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묵장사는 자기 집 자식한테는 절대 어묵 사 먹지말라고 얘기하고, 젓갈장사는 자기 집 자식한테 절대 젓갈 사먹지 말라고 얘기한다" ,"어휴 그런거 따지면 다 못먹어" 내가 8살 정도 에 들은 대화이니 거의 40년 전 이야기다. 하지만, '그 족발집' 얘기를 들으니 정말 변한게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 40년 동안 난 얼마나 실상을 안다면 구토를 할 만할 것들을 먹어 왔을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냥 죽진 않아, 하고 그런 염려를 하는 것은 쫄보 같은 짓으로 치부하고 살아가야 할까. 오래전에 읽은 강신주의 "상처받지 않을 권리"라는 책이 떠올랐다. 짐멜부터 이상, 유하나 보들레르같은 학자와 예술인들을 자본주의라는 키워드로 묶으며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라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책이다. 초반 등장하는 화폐에 대한 통찰은 왜 그 족발집 종업원이 자신의 발과 손님이 먹을 무우를 같은 레벨로 놓았는지 설명해준다. 우리는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 그건 확실하다.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김포공항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가슴이 설레고, 차범근이 유명한 건 알겠는데 뛰는 모습을 티비로 볼 수는 없었다. 지금은 클릭한번에 손홍민과 메시를 볼 수 있고, 다니는 직장 대리는 호날두보러 이탈리아로 간 적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유로운가? 그 부유함은 화폐라는 권력아래서의 자유다.자본주의는 잉여가치를 높이기 위해 분업체계를 구축하고, 그 체계 사이를 돈이라는 혈액으로 순환시킨다. 이 화폐가 인간에게 어떤 사회적, 심리적인 영향을 미치는 지를 연구한 학자로 짐멜을 소개한다. 만약 조선시대 주막의 주모라면 자기 동네 마을사람에게 발로 닦은 무우를 먹일 수 있었을까? 뭐 그럴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동네사람들에게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짐멜은 화폐가 등장한 이후 교환에 있어서 인간적 관계가 사라지고, 개인은 자신의 내면으로 후퇴했다고 분석한다. 화폐가 가진 익명성 덕분에 그 종업원은 그런 짓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아마 그런 '바이토 테러'에는 분노가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그 사람들에게는 그게 혁명같은 일일지도 모른다.) 짐멜은 그런 익명성 덕에 진정한 개인주의가 출현했다는 분석까지 이르지만 그건 '고립'에 가깝다. 우리는 대체로 '엔드유저'다. 내가 쓰는 것, 먹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막스가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말한 것처럼 소비자도 자신이 소비하는 물품에서 소외되어 있다. '쇼핑 중독'이 가능한 것은 자본주의의 소비가 이미 말초적이기 때문이다. 이 책이 지금은 절판됐는데, 당시에는 '거리의 철학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신선한 충격 플러스 재미를 안겨주었던 책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얻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