지금도 16 년이 지나서도 꿈을 꾼다 .

-시퍼렇게 멍든 채 퉁퉁불은 내 시체가  바다에 둥둥 떠있고 , 고기들이 뜯어먹고 ,

내가 네모난  쇠 상자 안에 갖혀있고 , 밖에서는 두런두런 말소리, 같이 용접했던 허 씨

아저씨 목소리, 내가 갖힌 상자를 용접하는 불꽃....... 아저씨, 나에요, 나 진숙이에요,

하지 마세요 ,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입은 막혀있고 불꽃은 번쩍인다. 두 팔다리가

한꺼번에 뒤로 묶여 버둥거릴 수도 없는데 일류 용접사 허씨 아저씨의 용접 불꽃은 번쩍이고 ......(31쪽 )

 

이렇게 가위눌린 청춘을 보내면서 김진숙은 말한다 .

--국민의 대표로 국회에도 들어가고 정부요직에도 들어가고 언론에도 들어갈 만치 

 그들은 개과천선한  걸까 ?그들이 반성하는 말이나 사죄하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도대체 누가 그들을 용서한 걸까 ?(32쪽 )

 

내가 김진숙을  처음 본 것은 김주익열사가 사망한 추모식을 하는 민주노동당대회였다 .

그때는 김진숙이 누구인지 몰랐는데 웬 마르고 짱짱한 여성이 한 명 나와

검은 옷을 입(었다고 기억한다 )고 추모사를 했다 .

<셋/더이상 죽이지 마라 >에 나오는 김주익 열사 추모사를 현장에서 들었다 .

그때 김진숙은 사자가 울부짖는 것 같았다 . 우리는 김진숙의 포효를 들으며

소리내어 울었다 . 같이 못 죽은 게 죄악같았다 . 김주익이 129 일간 크레인에 매달려있을 때

거기 한 번 못가본 것이 마음 아파 뜨거운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

얼마나 외로웠을까? 얼마나 절망스러웠으면 그 어린 것들을 두고

몸을 버렸을까 싶어서 눈물콧물을 흘리던 게 떠오른다 .

아니, 지금도 김주익열사를 생각하면 춥고 외롭고 절망스럽던 그의 마음을 느낀다 .

그를 그렇게 만든 , 수많은 김주익을  만드는 이 자본주의라는 괴물에

공포를 느낀다 .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박창수가, 김주익이가, 그 천금같은 사람들이,

그 억만금같은 사람들이 되돌아올 수 있다면 , 그 단단한 어깨를, 그 순박한 웃음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 있다면, 용찬이 예란이에게, 준엽이, 혜민이,

준하에게 아빠를 다시 되돌려 줄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 자본이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어쩌자고 그렇게 착하고,

어쩌자고 그렇게  우직했단 말입니까 ?(121 쪽 )

 

 

그리고 김진숙은 묻는다 .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 비정규직을, 장애인을,농민을, 여성을, 그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 아무리 소름 끼치고 ,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저들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 (123 쪽 )

 

김진숙뿐만이 아니다 . 이 땅의 숱한 노동자들은 그들의 땀으로 소금꽃을 피우는

나무가 되어 밥을 벌었던 것이다 .

-중학교 2 학년 때 학교를 포기하고 '뭔가 있을 것 같은 ' 서울로 무작정 가서 종이 공장부터

시작했다는  노동자 생활이 30 년 (76 쪽 )

강석용씨...

-소련이 망하고 동구 서회주의가 무너졌던 그 날도 변함없이 용접가스를 마시고 ,

쇳가루에 밥을 섞어 먹으며 신나냄새를 공기보다 더 많이 마시면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 절막한 생존권의 벼랑 끝에서 나무뿌리를 부여잡듯

그렇게 노동조합이라는 희망을  붙잡고 버텨 온 사람들...한 번도 앞서거나 빛나지 않은 채

30여년을 그렇게 살아왔고 수 십 년을 그렇게 살아 갈 사람들(77 쪽 )

 

그런 보석같은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전망을 찾아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

하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아직도 그런 사람들은 칼바람을 맞으며 싸워야

하는 걸까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면 곧 불어닥칠 한미 FTA광풍 속에서

나와 우리 자식들은 가차없이 비정규직이 되어 다시 칼바람 속에 서야 할 거라는

무섭고도 현실적인 데자뷰를 본다 . 무/섭/다......

 

그런가하면 <일편단심 상집>에 나오는 '대우조선 노동조합 권동기' 노동자는

각성한 노동자가 보여주는 전형을 매우 즐겁고도 풍자 , 해학 가득한

언어로 보여준다 .

 

- 나가 사십 펭상을 살아 봉께일펜단심으로 질게 나가먼 이게 빙신 취급하는 시상이라 ......

87 년엔 말허잘 것도 없고 그 후로도 ‘V 년 동안  대우 조선에도 앞장š섦?잘난 사람

겁나게 많어라. 그 사람덜 지끔은 설탕물 뽈아묵겄다고,회사쪽으로 줄을 바까 서 붕께

내 겉은 기 다 빛을 보지라. 회사에서 설탕물을 자꾸 중께 언놈이 산삼꽃 따 묵겄다고

첩첩산붕 헤매고 댕길 것이요, 안 그려라 ? (80 쪽 )

 

그래서 김진숙은 이렇게 일편단심 상집 활동을 하는 그를 보고

굴종의 강을 건너 본 사람만이, 그 강물이 다디단 꿀물이 아니라

빠져들수록 깊디깊은 오욕의 수렁임을 알 것 (92쪽 ) 이라고 생각한다 .

그렇게 노동자들은 더 큰 단결로 투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 게다 .

 

그런데 내가 가장 마음 아팠던 부분은 <여섯/ 상처 >다 .

이 책 전체가 김진숙의 솔직하고 꾸밈없는 진정성을 보여준다 . 하지만

부모와 형제, 친지들에 관한 이야기는 그가 딛고 선 현실을

얼마나 칼날같은가를 증명하며 그래서 강철소녀 김진숙이 더욱 아름다워보인다 .

그는 분명 럭셔리한 의상과 소품을 일상으로 가질 수 없었을텐데도 아름답다 .

그것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진실의 정수다 .

그는 삶 전체를 불꽃으로 태워 주위를 밝히고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아, 아무리 단단해도 그는 머리 올리지 않은 소녀이겠지만

그 숱한 상처를 딛고 살아온 걸 보고 나는 진실로 숙연해졌다 .

내가 살아온 게  가식과 위선과 동의어처럼 느껴졌다 .

부끄러웠다 .

나도 평생 일하면서 살았다고 자신있게 말하고 했지만

나는 비겁했기 때문이다 . 나는 도망자였기에......

 

아름다운 강철소녀 김진숙, 그가 피운 소금꽃나무,

수많은 노동자들이 피운 소금꽃나무,

그 소금꽃나무들이 부르짖는 노동해방을 이루기 위해서 이 책이 어느 정도라도,

 퍼지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가질 거라고 확신한다 .

 

노동자가 사람답게 사는 것처럼 사는 세상이 정의로운 세상이라는 건

만고의 진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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