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있다는 착각
질리언 테트 지음, 문희경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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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비나 유튜브 보는 정도의 노력만 들이고도 이 책을 즐기기에는 무리가 없다. 쉽고 간결한 문장에 흥미로운 일화중심으로 책이 전개된다. 킷캣은 어떻게 일본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였는가?(힌트는 "키토카츠"), 트럼프가 대선에서 레슬링 경기의 은유를 써먹었다는 분석도 재미있다. 결국 의미망과 맥락이 중요하다는 인류학의 통찰을 소개하는 책이다. 아쉬운 점은 그런 '민족지학'의 기법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소개했으면 더 유용했을 것 같다는 것. 저자는 일단 우리 모두 편견에서 출발한다는 일깨움을 전달하는 것에 주력한다. 단, 제목은 약간 낚시성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제목을 잘 지은 거겠지만, 제목에서 풍기는 엄청난 아우라까지 책이 보증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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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셔머의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이 책이 가장 자신의 주장을 명료하게 드러낸 책이지 않을까 싶다.  그의 주요 논지는 "뇌의 패턴성"과 "행위자성"이다. 셔머는 이를 뭉뚱그려서 "뇌의 믿음엔진"이라고 부른다. 진화의 과정 중 무작위한 주변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패턴을 발견하는 학습과정을 발전시켰고, (유전자의 자연선택은 거기에 비하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이것이 여러가지 미신과 마법적 사고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진위여부를 떠나 이런 패턴 추구경향은 개체의 생존율을 올리는 방향으로 기여한다. 행위자성은 마음이론(우리자신과 남들의 갈망과 의도같은 정신상태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에서 도출하는데 패턴성과 "외부에 무언가 있다"라는 주체를 결합해서 신이나 유령같은 환상의 존재를 만들어낸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토대는 당연히 셔머답게 뇌와 뉴런들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논지를 바닥에 깔고 다른 유에프오나 임사체험, 초능력 같은 소재에 대한 묘사와 그에 대한 반박이 이어지는 것으로 이 책은 구성되어 있다.  이 부분은 셔머의 저술에서 계속 반복되는 부분이라 11년작인 이 책이 약간 식상하다는 느낌도 든다. 내게 오히려 관심을 끈 부분은 크리스 나이바우어와의 차이점이다.<자네, 좌뇌한테 속았네!>에서 크리스 나이바우어는 뇌의 기능분화를 설명하면서 "좌뇌해석기"가 있다고 말한다. 셔머가 말하는 뇌의 패턴성과 비슷한데 무차별적인 것에서 패턴을 찾고 범주화를 통해 개념과 언어를 만들어 내는 기능이다. 이걸 처음 처음 발견한 가자니가 박사의 연구는 양 쪽 모두의 책에 실려있다. 하지만, 크리스 나이바우어의 방향은 사뭇 다르다. 책의 부제 <동양철학과 선불교를 위한 뇌과학 교과서>가 암시하는 대로 이 책은 그런 패턴성이 실은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셔머가 패턴성으로 외부의 신과 초자연적인 존재를 환상이라고 해석했다면, 나이바우어는 화살을 내면으로 돌려서, -나가세가 존자식으로(농담이다)- "셔머 당신은 실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만약 셔머가 듣는다면 그가 이 말을  그의 긴 헛소리 리스트에 추가하고 <스켑틱>의 농담거리로 삼을 것이라고 나는 예상한다. 예로부터 진리와 오류가 섞인 현실을 체로 거르는 것은 철학과 종교 과학까지 모든 분야가 고민해온 문제일 것이다. 현대에는 과학만이 그 임무의 적임자라고 나서고 있고, 도킨스나 셔머 같은 신유물론자도 나왔지만, 나는 셔머의 과학의 우월함을 강조하는 자신만만한 어조가 왠지 불편하다. 과학적 진실은 잠정적 진실이라고 겸손을 보이는 것 같지만, 결국 과학적 세계관과 맞지 않는 명제들은 "언제가 과학이 규명할 것"이라고 오류가능성을 인정하기 보다는 불도저처럼 자신의 세계관을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셔머는 "과학과 서구민주주의의 세속적인 계몽가치가 인간 생존의 최고 희망이다."라고 주장하지만 멀리 갈 것도 없이 <계몽의 변증법>같은 논리도 있지 않나? 서구에서 명상시장이 호황인것으로 아는데 트렌드를  못 따라 가는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11년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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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윈이 중요한가 - 창조론과 지적 설계론에 대한 진화론의 대답들
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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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봐야 두 권 읽은 게 전부지만, 마이클 셔머의 책은 입답은 능숙하지만, 약간 난삽한 것 같다.  좋게보면 더 대중적이다. 문외한이라 그런지 저자의 진화에 관한 지식이 리처드 도킨스나 다른 유명 저자들보다 뛰어난지 의문을 가져본다. 내가 이 책에서 진화론에 대한 완전한 설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실 돌이켜보면 당연하게 보이는 사실들- 독도는 우리땅, 지구는 둥글다, 생명체는 진화했다-의 근거를 들라고 하면 의외로 정확한 내용을 모른다. 나는 진화론의 내용을 정확히 모르는 것이다. 그런상황에서 저자가 내놓는 근거들이-저자는 지적설계론의 주장을 열거하고 그에 반박하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한다. 그 외에 2000년 이전까지 미국 교육계에서 벌어졌던 창조과학과 진화론간의 소송전을 소개하고 있다.