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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스피러시 - 미디어 제국을 무너뜨린 보이지 않는 손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박홍경 옮김 / 책세상 / 2021년 10월
평점 :
헐크호건의 성관계동영상 관련소식은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다. 가끔 일어나는 미국식(?)스캔들인가 했는데 소식이 어두웠는지 아마 그 때 현지에서는 엄청난 파급력이었는가 보다. 비단 연예인이나 셀럽들의 스캔들 차원을 떠나서 헐크호건이 우리돈으로 1천억원이 넘는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고 , 더 시끄러웠던 건 이게 일종의 기획소송이었다는 거다. 겉표지만 보고서는 내용을 짐작하기 힘든 이 책은 이 사건의 전말에 관한 기록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우익꼴통'과 메인스트림의 위선을 폭로한다는 모토아래 '고커'라는 언론사이트를 운영하던 닉 덴튼은 2000년대 중반 아이티 투자자인 피터 틸이 게이라고 보도한다. 흑인이 미대통령까지 지낸 지금이야 그걸 보도하는 고커쪽에 비난이 몰리겠지만, 당시에는 피터 틸이 가십거리에 오르고 피터 틸은 우리식으로 치면 난데없이 포털사이트에 기사가 올라가서 악플에 시달리는 모양새가 되고 만다.이 책의 저자가 묘사하는 '고커'는 "언론폭력배"에 가깝다. 가십성 기사를 통해 부를 늘리고 언론권력을 휘두른다.(한국에도 흔한 메커니즘이다) 스스로를 쿨한 좌파로 규정하는데 옐로 저널리즘에 가깝다. 아마도 우리에 비유하면 '딴지일보'초반 시절이 악성으로 변한 느낌 정도? 인 것 같다. 절치부심하던 피터 틸은 고커의 전횡이 심해지자 "A"라는 인물을 만나 고커를 쓰러뜨리기 위한 10여년간의 계획에 돌입한다. 그 와중에 헐크호건의 야동 스캔들이 터지고, 틸은 천만달러가까운 소송비용을 들여가며 책 제목처럼 "음모"를 짜고, 헐크호건소송을 지원하며 승리해서 고커를 파산에 이르게 한다. 틸은 마치 영화에서 걸어나온 듯 한-스탠퍼드 출신에 로스쿨 졸업 후 전도유망한 변호사 길을 7개월만에 때려치고, 아이티투자가로 변신해서 실리콘밸리의 총아가 된- '잡스류' 인물이다. "A"역시 영화 "소셜네트워크"에서 묘사된 마크 저커버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헐크호건의 승소로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던 이야기는 비밀은 없다는 말처럼 기획소송이 드러나고, 이번에는 틸이 '언론자유를 억압한 재벌'로 몰리게 되면서 반전이 된다.
msg 를 더 타면 할리웃영화의 각본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 저자는 여기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는 것 같다. 다른 인문학적 클리셰를 가져와서 여러가지 부연설명을 하는데, 거추장스럽고 견강부회의 느낌도 난다. 아예 더 속도감있게 나갔더라면 약간의 교훈이 든 르포가 되지 않았을까. 딸의 성관계동영상을 사이트에서 내려달라는 아버지의 요청에 "다 지나가니 과민할 필요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언론'고커나, 변호사의 천국이라는 미국답게 결국 정의보다 돈으로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 10여년간 고커를 무너뜨리기 위해 일반인에게는 엄청난 액수의 비용을 지출했지만 그게 순자산의 0.1% 밖에 되지 않는 피터 틸 등등 '비일상적인' 요소들이 가득하다. 결국 최후의 모양새는 "악이 악을 제압하는" 영화 스토리처럼 되고 말았는데, 저자는 그래도 억만장자인 피터 틸 쪽으로 저울을 기울인다. 통속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면 이 책 프로젝트가 틸의 지원아래 쓰여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의 "음모"를 읽고 나면 그런 진부한 상상이 정말로 개연성있어 보인다는게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