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니카 바바로가 조안 바에즈를 연기한다고?? 처음에는 좀 의아했다. 그런데 영화에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니 그냥 조안 바에즈였다. 그 특유의 클래식한 분위기, 깊고 맑은 목소리까지. 어떻게 저렇게 똑같이 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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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가 속옷 바람으로 방에 앉아 조용히 Blowin’ in the Wind를 함께 부르는 장면. 그때는 좀 찌릿했다. 이미 슈퍼스타였던 바에즈는 무명에 가까웠던 딜런의 노래를 듣고 뭔가를 알아차린다. 아직 세상이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재능을 먼저 발견한 사람의 눈빛 같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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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밥 딜런의 일대기를 차근차근 훑어가는 전기 영화가 아니다. 젊은 시절의 몇 년을 붙잡는다. 무명 가수가 점점 유명해지고, 마침내 엄청난 인기를 얻지만 그 인기가 오히려 정신을 갉아먹는 시절. 포크 음악이 뉴포트를 지배하던 때다. 노래는 사람들의 영혼을 달랬고, 총과 칼 없이도 세상에 맞설 수 있는 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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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딜런의 등장에 열광했다. 하지만 시대의 아이콘이 된다는 게 마냥 좋은 일은 아니었다. 딜런은 점점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리고, 편집증에 가까운 불안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모두를 뒤집어놓는 무대를 선보인다. 전기 기타를 들고 무대에 선 딜런에게 돌아온 건 환호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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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유다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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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한마디에 당시 사람들이 딜런에게 무엇을 기대했는지, 또 그가 무엇을 배신했다고 여겼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랑했던 딜런이 변했다고 생각했겠지만, 딜런은 거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날 이후 그는 시대의 아이콘을 넘어 음악의 역사를 새로 쓴 전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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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가 학창 시절에 드나들었던 단골 카페가 생각났다. 그곳 여주인은 조안 바에즈의 음악을 자주 틀었다. 독일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돌아온 사람이었는데, 어쩐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과는 달랐다.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고, 나는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계간지에 연재하기도 했다. 오래전 일인데 영화 속에서 바에즈의 노래가 흘러나오니 그 시절의 카페까지 함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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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바에즈와 딜런은 연인이 된다. 두 사람의 관계를 보고 있자니 1960년대라는 시대 자체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만 그랬던 것도 아니고 미국만 그랬던 것도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예술이 뜨겁게 타오르던 시절이었다. 전쟁과 기근,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저항은 많지 않았다. 누군가는 노래를 불렀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렸고, 누군가는 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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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예술은 아름다워서 오히려 무섭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노래 한 곡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얼마나 순수했는지, 또 얼마나 치열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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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그 시절의 노래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말 재미있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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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씨부레, 그냥 이렇게 끝난다고? 하는 생각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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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전면에 뤽 베송 제작이라고 크게 내세웠지만, 이제는 뤽 베송 아즈씨도 감각이 무뎌진 건가 싶다. 감독이 영화를 이렇게 끝내려고 했다면 뤽 베송이 멱살이라도 잡고 방향을 알려줬어야 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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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일은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 생길 것이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영화라면 적어도 마지막에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나쁜 놈들 다리 하나쯤은 분질러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무슨 다큐멘터리처럼 그냥 탈출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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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끝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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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나 아르네제더가 주인공 니나로 나온다. 이전 작품들을 보면 어떤 역할이든 꽤 잘 소화하는 배우인데, 일단 얼굴이 예쁘다. 프랑스 배우인데 묘하게 독일 사람 같은 느낌도 있다. 젊은 시절의 다이앤 크루거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목소리나 분위기에서는 젊은 조디 포스터도 살짝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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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는 자유분방하다. 약간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할 거야’ 하는 사람이다. 고집도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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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세유에서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던 니나는 인도양의 어느 호화 리조트에 직원으로 들어간다. 그러다 투숙객 부부의 아이 셋을 맡게 된다. 