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91 | 92 | 93 | 94 | 95 | 96 | 97 | 9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잔잔한 철학 에세이. 심란할 때 읽어보면 좋을 듯. 게인적으론 루쉰의 편지가 가장 인상적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스 폰 트리에는 어쩌면 사기꾼인지도 모른다. 센세이션을 일으킬만한 장면을 꼭 써야 했다면 특별한 의미나 의도가 있어야 했지 않았을까. 어쩌면 일반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을 표현했다는 것 자체가 의도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처음 이 영화를 본 동기는 이랬다. 섹스란 것이 ‘감춰진’ 상황에서 여자들은 섹스를 원할 때 어떤 방식을 취할까? 라스 폰 트리에는 어떻게 상상력을 발휘할까? 남자라면 쉽게 성을 구매하겠지만 말이다. (하긴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 신시티에 등장하는 캐락마냥 창녀들한테도 거부당하는 캐릭이 있을 것이다. 창녀라는 단어를 일단 써보자. 라스 폰 트리에가 니그로라는 단어를 쓴 것 처럼. 좀 나가자면 그는 위선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의 유태인 발언과 상황이 겹친다.)

그런데, 그게 너무 간단했다. 그냥 남자들과 눈을 맞추지고 웃는 것만으로도 주인공은 쉽게 섹스를 조달할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서 그게 이해가 가는게 섹스에 적극적인 건 항상 남자쪽이고, 섹스에 능동적인 여자는 희소성이 있다. 그게 문화적인 학습의 차이때문이던, 씨를 뿌리고 싶어하는 남자의 유전자와 아이를 임신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여자의 유전자의 차이 때문이던 말이다. 내가 여자에게 눈을 맞추며 웃음을 짓는다 해도 섹스를 조달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영프로다.( 혹시 내게 눈을 맞추며 웃는 여자가 있나? 주의해서 검색해 봐야 겠다.

1부에서 죽어가는 아버지를 보며 흥분하는 설정은 이미 <바람난 가족>에서 나온 것이다. 이해는 안 가지만 말이다. 라스 폰 트리에는 그리 파격적이거나 개성적인 감독이 아닐지도 모른다. 조가 섹스에 대해 혐오감을 갖는 태도나 그에 대한 셀리그먼의 반응은 이미 익숙한 것 아닌가? “구멍을 채워줘”라고 말하는 조의 모습은 배두나가 출연한 “공기인형”에서 “모든 인간은 내면에 빈 곳이 있어서 바람으로 채워야 한다”라는 대사에서 설명된 것 아닌가?

마지막에 개과천선을 다짐하며 기존 질서에 편입하려는 주인공을 또 다른 가부장적인 폭력(?)이 끼어들자 남근의 상징인 총이 등장하는 장면은 좀 블랙유머이긴 했다.

감독은 오히려 섹스에 대한 강박이 있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만든 것 아닐까? 섹스란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에서는 이해를 못할 것 같다. 여자 감독이 님포매니악을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성이 얼마나 위력적이고 기존의 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지는 이미 많이 들어왔다. <영 앤 뷰티풀>의 주인공은 마치 김동리 소설(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장사가 서로 싸움을 하는) 의 주인공을 연상시킨다. 처음 인생을 접하는 사람 특유의 고지식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이사벨은 주변을 참지 못한다. 그래서 매춘을 하는 건가 이 영화는 아직 이해를 못하겠다. 영 앤 뷰티풀한 시기에는 왜 몸을 팔고 싶어지는 걸까?

제목이 좋다. 영 앤 뷰티풀. 내겐 영한 시절은 있었지만 뷰티풀한 시절은 없었다.

음 그런 거구만 몸도 아무나 팔 수 있는게 아니었구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문재시인은 <산자의 길> 후기에서 마루야마 겐지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표현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도 처음 겐지를 접했을 때 거의 "감전" 수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봐라 달이 뒤를 쫗는다> 나  <소설가의 각오> 등을 몇 번씩 읽으면서 경탄했었죠. 그 때가 27살이었는데 그 때 느낀 감상은 아, 내가 27살까지 치욕의 삶을 살았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까지 주체적으로 살지도 못했고, 항상 남의 기준으로 자신을 판단했었으니까요. 그럼 제가 27살 이후로 인생이 급반전을 이루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사람이란게 그렇게 쉽게 바뀌지도 않을 뿐더러 원래 문학이란게 좋은 음악 같은 것이어서 들을 때에는 순식간에 사람을 고양시키지만 그게 끝나면 그 고양감은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이 표현은 <고통에게 따지다>에 나온 표현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겐지에게 당신 소설을 읽고 내 인생이 바뀌었다 라고 말하면 그는 "어설픈 놈" 하고 코웃음칠 겁니다.  다만 겐지의 소설을 읽고 내 일부분이 바뀌었고 그게 그 이후의 인생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것이겠지요 . 지금은 예전만 못하지만 그는 여전히 저의 "멘토"입니다. 그래서, <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 <시골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가 나왔을 때 냉큼 도서관으로 향했죠.

  겐지의 소설에서 일관되게 느껴지는 주제는 "자유" 입니다. 이건 그냥 느낌인데 일본이라는 나라에는 안 좋은 의미에서의 "공동체주의"가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딱히 폄하하려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아마미야 카린은 3.11 때 "비판하는 말을 하면 비국민 취급을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이런식의 "동조압력"이 심하기 때문에 이지메 같은 것도 유행하고 이런 동조압력에 반발하는 겐지 같은 작가가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자유와 긍지를 위해 투쟁하고, 삶의 정수를 맛보기 위해 완전연소하는 삶. "죽음보다 못한 삶이 존재한다"는 믿음( <산자의 길>에서는 변화의 조짐을 보여줍니다만) 개인의 독립과 자유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태도. 그런 것들이 겐지의 소설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테마입니다. 

