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과 괴물 - 조선 유교사회의 그림자 문화동역학 라이브러리 24
강상순 지음 / 소명출판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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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이 그 사회의 무의식이나 억압된 면을 보여주는 일종의 징후라는 관점이 이제는 낯설지 않은 것 같다. 저자가 유교국가 조선의 선비들이 기록한 귀신이야기를 분석한 책이다.  히스토리채널 보는 기분으로 편하게 볼 수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논문들을 모아 놓은 책이라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경향이 있지만, 가독성이 좋아서 부담없이 글자를 훑어내릴 수 있다. 요새 이삼십대들은 "제사"라는 것을 어떻게 여길까?  아직  제사가 필수라는 이미지가 남아있을까? 이 글을 보면 사대부들이 지내던 제사를 일반 민중들에게 퍼뜨리기 위해 귀신이야기를 활용하는(죽은 귀신이 제사음식을 먹는다) 분석이 나온다. 귀신조차 이데올로기에 복무하는 것이다. 이 전략을 쓰면서 사대부들은 일종의 모순에 직면한다. 유학은 원래 쿨한 "고대의 유물론"에 가깝기 때문이다. 리(理)라는 추상적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이 죽으면 물질로 돌아간다는 유물론적의 관점을 가진 유교가 "종법주의"(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다.)와 그 상징같은 제사를 일반 민중에게 퍼뜨리기 위해 기존의 귀신관념과 일종의 타협을 하는 것이다. 요새 "가부장제"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많이 덧칠해져 있고, "종법주의"란 말을 들으면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들지만 우리의 무의식에는 아직도 그 코드가 남아있지 않을까? 새삼 이 세상에 원래 그런 것은 없다는 푸코의 계보학적 느낌으로 제사를 바라보게 된다. 당연히 넘을 수 없는 규범 같은 건 없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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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배트 20 - 완결
우라사와 나오키 글.그림, 나가사키 다카시 스토리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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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화에 대한 식견이 그닥 있는 건 아니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를 보다보면 약간의 사대주의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등장인물의 권위 내지는 진히어로정석루트(?)를 보증해주는 것이 서구의 권위이기 때문이다. <마스터키튼>의 키튼은 SAS 교관 출신의 혼혈인이고, <몬스터>의 배경은 아예 유럽인데 주인공은 유능한 일본인 의사다. <20세기 소년>은 일본이 배경이지만 제목의 20세기 소년은 티-렉스의 히트곡이다.  가장 최근작인 <몽인>에도 프랑스에 대한 동경이 배경으로 깔린다. 우리가 박찬호나 류현진을 보면서 자랑스럽다고 느끼는 정서같이 서구의 문화와 기준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 주인공들은 그것을 백그라운드로 해서 일본으로 귀환한 후 일본내의 난제를 해결한다.메이저리그 투수가 등장할 때 허접한 일본악당들은 제압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음 그러고보니 에스비에스 드라마 <미세스 캅>의 선전문구도 뉴욕발 어쩌구 였네. <빌리배트> 역시 미국에서 인정받는 만화가 케빈 야마가타가 주인공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초기 소설에 서구문화가 소품으로 쓰이던 것 하고 비슷한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우라사와 나오키를 일본만화의 스티븐 스필버그라고 필름2.0에서 쓴 기억이 난다. <20세기 소년> 때 어찌나 극찬이 쏟아졌던지 헐리웃 영화에 비교됐던 것 같다.  하지만, <빌리배트>는 기묘한 실패작처럼 느껴진다. 물론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이름이 보장하는 기본적인 재미는 있다. 하지만, <20세기 소년>에서 쓰여졌던 기법들-시간을 뛰어넘어 이야기를 교차편집하며 전체 구조를 짜올리는 것-이 너무 남발되는 것 같다. 캐릭터는 얄팍하게 느껴지고(캐릭터를 시간을 들여 구축할 수 없으니 전형적인 패턴으로 캐릭터를 묘사한다. 일본인 감독은 찢어진 눈에 작은 키, 주인공의 조력자는 스파이더맨의 네드처럼 묘사하는 식이다), 이야기도 에피소드별로 따로 노는 것 같다. 