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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배트 20 - 완결
우라사와 나오키 글.그림, 나가사키 다카시 스토리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만화에 대한 식견이 그닥 있는 건 아니지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를 보다보면 약간의 사대주의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등장인물의 권위 내지는 진히어로정석루트(?)를 보증해주는 것이 서구의 권위이기 때문이다. <마스터키튼>의 키튼은 SAS 교관 출신의 혼혈인이고, <몬스터>의 배경은 아예 유럽인데 주인공은 유능한 일본인 의사다. <20세기 소년>은 일본이 배경이지만 제목의 20세기 소년은 티-렉스의 히트곡이다. 가장 최근작인 <몽인>에도 프랑스에 대한 동경이 배경으로 깔린다. 우리가 박찬호나 류현진을 보면서 자랑스럽다고 느끼는 정서같이 서구의 문화와 기준에서 우월한 위치를 차지한 주인공들은 그것을 백그라운드로 해서 일본으로 귀환한 후 일본내의 난제를 해결한다.메이저리그 투수가 등장할 때 허접한 일본악당들은 제압될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음 그러고보니 에스비에스 드라마 <미세스 캅>의 선전문구도 뉴욕발 어쩌구 였네. <빌리배트> 역시 미국에서 인정받는 만화가 케빈 야마가타가 주인공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초기 소설에 서구문화가 소품으로 쓰이던 것 하고 비슷한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우라사와 나오키를 일본만화의 스티븐 스필버그라고 필름2.0에서 쓴 기억이 난다. <20세기 소년> 때 어찌나 극찬이 쏟아졌던지 헐리웃 영화에 비교됐던 것 같다. 하지만, <빌리배트>는 기묘한 실패작처럼 느껴진다. 물론 우라사와 나오키라는 이름이 보장하는 기본적인 재미는 있다. 하지만, <20세기 소년>에서 쓰여졌던 기법들-시간을 뛰어넘어 이야기를 교차편집하며 전체 구조를 짜올리는 것-이 너무 남발되는 것 같다. 캐릭터는 얄팍하게 느껴지고(캐릭터를 시간을 들여 구축할 수 없으니 전형적인 패턴으로 캐릭터를 묘사한다. 일본인 감독은 찢어진 눈에 작은 키, 주인공의 조력자는 스파이더맨의 네드처럼 묘사하는 식이다), 이야기도 에피소드별로 따로 노는 것 같다. 달에 왜 박쥐가 있는지 떡밥은 계속 던지는데 결말에서 속시원히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니다. 즉, 그 설정은 그냥 후까시인 측면이 강하다. 그래도 인상적인 것은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가로서의 자의식을 보여주는 것 같은 결말이다. 그나마 주인공 격인 케빈 야마가타와 케빈 굿맨은 디스토피아가 다가올 것을 알고 있지만, 지구를 구하지 못한다. 케빈 굿맨이 할 수 있는 일은 황폐해진 지구에서 오로지 만화를 그리는 것 뿐이다. 마지막 대사까지 "잘 그리네. 그런데 왜 안그리지?"다. 하지만, 수 십년 뒤 그 최후의 만화를 본 전쟁터의 소년은 "세계를 구하겠다"고 다짐한다. 케빈 굿맨이 그린 만화가 "낙타 위의 마지막 지푸라기 하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기후변화까지 솔직이 앞으로 좋은 일이 생길 가능성은 별로 없게 느껴진다. (뭐 나는 다르게 예상하신다면 그건 축하할 일이고.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갑자기 내가 환경운동이나 인권운동에 뛰어든다고 세상이 바뀔까. 케빈 굿맨 역시 디스토피아 앞에서 더없이 무기력하고 불행하다. 하지만 케빈 굿맨은 폐허가 된 지구에서 끝까지 만화를 그리면서 자못 여유롭게 아내와 커피를 마신다. 언젠가 세상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하며 "진인사대천명"의 마음가짐으로 자신의 "소명"에만 집중하는 것.설사 그게 눈앞의 불행을 막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한 방울의 물이 되어 대양을 이룰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그게 앞으로 닥쳐올 디스토피아 세계에서 살아가는 태도라고 우라사와 나오키는 말하고 싶은 걸까."계속 그려"라는 박쥐의 마지막 말은 창작의 한계에 부딪친 만화가 우라사와 나오키가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