 그런데, 겐지에게는 그런 삶의 반대지점으로 향하게 하는게 아이러니하게  "직장"입니다. 겐지는 3년동안 마루베니라는 회사의 전파통신원으로 일했었는데 이 때 아마 직장생활의 본질을 뼈저리게 느낀 것 같아요( 근데 어떻게 보면 이게 또 오버에요. 평생동안 직장생활하는 사람도 있는데 말이죠) 그가 보기에는 직장인이란 자유의 혼을 잃고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며, 굴종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직장이란 뜨듯미지근한 물에 잠겨 안정과 자유를 맞바꾼, 나태한 생활을 보내는 자기 자신을 책임질 줄 모르는 어른아이입니다. <인생따위,,,> 와 <시골이란..>에서도 그런 관점이 여지없이 드러나는데요. <인생따위> 에서 겐지는 자영업을 하라고 권장하고, <시골이란> 에서 상정하는 독자는 직장에서 60살 정년퇴직한 사람입니다. <시골이란> 에서 겐지는 시골과 자연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삶의 현장이며 지극히 현실적인 장소하고 말합니다. 더불어 시골 공동체가 얼마나 폐쇄적이고, 보수적인지, 권력에 아부하는 굴종의 정신으로 무장한 인종으로 이루어져있는지 말하죠. (  이것도 재밌어요 겐지도 시골 출신이고 지금 시골에서 몇년째 살고 있거든요)  멋진 풍광과  그 풍광 아래에서 여유롭게 살고 있는 모습.. 그런 시골을 생각하며 시골행을 결심하는 것은 "홀로서기"를 하지 못하고 직장생활에서 은퇴한 어른아이라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깨알같이 펼쳐지는 시골생활의 진실도 재밌지만 겐지가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시골에서 살지마라" 가 아니라 "홀로서기"를 하고, 자유와 독립을 쟁취하는 태도를 지니라는 것일 것입니다. 시골을 삶의 도피처로 삼지 말라는 것이지요.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삶의 정수를 맛보겠다는 태도. 과연 매력적인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뭐랄까요. 그토록 좋아했던 겐지지만 뒤돌아보면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의 "홀로서기"라는 것이 아주 추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도 마지막엔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 "홀로서기"라는게 자영업을 하는 거라면 너무 단순하지 않나요. 저 역시 직장인지만, 요새는 꼭 프리랜서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평생직장의 개념도 사라진지 오래고, 조직내에 있다고 시스템이나 조직이 보호해 주는 것도 아니니까요. 왜냐하면 조직내에서는 서로 살아남기 위해 발톱을 세우고, 혹시라도 터질 폭탄을 피해 폭탄돌리기를 하거든요. 겐지가 말하는 야생의 긴장감을 여지없이 느낄 수 있어요. 단 겐지가 말하는 "잔혹한 세상을 살아남는 상쾌함" 같은 것은 없습니다. 느는 건 짜증 뿐이죠. 

  이런 애매모호함을 처음 느낀 건 <천년동안에> 를 읽고 난 다음이었습니다. 역시 아끼는 작품이지만 추상적인 표현이 많아요, 작가는 싸움나무의 입을 빌리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는 효과는 있습니다만. 동성애에 대한 편견도 눈에 띄구요(이후 작품에서는 변화합니다만)  "홀로서기"라는게 그냥 거칠게 원시인 마냥 자급자족하는 삶을 의미하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럼 좀 단순하네요  요약하면 겐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자기 자신의 삶에 정직해져라"정도일 것입니다. 삶의 허위가 사리질 때 겐지가  말하는 "삶의 정수"를 누릴 수 있을 테니까요 . 아마 겐지는 직관형의 작가가 아닐까요. <산자의 길>에서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긴 합니다만, 논리나 이성보다는 감성으로 본질을 통찰하고 그걸 소설로 옮기는 작가가 아닐까 합니다. 

  연이어 읽으면 재밌는 책이 <제주도, 무작정 오지 마라> 입니다. 물론 제주도는 시골이 아니지만 겐지가 말한 시골생활의 특징이 이 책에도 나온다는 것이 재밌습니다. 시골의 배타성,(제주도는 꽤 폐쇄적이라고 하네요) , 외지인들과 토착민들과의 갈등 같은 것입니다. 충고도 비슷합니다., "제주도를 도피처로 삼지마라", "삶은 현실이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주도에 대한 막연한 환상같은 것을 가지고 이주하지만,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며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페혜의 축소판이라고 하네요 . 덧붙이자면 이 책에는 변해가는 제주도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돈은 정말 대단합니다. 섬이었던 제주도 마저 삼키려고하고 있으니까요 글쎄요 아마 호킹이 말한 것처럼 인류는 결국 멸종하지 않을까요. 부자들이 사설 방공호와 개인 우주선으로 몸을 피신한 후에 말이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빈둥빈둥 당당하게 니트족으로 사는 법
파(pha) 지음, 한호정 옮김 / 동아시아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이 사람은 니트가 아니잔아. 마쓰모토 하지메가 게을러지면 이렇게 될 거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달라이 라마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김영사 / 200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으면서 맘에 드는 구절은 베끼는 버릇이 있다. 근데 이책은 책 한권을 통째로 베껴야 할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91 | 92 | 93 | 94 | 95 | 96 | 97 | 9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