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막장 드라마다운 막장 드라마를 만났다. 이런 맛이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네. 사귀고 있는 두 사람이 알고 보니 친남매일 수도 있다 식의 전개가 툭 튀어나오고, 배우들의 오버스러운 연기와 과한 액션도 현실성은 잠시 내려놓은 채 밀어붙인다. 답답한 전개는 또 얼마나 심한지. 고구마를 한 솥 삶아 먹은 기분인데, 이상하게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런 드라마 얼마 만이냐. 설정도 정신이 없다. 가난한 집 엄마는 집을 나가 재벌 회장과 결혼하고, 또 다른 재벌가 아들인 하석진은 경영 수업을 한다며 레스토랑에서 일하다 안희연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런데 안희연은 재벌 회장과 결혼한 그 엄마의 딸이다. 두 재벌가는 자기들끼리 자식들을 엮으려 하고, 그 한가운데 안희연이 끼어들고. 안희연 집안도 만만치 않다. 80년대 소녀 가장을 보는 것처럼 어린 나이에 집안 살림을 도맡고 동생들을 챙긴다. 무려 5남매의 장녀다. 새벽에 일어나 우유배달부터 시작해 밤 늦은 시간까지 고깃집에 레스토랑에. 그래도 울지 않는 캔디 같은 그녀. 이렇게 개고생해도 등장인물 여자들 중에 제일 깨끗하고 제일 예쁜게 함정이다. 아버지는 아버지라기보다 동네 건달에 가깝다.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어딘가에서 다 연결되어 있다. 처음엔 복잡한데 몇 회 보다 보면 이 정도는 막장의 기본이라는 생각이 든다. 등장인물이 전부 살타래처럼 얽혀있음. 등장인물들이 쓰는 휴대전화를 보면 배경도 지금보다 몇 년 전인 것처럼 느껴진다. 요즘은 이런 과장된 연기나 대놓고 막 밀어붙이는 전개를 보기 쉽지 않다. 그래서 더 반갑다. 말도 안 되는데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되는, 딱 그런 드라마라 재미있음. 역시 재미는 막장이지. 하석진 공사판에서 일하다가 사고 당하는데 머리에 피 나는 거 봐서 혹시 기 억 상 실 증? ㅋㅋ 이 정도 막 나가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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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배우들을 한데 모아놓고 이렇게 재미없는 영화를 만드는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일본식 공포를 서양식으로 옮기려 했지만, 정작 원작이 가진 끈적하고 불온한 분위기는 사라졌다. 대신 영화는 조용히 흘러가다가 갑자기 ‘훅’ 튀어나오는 점프 스케어만 반복한다. 놀라기는 하는데 무섭지는 않다. 린 샤예도 나온다. 인시디어스 시리즈에서 워낙 강한 인상을 남긴 배우라 반갑긴 했다. 손가락을 칼로 하나씩 잘라내는 장면은 순간적으로 섬뜩하지만, 공포영화를 꽤 본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이미 여러 번 봤던 연출이다. 존 조, 안드레아 라이즈보로, 베티 길핀. 조연들까지 얼굴을 보면 “아, 저 배우.” 싶은 사람들이 줄줄이 나온다. 그래서 더 아쉽다. 이런 배우들을 데리고도 영화가 끝까지 힘을 못 쓴다. 주온은 귀신이 나오기 전부터 공간 자체가 불길했다. 괜히 찝찝했고,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긴장됐다. 이 영화는 그 감각을 거의 살리지 못했다. 원작을 새롭게 해석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대로 가져온 것도 아니다. 어정쩡하게 비틀어 놓은 느낌만 남는다. 감독은 시간을 계속 과거와 더 과거로 오가며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흥미롭기보다 번거롭다. 원작보다 개연성도 많이 약해졌고 후반부로 갈수록 전개는 점점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마지막에는 “왜 이렇게 됐지?"라는 생각만 든다. 안드레아 라이즈보로의 연기는 역시 좋다. 늘 진지하고 흔들림이 없다. 원래도 예쁜 배우인데, 톰 크루즈와 함께 출연했던 오블리비언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작품에서 스스로를 아끼지 않고 망가지는 역할을 택하는 것 같다. 그런 점도 이 배우의 매력이다. 2005년 그루지가 나온 지도 오래됐다. 이제는 주온의 공포를 반복하기보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공포를 보여줄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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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가 재미있어서 영화로도 나온 시리즈다. 이름, 사진 한 장, 그리고 소지품만 있으면 상대를 저주해 끔찍한 죽음으로 몰아넣는 소진의 능력은 지금 봐도 꽤 기괴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도 최병모 배우가 처참하게 당하는 부분이다. 잔인하기보다 기묘해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최병모의 연기도 역시 좋다. 공포물은 이런 맛이 있어야 한다. 보고 있으면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지고, 계속 긴장하게 된다. 괜히 시간을 끌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힘이 빠진다. 영화판에서는 이설이 빌런으로 등장한다. 요즘 정말 자주 보이는 배우다. 그런 배우들이 몇 명 있다. 기생충에서 피자집 젊은 사장으로 나왔던 정이서는 지금 우리 학교는, 살인자ㅇ난감, 폭싹 속았수다, 원더풀스까지 쉬지 않고 작품을 이어가고 있다. 이아담도 멋진 신세계, 판사 이한영, 수상한 그녀 등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중이다. 방법은 무속 신앙을 스릴러와 제법 영리하게 엮었다. 드라마에서는 성동일이 압도적인 빌런이고, 조민수를 비롯해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든든하게 받쳐 준다. 이야기는 사회부 기자 임진희가 국내 최대 기업 회장 전종현의 폭행과 비리를 파헤치면서 시작된다. 엄지원이 연기한 임진희와 정지소가 맡은 소진이 중심이 되어 악귀와 맞서는 과정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게 만든다. 시즌 2가 나왔으면 좋겠는데. 