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무시하게 변해버린 니키의 모습보다 찐따 베어의 모습이 더 공포스럽다. 이런 찐따가 주변에 하나 있다면 결국 주위 사람들까지 병들어간다. 영화에서는 그 끝이 끔찍하다. 찐따 베어 때문에 친구들이 하나둘 죽고, 심지어 고양이까지 죽어서 샌드위치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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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적으로 보면 영화는 무섭게 변해버린 니키를 앞세워 공포를 만든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사랑에 빠진 찐따가 사랑을 원하는 방식이다. 자신만을 사랑하도록 만들어버리는 것. 니키가 친구들 앞에서 자기 머리를 깨버려도, 세라의 얼굴을 아작 내서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만들어도 찐따 베어 선생은 무서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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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찐따 베어는 니키의 삶도, 친구들의 삶도, 자신의 삶도 전부 끝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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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가 이렇게 무섭다. 정작 본인은 그걸 잘 모른다. 내가 찐따라서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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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사랑이 언제나 같은 크기,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런 상식은 별 소용이 없어진다. 내가 알고 있는 공식이나 법칙도 사랑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초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그냥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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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한 사람의 사랑이 식어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사랑이 식은 사람에게는 끝난 관계지만, 남은 사람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일 수도 있다. 그게 집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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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동생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더니 남자가 집 앞에 차를 대놓고 3일씩 집에도 들어가지 않은 채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무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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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사랑할 때 한 번 같이 만난 적이 있었다. 남자친구는 잘생겼고 서글서글했다. 사람도 참 좋아 보였다. 그런데 헤어지자는 말이 트리거가 된 모양이다. 집착이 심해졌고 결국 경찰까지 오갔다. 그 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할 수는 없지만. 다만 이런 일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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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자주 하는 생각이 있다.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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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간섭을 넘어 집착이 되는 순간, 당하는 사람만 힘든 게 아니다. 가족도 힘들고 주변 사람들도 같이 끌려 들어간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옥죄는 일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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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세션]을 보면서 영화 자체에 대한 생각도 조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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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통적인 영화 연출을 고집하는 영화보다 사람들의 간지러운 곳을 정확하게 긁어주는 콘텐츠가 훨씬 빠르게 반응을 얻는다. 영화는 돈이 많이 든다. 아주 짤막한 독립영화 하나를 만드는 데도 몇천만 원에서 1억 원이 넘게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쓴 영화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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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세션]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가 그런 변화를 꽤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쇼츠처럼 도파민을 건드린다. 특히 베어가 말을 한마디 던졌을 때 니키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과 행동이 그렇다. 보는 사람의 숨을 조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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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는 감정을 시시때때로 바꾼다. 두려워했다가 관능적으로 변하고, 천진난만해졌다가 사랑스러워진다. 그러다 광적으로 돌변하고 무서워지고, 다시 행복해졌다가 슬퍼진다. 짧은 시간 안에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의 낯선 얼굴을 거의 다 꺼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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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영화에서 진짜 무서운 건 괴물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걸 본인은 얼마나 늦게 알아차리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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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미지의 공포를 영화는 꽤 집요하게 건드린다. 진짜 무서운 건 어제까지 사랑했던 사람이 돌변한 오늘의 사람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 [옵세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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