달에 왜 박쥐가 있는지 떡밥은 계속 던지는데 결말에서 속시원히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니다. 즉, 그 설정은 그냥 후까시인 측면이 강하다. 그래도 인상적인 것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가로서의 자의식을 보여주는 것 같은 결말이다. 그나마 주인공 격인 케빈 야마가타와 케빈 굿맨은 디스토피아가 다가올 것을 알고 있지만, 지구를 구하지 못한다. 케빈 굿맨이 할 수 있는 일은 황폐해진 지구에서 오로지 만화를 그리는 것 뿐이다. 마지막 대사까지 "잘 그리네. 그런데 왜 안그리지?"다. 하지만, 수 십년 뒤 그 최후의 만화를 본  전쟁터의 소년은 "세계를 구하겠다"고 다짐한다. 케빈 굿맨이 그린 만화가 "낙타 위의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기후변화까지 솔직이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가능성은 별로 없게 느껴진다. (뭐 나는 다르게 예상하신다면 그건 축하할 일이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갑자기 내가 환경운동이나 인권운동에 뛰어든다고 세상이 바뀔까. 케빈 굿맨 역시 디스토피아 앞에서 더없이 무기력하고 불행하다. 하지만 케빈 굿맨은 폐허가 된 지구에서 끝까지 만화를 그리면서 자못 여유롭게 아내와 커피를 마신다. 언젠가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며 "진인사대천명"의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소명"에만 집중하는 것.설사 그게 눈앞의 불행을 막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한 방울의 물이 되어 대양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그게 앞으로 닥쳐올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살아가는 태도라고 우라사와 나오키는 말하고 싶은 걸까."계속 그려"라는 박쥐의 마지막 말은 창작의 한계에 부딪친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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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스로 가는 길 - 신화에게 길을 묻다
조지프 캠벨 지음, 노혜숙 옮김, 한성자 감수 / 아니마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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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고 쿨한 척을 해도 인간에게는 환타지나 신비,초월을 원하는 본성이 있는거 아닐까? 내가 태어난원인이 정자와 난자의 결합때문이 아니라 운명이기를, 사랑이 단순한 호르몬 변화 때문이 아니라 인연이기를 바라는게 인간의 본심 아닐까? 신화학자 캠벨은 "세상의 신비감과 그 영원한 형상들을 일상 생활의 의식으로 가져온 사람"으로 칭송받았다고 한다. 이 책에서도 토마스 만과 프로이트, 융, 매슬로우 등 인류학자와 심리학자들을 인용하며 인간의 내면과 의식, 죽음과 초월 등을 신화와 그의 자전적 이야기들과 연결시키며 설명하고 있다. 전에 출판된 <신화와 인생>의 약식본 같은 느낌으로 <신화와 인생>이 어필했다면 이 책 역시 마음에 들 것이다.  주 내용은 <신화와 인생>에서도 말했던 영웅신화의 구조와 캠벨 특유의 인생론이다. 그 외에도 융심리학 이나 프로이트 등을 인용한 작지한 알찬 지혜들이 실려있다. 인상적인 부분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매슬로우의 욕망가설이 "블리스"(캠벨 담론의 핵심용어다)가 없는 지루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평가하는 부분이다. 캠벨도 이게 "낭만적이고 어리석게" 보일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가치관은 정말로 실패한 삶은 블리스, 살아있다는 희열이 없는 삶이라는 거다. 영웅은 어느날 부름을 받고 어둠의 숲속으로 들어간다. 그 곳에 길은 없다. 만약 길이 있다면 그건 다른 사람의 길이다. 영웅이 할일은 자신만의 길을 만드는 것이다.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멕시코 저항군 사파티스타를 이끄는 마르코스에게 안토니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자네 잘못은 길을 찾으려고 했다는 거네. 자네는 칼로 나무들을 헤치며 길을 만들었어야 했네"(정확한 워딩은 아니다.)  부름을 받고 여행을 떠난 영웅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더욱 지난한 것은 영웅이 애써 모험에서 얻은 전리품을 가지고 와도, 기존의 세상은 그 선물을 팽개친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새로운 수평선은 끊임없이 떠오르고 우리는 질문을 받게 된다. 과연 모험에 뛰어들 것인가? 

