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텅 빈 공간이 보이면 자꾸 채운다. 공간에 식료품을 채우고, 음식을 채우고, 물건을 채운다. 도시에 사는 인간들은 허영심을 채우는 대신 마음을 잃어간다.

남자의 욕구 해방으로 태어난 공기인형 노조미는 움직이게 되면서 인간을 알아간다. 어린이들과 같이 어울리면서 행복함을 느낀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두워지자 엄마들이 데리고 간다. 하지만 혼자인 노조미는 외롭다고 느낀다.

우연히 들린 비디오 가게에서 일하는 준이치에게 반해버린 노조미는 사랑을 알아간다. 준이치와 같이 일하게 된 노조미는 조금씩 마음이라는 게 생겨버린다.

저 마음이 생겼어요.

다시 마음이 없는 인형으로 돌아와 줘!

노조미는 인간처럼 마음이 생겨 기쁨과 동시에 불안과 두려움도 동시에 생긴다. 마음이란 그렇다.

도시에 사는 인간들은 그래서 텅 빈 공간을 보면 식료품으로, 음식으로, 물건으로 악착같이 채우면서 마음을 잃어간다.

도시의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마음이 있으면 불편하고 차별만 당한다는 걸 안다.

나는 마음을 가져버렸습니다. 가져서는 안 될 마음을 가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마음이 생겨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마음이 생긴 노조미는 불안하지만 사랑을 알아간다. 준이치와 함께 있다는 게, 텅 비어버린 히데오와 함께 있을 때와 다르다는 걸 느낀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점점 더 불안한 마음도 자리를 잡아간다.

준이치, 하늘엔 뭐가 있어?

노조미, 하늘엔 공기도 있고 구름도 떠다니고 밤엔 달도 뜨고 별도 뜨지. 투명해서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있어

준이치, 보이진 않지만 있다? 아, 어렵다

노조미는 공원에서 할아버지를 만나 텅 빈 하루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나도 텅 비었는데. 할아버지에게 우리 모두는 텅 빈 인간이라는 말을 듣는다. 자네만 그런 게 아니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지만 서로에게 무관심한 채 살아가며 서로를 혐오하는 것마저 허용되는 관계가 텅 빈 인간들이 모인 도시다.

노조미는 자신을 만들어 준 소노다에게 공기인형은 쓸모가 없어지면 타지 않는 쓰레기가 되고, 인간은 죽으면 타는 쓰레기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노조미의 공기가 빠져나갔을 때 준이치의 입김으로 살아났듯 준이치도 같을 거라 생각했지만 준이치는 살아나지 못한다. 만약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면 이토록 공허함이 들지 않았을 텐데.

노조미는 텅 빈 유리병이 가득한 쓰레기장에서 서서히 인형으로 돌아가 쓰레기가 된다.

이 당시 배두나는 고 감독의 시나리오를 받고 배역 때문에 망설이다가 박찬욱을 찾아갔다. 박찬욱은 고레에다 감독이잖아, 괜찮아, 망설이지 말고 뛰어들어라고 했다. 노조미의 몸에서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마치 나의 마음이 빠져나가는 소리처럼 들리는 영화 ‘공기인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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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우울증에 걸렸어요.

요즘처럼 이렇게 바쁜데 우울증에 안 걸리는 게 다행이야. 모두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어.

츠레는 참지 못하고 힘들어서 우울증에 걸렸다고 회사에 이야기를 하니 들었던 말이다.

걱정했는데 와서 보니 멀쩡하네. 남자는 힌 집 안의 대들보야. 약해빠져서는 안 돼. 벌떡 일어나서 열심히 일하다 보면 괜찮아져. 힘을 내.

형이 우울증이라는 말을 듣고 집으로 와서 한 말이다. 우울증은 겉으로는 알 수 없지. 내면의 감기 같은 거지. 감기라는 녀석의 힘이 워낙 강하고 무서워서 어느 날은 길을 걷는데 땅 밑에서 손을 내밀어 나의 다리를 꽉 움켜잡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한다.

제가 우울증인가요? 저는 그냥 두통에 등이 아플 뿐인데요.

츠레는 의사의 말을 듣고 우울증을 받아들이고 노력을 한다. 채소를 먹고, 좋은 생각을 하려 하고, 회사를 관두고. 우울증을 극복하려고 노력을 한다. 어느 날 몹시 괜찮아졌다고 느껴지는 날이 있다. 하루코가 더 예뻐 보이고, 공기도 좋고, 무엇보다 우울한 마음이 비누로 씻겨 버린 것 같다. 노력을 하니 된다. 의사는 그러면 참 좋지만 간단하게 없어지지 않으니 계속 병원을 다니며 추이에 대한 노력을 합시다.

정말 그랬다. 꾸준하게 우울하다면 몰랐을 텐데, 기분이 좋았다가 우울이 다시 찾아오니 눈을 떴는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밤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가슴이 갑갑하다.

하루코에게 미안한 츠레. 그렇게 원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리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나는 다니던 회사에서 결국 나오고 말았다. 우울증 같은 것에 걸려서 하루코에게 너무 미안하다.

아픈 건 죄가 아닌데 마음이 아픈 건 죄가 되는 사회다. 늘 삐죽 솟은 머리. 인간관계라는 건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나와 다른 인간이라면 이해보다는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츠레, 노력하지 않아 돼. 괜찮아. 애쓰지 마. 그냥 받아들여. 하루코는 츠레의 우울증에 도움이 되려고 자신이 노력을 한다. 엄마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하루코의 엄마는 편하게 마음을 가지라 딸에게 말하면서도 이것저것 우울증에 좋은 것들을 귀찮을 정도로 알려준다.

하루코는 자주 가는 골동품점에서 아주 평범한 유리병 하나를 발견한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평범한 유리병은 단지 오랜 세월 깨지지 않아서 여기 이 자리에 있지, 단순하게 깨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때도 있어.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

츠레는 하루코를 위해서 좋아하는 음식도 하루코가 냄새 나서 싫어한다고 한 번도 먹지 않았다. 그런 츠레는 하루코가 차려 준 낫토를 아주 맛있게 먹는다. 츠레는 하루코를 위해 우울증을 받아들였지만 이제 자신을 위해서 노력을 한다고 말한다.

가장 마음이 찡했던 장면은 츠레가 우울증을 1년 6개월 만에 극복하고 사용하지 않았던 휴대전화를 꺼내서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던 사람은 하루코의 엄마, 장모님이었다. 자신을 위해 뒤에서 묵묵히 노력을 했던 장모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장면이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건 혼자서는 참 힘들다.

그 외에도 츠레가 우울증에 관한 강연에서 아픔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직 치료 중이지만 언제나 노력을 할 것이라는 것, 츠레를 괴롭히던 진상 고객이 나타나서 고맙다고 하는 장면도 좋다.

악착같이 살아내느라 제대로 상처를 받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영화, 아픈 건 창피한 게 아니니까 말해도 괜찮다고 알려주는 영화 ‘츠레가 우울증에 걸려서’였다.


https://youtu.be/zqsBwrR5hZk?si=IHjtEahrrAyulL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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