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로브 작품 감독 남자주연조연상 후보에 오르고 타임지에서 뽑은 영화이기도 했고, 92년에 모든 평론가들이 뽑은 당대 최고의 영화였다. 감독은 로브 라이너, 촬영 로버트 리처드슨, 음악 마크 셔먼, 각본이 29살의 천재 브로드웨이 극작가 아론 소킨이었다. 주연배우들이 쟁쟁했다. 톰 크루저, 잭 니콜슨, 데미 무어, 케빈 베이컨, 커피 서덜랜드 등.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쿠바에서 가장 가까운 미해병기지 관타나모 기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희생자는 산티아고 이등병이다. 그리고 두 명의 상병과 일병이 저지른 살인사건이다. 여기에 다니엘 캐피 중위와 여자인 조안느 겔로웨이 소령이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이것이 레드 코드, 우리 말로는 야간 집합이라고 알려진 자체 내 가혹행위를 통해서 저지른 것이 상부로 명령에 의해서 저지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으로 출발한다. 산티아고에 소속된 소대장 캔드릭을 소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부 사령관 중령은 이 모든 것이 사령관 제이섭의 명령이었음을 알려주고 자살하는 사건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대령인 제이섭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미국 국무회의 실력자였고 게다가 무죄판결이 날 경우는 반대로 명예훼손으로 몰입이 된다. 하지만 다니엘 캐피 중위는 자신의 모든 커리어를 걸고 제이섭 대령을 법정에 세워 한 판 승부를 벌인다. 마지막 장면이 당시 평론가들이 최고로 평했다. 톰 크루저와 잭 니콜슨이 맞부딪혀 싸우는 그 장면에서 톰 크루저가 아무리 열심히 해서 재롱을 떠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특히 마지막 재판 장면이 무려 11분이나 된다. 그 당시 톰 크루즈는 엔지를 50번이나 냈다. 지금의 톰 크루저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톰 크루저를 놀라게 한 것은 이 50번 연기를 잭 니콜슨은 똑같은 정도의 톤 앤 매너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같은 열기를 갖고 아주 흥분되고 격양된 표정을 똑같이 50번을 했다. 그래서 톰 크루저가 역시 잭 니콜슨 선생님은 저의 스승입니다,라고 무릎을 꿇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영화는 그 보다 좀 더 복잡한 상업적 전략을 배경에 깔고 있다고 정성일 평론가는 말했다. 감독인 로브 라이너는 이 영화는 감독 한 사람이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영화라고 했다. 로브 라이너는 이 영화를 하는 것이 부담이 상당했다. 대표로 있는 영화사는 물량공세로 영화를 만들기보다 헤리셀리, 스탠 바이 미, 미저리처럼 배우와 이야기로 대중과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이 영화는 제작비가 에이리언 3의 제작비와 맞먹을 정도로 들었다. 29살의 천재 각본가는 로브 라이너에게 계속 신경을 긁었다. 원작은 재판정에서 시작하여 재판정에서 끝난다. 즉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시간과 공간의 일치를 요구했다. 그래서 로브 라이너는 각본가에게 소리를 치며 나도 할 수 있다고!라는 일화가 영화 관계자들이 모인 사람들의 증언이었다. 가장 고민은 캐스팅이었다. 로브 라이너가 가장 먼저 캐스팅한 배우가 톰 크루저였다. 92년 이전의 톰 크루저는 탑건과 7월 4일생의 이미지가 굳어 있었다. 두 가지는 양면성이 보이는데 두 가지를 합치면 새로운 모습이 된다. 이 영화는 탑건의 하층민 페르소나에 지나지 않았다. 하층민의 성격을 가진 주인공을 엘리트 페르소나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고 정성일 평론가는 말했다. 그리고 다니엘 중위의 아버지에 대한 페르소나를 잭 니콜슨이다. 이 모든 구조가 복잡하게 이 영화 속에 들어있다. 무엇보다 당시 미국 상황에 맞게 이 영화는 정치적인 면모를 가득 안고 있었다. 이 영화는 92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교묘하게 편승해서 만든 스타 영화다. 이 영화는 촬영일수 68만에 개봉했다. 촬영이 개시된 시점이 클린튼이 압승으로 끝났을 때였고, 개봉일은 클린튼 취임 전으로 잡고 있었다. 영화 속 재이섭은 부시를 똑 닮았고, 다니엘은 클린튼을 투영한다. 첫 시작에 죽은 두 병사는 한 명은 흑인이고 한 명은 백인 게이다. 이 영화의 모든 면에 당시 미국 정치적인 색채가 가득하다. 그래서 다른 나라는 미국만큼 이 영화에 몰입하거나 열광할 수 없음에도 스타 캐스팅 시스템으로 한국에서도 인기였다. 아무튼 이 정도로 몰입감 있는 법정영화도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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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리쿠 지방의 작은 어촌 마을. 전직 야쿠자인 미우라는 조직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서 어부로 살아간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야쿠자였다는 과거는 미우라가 아무리 애써도 지워지지 않는다. 마을에 살고 있지만 어딘가 떠돌이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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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미우라 앞에 코우타라는 소년이 나타난다. 코우타는 시각장애가 있어 학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따돌림을 당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코우타는 울지 않는다. 아이들이 뭐라고 해도 지팡이를 짚고 묵묵히 앞으로 걸어간다. 그 모습을 본 미우라가 코우타에게 마음을 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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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타에게는 더 아픈 사연이 있다. 부모는 야쿠자와 얽힌 교통사고로 죽었고, 코우타 역시 그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이후 그를 맡아 기르는 이모와 이모의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살아간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코우타가 마음 놓을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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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미우라와 코우타가 가까워지는 과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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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나이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전혀 다르지만 이상하게 서로를 알아본다. 미우라도 마찬가지다. 조직을 떠났지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코우타 역시 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 결국 둘은 서로에게 조금씩 기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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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타가 미우라와 함께 있을 때 보여주는 얼굴이 특히 인상적이다. 계란처럼 둥근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평소에는 세상을 경계하듯 굳어 있던 아이의 얼굴이 미우라 아저씨와 함께 있을 때만 환하게 빛난다. 미우라 역시 그렇다. 이 사람에게 웃음이 생기는 순간도 코우타와 함께 있을 때다. 두 사람이 항구에 있을 때 두 얼굴에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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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는 코우타의 눈을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코우타를 위해 야쿠자의 돈에 손을 댄다. 결국 미우라는 자신에게 남아 있던 모든 것을 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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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 속 인물도 비슷한 질문을 한다. 하지만 미우라에게는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평생 혼자였던 사람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이가 나타났고, 그 아이가 자신에게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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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마친 코우타가 눈을 뜨고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은 미우라 아저씨였다. 