니나는 어린아이들을 돌본 전문적인 지식도 훈련도 없으니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지배인은 사람이 부족하다며 그냥 니나를 투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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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고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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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하나가 수영장에 들어갔다가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실려 가지만 결국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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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니나는 사방에서 얻어맞기 시작한다. 지배인도, 룸메이트도, 경찰도, 법조계 사람들도 니나에게 책임을 떠넘긴다. 겨우 한 가닥 희망처럼 보였던 증언을 해주겠다는 직원마저 다음 날 흔적도 없이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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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이 정말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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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전체가 니나 한 사람을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눈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딱 이런 경우다. 아이를 돌본 것뿐인데, 아이 하나가 수영장에 들어갔다가 죽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모든 잘못이 니나의 것이 되어 있다. 종신형까지 거론될 정도로 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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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하나 터지고, 그 불행이 또 다른 불행을 끌고 오고 불행의 연속이 피로감이 든다. 니나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오바이트까지 할 정도로 정신이 무너진다. 여기까지는 꽤나 숨 막히게 잘 끌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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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지막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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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니나가 액션영화 첩보원처럼 변한다. 가발을 쓰고 가짜 여권을 챙기고 보트를 부웅 몰아서 인도양을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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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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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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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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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조트 사장도 그렇고 경찰도 그렇고, 니나를 강간하려고 했던 판사도 그렇고, 특히 이 모든 일을 가장 악랄하게 몰고 간 지배인은 어떻게든 한 번은 제대로 당해야 했다. 다리를 하나 분질러놓든가, 니나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 강력하게 법적 조치를 하든가. 관객 입장에서는 그런 걸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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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판사가 니나를 강간하려는 장면에서는 왜 또 가슴까지 노출시키는지 모르겠다. 이 장면 때문에 영화가 부모자식이 같이 볼 수 없는 영화가 된다. 전혀 그런 장면이 없다가 왜 가슴 노출을 시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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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을 그렇게 끌어놓고 마지막에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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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끝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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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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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생존 스릴러 재난 영화다.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가 스카이다이빙을 하려다가 비행기가 새 떼와 충돌하고, 낙하산을 펴고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서로 엉키면서 협곡 위에 매달린다. 이제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영화도 길지 않아서 딱 필요한 만큼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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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계속 떠올린 건 재난이 아니라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 속 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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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자키의 탐미적인 소설에 나오는 여자들은 위험할 만큼 아름답다. 남자들이 자기에게 시선을 보내는 걸 알고 있고, 그 시선 자체를 즐긴다. 남편이 있어도 다른 남자들에게 은근히 색기를 흘리고, 그렇다고 먼저 무언가를 하는 것도 아니다. 가까이 오는 남자를 굳이 밀어내지도 않는다. 남편이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태연하다. 남편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다. 내 아내가 이렇게 아름다운데 나만 보고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데 정작 아내는 다른 남자들의 눈길을 즐기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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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다니자키의 소설에서 자주 느껴지는 건 발에 대한 집착이다. 평소에는 신발 속에 가려져 있는 신체 부위라서 더 묘하다. 별것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예쁜 발에 남자가 정신을 못 차리는 순간이 나온다. 감춰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탐미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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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도 묘하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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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협곡에 매달려 있고, 남편은 자기 발밑에 매달려 있다. 그런데 여자를 붙잡고 있는 남자는 하필이면 예전 남자친구다. 몸은 서로 붙어 있고, 숨소리는 바로 앞에서 들리고, 눈앞에는 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있다. 여자가 그 남자를 바라보는 눈빛이 참 묘하다. 그냥 위험한 상황에 놓인 사람의 눈빛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게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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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도 그걸 모를 리 없다. 