이 세계관은 더 이어가도 충분히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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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연인을 떠나보낸 뒤, 그 사람을 잊지 못해 음악에 매달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 원스는 그렇게 시작한다. 원래 주인공은 킬리언 머피였다. 그의 출연이 결정되면서 제작비도 넉넉하게 확보됐다. 그런데 각본을 읽고 난 뒤 킬리언 머피는 출연을 포기한다. 그(영화는 이름이 나오지 않고 그와 그녀로 나온다) 노래가 너무 어려웠고,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것도 자신이 없다고 했다. 주연이 빠지자 제작비는 순식간에 20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막막했던 감독 존 카니는 평소 알고 지내던 밴드 더 스웰 시즌의 글렌 핸사드에게 말했다. “노래가 중요한 영화인데, 네가 직접 나와 불러 달라.” 그렇게 글렌 핸사드가 주인공이 됐다. 돈이 없으니 영화도 돈 없이 만들었다. 대부분의 장면은 한 번에 끝냈고, 화면은 몰카나 홈비디오처럼 거칠다. 존 카니는 애초부터 이 작품이 극장에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름 없는 남녀가 나오는 이런 영화를 누가 보겠냐는 생각이었다. 스웰시즌이 공연할 때 공연을 보러 온 팬들에게 DVD를 판매할 목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속에서 런던으로 떠나는 옛 연인의 사진이 나온다. 그 사진 속 여성은 감독인 존 카니의 실제 여자친구였다. 그녀가 런던으로 떠났고, 장거리 연애를 하며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각본이 됐다. 집에서 파티를 하는 장면도 글렌 핸사드의 실제 집이다. 초반에 노래를 부르는 아주머니는 그의 어머니. 거의 되는 대로 만든 영화 같았다.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벌어진다. 시카고 비평가 협회 관계자들 가운데 글렌 핸사드의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원래 세 번만 상영될 예정이던 영화는 여덟 번으로 늘어났고, 조금씩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그’와 ‘그녀’가 연기를 잘해서가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흐른다. 음악이 그 빈틈을 메우고, 관객은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된다. 한국에서도 당시 38만 명이 극장을 찾았다. 지금 생각하면 거의 아무도 모르던 배우들이었는데도 말이다.우리가 가장 많이 떠올리는 장면. 악기점에서 둘이 피아노를 맞춰가며 Falling Slowly를 부르는 그 장면도 제작비가 없어 원테이크로 찍었다. 구도도 흔들리고 카메라도 투박하다. 마치 열여섯 살 소년이 아버지의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따라다니며 찍은 것처럼. 하지만 그 거친 방식이 오히려 이 영화에는 가장 잘 어울렸다. 킬리언 머피조차 부담을 느꼈던 그 장면은, 어쩌면 배우보다 음악가였던 글렌 핸사드였기에 가능했던 순간인지도 모른다. 다시 보면 그때 보이지 않았던 장면이 눈에 들어올지도 모른다.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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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좀비가 나올 때도 됐다. 좀비는 오랫동안 세계 영화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콘텐츠 가운데 하나였다. 웬만한 설정은 이미 다 써먹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전환점은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 Z]였다. 무리를 지어 파도처럼 몰려드는 좀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공포를 보여줬다. 이후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동충하초라는 설정을 더해 좀비 장르를 한 번 더 확장했다. 이제는 새로운 변이가 없으면 좀비 영화가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연상호의 군체는 분명 흥미로운 시도다. 감염체들은 군집을 이루고 신경망처럼 정보를 공유한다. 처음에는 네 발로 움직이다가 두 발로 서고,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을 식별하며 진화한다. 단순히 달려드는 괴물이 아니라 하나의 생명체처럼 행동한다는 점이 가장 신선했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설정은 군체의 정보 공유 시스템이다. 감염체들은 집단의 정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 상반된 명령이 동시에 전달되면 서로 같은 자리만 맴돌며 시스템에 오류가 생긴다. 이런 설정은 몇 장면으로 끝내기엔 아까웠다. 영화보다 시리즈였다면 훨씬 밀도 있게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서 기립박수를 받으며 출발했지만,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기대만큼의 완성도는 아니다. 연상호 감독에게 늘 따라붙는 ‘좋은 아이디어에 비해 마무리가 아쉽다’는 평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빌딩 안에 고립된 사람들이 진화하는 감염체에게 쫓긴다는 상황 자체는 긴장감을 유지한다. 연상호 특유의 인간 군상도 여전히 살아 있다. 위기 앞에서 드러나는 이기심, 감정에 휘둘리는 선택, 통제 불가능한 기술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공권력까지 그의 관심사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연상호는 장점과 약점이 분명한 감독이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제작 속도를 보여주면서도 매번 새로운 설정을 들고 온다. 많은 배우를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능력도 강점이다. 반면 이야기의 밀도와 마무리는 늘 조금 아쉽다. 완벽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좀비를 보여주겠다는 목표만큼은 분명히 성공했다. 그래서 관객 594만이 선택을 했을 정도로 군체는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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