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스 - 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
폴 하딩 지음, 정영목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마지막장을 덮은지 아직 12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인가? 아직도 귀에 물이 찬 것 같다.

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삼대의 거창한 일화를 다룬 것은 아니다. 그저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소소한 일상들을 보여주고있는데 감각적인 묘사로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두께는 얇지만 읽다보면 풍부한 표현력과 시간을 무너뜨리며 공간의 벽을 허물어 몽롱한 가운데 감각적 묘사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감동에 젖는 탓에 물에젖은 빵처럼 두툼한 부피로 다가온다.

 

<팅커스>가 폴 하딩의 첫작품이라니...뒤늦은 수상도 눈길을 끌지만 첫작품이라고는 믿기지않을 정도의 농밀한 표현들이 '작가란 뼛속부터 타고나야하는 건가?'란 생각이 들게해 왠지 일반인에 불과한 스스로가 위축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환상적으로 느껴지게하는 마법같은 능력을 지닌 폴 하딩. 뭘 먹고 어떻게 생활해야 이런 감성들을 표현할 수 있게되는 것일까?

 

죽기 전 8일 동안 벌어지는 조지의 의식세계에서 우리도 함께 그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기억을 공유하며 부유하게 된다.

촌수로 가까운 가족사이지만 사실 서로 애틋한 관계는 아니었던 탓에 물려줄만한 생활습관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조지를 통한 각자의 기억 속에서 유기적인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누구나 그렇지만 가족과 주변의 친지들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성향이 있어 외롭다.

외로운 영혼을 지닌 크로스비들은 죽기직전의 의식 속에서 초자연적인 경험으로 교류하며 안식을 얻는다.

임종직전이란 시간은 가족들도 경건하게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삶의 전부를 회전하는 기억 속에서 진짜 자신을 찾고 이해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조지는 얼마나 아름다운 임종을 맞이하는가?

가족과 친지들에 둘러싸여 손자의 낭독을 들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기억을 거슬러올라가다니...

나 역시 임종 전에는 지금껏 바라보았던 이미지와는 다른 이미지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될까?

과거에서 받은 상처조차 마지막에는 그렇게 애틋하고 소중하게 여겨지게 될까?

 

그런 이해를 살아있는 동안 내 옆의 사람과 나눌 수 있다면 더 좋겠지.

그렇다면 삶 자체가 더 빛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을 알고, 상대가 처한 입장을 이해하고 공유한다면...

살아있는 동안 사회적 체계로 씌워진 안경을 더이상 활용할 수 없는 그 시간이 오기 전에 미리 그 안경을 벗을 수 있다면...

 

폴 하딩은 조지의 기억을 더듬어 우리에게 현재의 삶에서 소중함을 잃지않는 현명함을 간직하길 얘기하는 듯 하다.

또한 감각적으로 묘사되는 자연은 비록 앙상한 이미지를 하고있더라도 그의 안내를 통해 가지가지마다 빛을 떠안고 있어 잎이 없어도 풍성하게 다가온다. 지금 당장 나가지 않아도, 창 쪽으로 눈길만 돌려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광에서도 얼마든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를 한없이 느끼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이런 아름다운 곳에 있었나?

 

시계에 관한 묘사들이 지금껏 그렇게 속살거리듯 다가온 적이 없었다. 실제로 조지의 손자이든 나의 할머니이든 나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지닌 나의 친지가 나를 향해 다정하게 낭독해주는 듯 하여 볼이 다 간질간질했다. 임종직전의 조지가 놀랠까봐, 설잠에 빠졌을 손녀가 깰까봐 조심스레 낭독하는 그 배려가 느껴져 뱃속이 따땃~해진다. 방안의 평범한 사물들 조차 폴 하딩의 조명을 받는 것 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사랑받고 있었나?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사랑받고 있었다는 것을 늘 깨닫고 산다면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내일은 오늘과 또 다른 설레임과 반짝임이 있을 것이다. 사회적제도가 마련해주는 연말의 여유로움 속에서만이 아니라 늘상 오늘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감사하게하는 <팅커스>.

초반엔 지루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지나치게 잔잔하고 대화의 구성도 경계가 없고 환상적인 구도로 인해 정신이 없다.

그러나 덮을 수가 없다. 다 읽고나면 읽기 전의 나와 읽고 난 내 감정의 옷이 사뭇 달라져 있음을 느낄 수 있게될 것이다.   

아까와 똑같아 보인다고?

글쎄...같은 모습인데 대체 왜 다를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샹해요 2011-01-0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