그런데 미우라는 사라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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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2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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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코우타는 경찰이 되어 마약 사건을 기가 막히게 해결하는 형사가 된다.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주었던 미우라 아저씨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미우라와 다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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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우라가 야쿠자 조직을 떠났다고 해서 야쿠자까지 미우라를 놓아준 것은 아니다. 그의 과거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결국 그 그림자는 코우타에게까지 총구를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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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야기는 상당히 신파적이다. 결말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뻔함이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은 반전이나 기막힌 이야기보다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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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가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시대적 배경도 꽤 과거로 물러나 있다. 화면의 질감도 요즘 영화와는 확실히 다르다. 마치 1980년대 영화 필름을 보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실제로 35mm 필름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거칠고 따뜻한 화면이 영화의 정서와도 잘 어울린다. 디지털로 너무 깨끗하게 찍은 화면이었다면 오히려 이 이야기가 지금보다 훨씬 인위적으로 느껴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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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다. 주인공 미우라를 연기한 다치 히로시는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이 인물의 쓸쓸함을 잘 끌고 간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사이토 타쿠미의 양아치 야쿠자 연기도 꽤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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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린 코우타와 성인이 된 코우타의 이야기로 나뉜다. 두 시간대를 놓고 보면 성인이 된 코우타의 이야기가 더 큰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어린 코우타와 미우라가 함께했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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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타에게 미우라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었다. 미우라에게 코우타는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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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는 야쿠자와 경찰, 마약 사건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서로에게 기댈 곳이 되어준 두 사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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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혼자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이 만나 잠시나마 서로의 가족이 되어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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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도 미우라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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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괴담은 등줄기를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무서운 건 귀신이 어디선가 튀어나오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매일 다니는 곳, 매일 사용하는 공간이 갑자기 무서운 곳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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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장편 공포영화는 별로 무섭지 않은데 단편 공포물은 꽤 무섭다. 짧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공포가 설명되는 순간이 오는데, 짧은 이야기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끝나버린다. 옴니버스라 앞의 이야기가 재미없어도 다음 편을 기대하면서 보게 되는 것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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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포라는 게 멀리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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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정전이 꽤 자주 됐다. 동생과 TV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화면이 꺼지면 둘이서 꺄악 소리를 질렀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데 그때는 정말 무서웠다. 집 안에 초를 하나씩 두고 있다가 정전이 되면 불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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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촛불이 밝지도 않았다. 촛불 바로 주변만 겨우 보이고 조금만 멀어지면 다시 깜깜했다.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웠다. 불빛이 닿지 않는 반대편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인데, 어린아이에게 어둠은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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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이 지나면 공포의 대상도 바뀐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울 때가 있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이 더 무서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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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괴담’에서 재미있는 것도 바로 그런 부분이다. 괴물이나 귀신이 나오는 장면 자체는 사실 그렇게 무섭지 않다.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괴물이라는 게 너무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있는 사람이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은 묘하게 무섭다. 