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베로니카' 시즌 1은 보는 내내 답답해서 미칠 것 같은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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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처음부터 나온다. 숨길 생각도 별로 없다. 여자를 납치해서 갈고리에 매달아 놓고 가지고 놀다가 죽인다. 그것도 모자라 그 장면을 아내에게 억지로 보여준다. 범인은 육군 대령이다. 그런데 아무리 사람이 사라져도 잡히지 않는다. 흔적도 거의 남기지 않는다. 경찰이 수사를 하는데도 이상할 정도로 사건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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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지켜보다가 결국 베로니카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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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베로니카가 무슨 유능한 형사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직 형사가 되지 못했고, 현장 수사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경찰이다. 주로 실내에서 근무하던 사람이다. 그런 베로니카가 실종 사건을 이상하게 여기면서 범인의 아내와 접촉하고, 사라진 여자들을 찾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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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뭔가 해보려고 할 때마다 막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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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청하면 거절당한다. 위에서 수사하지 말라고 한다. 범인 앞까지 거의 다 가놓고도 놓친다. 특공대까지 투입하지만 엉뚱한 곳을 들이닥친다. 베로니카가 뭔가 알아냈다 싶으면 또 다른 벽이 나타난다. 보고 있으면 ‘아니, 거기까지 갔으면 그냥 잡으면 되잖아’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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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베로니카와 계속 부딪히는 반장도 있다. 경찰 조직 안에서 베로니카와 거의 경쟁자처럼 보이는 인물인데, 상당히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여자다. 베로니카 역시 예쁘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마주칠 때마다 묘한 긴장감이 생긴다. 그런데 정작 베로니카가 믿었던 사람들조차 하나씩 이상한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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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 후반에 들어서야 왜 이렇게 수사가 안 되는지 조금씩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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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령 하나만 잡으면 끝나는 사건이 아니었다. 경찰의 수뇌부가 이 사건과 연결되어 있었다. 베로니카가 아무리 뛰어다녀도 위에서 막아버리니 사건이 진척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시즌 1은 범인을 잡는 수사극이라기보다는, 베로니카가 자신이 속한 조직 자체를 의심하게 되는 과정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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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장면도 상당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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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을 잡아 창고에 가둔 뒤 등의 살갗을 뚫어 천장에 매다는 장면부터 상당히 불편하다. 범인의 아내는 남편이 여자들을 죽이는 장면을 강제로 지켜봐야 한다. 눈구멍이 뚫린 상자를 머리에 쓰고 그 안에서 남편의 살인을 바라본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보는 것보다, 그것을 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상황이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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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삶도 이미 망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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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오랫동안 가스라이팅을 당한 탓에 정상적인 판단을 하기조차 힘들어졌다. 남편이 저지르는 끔찍한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 결국 남편을 잡는 데 도움을 주려고 하는데, 그 대가가 너무 잔인하다. 불에 태워지는 장면은 시즌 1에서 손꼽히게 안타까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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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베로니카가 믿었던 사람들도 무너진다. 자신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서장도, 늘 자신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반장도 결국 사건의 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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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시즌 1은 베로니카에게 일종의 배신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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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하나씩 해결하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믿었던 사람을 하나씩 잃어가면서 자신이 몸담고 있던 세계가 얼마나 썩어 있는지를 알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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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베로니카는 대령을 잡는다. 정확히는 대령을 불에 태워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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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서 베로니카가 완전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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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부터는 우리가 시즌 1에서 봤던 베로니카와 조금 다른 사람이 된다. 자신이 당한 일과 시즌 1의 사건에 가담했던 수뇌부들을 하나씩 찾아가고, 그들과 연결된 범죄자들을 직접 처단하기 시작한다. 경찰이라는 조직 안에서 정의를 찾으려 했던 사람이 조직 밖으로 밀려난 뒤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버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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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굿모닝, 베로니카'는 시즌 1과 그 이후의 느낌이 꽤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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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시즌 1은 추천하기가 쉽지 않다. 너무 답답하다. 범인이 누군지도 알고 있는데 왜 저렇게 못 잡나 싶고, 베로니카가 조금만 더 빨리 움직였으면 하는 생각이 계속 든다. 보면서 욕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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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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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령을 어떻게 잡는지가 궁금해서 결국 다음 화를 누르게 된다. 그리고 시즌 1을 어떻게든 견디고 나면 시즌 2부터는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베로니카가 더 이상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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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1에서 그렇게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던 답답함이 시즌 2부터는 베로니카의 분노로 바뀐다. 