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게 남은 위시 장미 이야기를 하다가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내년에 올 장미까지 생각하면 이제 나는 엔간한 위시 장미는 손에 넣은 셈인데, 아직 구해야하는 것이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다.

프랑스 델바 사에서 내놓은 이 장미는 정확히는 수브니어 마르셀 프루스트라는 이름인데 노란 장미에 대한 내 불호를 깨어버린 미모를 자랑한다.

생각난 김에 마르셀 프루스트를 읽어볼까 검색하다가
밀리의 서재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옛 기억으로는 첫 권이 참 지루했던 기억이 있고 2권 후에 읽다가 중단했던 듯하다.
그 때는 내가 20대 초반이었고 도서관에 처박혀서 공강시간마다 읽으러 가면 아무도 손대지 않아서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어언 이십년 가까이 지나 다시 잡아본 이 책은…
왜 지루하다고 느꼈는지 의문일 정도로 취향을 꿰뚫는 거였다!
뭐야 이 무수한 개인적인 회상과 상상과 생각의 조각들이라니 하염없이 남의 일상을 읽는 걸 좋아하는 내 취향을 저격하는 소설인데 대체 왜 지루하다고 느꼈었을까?
20대의 나는 지금보다 tmi를 좋아하지 않았었나?

다른 사람의 정밀하게 다듬어진 트위터를 보는 기분으로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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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와 밑줄긋기 사이에 문단을 넣고 싶은데 그런 기능은 없는 모양이다. 















가족 안에서 여성의 수동성은 그 자체로 '생산적'이다. 

... 생략

둘째, 자율성을 완전히 부정당하기 때문에 좌절을 느끼고, 이 좌절을 언제나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연속적인 욕구, 즉 소비 비슷한 것으로 승화해야만 하므로, 여성은 생산적인 존재가 된다. 소비는 여성이 가사노동을 할 때 갖는 강박적인 완벽주의에 정확히 상응한다.

p.47


이 부분이 좀 어렵다. 자율성을 완전히 부정당하기 때문이라는 구절은 노동력으로서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사회자원- 혹은 노동력이기 때문이지만 노동력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읽었다. 하지만 소비 부분이 이해가 잘 안된다. 소비가 어떻게 집안일에서의 완벽주의(페이지를 찾기 어렵지만, 앞에서 굳이 그렇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집안일에서의 완벽주의를 취하는 것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와 상응하는 것일까?

가사노동과 소비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이미 다뤄진 이론이 있는데 내가 그 이론을 전혀 모르는 거라는 느낌이 든다. 


집 안에 뭐가 있어야하는지 여성들에게 말하는 것은 분명 우리 일이 아니다. 아무도 다른 이의 욕구를 규정할 순 없다. 우리는 투쟁을 조직하고, 그 투쟁으로 이런 승화가 불필요해지는 데 관심이 있다. p.47-48


그리고 다음 단락에서...

성적 수동성이 바로 튀어나와서, 이 부분 역시 조금 혼란스러움. 

가사 노동과 성적 수동성이 연결되는 부분이... 


일단 이 부분은 제껴놓고. 

계속 읽다보니 저 소비와 가사노동의 상응관계는 아마도 여성이 가정을 소비의 중심지로 만든다는 공격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여성은 노동력을 재생산해낼 뿐 그 자신이 노동력이 아닌데도 노동력에게 더 많은 소비를 해야하는 자본을 벌어오라고 괴롭힌다는 관념에 대한 반론인 것 같다. 혹은, 여성은 검소해야한다는 압박에 대한 반론이거나. 


가족 안에서 여성이 맡은 역할의 세 번째 측면은, 여성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억압하는 인물, 모든 가족 구성원에게 규율을 강조하는 사람이 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앞서 논의했듯이 여성의 인격이 특수한 유행의 저해를 받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편이라는 폭압, 가정이라는 폭압, 자신의 전 존재가 '영웅적인 어머니와 행복한 아내'라는 이상형을 거부하는데도 그런 이상형이 되고자 고군분투해야하는 폭압 아래에서 살아가는 건지도 모른다. p53


아, 나 이 부분 너무 좋았는데-. 

여기 읽으니까 뭐가 떠올랐냐면, 아내에게는 비밀로 아이를 어린이집(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아이와 둘이서 놀러가면서 아내에게 비밀을 만드는 남편 이야기였다. 그리고, 애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냐며 아내를 힐난하는 남편들의 목소리. 성인 아들을 하나 더 키운다고 한탄하는 아내들의 목소리. 저 폭압을 말하는 문장에 얼마나 많은 몰아세움이 담겨있는지, 읽고 또 읽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썼는지 감탄하고 공감하면서. 


산아 제한 연구가 이토록 더디게 진행되고, 거의 전 세계에서 임신 중절이 금지되고 결국 '치료'목적으로만 허락된 건 우연이 아니다. 일차적으로 이것들을 요구하는 것은 안이한 개혁주의가 아니다. 이런 문제들이 자본주의적으로 관리되면 거듭해서 계급 차별, 특히 여성 차별을 만들어낸다. p.54


 이 부분을 읽자마자 얼마 전에 읽은 멜린다 게이츠의 책이 바로 떠올랐다. 멜린다 게이츠는 여성 생존이 산아 제한, 피임, 임신 중단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자세한 현장의 목소리와 함께 설명한다. 


연결할 생각이 전혀 없이 읽었던 책이었는데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되는구나. 