사람이 정말 무서워하면 나까지 같이 긴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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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 ‘문지방’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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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친정에 가면서 남편에게 문지방 위에 붙여놓은 부적을 절대 떼지 말라고 한다. 옆 동에서는 남자 두 명이 실종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른 편 ‘엘리베이터’에서 사라진 두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에피소드들이 어딘가에서 연결되는 것도 이 시리즈를 보는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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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남편이 말을 들을 리가 없다. 부적을 떼고 잠든다. 그리고 결국 일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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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는 괴물은 솔직히 별로 안 무섭다. 주먹으로 한 대 맞으면 쓰러질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괴물을 보고 겁에 질려 있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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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괴담’이 그런 데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괴물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 평범했던 집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공간이 어느 순간 낯설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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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정전된 집에서 촛불 하나를 켜놓고 반대편 어둠을 바라보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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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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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배우들이 워낙 쟁쟁해서 봤는데, 막상 보고 나니 재미와는 거리가 꽤 있다.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데려다 놓고 이렇게 만들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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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톰 역의 애덤 스콧은 여기서도 범죄소설가로 나온다. 얼마 전 본 영화 ‘호컴’에서는 공포소설가였다. 두 작품만 놓고 보면 ‘호컴’ 쪽이 훨씬 재미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영화에서 같은 배우가 비슷한 직업의 작가로 등장하는 걸 보면 묘한 생각이 든다. 할리우드에 배우가 그렇게 없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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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콧은 역시 ‘단절’ 시리즈가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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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아들 제이크와 조용한 마을로 이사 온다. 아내를 잃은 뒤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톰에게는 새로운 환경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사 온 집에서 제이크가 이상한 속삭임을 듣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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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부터 이야기는 조금씩 어두운 쪽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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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는 집 안에서 계속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다. 톰은 그런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이크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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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쫓던 아만다(미셸 모나한)는 제이크의 실종이 십수 년 전 여러 아이를 납치해 살해한 연쇄살인범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발견한다. 범인은 ‘위스퍼맨’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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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한 건 위스퍼맨이 이미 감옥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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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결국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아버지 피트(로버트 드 니로)를 찾아간다. 피트는 은퇴한 경찰이고, 과거 위스퍼맨을 검거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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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를 찾기 위해 피트와 톰, 그리고 아만다는 과거의 사건 기록과 단서를 하나씩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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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줄거리만 놓고 보면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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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배우들도 좋다. 로버트 드 니로와 마이클 키튼, 애덤 스콧, 미셸 모나한까지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화면도 좋다. 영화 전체에 어둡고 축축하고 서늘한 분위기가 깔려 있어서 범죄 스릴러가 가진 눅눅한 느낌은 제대로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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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개연성이 자꾸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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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과 설정도 계속 떠오른다. ‘데블스 아워’를 비롯해 여러 스릴러에서 봤던 요소들을 조금씩 가져와 한곳에 붙여놓은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간다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장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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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알겠다. 