그때부터는 누가 누구를 잡을 것인지 지켜보는 재미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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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즌 3까지 나와 있다. 고어한 장면을 견딜 수 있고, 초반의 답답한 수사극을 참고 볼 수 있다면 시즌 1에서 포기하지 않는 편이 좋다. 나 역시 시즌 1을 보면서 몇 번이나 욕을 했지만, 결국 대령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보고 싶어서 끝까지 봤고, 그 이후부터는 오히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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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글로브 작품 감독 남자주연조연상 후보에 오르고 타임지에서 뽑은 영화이기도 했고, 92년에 모든 평론가들이 뽑은 당대 최고의 영화였다. 감독은 로브 라이너, 촬영 로버트 리처드슨, 음악 마크 셔먼, 각본이 29살의 천재 브로드웨이 극작가 아론 소킨이었다. 주연배우들이 쟁쟁했다. 톰 크루저, 잭 니콜슨, 데미 무어, 케빈 베이컨, 커피 서덜랜드 등.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쿠바에서 가장 가까운 미해병기지 관타나모 기지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희생자는 산티아고 이등병이다. 그리고 두 명의 상병과 일병이 저지른 살인사건이다. 여기에 다니엘 캐피 중위와 여자인 조안느 겔로웨이 소령이 이 사건을 맡게 된다. 이것이 레드 코드, 우리 말로는 야간 집합이라고 알려진 자체 내 가혹행위를 통해서 저지른 것이 상부로 명령에 의해서 저지른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으로 출발한다. 산티아고에 소속된 소대장 캔드릭을 소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부 사령관 중령은 이 모든 것이 사령관 제이섭의 명령이었음을 알려주고 자살하는 사건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대령인 제이섭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미국 국무회의 실력자였고 게다가 무죄판결이 날 경우는 반대로 명예훼손으로 몰입이 된다. 하지만 다니엘 캐피 중위는 자신의 모든 커리어를 걸고 제이섭 대령을 법정에 세워 한 판 승부를 벌인다. 마지막 장면이 당시 평론가들이 최고로 평했다. 톰 크루저와 잭 니콜슨이 맞부딪혀 싸우는 그 장면에서 톰 크루저가 아무리 열심히 해서 재롱을 떠는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 특히 마지막 재판 장면이 무려 11분이나 된다. 그 당시 톰 크루즈는 엔지를 50번이나 냈다. 지금의 톰 크루저로써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톰 크루저를 놀라게 한 것은 이 50번 연기를 잭 니콜슨은 똑같은 정도의 톤 앤 매너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같은 열기를 갖고 아주 흥분되고 격양된 표정을 똑같이 50번을 했다. 그래서 톰 크루저가 역시 잭 니콜슨 선생님은 저의 스승입니다,라고 무릎을 꿇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 영화는 그 보다 좀 더 복잡한 상업적 전략을 배경에 깔고 있다고 정성일 평론가는 말했다. 감독인 로브 라이너는 이 영화는 감독 한 사람이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영화라고 했다. 로브 라이너는 이 영화를 하는 것이 부담이 상당했다. 대표로 있는 영화사는 물량공세로 영화를 만들기보다 헤리셀리, 스탠 바이 미, 미저리처럼 배우와 이야기로 대중과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았는데 이 영화는 제작비가 에이리언 3의 제작비와 맞먹을 정도로 들었다. 29살의 천재 각본가는 로브 라이너에게 계속 신경을 긁었다. 원작은 재판정에서 시작하여 재판정에서 끝난다. 즉 영화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시간과 공간의 일치를 요구했다. 그래서 로브 라이너는 각본가에게 소리를 치며 나도 할 수 있다고!라는 일화가 영화 관계자들이 모인 사람들의 증언이었다. 가장 고민은 캐스팅이었다. 로브 라이너가 가장 먼저 캐스팅한 배우가 톰 크루저였다. 92년 이전의 톰 크루저는 탑건과 7월 4일생의 이미지가 굳어 있었다. 두 가지는 양면성이 보이는데 두 가지를 합치면 새로운 모습이 된다. 이 영화는 탑건의 하층민 페르소나에 지나지 않았다. 하층민의 성격을 가진 주인공을 엘리트 페르소나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고 정성일 평론가는 말했다. 그리고 다니엘 중위의 아버지에 대한 페르소나를 잭 니콜슨이다. 이 모든 구조가 복잡하게 이 영화 속에 들어있다. 무엇보다 당시 미국 상황에 맞게 이 영화는 정치적인 면모를 가득 안고 있었다. 이 영화는 92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교묘하게 편승해서 만든 스타 영화다. 이 영화는 촬영일수 68만에 개봉했다. 촬영이 개시된 시점이 클린튼이 압승으로 끝났을 때였고, 개봉일은 클린튼 취임 전으로 잡고 있었다. 영화 속 재이섭은 부시를 똑 닮았고, 다니엘은 클린튼을 투영한다. 첫 시작에 죽은 두 병사는 한 명은 흑인이고 한 명은 백인 게이다. 이 영화의 모든 면에 당시 미국 정치적인 색채가 가득하다. 그래서 다른 나라는 미국만큼 이 영화에 몰입하거나 열광할 수 없음에도 스타 캐스팅 시스템으로 한국에서도 인기였다. 아무튼 이 정도로 몰입감 있는 법정영화도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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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리쿠 지방의 작은 어촌 마을. 전직 야쿠자인 미우라는 조직 생활을 정리하고 이곳에서 어부로 살아간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야쿠자였다는 과거는 미우라가 아무리 애써도 지워지지 않는다. 마을에 살고 있지만 어딘가 떠돌이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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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미우라 앞에 코우타라는 소년이 나타난다. 코우타는 시각장애가 있어 학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따돌림을 당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코우타는 울지 않는다. 아이들이 뭐라고 해도 지팡이를 짚고 묵묵히 앞으로 걸어간다. 그 모습을 본 미우라가 코우타에게 마음을 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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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타에게는 더 아픈 사연이 있다. 부모는 야쿠자와 얽힌 교통사고로 죽었고, 코우타 역시 그 사고로 시력을 잃었다. 이후 그를 맡아 기르는 이모와 이모의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하면서 살아간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코우타가 마음 놓을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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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미우라와 코우타가 가까워지는 과정이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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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나이도 다르고 살아온 환경도 전혀 다르지만 이상하게 서로를 알아본다. 미우라도 마찬가지다. 조직을 떠났지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코우타 역시 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 결국 둘은 서로에게 조금씩 기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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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타가 미우라와 함께 있을 때 보여주는 얼굴이 특히 인상적이다. 계란처럼 둥근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평소에는 세상을 경계하듯 굳어 있던 아이의 얼굴이 미우라 아저씨와 함께 있을 때만 환하게 빛난다. 미우라 역시 그렇다. 이 사람에게 웃음이 생기는 순간도 코우타와 함께 있을 때다. 두 사람이 항구에 있을 때 두 얼굴에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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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라는 코우타의 눈을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코우타를 위해 야쿠자의 돈에 손을 댄다. 결국 미우라는 자신에게 남아 있던 모든 것을 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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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면서 ‘왜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 속 인물도 비슷한 질문을 한다. 