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무섭고 재미있게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보고 나면 묘하게 안타까운 영화다. 서영희가 공포의 중심을 딱 잡고 잘 끌고 간다. 특히 생고기를 우걱우걱 먹다가 접시까지 씹어 먹는 장면은 정말 공포스럽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공포영화에는 먹는 걸로 무서움을 주는 장면이 꽤 많다. 공포영화 마니아라면 어느 정도 결과가 보인다.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공포의 공식들을 거의 다 꺼내 놓았다. 그게 오히려 독이 됐다. 무섭기는 한데,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자꾸 예상하게 된다. 원작 소설은 재미있는 모양이다. 나는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왠지 소설은 꽤 재미있을 것 같다. 이런 이야기는 영상으로 보는 것보다 글로 읽을 때 머릿속에서 만들어지는 공포가 훨씬 클 때가 있다. 소설로 읽었다면 긴장감이 영화의 몇 배는 더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소설이 나오기 전부터 영화화가 확정됐다고 한다. 한국 괴담에 나오는 ‘오귀택’이라는 소재를 가져왔다. 오귀택은 집의 창이나 현관 같은 곳에 생긴 비틀린 공간의 틈으로 귀신이 모인다는 흉가 중의 흉가를 뜻한다는데, 한국에 이런 괴담이 있었다니. 공포영화 마니아로서 조금 자존심이 상한다. 나만 몰랐나. 영화는 중반까지는 꽤 재미있다. 긴장감도 있고 공포도 충분하다. 집이 비틀린 공간이라고 하지만, 사실 인간이 비틀리는 순간 집 안의 모든 공간이 공포가 된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엄마가 새집으로 이사 오면서 가족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조금씩 삐걱거리더니 결국 뒤틀린 엄마와 아빠가 섬유유연제 같은 세제를 음식에 타서 아이들을 죽이려 한다. 겉과 속, 내면과 외면, 가면과 얼굴. 영화는 이런 대비를 가지고 공포를 만들어내려고 한다. 그런데 중반을 넘어서면서 그게 힘을 잃는다. 초반에 잘 쌓아놓은 불안과 공포가 뒤로 갈수록 조금씩 설명되고 정리되면서, 오히려 무서움이 줄어든다. 조금 더 멀리서 보면 뒤틀린 집이라는 게 꼭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가정집이 그럴 수도 있다. 밖에서는 멀쩡해 보인다. 대문이 닫히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모른다. 가정에서 무탈하게 매일 보낸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자. 그건 정말 축복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미스 리틀 선샤인]의 감독들은 부부다. 뮤직비디오를 찍던 사람들이었고, 이 영화가 첫 장편영화였다. 그런데 첫 영화부터 참 이상한 걸 만들었다. 영화의 시작도 엉뚱하다. 각본가가 텔레비전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장면을 봤다고 한다. 내용인즉슨 성공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인생에서 낙오하면, 실패하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으니 성공하라는 식이었다. 각본가는 그걸 보면서 생각했다. 아널드가 고등학생들한테 개소리를 하는군. 그리고 시나리오를 썼다. 영화 속 아버지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실패하면 안 된다. 성공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절대무패 9단계 이론’을 팔아먹으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자기 인생은 성공과 거리가 멀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경멸한다. 가족이 먹는 건 매일 배달시킨 치킨이다. 거기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가 살아남은 삼촌이 있고, 마약 때문에 양로원에서 쫓겨난 할아버지도 있다. 정말 엉망진창이다. 그런 가족에게 막내 올리브가 있다. 일곱 살. 올리브가 어린이 미인대회에 출전하게 되면서 가족 전체가 낡은 차를 타고 길을 나선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영화는 이상한 가족여행이 된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치고는 제작비도 작은 편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100억 원이 넘는 돈이지만 할리우드 기준으로는 작은 영화였다. 원래는 미국 서부를 가로지르는 이야기였는데 제작비 때문에 계속 줄이고 줄였다. 그러다 고물 미니 버스가 중요해졌다. 낡고 볼품 없는 차, 이 가족을 대변한다. 내리막길에서는 차가 굴러가다가 시속 30킬로미터 정도가 되면 시동이 걸린다. 평지에서는 가족들이 차를 밀어야 한다. 30킬로미터까지. 그래서 차가 멈출 때마다 온 가족이 내려서 민다. 이 장면이 계속 나온다. 처음에는 그냥 우스운데, 보다 보면 이상하게 이 장면이 가족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혼자서는 차를 움직일 수 없다. 누군가는 밀어야 한다. 마음에 들든 안 들든 같이 밀어야 한다. 영화 속 올리브를 연기한 애비게일 브레슬린은 몸을 더 통통하게 보이게 하려고 보형물을 착용했다. 어린이 미인대회에 나오는 다른 아이들도 재미있다. 그 아이들은 배우가 아니었다. 실제 어린이 미인대회 참가자들과 가족들을 섭외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보는 그 기괴한 미인대회 분위기는 만들어낸 것만은 아니다. 실제로 저런 세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게 더 웃긴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욕을 엄청 한다. 너무 많이 해서 당시 미국에서는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다. 그런데 애비게일이 듣지 못하게 해야 했다. 할아버지가 욕을 할 때는 어린 애비게일에게 헤드폰을 씌우고 노래를 들려줬다고 한다. 영화 속에 잘 나온다. 이 영화에서 가장 병맛이고 똘아이 같은 인간이 바로 그 할아버지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 사람이 올리브와 이야기를 한다. 대회 직전이라 올리브는 긴장한다. 아빠는 성공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뚱뚱하다. 예쁘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말한다. 너 진짜 예쁘다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진짜 예쁘다고. 그리고 실패가 무서워서 아예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 진짜 루저라고 한다. 그런데 너는 이미 시도했잖아. 그러니까 너는 루저가 아니라고. 그 장면이 너어어어무 좋다. 평생 성공해야 한다고 떠들던 아버지의 반대편에서, 평생 욕이나 해대고 마약이나 하던 할아버지가 정작 가장 중요한 말을 해준다. 그 역할을 앨런 아킨이 했다. 그는 오랫동안 연기를 했지만 이 영화 전까지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지 못했다.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감독들의 독립영화에 출연했고, 결국 이 영화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평생을 연기한 사람이 마지막에 아주 작은 영화에서 자기한테 딱 맞는 대사를 만난다. 정든 님에서 이어 이어 이어 이어진 언어의 마법사 김세윤 영화 작가의 말에 의하면 사람을 울게 만드는 영화는 오히려 쉽다고. 눈물은 한 번 맺히면 중력 때문에 흘러내린다. 그런데 웃게 만드는 건 다르다. 입꼬리를 위로 올려야 한다. 중력을 거슬러야 한다. [미스 리틀 선샤인]은 그 어려운 걸 한다. 웃기면서 마음이 짠하다. 그런데 억지로 감동을 끌어내지 않는다. 그냥 이 가족을 계속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나오고, 어느 순간 마음 한구석이 조금 이상해진다. 삶이 무료하다면 김밥을 하나 들고 [미스 리틀 선샤인]을 보자. 김밥은 한 줄이면 된다. 그리고 이 부부 감독이 처음 찍었던 뮤직비디오가 세기의 명곡 스매싱 펌킨스의 ‘1979’다. 영화에서 돈을 계산하는 장면에 19달러 79센트가 나온다. 세상에 완벽한 가족이 어딨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꺼드럭대다’라는 말이 스레드에서 유행이라 좀 미워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찾아보니 이 말은 표준고유어더라고.