-  정말로 합리적인 것인지, 아니면 지적설계론의 또 다른 반박이 있는 것인지 판단하기는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 그래도 하나는 건졌다. <코스믹 게임>에서 스탄 그로프가 내새운 주장인데, "반쪽날개는 진화의 의미가 없다"며 진화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주장이다. 여기에 마이클 셔머의 답은 "굴절적응" 이다. 반쪽날개는 날기위한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체온 조절용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진화는 상식보다 훨씬 무작위적이고 우연적이다. 날개는 날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자연선택을 하다 보니 날게 된 것 뿐이다. (하지만, 스탄 그로프가 말한 '수컷공작의 화려한 꼬리' 사례는 답이 없다. 성선택이론대로라면 암컷 공작은 그로프가 비꼰 대로 미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실 셔머의 지적대로 지적설계론은 부정적인 증거로 논증을 한다. 과학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창조한 것이다. 사막의 시계가 저절로 생겼을리 없다. 등등. 하지만, 알 수 없다고 해서 바로 지적설계로 가야 할 당위성은 없고 사막의 시계는 대수의 법칙처럼 어마무시한 우주의 광대함의 결과이다. 만약 원숭이에게 에러를 제거할 수 있는 툴을 가진 타자기로 타자를 치게하면 언젠가는 원숭이는 햄릿을 칠 것이다. 자연은 자연선택을 통해 에러를 스스로 솎아낸다. 진화론과 종교간의 갈등에 대해 셔머는 대놓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종교와 과학을 완전히 분리하는 대안을 차선으로 지지하지 않나 싶다. 셔머에게 최선은 물론 종교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이겠지만. 진화론과 지적설계론 관련 서적들을 소개하고 있어도 초심자는 출발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  


ps.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가 초반에 등장하는데, 칼 세이건도 강조하는 것이 과학이 민주적인 열린 시스템이라는 거다. 뭐 틀린 말은 물론 아니지만 이것도 역시 이상론적인 측면이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삶과 세계를 해석하고 싶어하고 거기서 의미를 찾고싶어한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신일 수도 있고 셔머에게 그게 과학인 것이다(책의 마지막 문단: 다윈이 왜 중요하냐면 진화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과학이야말로 우리시대의 뛰어난 이야기, 곧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서사적 모험담이기 때문이다.) 이런 모험담은 자신의 정체성과 단단히 붙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 셔머의 '과학적인' 모험담을 공격한다면 셔머가 '비과학적으로' 화낼 것이라고 나는 충분히 예상한다. 이렇게 민주적인 시스템의 구성원인 과학자들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궁금하신 분은 <거짓말을 파는 스페셜리스트>(데이비드 H.프리드먼) 참고 


ps2 그로프의 수컷 공작 꼬리 답변에는 <개미와 공작>이 있다. 다음 독서목록에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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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선택한 나라 -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졌는가
벤저민 카터 헷 지음, 이선주 옮김 / 눌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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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보잡 히틀러"가 어떻게 "히틀러 라이징"이 되었는지 묘사한 이 책을 제대로 '즐기려면'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한 권의 책에 2차세계대전 전야를 완벽히 욱여넣기는 불가능할 테지만, 이 책의 미덕은 그런 배경지식이 없어도 대충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왕좌의 게임마냥 주인공이 떼거지로 나오지만 아주 정리불가가 아닌 것이 저자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아닐까 싶다. 칸트와 괴테의 나라 독일은 어떻게 근대 최악의 전쟁을 일으켰을까. 책에서는 기성 정치인들의 무능함과 그럼에도 빼놓지않고 곁들인 아집과 분열, 독선을 원인으로 짚는다. 사민당과 공산당은 서로 협력하면 히틀러를 막을 수 있었지만, 서로 배신자라며(어째 익숙하다) 배척하기만 했다.( 이번 대선으로 치자면 윤석열이 싫지만 이재명은 더 싫다라고 말하는 야권지지자 느낌?) 당시 히틀러가 내세운 비젼은 오히려 보수층에 어필할 정도로 도덕적이고 종교적이었다. 그런 대다수 보수층을 포섭할 수 있는 정치적섹트가 없었고, 그들은 히틀러에게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의회제를 선도적으로 성취한 바이마르공화국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제도를 지키려다 보니 히틀러와의 연합이 필요했고, 우익은 '히틀러를 고용했다'고 말했지만, 계산착오와 근시안까지 곁들여지면서 '보헤미안 일병' 히틀러는 총리가 된 후 경찰(검찰? 응?)을 동원해서 반대세력을  축출하고 총통자리에 오른다. 책이 두껍지 않지만 벽돌책을 읽고 났을 때처럼 왠지 뿌듯함이 느껴진다. 쾌락독서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ps 읽으면서 대한민국이 문득 겹친다. 제발  이 짝이 안 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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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ookple.aladin.co.kr/~r/feed/2386798 로쟈 서평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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