하지만 미우라에게는 그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평생 혼자였던 사람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필요로 하는 아이가 나타났고, 그 아이가 자신에게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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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마친 코우타가 눈을 뜨고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은 미우라 아저씨였다. 그런데 미우라는 사라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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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2년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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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 코우타는 경찰이 되어 마약 사건을 기가 막히게 해결하는 형사가 된다. 그렇게 살아가면서도 어린 시절 자신을 돌봐주었던 미우라 아저씨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미우라와 다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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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우라가 야쿠자 조직을 떠났다고 해서 야쿠자까지 미우라를 놓아준 것은 아니다. 그의 과거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결국 그 그림자는 코우타에게까지 총구를 겨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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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이야기는 상당히 신파적이다. 결말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뻔함이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은 반전이나 기막힌 이야기보다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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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가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시대적 배경도 꽤 과거로 물러나 있다. 화면의 질감도 요즘 영화와는 확실히 다르다. 마치 1980년대 영화 필름을 보는 듯한 느낌이 있는데, 실제로 35mm 필름으로 촬영했다고 한다. 거칠고 따뜻한 화면이 영화의 정서와도 잘 어울린다. 디지털로 너무 깨끗하게 찍은 화면이었다면 오히려 이 이야기가 지금보다 훨씬 인위적으로 느껴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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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다. 주인공 미우라를 연기한 다치 히로시는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이 인물의 쓸쓸함을 잘 끌고 간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사이토 타쿠미의 양아치 야쿠자 연기도 꽤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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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어린 코우타와 성인이 된 코우타의 이야기로 나뉜다. 두 시간대를 놓고 보면 성인이 된 코우타의 이야기가 더 큰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 기억에 남는 것은 어린 코우타와 미우라가 함께했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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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타에게 미우라는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었다. 미우라에게 코우타는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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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영화는 야쿠자와 경찰, 마약 사건에 관한 영화라기보다 서로에게 기댈 곳이 되어준 두 사람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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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혼자라고 생각했던 두 사람이 만나 잠시나마 서로의 가족이 되어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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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으로도 미우라가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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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괴담은 등줄기를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무서운 건 귀신이 어디선가 튀어나오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매일 다니는 곳, 매일 사용하는 공간이 갑자기 무서운 곳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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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장편 공포영화는 별로 무섭지 않은데 단편 공포물은 꽤 무섭다. 짧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공포가 설명되는 순간이 오는데, 짧은 이야기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끝나버린다. 옴니버스라 앞의 이야기가 재미없어도 다음 편을 기대하면서 보게 되는 것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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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포라는 게 멀리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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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정전이 꽤 자주 됐다. 동생과 TV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화면이 꺼지면 둘이서 꺄악 소리를 질렀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데 그때는 정말 무서웠다. 집 안에 초를 하나씩 두고 있다가 정전이 되면 불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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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촛불이 밝지도 않았다. 촛불 바로 주변만 겨우 보이고 조금만 멀어지면 다시 깜깜했다. 오히려 그게 더 무서웠다. 불빛이 닿지 않는 반대편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인데, 어린아이에게 어둠은 없는 것도 만들어내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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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이 지나면 공포의 대상도 바뀐다.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울 때가 있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사람이 더 무서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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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괴담’에서 재미있는 것도 바로 그런 부분이다. 괴물이나 귀신이 나오는 장면 자체는 사실 그렇게 무섭지 않다.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괴물이라는 게 너무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있는 사람이 겁에 질려 있는 모습은 묘하게 무섭다. 사람이 정말 무서워하면 나까지 같이 긴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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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 ‘문지방’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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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친정에 가면서 남편에게 문지방 위에 붙여놓은 부적을 절대 떼지 말라고 한다. 옆 동에서는 남자 두 명이 실종됐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른 편 ‘엘리베이터’에서 사라진 두 사람을 말하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에피소드들이 어딘가에서 연결되는 것도 이 시리즈를 보는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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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남편이 말을 들을 리가 없다. 