아내를 잃은 톰과 아버지 피트 사이에 쌓여 있는 오래된 감정도 중요한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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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감정들이 범죄 수사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오히려 이야기를 옆으로 새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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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가족의 상처를 조금 덜어내고, 제이크의 실종과 위스퍼맨을 둘러싼 사건을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단서 하나가 다음 단서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관객이 범인을 의심하고 다시 뒤집히는 식으로 범죄 수사의 논리와 반전을 강하게 밀어붙였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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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도 좋고 분위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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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좋은 배우와 좋은 분위기만으로는 결국 영화가 재미있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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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나서 가장 아쉬웠던 건 바로 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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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리즈는 정적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상하게 한 편씩 보게 된다. 잔인하고, 또 잔인하다. 그렇게 보다 보면 어느새 10화까지 와 있다. 특히 마지막 10화는 정말 충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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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1800년대,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북극으로 들어간 탐험대의 이야기다. 시리즈 내내 눈이 내리고 사방이 꽁꽁 얼어붙어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공포스럽다. 그런데 추위만 견디면 되는 게 아니다. 식량은 떨어지고, 사람들은 굶주림에 시달린다. 몸을 썩게 만드는 질병까지 번진다. 거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자연적인 생명체까지 탐험대를 공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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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보는 풍경은 끝없이 펼쳐진 눈과 얼음뿐이다. 어디를 가도 빠져나갈 곳이 없다. 그런 곳에서 사람은 조금씩 미쳐간다. 옆에서 함께 있던 사람이 극한의 추위와 병으로 하나둘씩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정상적인 정신으로는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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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척의 탐사선은 거대한 얼음에 갇히고 구조는 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선원들은 굶주리고 병들고 죽어간다. 그 과정을 굉장히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다른 고어 공포영화를 볼 때보다 오히려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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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한다. 몸을 반으로 갈라놓고 다리를 물어뜯어 버린다. 화면 자체가 잔인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무서운 건 그곳에 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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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곳에 며칠만 있어도 팔다리가 동상에 걸리고, 결국 살이 썩어 들어가 잘라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북극의 풍경은 아름답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 너무 차갑다. 화면을 가득 채운 눈과 얼음이 아름답게 보이면서 동시에 사람을 질식시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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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우스톤' 첫 시즌이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하찮고 무력한 존재인지를 보여줬다면, '더 테러' 시즌 1은 그보다 훨씬 더 깊은 곳까지 인간을 밀어붙인다. 추위와 굶주림, 질병, 죽음이 계속 사람을 몰아세운다. 그러다 보니 인간의 절망과 두려움이 아주 구체적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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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건 괴물만이 아니다. 사람이 굶주리고 죽음이 가까워졌을 때 무엇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것도 무섭다. 삶과 죽음, 질병과 신체훼손, 인간의 본성과 윤리 같은 것들이 계속 뒤섞인다. 여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까지 끼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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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지막 10화에서 식량이 부족해지면서 결국 죽은 선원의 살을 떼어 먹는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상하게도 괴물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보다 그 장면이 더 오래 간다.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어디까지 내려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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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1845년 존 프랭클린 탐험대가 북서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떠났다가 조난당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도 이 시리즈를 더 무섭게 만든다. 완전히 허구라고 생각하고 볼 수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저 얼음 속에 갇혀 있었고, 구조를 기다리며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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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더 테러' 시즌 2를 보고 있는데 시즌 1과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고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시즌 1보다 재미가 떨어져서 그런지 조금 집중이 안 된다. 아무래도 내가 좋아했던 건 시즌 1의 그 폐쇄된 공간과 끝이 보이지 않는 얼음, 그리고 거기서 서서히 무너져가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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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인 공포를 좋아한다면 '더 테러'는 시즌 1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오히려 공포 시리즈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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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놀라게 하는 공포가 아니라, 보고 있는 동안 조금씩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공포다. 괴물이 나타나지 않아도 이미 무섭고, 괴물이 나타나면 더 무섭다. 결국 가장 무서운 건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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