 
  "블리스"라는 개념 자체는 한번 숙고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혹시 캠벨은 자의식 강한 청년들을 사회의 부적응자로 만드는 것 아닐까? 그 희열, 살아있다는 느낌, 현전한다는 느낌은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일까? 어쨌든 캠벨의 전제는 우리모두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 잠재력을 실현시켜 자신만의 신화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한 삶이라는 것이다. 특히 융심리학을 많이 인용한다. "집단무의식"을 말하는 만큼 신화와의 연결점은 프로이트보다 많을 것이다. 신뢰성 여부를 떠나서 읽고 나면 묘하게 힐링이 된다. 비루한 현실에 신화만한 특효약이 또 있으랴. 개인적으로는 30대 초중반 직장생활에 학을 떼다 <신화와 인생>을 읽고 탈출한 적이 있다. 그 후로 2년 정도 도서관 출입 등 딴짓으로만 일관하다가 다시 직장생활을 재개했다. 사실 캠벨은 블리스를 찾아 떠나면 우주가 도와줄 것이라는 씨크릿 류의 분위기도 살짝 풍긴다.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캠밸의 말은 진실인가? 나의 신화는 무엇일까? 10여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은 다시 캠벨의 말이 진실인지 실험해보라고 부추기는 건가? 2014년 출간된 <블리스, 내 인생의 신화를 찾아서>의 개정판이니 오해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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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스피러시 - 미디어 제국을 무너뜨린 보이지 않는 손
라이언 홀리데이 지음, 박홍경 옮김 / 책세상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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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호건의 성관계동영상 관련소식은 어렴풋이 들은 적이 있다. 가끔 일어나는 미국식(?)스캔들인가 했는데  소식이 어두웠는지 아마 그 때 현지에서는 엄청난 파급력이었는가 보다. 비단 연예인이나 셀럽들의 스캔들 차원을 떠나서 헐크호건이 우리돈으로 1천억원이 넘는 손해배상 판결을 받았고 , 더 시끄러웠던 건 이게 일종의 기획소송이었다는 거다. 겉표지만 보고서는 내용을 짐작하기 힘든 이 책은 이 사건의 전말에 관한 기록이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우익꼴통'과 메인스트림의 위선을 폭로한다는 모토아래 '고커'라는 언론사이트를 운영하던 닉 덴튼은 2000년대 중반 아이티 투자자인 피터 틸이 게이라고 보도한다. 흑인이 미대통령까지 지낸 지금이야 그걸 보도하는 고커쪽에 비난이 몰리겠지만, 당시에는 피터 틸이 가십거리에 오르고 피터 틸은 우리식으로 치면 난데없이 포털사이트에 기사가 올라가서 악플에 시달리는 모양새가 되고 만다.이 책의 저자가 묘사하는 '고커'는 "언론폭력배"에 가깝다. 가십성 기사를 통해 부를 늘리고 언론권력을 휘두른다.(한국에도 흔한 메커니즘이다) 스스로를 쿨한 좌파로 규정하는데 옐로 저널리즘에 가깝다. 아마도 우리에 비유하면 '딴지일보'초반 시절이 악성으로 변한 느낌 정도? 인 것 같다. 절치부심하던 피터 틸은 고커의 전횡이 심해지자 "A"라는 인물을 만나 고커를 쓰러뜨리기 위한 10여년간의 계획에 돌입한다. 그 와중에 헐크호건의 야동 스캔들이 터지고, 틸은  천만달러가까운 소송비용을 들여가며 책 제목처럼 "음모"를 짜고, 헐크호건소송을 지원하며 승리해서 고커를 파산에 이르게 한다. 틸은 마치 영화에서 걸어나온 듯 한-스탠퍼드 출신에 로스쿨 졸업 후 전도유망한 변호사 길을 7개월만에 때려치고, 아이티투자가로 변신해서 실리콘밸리의 총아가 된- '잡스류' 인물이다. "A"역시 영화 "소셜네트워크"에서 묘사된 마크 저커버그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헐크호건의 승소로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던 이야기는 비밀은 없다는 말처럼 기획소송이 드러나고, 이번에는 틸이 '언론자유를 억압한 재벌'로 몰리게 되면서 반전이 된다.

