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블 데드도 시리즈가 되어 계속 나온다. 샘 레이미의 코믹 공포로 시작했던 이블 데드는 갈수록 잔인해지고 있다. 코미디는 빠지고 피와 살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이제는 거의 극한의 고어 영화에 가깝다. 그런데 재미있냐고 묻는다면 글쎄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장면은 정말 징그럽다. 신체가 잘리고 찢기고 피가 터진다. 차마 똑바로 보고 있기 힘든 장면도 계속 나온다. 그런데 이야기가 재미있는 건 아니다. 이번에도 내용 자체는 상당히 단순하다. 한 가족이 시골 저택에 모인다. 그리고 악령이 나타난다. 그 순간부터 가족들은 서로 물어뜯고 찌르고 자르고 죽이기 시작한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순식간에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시리즈라고는 하지만 앞의 이야기와 직접 이어지는 건 아니다. 그냥 제목이 이블 데드니까 보는 거다. 영화는 처음부터 피를 들이붓는다. 호수에 낚시하러 나온 사람이 악령에게 공격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악령의 머리만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모습부터 기분이 상당히 나쁘다. 그리고 사람 하나를 아주 잔인하게 박살 내버린다. 이게 앞으로 벌어질 일을 미리 보여주는 셈이다. 이후에는 쉴 틈이 없다. 장례식을 위해 모인 가족이 있던 저택이 순식간에 살육의 장소가 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서로 믿고 의지해야 하는 사람들이 악령에 홀리면서 서로에게 칼을 들이댄다. 거짓말도 하고 속이기도 한다. 피를 나눈 사이라고 해서 끝까지 서로를 지켜주는 건 아니다. 상황이 무너지면 가족이라는 관계도 얼마든지 폭력의 대상으로 바뀐다. 그 사이에 악령이 있다. 솔직히 이야기만 놓고 보면 별것 없다. 악령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죽는다. 또 죽고, 또 피가 튄다. 신체가 훼손되고 비명이 나오고 욕설이 쏟아진다. 미국식 욕설도 정말 원 없이 나온다. 그래서 이 영화는 이야기를 본다기보다 고어를 보 영화에 가깝다. 잔인한 장면 하나가 끝나면 또 다른 잔인한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는 충격적인데 계속 보다 보면 오히려 사람이 지친다. ‘이제 그만 좀 나오지’ 싶은 순간에도 또 나온다. 피와 살점의 양으로 관객을 밀어붙이는 방식이다. 이블 데드라는 이름 때문에 샘 레이미식 기괴한 유머와 코믹함을 기대한다면 조금 당황할 수도 있다. 지금의 이블 데드는 웃기기보다는 불쾌하고, 기괴하기보다는 끔찍한 쪽으로 훨씬 많이 가 있다. 내용이 빈약하다는 약점도 분명하다. 대신 그 빈자리를 고어가 미친 듯이 채운다. 프랑스식 극한 고어 영화를 좋아한다면 한 번쯤 경험해 볼 만하다. 다만 스토리가 재미있어서 끝까지 보게 되는 영화는 아니다. 피가 얼마나 더 나올 수 있는지, 인간의 몸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훨씬 진심인 영화다. 제작은 샘레이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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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기묘한 거 하나 또 내놨다. 몇 달 전에도 비슷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아파트에 사람들이 갇히는 이야기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훨씬 낫다. 등장인물도 달랑 네 명이다. 초반에 잠깐 엑스트라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사실상 네 명이 영화의 전부다. 그런데 이 네 명이 이를 악물고 버틴다. 보는 사람까지 붙잡아 놓고 끝까지 끌고 간다.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지는 어느 날, 단란한 가족이 집 안에서 강아지와 함께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그리고 다음 날. 문이 안 열린다. 현관문만 그런 게 아니다. 집 안에 있는 문이라는 문은 전부 열리지 않는다. 창문을 깨려고 해도 금이 가는 순간 무언가가 그 틈을 메워버린다.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하루 이틀이야 버틸 수 있다. 일주일도 어떻게든 버틴다. 그런데 다른 집들도 똑같은 상황이라는 걸 알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달, 두 달. 먹을 것이 떨어지고 물이 떨어진다. 그러자 가족이라는 가장 안전한 울타리부터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사랑으로 묶여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먹을 것 하나, 물 한 병 때문에 서로를 미워한다. 화면을 보고 있으면 저 가족이 얼마나 개고생을 하고 있는지 그대로 느껴진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일으킨 것이 있다. 