부적을 떼고 잠든다. 그리고 결국 일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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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는 괴물은 솔직히 별로 안 무섭다. 주먹으로 한 대 맞으면 쓰러질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괴물을 보고 겁에 질려 있는 주인공을 보고 있으면 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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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괴담’이 그런 데서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괴물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 평범했던 집이나 엘리베이터 같은 공간이 어느 순간 낯설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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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정전된 집에서 촛불 하나를 켜놓고 반대편 어둠을 바라보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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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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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배우들이 워낙 쟁쟁해서 봤는데, 막상 보고 나니 재미와는 거리가 꽤 있다. 이렇게 연기 잘하는 배우들을 데려다 놓고 이렇게 만들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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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톰 역의 애덤 스콧은 여기서도 범죄소설가로 나온다. 얼마 전 본 영화 ‘호컴’에서는 공포소설가였다. 두 작품만 놓고 보면 ‘호컴’ 쪽이 훨씬 재미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나온 영화에서 같은 배우가 비슷한 직업의 작가로 등장하는 걸 보면 묘한 생각이 든다. 할리우드에 배우가 그렇게 없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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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콧은 역시 ‘단절’ 시리즈가 가장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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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아들 제이크와 조용한 마을로 이사 온다. 아내를 잃은 뒤 그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톰에게는 새로운 환경이 필요했다. 그런데 이사 온 집에서 제이크가 이상한 속삭임을 듣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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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부터 이야기는 조금씩 어두운 쪽으로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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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는 집 안에서 계속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다. 톰은 그런 아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소리를 지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이크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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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쫓던 아만다(미셸 모나한)는 제이크의 실종이 십수 년 전 여러 아이를 납치해 살해한 연쇄살인범과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발견한다. 범인은 ‘위스퍼맨’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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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한 건 위스퍼맨이 이미 감옥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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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결국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아버지 피트(로버트 드 니로)를 찾아간다. 피트는 은퇴한 경찰이고, 과거 위스퍼맨을 검거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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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를 찾기 위해 피트와 톰, 그리고 아만다는 과거의 사건 기록과 단서를 하나씩 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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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줄거리만 놓고 보면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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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배우들도 좋다. 로버트 드 니로와 마이클 키튼, 애덤 스콧, 미셸 모나한까지 배우들의 연기는 흠잡을 데가 없다. 화면도 좋다. 영화 전체에 어둡고 축축하고 서늘한 분위기가 깔려 있어서 범죄 스릴러가 가진 눅눅한 느낌은 제대로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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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개연성이 자꾸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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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과 설정도 계속 떠오른다. ‘데블스 아워’를 비롯해 여러 스릴러에서 봤던 요소들을 조금씩 가져와 한곳에 붙여놓은 듯한 느낌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앞으로 나아간다기보다 이미 알고 있는 장면들을 하나씩 확인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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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알겠다. 아내를 잃은 톰과 아버지 피트 사이에 쌓여 있는 오래된 감정도 중요한 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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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감정들이 범죄 수사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기보다는 오히려 이야기를 옆으로 새게 만드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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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가족의 상처를 조금 덜어내고, 제이크의 실종과 위스퍼맨을 둘러싼 사건을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단서 하나가 다음 단서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관객이 범인을 의심하고 다시 뒤집히는 식으로 범죄 수사의 논리와 반전을 강하게 밀어붙였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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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도 좋고 분위기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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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좋은 배우와 좋은 분위기만으로는 결국 영화가 재미있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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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나서 가장 아쉬웠던 건 바로 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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