   msg 를 더 타면 할리웃영화의 각본으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은데, 저자는 여기에 지나친 의미부여를 하는 것 같다. 다른 인문학적 클리셰를 가져와서 여러가지 부연설명을 하는데, 거추장스럽고 견강부회의 느낌도 난다. 아예 더 속도감있게 나갔더라면 약간의 교훈이 든 르포가 되지 않았을까. 딸의 성관계동영상을 사이트에서 내려달라는 아버지의 요청에 "다 지나가니 과민할 필요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언론'고커나, 변호사의 천국이라는 미국답게 결국 정의보다 돈으로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 10여년간 고커를 무너뜨리기 위해 일반인에게는 엄청난 액수의 비용을 지출했지만 그게 순자산의 0.1% 밖에 되지 않는 피터 틸 등등 '비일상적인' 요소들이 가득하다. 결국 최후의 모양새는 "악이 악을 제압하는" 영화 스토리처럼 되고 말았는데, 저자는 그래도 억만장자인 피터 틸 쪽으로 저울을 기울인다. 통속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면 이 책 프로젝트가 틸의 지원아래 쓰여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의 "음모"를 읽고 나면 그런 진부한 상상이 정말로 개연성있어 보인다는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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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 그들은 맥도날드만이 아니라 우울증도 팔았다
에단 와터스 지음, 김한영 옮김 / 아카이브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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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작 <새로운 무의식>에서 저자 레너드 믈로디노프는 뇌의 혈류 등을 측정하는 fmri의 등장으로 기존의 "비과학적인" 정신분석에서 과학적인 뇌과학이 가능해졌다는 식으로 기술한다. 꽤 환원주의적 생각인데 이런 생각이 현재 미국 정신의학의 기본적인 가치관이 아닐까 한다. 이런 가치관아래서는 인간의 정신상태가 문진표 등으로 수치화되고, 모든 정신의학적 문제는 뇌의 화학적 문제로 환원된다. (즉 알약을 먹어야 하고 그 알약을 파는 것은 제약회사다) 하지만, 2010년 작인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신적 문제들-우울증, 거식증, 외상후 트라우마 등-이 발병하고, 치료되고, 받아들여지는 방식이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적 레퍼토리와 동떨어져 있지 않음을 이미 강조한다. 맥도널드가 수출되면서 지구촌 식문화가 파괴되었듯이 이제는 미국식 정신의학이 수출되면서 지구촌의 문화적 다양성을 무시한채,  자생적인 정신치료와 관계된 문화를 파괴하고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다.
  책이 한편의 웰메이드다큐 같다. 연출, 주제의식, 흥미있는 소재, 유연하고 사려 깊은 문장, 게다가 적당한 분량까지 읽고 나면 내가 교양인이 된 것 같은 포만감을 안겨준다.  저자가 처음 거론하는 것은 미국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DSM) 인데 홍콩에 이 DSM이 소개되면서 거식증의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는 과정을 추적한다. 병이 있어서 이름을 붙이는 게 아니다. 이름이 있으니까 거기에 문화가 반응해서 거기에 걸맞는 병증이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PTSD 조차 보편적인 것이 아니었고, 쓰나미 후 스리랑카에 도입된 상담사들은 오히려 기존의 스리랑카 문화와 충돌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장 입이 떡 벌어지는 부분은 일본에  이미 우리에게도 대중화된 세로토닌 재흡수억제제를 팔아먹기 위해  제약회사들이 메가마케팅을 펼치는 과정을 묘사한 부분이다.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논문을 "대필"해가며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 운운해가며 메가마케팅을 펼치는 과정을 보면 지금 코로나백신 접종거부사태가 새삼 새롭게 느껴진다. 나는 백신을 맞아야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제약회사들의 모습은 정말 이윤을 위해서라면 "피도 눈물도 없는"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번 코로나 백신 개발에는 어떤 알지못한 스토리가 숨어있을까? "아메리칸 스탠더드"가 "글로벌 스탠더드"는 아닐 것이다. 벌써 우리 정신의학계도 이미 충분히 미국화되어 있겠지만, 저자의 주장은 "미국 특유의 지나친 자기성찰과 지나친 개인주의" 가 다른 지역의 문화적 차이점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락용으로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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