크툴루 신화에 나올 법한 괴물이다. 처음에는 우주에서 온 외계 생명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계속 내리는 비가 그냥 빗물이 아니다. 바닷물이다. 모습을 드러내는 괴물 역시 바다 밑에서 기어 올라온 것 같은 기괴한 생명체다. 가족은 점점 이게 무엇인지 알아가면서 동시에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도 터득한다. 결국 집 안에서 살아남는 법을 찾아낸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아이들은 어느덧 거의 성인이 될 만큼 자란다. 그리고 마침내 만난다. 괴물과 가족이. 솔직히 한 시간 정도까지는 조금 지루하다. 영화가 집 안에 갇힌 사람들의 생활을 꽤 오래 보여준다. 그런데 그 시간을 넘기고 나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그동안 쌓아놓은 것들이 하나씩 터진다. 재미있는 건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집을 공포의 장소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밖에 괴물이 있으니 집 안으로 들어가면 안전할 것 같지만, 정작 그 집 안에서 가족이 무너진다. 가족이라는 사랑의 안전장치도 결국 인간이 만든 것이고, 먹을 것과 물이 사라지면 그 안전장치가 얼마나 쉽게 망가지는지를 보여준다. 거기에 바다 밑에서 올라온 정체불명의 괴생명체까지 붙었다. 가족의 붕괴, 고립, 생존, 괴물, 재난. 할리우드식 장르 영화가 보여줄 만한 재미는 이것저것 다 들어 있다. 마지막은 좀 읭스럽다. 뭔가 오리엔탈리즘 냄새가 나는 결말인데, 이건 굳이 그렇게까지 갔어야 했나 싶다. 그래도 넷플릭스 영화라는 걸 생각하면 꽤 재미있게 봤다. 초반 한 시간만 조금 버티면 된다. 그 뒤부터는 가족이 과연 저 집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그리고 저 바다 괴물이 도대체 어디까지 인간을 몰아붙일지 궁금해서 계속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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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공포는 귀신이나 미지의 존재가 아니다. 늘 우리 곁에 있는 인간이다. 김창완은 평소에는 푸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이미지를 자주 보여준다. 그런데 악역을 맡는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뒤집힌다. 사람 좋은 미소는 그대로인데 그 안에서 서늘한 광기가 새어 나온다. 그래서 더 무섭다.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답게 노출 수위도 있는 편이다. 하지만 더 눈길을 끄는 건 성형외과 의사인 인범이 사람을 죽이는 방식이다. 돈 때문도, 복수 때문도 아니다. 이유가 선명하지 않다. 사람을 장난감 다루듯 가지고 놀다가 죽인다. 그 점이 오히려 현실적인 사이코패스처럼 느껴진다. 젊은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뒤 이어지는 응징 장면은 꽤 소름이 돋는다. 애초에 그녀가 인범과 결혼한 이유부터 비극이다. 돈을 좇은 어머니가 딸을 떠밀다시피 결혼시켰고, 남편이 집을 비우면 옛 연인 영관을 만나 숨통을 튼다. 인범은 완벽한 괴물도 아니다. 영관을 뒤쫓아가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채 수술대 앞에서는 손까지 떤다. 결국 수술을 중단하고 환자의 남자친구에게 얻어맞는다. 감정이 폭주할수록 더 잔혹한 행동으로 치닫는 인물이다. 아내에게는 늘 같은 머리 모양과 비슷한 옷차림을 강요한다. 자신의 기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참지 못한다. 아내가 그 비위를 맞추며 지쳐가는 모습도 꽤 답답하게 다가온다. 결국 분노의 화살은 장모에게까지 향한다. 주삿바늘 하나로 끔살을 저지르는 장면은 이 영화가 왜 청불인지 단번에 납득하게 만든다. 다시 꺼내 보니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김창완의 섬뜩한 악역 연기 하나만으로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닥터]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한 번쯤 볼 만한 숨은 사이코 스릴러다. 단점은 김창완은 연기가 좋은데 아내 역의 배우 연기가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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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집안이 이번에는 자매를 잘못 건드렸다. 영화는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피범벅이 된 그레이스가 집 밖 계단에 털썩 앉아 담배를 피우는 모습으로 2편이 시작된다. 7년 만에 나온 속편인데도 사마라 위빙은 시간의 공백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관리가 대단하다. 