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미의 소소한 생각 - 제6회 천상병동심문학상 수상 ㅣ 섬집문고 46
한상순 지음, 레아 그림 / 섬아이 / 2023년 1월
평점 :
『거미의 소소한 생각』/ 한상순 동시집/ 레아 그림/ 섬아이/ 2023
소소한 재미가 있는 동시
소소한 생각이 시가 되고 독자에게 공감을 얻어 읽히는 시가 되면 아주 대단한 일이 아닐까? 소소한 생각에서 발단이 된 생각을 씨실과 날실로 엮여 단단하고 야무진 시로 짜내는 시인, 시인은 언어를 직조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이 동시집에 쓰인 단어나 문장은 병원에서 오래 근무한 이력과 더해져 독자의 마음을 한 번씩 슬쩍슬쩍 어루만진다.
동시집 『거미의 소소한 생각』은 2022년 ‘중소출판사 출판콘텐츠 창작 지원 사업’에 선정된 작품으로 2021~2022년 한국동시문학회 회장을 지내신 한상순 선생님의 신간이다. 저자는 1999년 《자유문학》 동시부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해 동시집 『예쁜 이름표 하나』 『갖고 싶은 비밀번호』 『뻥튀기는 속상해』 『병원에 온 비둘기』 『딱따구리 학교』 외 다수가 있으며, 그림책 『호랑이를 물리친 재투성이 재덕이』 『오리가족 이사하는 날』 등이 있다. 황금펜아동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서덕출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좀좀좀좀」 「기계를 더 믿어요」가 실렸다.
빈집에/ 딱 어울리는 빈집// 빈집에 빈집/ 거미네 집// 거미도 집 나간 지 오랜가 봐.// 거미네 집/ 창문도 다 부서지고// 비척비척 실기둥이/ 받치고 섰네.//
-「빈집에 빈집」 전문 (14쪽)
난 집을 크게 지을 테야./ 기둥은 이쪽에서 저쪽 나무까지/ 길게 눕혀 받칠 테야./ 방을 많이 만들 거야./ 천정은 안 얹을 테야./ 집이 완성되면 가운데 방에 누워 하늘을 볼 테야./ 구름에게도 마을 걸어볼 테야./ 바람에 몸을 맡기고 낮잠도 자볼 테야./ 그러다 이슬비가 살짝 내려 준다면?/ 이슬구슬을 꿰어 방마다 달아 놓을 테야./ 어쩌면 구슬마다 무지개가 들어 있을 지도 몰라/ 그 무지개 길을 가만가만 걸을 테야.// 깔따구야, 하루살이야./ 오늘 하루만 우리 집 좀 비켜 갈래?// -「거미의 소소한 생각」 전문 (20쪽)
두 편에서 거미집이 등장하는데 한 편은 쓸쓸함이 감도는 빈집에 더 쓸쓸함을 더해주는 거미집이고 다른 한 편은 표제작인 「거미의 소소한 생각」으로 행복이 묻어나는 거미가 등장한다. 자신의 집을 지을 때 어떻게 꾸밀지를 상상하면서 마냥 행복해하는 거미의 모습이다. 그 모습에 사람들이 자신의 집을 처음 소유하고 꾸밀 때, 행복한 모습이 겹쳐진다.
밤에도 해가 뜨는/ 양계장/ 알 낳는 기계가/ 알을 쑥쑥 낳는다.//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꽃 비닐하우스/ 장미꽃 기계가/ 꽃망울을 툭툭 터트린다// -「사라진 밤」 전문 (28쪽)
달걀에 숫자가 찍혀 있는데 제일 뒷자리가 1~4까지 있다. 방목해서 키우는 닭이 낳은 알이 ‘1’이고 양계장처럼 좁은 공간에 갇혀서 스트레스받으며 낳은 알은 ‘4’번이 찍힌다. 맛도 물론 다르다. 동물복지라는 말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그 복지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는 날은 언제가 될 것인지. 잘 때 자고, 일 할 때 일하고, 놀 때는 노는 것만 잘해도 스트레스는 훨씬 줄어들 텐데.
그동안 코로나19도 잘 피했는데/ 그만 오미크론에게/ 덜컥, 붙들리고 말았다.// 우리 집,/ 아파트 안 외딴 집이다.// 엄마 입에 붙어 살던/ -바쁘다 바빠/ -어서어서 서둘러/ -시간 없어 빨리빨리// 이 삼총사도 함께 자가격리 되었다.// -「외딴 집」 전문 (76쪽)
뒤늦게 올해 들어 코로나에 감염되어 격리했던 적이 있다. 뒷북이라고 투덜거리면서 격리에 들어갔는데 격리하면 모든 게 멈출 것 같았지만 나 아니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었고 절대 일주일씩이나 꼼짝 않고는 못 있을 것 같았는데 나름 적응되니 그 생활이 또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다. 전 국민의 삼분의 이는 겪었을 외딴 집 살이가 무척 공감이 간다.
이번 동시집에 실린 동시는 대부분 조용조용한 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 같다. 어느 것 하나 딴 목소리를 내는 게 아니라 다 어우러져 듣기 편안한 음악을 듣는 기분이다. 오래 써 왔고, 그만큼 독자를 배려한 작가의 마음이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 지쳐 있다면 한상순 선생님의 『거미의 소소한 생각』을 읽기를 권한다. 거미의 소소한 생각이 ‘행복’이라는 충전을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