노동계급가족은 더욱 무너뜨리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노동계급가족이 노동자를 지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자로서, 그리고 노동자라는 이유로 노동계급가족은 자본을 지탱하고 있기도 하다. 노동계급가족은 계급의 유지 및 생존을 좌우하지만, 이때 계급의 유지 및 생존은 계급 자체에 반하여 여성을 희생시킴으로써 가능해진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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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플은 뭔가 쓰기가 복잡하고 어렵군…
혼란스럽다.

추석 동안 페미니즘의 투쟁을 다 읽기로 했는데
백신 1차의 여파로 괜찮은가 하면 앓아눕기를 3일간 반복해서 이제서야 간신히 손을 댔다.
그리고 바로 38페이지부터 메모하며 읽는다.

빨래나 청소는 노동력을 재생산하므로 사회 서비스이다. 자본은 정확히 자본주의 가족 구조를 제도화함으로써 남성을 이런 사회 서비스 역할에서 해방시켰다. 따라서 남성은 온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직접적으로 착취당하게 된다. 남성들은 자신을 노동력으로 재생산해내는 여성을 부양할 충분한 돈을 자유롭게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자본은 가정 내 여성에게 이런 서비스를 떠넘기는 데 성공했고 그만큼 남성을 임금 노예로 만들었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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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을 설계하기 위한 방법들을 체계적으로 저술한 책인데 무엇보다도 밑바탕에 인간에 대한 애정과 긍정적인 가치관이 깔려 있는 책이라 좋았다. 

책의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불쾌한 비유나 비난하는 시선이 드러나면 책을 덮게 된다. 

이 책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며, 인간의 습관을 잘 설계하지 않으면 의지력만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 많다고 강조한다. 


요새 나는 개인적인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려고 애썼다. 

회사도 다니지만 A플젝도 하고 싶고 B플젝도 하고 싶고 지병을 앓는 고양이들도 돌봐야하고 정원도 가꿔야하고 운동도 해야해서 하고 싶은 게 너무너무 많다. 

어떻게 하면 다 고루고루 잘해낼 수 있을까 골몰하다가 자기계발서 쪽으로 이래저래 발을 들였다. 

자기계발서에 발을 들이게 된 건 이전 라이언 홀리데이의 에고라는 적을 읽고 자기계발서에 대한 반감을 호감으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어서다. 



추천을 받고 본 책인데 생각보다 너무 좋아서 자기계발서에 대한 인식을 바꾸었고. 


또 박소연의 이 두 권의 책이 아주 좋았어서, 자기계발서를 살펴보며 읽게 되었다. 

이후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루틴의 힘, 습관의 힘, 몰입, 넛지,더 골 등등을 보다가 습관의 디테일까지 왔다. 

그리고 이 책까지 와서 비로소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 왜 나는 이 많은 일들을 다 하고 싶어할까? 


내가 정확히 해야하는 열망은 무엇일까?


이것만으로도 책을 읽은 가치는 충분한 것 같다. 

스스로의 행동 선택지를 탐색하는 것, 행동을 작게 시작하는 것, 힘들 때는 작은 행동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동기보다 적절한 자극과 능력을 우선시하라는 것, 보상회로를 자극하는 축하를 중요하게 여기라는 것 등 기억해둬야할 내용은 아주 많지만 일단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왜 이 많은 일들을 다 해내고 싶어하고, 다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을까? 그것부터 고민을 해봐야겠다. 

높은 수준의 동기는 산발적이며, 지속 불가능하다. - P68

동기는 변덕쟁이다.
지속적인 동기도 있다. 열망이라고 부른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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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스틴 클레온의 킵고잉 아주 재미있게 봤다. 

 아티스트 웨이와 결을 같이하는 책. 

 옛날에 나는 그렇게 자기 계발서를 싫어했는데 

 시간이 흐르니 자기 계발서를 이렇게 찾아읽게 되기도 한다. 

 

 자기의 취향을 확신하지 말지어다.


 이 책을 도서관에 대여예약을 해두고, 


 밀리의 서재에 있는 훔쳐라 아티스트처럼을 봤는데 책이 PDF인 것이 다. 이북이 pdf라니 이건 너무 상도덕이 없는 것 같다. 

 투덜거리면서 덮고 며칠 지나니 도서관에서 책이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다. 


대출하러 갔다. 

다녀와서 읽기 시작하는데.. 

첫 페이지부터 아주 마음에 드는 것이다. 

세상은 미쳤고 창작은 항상 힘들다잖아. 


그리고 더 마음에 든 건 18페이지였다. 


아무리 작품을 만들어도, 위대함을 인정받아도, '그래서 이 다음엔 어떤 작품이 나오나요?' 라는 질문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이번 기획을 아무리 잘해낸다고 해도 

다음 기획을 해야하고

이번 기획을 최악의 최악으로 망쳐버렸어도

다음 기획을 해야한다. 


그래서 이 책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나의 기획이 끝나는 것은 다시 시작이고 끝도 아니고, 또 이 고통을 처음부터 해야하고, 또 쉽지 않고... 

그렇기에 매일매일 계획을 세워 루틴을 따르며 순간순간의 변화에 내가 절망하지도 환희하지도 않도록 해야한다. 


아티스트로서 얼마나 성공했고 얼마나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냇는가에 상관없이, 그 누구라도 마지막 지점에 ‘도착‘할 수는 없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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