근대 이전부터 쓰이던 순우리말 ‘거드럭대다’에서 시작한 말이라고

한다.

늘 스레드에서 글로만 보다가 육성으로 처음 들은 건 최근이다.

윤상 라디오 방송을 대타로 진행했던 옥달의 김윤주가

‘꺼드럭대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상하게 밉지 않았다.

유행어 중에도 미운 유행어가 있고, 밉지 않은 유행어가 있다.

그전에는 ‘감도 안 옴’이 유행이었다.

이것도 별로 밉지 않았다.

그런데 어떤 말은 정말 듣기 싫다.

한때 유튜브에서 ‘니마이’라는 말이 대유행한 적이 있다.

정말이지 너무 듣기 싫었다.

이런 유행어는 유튜브 하는 개그맨들 입에서 제일 먼저 나오곤 한다.

지금은 스케치 드라마로 많이 넘어갔지만,

그때만 해도 개그맨들 영상은 거의 몰카 형식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니마이’를 어찌나 많이 하던지,

속으로 욕이 나올 정도였다.

‘니마이’ 자주 쓰는 개그맨들은 오래 못 가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렇게 됐다.

그때 한 영상에서 ‘니마이’를 몇 번씩 하던 개그맨, 개그우먼들은

지금 뭐 하는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그 유행어를 굳이 따라 하지 않던 사람들은 지금

SNL 라이브나 공중파까지 진출해서 잘나가고,

자기 유튜브 채널도 떡상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물론 ‘니마이’를 썼다고 못 뜬 건 아닐 것이다.

그냥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얘기다.

아무튼 경고한다.

나이 좀 있다고,

예전에 뭘 좀 했다고,

사람들이 나를 알아준다고 꺼드럭대지 마라.