밑에 매달린 채 아내에게 말을 걸고 속마음을 드러내지만, 지금은 질투한다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다. 줄 하나에 의지해서 협곡에 매달려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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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편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예전 남자친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렇다고 옛 남자친구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들이 계속 떠오르고, 지금 눈앞에서 몸을 맞대고 있으니 그 기억이 쉽게 사라질 리도 없다. 재난 상황인데도 이 세 사람 사이에는 이상할 만큼 끈적한 감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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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장면도 그렇다. 상사는 일을 제대로 하기보다 얼굴을 예쁘게 가꾸는 데만 신경 쓴다고 말한다. 영화가 굳이 그런 대사를 넣은 것도 여자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려는 것인지 꽤 노골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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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대부분은 세 사람이 협곡에 매달려 있는 장면이다. 움직일 공간도 별로 없다. 그 와중에 회상 장면이 끼어들고, 여자가 옛 남자친구를 아직 완전히 잊지 못했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난다. 그래서 생존 스릴러를 보고 있는데 자꾸 다른 영화가 겹쳐 보인다. 재난보다 삼각관계가 더 신경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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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역의 마크 아이델슈테인은 [아노라]에서 철없는 이반을 연기했던 배우다. 마지막에는 남편이 줄을 끊고 협곡 아래로 떨어진다. 비상 낙하산을 펴지만 기절하고, 그래도 살아남는다. 반대로 예전 남자친구는 여자를 살리기 위해 떨어져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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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자신을 위해 목숨까지 버린 남자를 눈앞에서 잃었다. 남편은 살아남았지만, 이제 둘이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 아내가 잊지 못했던 남자가 자기 아내를 위해 목숨을 버렸다는 사실을 남편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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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만 보면 생존 재난물이다. 그런데 보고 나면 이상하게 남는 건 협곡도, 낙하산도, 새 떼도 아니다. 서로 몸을 붙이고 매달린 채 여자가 예전 남자친구에게 보내던 그 눈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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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시리즈의 세 번째 편처럼 보이는 설정인데, 막상 까보면 재난영화라기보다 삼각관계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삼각관계가 꽤나 짜증 난다. 얼마나 사랑스러운 눈빛을 쏘아대는지, 직접 보면 알게 된다. 굉장히 짜증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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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지리멸렬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느리게 흘러간다. 스릴러라고 하기에도, 액션이라고 하기에도 한참 모자란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재미있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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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재미있는 이유를 딱히 설명하기도 어렵다. 진을 계속 보게 된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여자처럼 보인다. 요리도 못해서 늘 타버린 토스트를 먹고,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그런 진에게 어느 날 남편이 아기를 데려온다. 그리고 남편은 사건에 휘말려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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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 남편이 보낸 친구 칼과 함께 아기를 안고 도망친다. 남편을 쫓던 나이트클럽 보스는 진까지 쫓아온다. 그때부터 계속 도망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별로 흥미진진하지 않다. 쫓고 쫓기는 영화인데도 속도가 붙지 않는다. 답답할 만큼 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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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진을 응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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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이도 아닌 아기에게 조금씩 마음을 주고, 남편이 킬러였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게 보호받는 화초 같던 여자가 조금씩 달라진다. 총을 쏘는 법을 배우고, 자신과 아기를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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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진이 갑자기 멋진 킬러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 관객을 흥분시키지 않는다. 그냥 조금씩 변한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 재미가 없는데 계속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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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긴 영화는 마지막 한 장면을 향해 가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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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궁지에 몰리고 보스가 그녀를 위협한다. 거창한 대사도 없고,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음악도 없다. 진은 그냥 총을 꺼낸다. 그리고 보스의 이마에 총알 한 발을 박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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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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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간 가까이 느릿느릿 따라왔던 이야기가 그 한 발로 끝난다. 오히려 그래서 좋았다. 영화가 마지막에 갑자기 대단한 액션을 보여주려고 하지 않는 것도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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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역의 레이첼 브로스나한은 최근 [슈퍼맨]에서 로이스 레인을 맡았던 배우다. 여기서는 훨씬 평범하고 무력한 여자로 나온다. 