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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집
이은겸 지음 / 감꽃별 / 2024년 12월
평점 :
『진짜 집』/ 이은겸/ 감꽃별/ 2024
우리나라 가구 비율 중에 도시 중심으로 1인 가구가 제일 많다고 들었다. 도시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시골에도 빈집 아니면 1인 가구다. 집은 사람의 온기로 데워지고 사람의 손길로 집이 살아나기도 하고 스러지기도 한다. 이은겸 작가의 동화 『진짜 집』에는 집이 없어 노숙자처럼 지낸 할머니와 반지하에 살게 된 이경이네 가족, 궁궐 같이 잘 꾸며 놓고 살지만 자기들 밖에 모르는 큰외삼촌네 가족이 등장한다.
3가지 유형의 가족과 집의 형태지만 책을 읽다 보니 집은 좋고 나쁘고,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집에 누가 사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오순도순 머리 맞대고 작은 거라도 마음 편하게 나눠 먹으며 하하호호 웃음이 퍼지는 집이 진짜 집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진짜 집을 쓴 이은겸 작가는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로 등단, 2022년 《아동문예》신인문학상 동화로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동시집 『우리 사이는』, 『억울하겠다, 멍순이』, 『갑자기 철든 날』, 『눈치 없는 방귀』, 『그래서 식구』 외 다수가 있고 산문집 『어른이 읽는 동화』, 『꽃기린 편지』가 있으면 창작동화집으로 『203호 아이』가 있다. 황금펜아동문학상, 대교눈높이아동문학상, 한국안데르센상, 한국불교아동문학상, 최계락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으로 엄마와 네 명의 자녀가 큰외삼촌이 있는 서울로 이사를 와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동화 속에는 혈육보다 못한 비정한 큰외삼촌이 있는가 하면 길에서 만난 말도 못 하고 갈 곳도 없는 할머니를 캄캄한 밤길에 업고 와 가족처럼 같이 사는 마음 여린 엄마가 있다.
현관문은 짙은 밤색인데 알루미늄 문이었다. 아래위 반씩 나뉜 문 위쪽은 불투명 유리로 되어 있어서 안팎으로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신발을 벗을 수 있는 좁은 현관을 들어서면 한 평 정도 크기의 거실을 지나 막다른 벽에 한 쪽짜리 싱크대가 보였다 그 오른쪽으로는 욕실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서너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구조였다. 욕실엔 세면대 대신 수도꼭지와 대야가 보였고, 변기는 두 계단을 더 올라가야 앉을 수 있었다. (15쪽)
큰외삼촌 집으로 이사를 와 넓은 이층집에 같이 사는 것이 아닌 반지하에 짐을 풀고 발을 들여놓을 때 풍경이다. 사방이 트인 곳에서 살다 온 아이들 반지하는 감옥이나 다름없다. 사람도 동네도 전학한 학교까지 모두 낯선 곳인데 이사라고 온 집부터가 순탄하지 않다. 화장실이 방보다 높이 있는 구조의 반지하 집에 가 본 적이 있어서 동화 속 반지하 집의 모습이 대충 그려진다.
“응, 아침에 정류장에 나갔더니 이 할머니가 앉아 있는 거야. 말을 시켜 보니 말도 못하고, 손짓 발짓으로 여쭤 봤더니 집도 없고, 자식도 없다기에 119에 연락했어. 그런데 조금 전에 버스에서 내리는데 글쎄 정류장에서 또 만났지 뭐니. 어쩌나, 발길이 떨어져야 말이. 보호자가 찾을 수도 있어서 파출소와 주유소에 우리 전화번호 남기고 오느라 늦었어. 어서 가자. 힘들다.” (106쪽)
지금은 인식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혈연으로 묶인 사람들만 가족의 범주 안에 들었다. 동화 속 엄마는 몸이 약하고 이렇다 할 든든한 직업도 없다. 없는 형편인데도 불구하고 집 없는 할머니를 외면하지 못해 약한 몸으로 할머니를 업고 왔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학교 가는 우리에게 엄마가 손을 흔들면 우리도 뒤돌아서 손을 흔들고, 창으로 햇살이 들락거리겠지. 빗물에 흙이 튀는 창이 아니라 온갖 하늘이 담기는 창이겠지. 그 어여쁜 창엔 차랑차랑 맑은 노래 담은 모빌을 달아야지. (177쪽)
방이 딸린 슈퍼마켓으로 이사가 정해지고 이사 가기 전날 밤 새로 이사 갈 집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다. 반지하 집 풍경은 많은 것이 어둡고 무거웠다면 새로 이사 갈 집에 대한 희망을 적은 부분에서는 한결 밝고 가벼운 게 느껴진다. 성실하고 착하게 살면 누가 알아줘도 알아준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사할 때도 원래 기반이 탄탄하면 어디서든 좀 더 빨리 적응하고 더 일어서기도 빠르지만 그런 기반이 없다면 쉽지 않다. 경이 집에도 엄마가 1달 남짓 다닌 슈퍼에서 보여준 성실함이 주인의 눈에 들어와 하나의 기반이 되었다. 믿고 맡길 수 있다는 것. 요즘 사회에서 그것만큼 든든한 것도 없다. 이사할 집에서는 여섯 식구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기를 책을 읽으면서 응원하게 된다. 진짜 집이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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