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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 학교 ㅣ 열린어린이 동시집 20
김현숙 지음, 장은희 그림 / 열린어린이 / 2024년 7월
평점 :
『콩나물 학교』/ 김현숙 동시집/ 열린어린이/ 2024
시인이 엿보이는 콩나물 학교
덥다. 대프리카의 여름은 더 더운데 올여름은 유난히 더 더운 것 같다. 어지간히 더위에 적응했을 법도 한데 아직 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있는 걸 보면 기후 환경 탓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더위에도 피서(避暑)로 북캉스를 택하거나 카페에서 책 읽기, 또는 시원한 계곡에서 탁족을 하며 더위를 식히는 사람도 있다. 『콩나물 학교』를 읽으면서 이 여름 피서에 꼭 알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현숙 시인은 2005년 《아동문예》로 등단해 작품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동시집 『특별한 숙제』, 『아기 새를 품었으니』, 『빵점 아빠 백점 엄마』 등을 냈다. 푸른문학상, 눈높이아동문학상, 김성도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열린어린이에서 출간된 『콩나물 학교』는 김현숙 시인의 세 번째 동시집으로 앞서 나온 『특별한 숙제』, 『아기 새를 품었으니』에서와 같이 작가의 따스한 마음이 작품 곳곳에 배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동시집이다.
총 4부 57편으로 1부 ‘오늘의 일기’, 2부 ‘만화책은 모기도 좋아해’, 3부 ‘34호’, 4부 ‘소가 똥 눌 때 말이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몇 편을 소개한다.
불꽃놀이 구경/정말 좋았어//오줌을 참고/또 참을 만큼//하지만/그보다 더 좋았던 건//참고 또 참았던/오줌 눌 때였어//폭죽 터지듯/오줌이/시원하게 쏟아졌어// - 「더 좋았다」 전문 (20쪽)
생리현상만큼 참기 힘든 것도 없는데 그 느낌을 간략하게 표현했지만, 모두가 공감하며 고개 끄덕이게 되는 그런 시다. 화장실이 급할 때는 아무리 좋은 구경거리도 사실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상상이 되면서 나까지 시원해진다. ^^ 제목을 「더 좋았다」로 붙여 시가 더 사는 듯 하다.
중간고사 앞두고 일요일에 공부 좀 하려고 하면 잠/귀신이 쏜살같이 달려 나와 자기를 따라가자고 살살/ 꼬드겨 그러면 꼼짝 없이 꾸벅꾸벅 따라나섰다가 점/심때가 돼서야 풀려나 바람 좀 쐬고 공부하려고 일/어서면 이번엔 유튜브 귀신이 재밌는 거 많다고 꽉/ 붙들어 주저앉히는 거야 답답해서 창문을 열면 내/ 코를 붙잡고 늘어지는 치킨 귀신이 또 얼마나 꼬드기/는지 번번이 켁 꼬꾸라지고 마는 작심삼일//
- 「3대 귀신」 전문 (23쪽)
집집마다 아이들이 있는 집이면 꼭 부모의 의사와 상관없이 붙어사는 3대 귀신, 잠귀신, 유튜브 귀신, 치킨 귀신이다. 그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부모도 합심해 보지만 쉽지 않다는 걸 다들 잘 안다. 예전에는 좀 큰 아이들에게 붙어 살던 3대 귀신이 요즘은 시대가 변해 어린아이에게도 붙어 산다고 한다. 특히나 유튜브 귀신은 어찌나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많은지 한 번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질 못한다. 아이들의 생활을 늘 관심있게 보는 시인이라 그런지 그런 3대 귀신을 동시집 안으로 불러들였다.
콩나물 학교 교칙
햇빛 안 보기/다리 쭉 뻗기/물 자주 마시기//어느 학교에나/교칙 안 지키는/학생 꼭 있다//-거기, 물구나무선 학생!//
- 「콩나물 학교」 전문 (32쪽)
표제작인 「콩나물 학교」를 읽으니 빼곡하게 콩나물이 자라는 콩나물 시루가 생각난다. 물을 자주 주고 위에는 보자기를 덮어 어둡게 해서 길렀는데 자라는 모양은 대부분 똑바로 쑥쑥 자랐지만, 시에서처럼 몇몇은 물구나무도 서고 눕기도 해서 꼭 학교 교실을 연상하게 한다.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했던 시절도 있었는데 지금은 아이들이 귀한 세상이 되어 언제 그런 때가 있었나 싶은 시대가 되었다. 콩나물 시루 같았던 교실을 더듬어 생각해 보면 참 다양했던 아이들이 있었다 싶다. 비슷하게 생긴 콩나물이지만 다 똑같게 생긴 건 아니듯이.
호박꽃 속으로/쏙 들어간/꿀벌//똑똑,/두드려도/안 나온다//햇살 잘 드는/환하고 따스한 방을 찾았나 보다//오래 머물고 싶은 방인가 보다/마음에 꼭 드는 방인가 보다//
- 「노란방」 전문 (92쪽)
누구나 몸이든 마음이든 쉬어 갈 공간을 필요로 한다. 집이 그런 역할을 해 주면 좋겠지만 여럿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는 자신만의 공간이 따로 있다고 하더라도 또 다른 공간을 찾게 된다. 꿀벌이 찾아낸 호박꽃 속 노란방이 쉬어갈 곳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는 것 같다.
시인의 말에서 이 동시집이 고흐의 작품 「노란 방」처럼 따듯한 희망을 느끼게 하는 동시집이었음 한다는 바람처럼 『콩나물 학교』는 점점 각박해지는 사회에서 한 줄기 따스한 봄바람 같은 동시집이다. 늘 따스한 마음과 배려를 지닌 김현숙 시인의 모습이 동시집 여기저기 보인다.
입추가 지났다. 그렇지만 여전히 덥다. 이 더위를 피해 피서가는 분들은 『콩나물 학교』 손잡고 가 보시길 바란다. 아무 생각 없이 읽다 보면 시원한 곳에 발 담그고 읽다 보면 마음 한쪽이 따스해지면서 남은 더위도 훅 날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