그런데 그 여자가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게 이 영화의 거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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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데 계속 누군가에게 쫓긴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어디로 가든 불안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수상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진은 그저 아내로, 엄마로 살아보고 싶었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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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사람이 마지막에는 총을 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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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났을 때는 이상하게 진과 아기, 그리고 남은 사람들이 이제는 좀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영화였다고 말하기에는 망설여지는데, 끝까지 보고 나니 진을 마냥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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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무시하게 변해버린 니키의 모습보다 찐따 베어의 모습이 더 공포스럽다. 이런 찐따가 주변에 하나 있다면 결국 주위 사람들까지 병들어간다. 영화에서는 그 끝이 끔찍하다. 찐따 베어 때문에 친구들이 하나둘 죽고, 심지어 고양이까지 죽어서 샌드위치 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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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적으로 보면 영화는 무섭게 변해버린 니키를 앞세워 공포를 만든다. 그런데 더 무서운 건 사랑에 빠진 찐따가 사랑을 원하는 방식이다. 자신만을 사랑하도록 만들어버리는 것. 니키가 친구들 앞에서 자기 머리를 깨버려도, 세라의 얼굴을 아작 내서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만들어도 찐따 베어 선생은 무서움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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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찐따 베어는 니키의 삶도, 친구들의 삶도, 자신의 삶도 전부 끝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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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따가 이렇게 무섭다. 정작 본인은 그걸 잘 모른다. 내가 찐따라서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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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의 사랑이 언제나 같은 크기, 같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없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랑에 빠지는 순간 그런 상식은 별 소용이 없어진다. 내가 알고 있는 공식이나 법칙도 사랑 앞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초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불 속으로 뛰어드는 나방처럼 그냥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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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한 사람의 사랑이 식어버리면 문제가 생긴다. 사랑이 식은 사람에게는 끝난 관계지만, 남은 사람에게는 이제부터가 시작일 수도 있다. 그게 집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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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동생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고 했더니 남자가 집 앞에 차를 대놓고 3일씩 집에도 들어가지 않은 채 지켜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무섭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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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사랑할 때 한 번 같이 만난 적이 있었다. 남자친구는 잘생겼고 서글서글했다. 사람도 참 좋아 보였다. 그런데 헤어지자는 말이 트리거가 된 모양이다. 집착이 심해졌고 결국 경찰까지 오갔다. 그 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할 수는 없지만. 다만 이런 일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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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자주 하는 생각이 있다.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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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이 간섭을 넘어 집착이 되는 순간, 당하는 사람만 힘든 게 아니다. 가족도 힘들고 주변 사람들도 같이 끌려 들어간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옥죄는 일이 되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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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세션]을 보면서 영화 자체에 대한 생각도 조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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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정통적인 영화 연출을 고집하는 영화보다 사람들의 간지러운 곳을 정확하게 긁어주는 콘텐츠가 훨씬 빠르게 반응을 얻는다. 영화는 돈이 많이 든다. 아주 짤막한 독립영화 하나를 만드는 데도 몇천만 원에서 1억 원이 넘게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쓴 영화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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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세션]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가 그런 변화를 꽤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장면 하나하나가 마치 쇼츠처럼 도파민을 건드린다. 특히 베어가 말을 한마디 던졌을 때 니키의 얼굴에 나타나는 표정과 행동이 그렇다. 보는 사람의 숨을 조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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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는 감정을 시시때때로 바꾼다. 두려워했다가 관능적으로 변하고, 천진난만해졌다가 사랑스러워진다. 그러다 광적으로 돌변하고 무서워지고, 다시 행복해졌다가 슬퍼진다. 짧은 시간 안에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감정의 낯선 얼굴을 거의 다 꺼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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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영화에서 진짜 무서운 건 괴물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걸 본인은 얼마나 늦게 알아차리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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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미지의 공포를 영화는 꽤 집요하게 건드린다. 진짜 무서운 건 어제까지 사랑했던 사람이 돌변한 오늘의 사람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 [옵세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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