과거에 뭘 했는지는 생각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지금 뭘 하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 꺼드럭쟁이야.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요즘 스레드를 보다 보면 30대, 40대 여성들이 남자 친구와 헤어져 몹시 슬퍼하는 글이 자주 보인다. 읽다 보면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하루 종일 남자 친구만 바라보고 살았던 사람도 꽤 있는 것 같다. 그러니 헤어지고 난 뒤의 허전함이 얼마나 클까. 마치 강아지처럼 24시간 남자 친구 곁에 있고 싶어 한다. 직장도 있고 친구도 있고 다른 일도 있으니 늘 붙어 있을 수는 없고, 대신 시간마다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한다. 뭘 먹는지, 뭘 입는지 챙긴다. 처음에는 관심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관심은 참 이상해서 조금만 지나면 간섭이 된다. 그러다 결국 헤어진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이런 장면도 나온다. 결혼반지를 낀 남자가 다른 여자 앞에서 그 손가락을 슬쩍 숨긴다. 반지를 빼지는 않는다. 그냥 손을 감춘다. 가장 사랑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가 너무 소중해서 오히려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여자에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경우가 어디 드라마에만 있을까. 너무 좋아하는 옷이라 더럽히기 싫어 아껴 입겠다고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다가, 정작 한 번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낡아버리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남편은 회사에서 일 년에 몇 번 룸살롱에 간다. 아내는 남편 이외의 남자와 잠을 자지는 않는다. 그런데 한 달에 한 번 나가는 독서모임에서 남편과는 할 수 없는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아주 깊게 나눌 수 있는 남자가 있다. 그 남자와 이야기를 하면 정말 행복하다. 남편이 곁에 있을 때 느끼는 행복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행복이다. 그렇다면 남편과 아내 중 누가 진짜 바람을 피운 것일까. 모르겠다. 이상하게도 부부가 되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게 된다. 물론 모든 부부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부부라서 오히려 더 어려운 것들이 있다. 오늘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길에서 어떤 사람을 봤는지, 별것도 아닌 생각이 왜 갑자기 떠올랐는지. 그런 이야기보다는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이야기를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일본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이런 인간관계를 참 집요하게 들여다본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한국처럼 킬러들의 쇼핑몰 같은 거대한 스케일의 대작은 만들지 못한다. 일본이나 프랑스는 영화와 드라마에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아주 정밀하게 파고드는 작품들에 집중하고 있다. 가정이나 직장처럼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공간을 무대로 삼는다. 공간은 좁은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마음은 좁지 않다. 보다 보면 답답한 부분도 있다. ‘아니, 그냥 말을 하면 되잖아.’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런데 그 답답함까지가 사람 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 드라마에 나오는 네 명의 주인공은 모두 인정받는 연기자라서 그런지 연기가 좋다. 특히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은 아니지만, 자신보다 다른 여자를 더 찾는 것처럼 말하는 순간 아오이 유우가 남편을 바라보는 표정이 참 좋았다. 화가 난 것도 같고, 서운한 것도 같고,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확인한 사람 같기도 하다. 동네 미용실에 가면 아내들이 머리를 하면서 남편 욕을 잔뜩 한다. 어쩌면 그것도 사랑받고 있다는 방식인지 모르겠다. 욕할 수 있다는 것. 아직 화가 난다는 것. 아직 기대한다는 것. 욕하기도 싫은 남편이라면 어떨까. 사랑에서도 이미 아주 멀리 가버린 사람일 것이다. 인간은 알 수가 없다. 마음속에 무엇을 집어넣고 다니는지 아무도 모른다. 부부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어쩌면 부부이기 때문에 더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오전에 사과를 하나 먹었다. 사과는 오전에 먹어야 좋다지만, 나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다만 과일에 대한 불만이 하나 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요즘 과일은 너무 맛이 난다. 당도가 너무 높다. 사과가 꼭 이렇게까지 달아야 하나 싶다.

​

사과는 아버지의 과일이었다.

​

아버지가 다른 과일을 드시는 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사과만큼은 무척 좋아하셨다. 손재주가 좋았던 아버지는 회사에서 직접 만든 작은 과도를 하나 가지고 계셨다. 날이 추워지면 사과를 매일 드셨다. 한 손에는 사과를 들고, 다른 손에는 그 작은 과도를 들고.

​

나는 어릴 때 사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동생은 아버지를 닮았는지 사과를 좋아했다. 아버지가 사과를 깎기 시작하면 어느새 옆에 붙어 있었다. 아버지가 깎은 사과를 받아먹고, 또 받아먹고.

​

두 사람은 사과 하나를 놓고 아주 야무지게도 붙어 있었다. 밥은 안 먹어도 사과는 먹을 것 같았다. 사과가 없는 세상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사람들처럼.

​

기억 속 아버지는 늘 비슷한 모습이다. 한 손에는 사과, 다른 한 손에는 직접 만든 작은 과도. 사과 껍질을 길게 벗겨내고, 잘라서 여동생에게 건네주던 모습.

​

오늘 사과 하나를 먹다가 그 모습이 생각났다.

​

사과가 아버지의 과일이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