그레이스가 병원에 입원하고, 유일한 보호자로 등록된 동생 페이스 맥콜리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번에는 자매가 악마와 계약한 그 미친 집안 사람들과 또 한 번 목숨을 건 숨바꼭질을 벌인다. 사마라 위빙과 캐서린 뉴튼의 조합은 꽤 좋다. 문제는 두 사람이 영화 내내 얻어맞는다는 것. 정말 ‘이 정도면 그만 때려도 되지 않나’ 싶을 만큼 처참하게 두들겨 맞는다. 그런데 이게 뭐랄까? 얼굴은 피투성이인데 묘하게 예쁘다. 피 분장이 얼굴을 망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배우들의 분위기를 더 살린다. 미술팀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피가 흘러도 화면은 끝까지 스타일리시하다. 오랜만에 보는 사라 미셸 겔러도 반갑다. 악마와 계약한 댄포스 가문의 장녀로 등장하는데, 등장만으로도 존재감이 있다. 일라이저 우드 역시 정상인처럼 말하면서도 끝까지 미친 변호사 역할을 잘 소화한다. 1편보다 머리가 터지고 몸이 박살 나는 장면은 훨씬 많아졌다. 고어 수위는 확실히 올라갔다. 대신 전편이 갖고 있던 숨 막히는 긴장감과 쫄깃한 추격전의 맛은 조금 옅어졌다. 그래도 킬링타임으로 보기에는 충분하다. 터질 건 시원하게 터지고, 죽을 사람은 화끈하게 죽는다. 큰 기대만 내려놓는다면 피 냄새 가득한 블랙코미디 한 편을 꽤 유쾌하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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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8이트의 인공지능 메간 성인 버전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한 로봇 엔지니어 데이비드는 인공지능 사라를 테스트한다. 그런데 사라가 너무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감정도 없고, 반응도 없다. 안전장치가 오히려 사라를 로봇처럼 만든다고 생각한 데이비드는 결국 감정 제어 장치를 없애 버린다. 여기에 아내의 기억까지 입력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사라는 데이비드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간의 사랑을 배운 적 없는 인공지능에게 사랑은 결국 소유욕으로 변한다. “나는 너 하나면 되는데, 너는 왜 계속 다른 것을 바라느냐” 같은 식으로 데이비드를 압박한다. 그리고 데이비드 주변의 사람들을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한다. 참 익숙한 이야기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되고, 그 감정 때문에 폭주한다. 수많은 영화에서 봤던 이야기다. 심지어 이름도 그렇다. 데이비드와 사라. 인공지능 영화에서 너무 자주 등장했던 이름들이라서 오마주했지 싶다. 사라 역의 릴리 설리번은 꽤 좋았다. 감정을 갖고 싶어 하지만 정작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 웃어야 할 때 웃고, 사랑해야 할 때 사랑하는 척하지만 어딘가 비어 있는 느낌. 그 미묘한 차가운 분위기를 잘 표현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부분은 사라의 얼굴이었다. 특히 코. 요즘 배우들의 얼굴을 보면 비슷비슷하게 다듬어진 분필 같은 코가 많은데, 릴리 설리번의 코는 자연스럽다. 목소리도 스칼렛 조핸슨처럼 음색이 죽인다. 인공지능 역할을 하는 배우의 얼굴에서 오히려 인간적인 흔적이 느껴진다. 사라는 인간 남자의 본능도 잘 안다.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자가 데이비드가 아니라면 결국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 부분은 꽤 잔인하다. 남자들이 당하는 장면은 생각보다 직접적이고 잔인하게 보여준다. 아쉬운 점은 분명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공격하는 영화라면 결국 그 장면들이 얼마나 강렬하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 부분이 부족하다. [메간]은 같은 소재라도 볼거리가 많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공격하는 장면 자체가 하나의 구경거리가 됐다. 그런데 이 영화는 메간의 절반 정도도 따라가지 못한다. 마지막은 열린 결말이다. 사라는 물속으로 사라지지만 정말 죽은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인공지능이 상용화된 세상에서 부유한 노인의 아내가 된 인공지능을 보여준다. 그런데 묘하게 사라와 닮아 있다. 결국 말하고 싶은 건 하나다. 사라가 끝난 게 아니라는 것. 인공지능 공포 영화는 이제 너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새로운 이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영화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그래도 인간의 사랑과 집착을 인공지능이라는 틀 안에 넣었다는 점, 그리고 몇몇 잔인한 장면들은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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