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애리와 하니가 한 팀이 되어 멋지게 달린다. 매일 조깅을 하는 나는 너무 재미있게 보았다. 특히 카체이싱을 방불케 하는 도심 속 S런은 굿이었다. 21세기에 맞게 이어 팟, 탱크톱, 전자식 바통 등 모든 것이 새롭게 바뀌었다. 주인공도 하니에서 나애리로 방향이 틀어졌다.

이진주 작가는 원래 나애리가 주인공이었다고 했다. 그만큼 나애리라는 캐릭터를 사랑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애리는 하니에게 아주 못되게 굴어서 전국밉상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니가 아픔을 딛고 달리기로 우뚝 서는 이야기에서 발전하여 이번에는 작가의 바람대로 애리도 주인공이 되었다.

이런 구조는 사실 다른 영화의 후속 편에서 자주 보던 구조다. 요컨대 분노의 질주를 보면 전 편에서 죽일 듯이 싸우는 상대지만 후속 편에서는 일단 같은 편이 되고, 그다음 편에서는 완전한 한 편이 되어서 싸운다.

하나 극장판 이 영화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극장가에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잔뜩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고, 얼마 전에 올린 연의 편지 같은 새로운 한국 애니메이션도 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하니의 긴 이야기를 짧게 줄인 나애리 버전은 밀리게 되었다. 하니 극장판이 나온 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하니는 벌써 40년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 하니를 접하는 10대, 20대는 하니가 왜 나애리를 미워하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향수를 불러들이는 측면에서도 별로다. 40년 전에 하니에게 열광했던 사람들이 하니에게 달려들게 하려면 그동안 꾸준하게 하니 버전이 지속적으로 나왔어야 했다. 40년 만에 새로운 버전이 나왔지만 광팬이 아닌 다음에 당시 이야기는 다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많다.

하니의 서사는 짧지 않으며 하니의 사정이 그 당시의 시대와 맞물리면서 사람들의 감성을 충분히 잡아당겼다. 극장판으로 나온 이번 영화는 작화도 좋고 잘 만들었지만 서사가 너무 짧고 부족하다. 제작진은 극장판을 3부작으로 계획을 하고 이미 2부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했지만 극장판으로 나올지는 미지수다.

거의 매일 조깅을 하는 사람으로 아무리 하니의 정체성이 컨버스화라고 하지만 에스런 이라는 도심지 질주를 하는데 컨버스화는 좀 그렇지 않나. 트랙을 달리는 것과 다르게 도심지 도로는 운동화 바닥을 빨리 닳게 만든다. 게다가 울퉁불퉁하기에 제대된 운동화를 신겨서 달리게 해야지. 모든 것이 21세기에 맞게 잘 바뀌었는데 조깅화가 너무 아쉽다.

하니는 정체성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면 애리나 주나비의 신발이라도... 그녀들 역시 제대로 된 운동화가 아니다. 요즘 사람들이 조깅에 얼마나 진심이며 달리는 인구도 늘어났는데 왜 이런 중요한 걸 놓쳤을까 싶다. 그러니 하니의 발목이 낫질 않지 홍두깨 선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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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점점 순수한 마음에서 벗어나 탐욕과 욕망으로 물들어갈 뿐인데 천사는 어째서 이런 인간이 되려고 했을까. 인간은 아프고 병들고 늙어가며 서로를 비난할 뿐인데 왜 인간이 되려고 했을까. 인간이 되려고 할까,라는 의문이 아니라 했을까, 이다.

천사는 인간들에게서 무엇을 본 것이다. 그걸 직접 알아보기로 한다. 그렇게 천사는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기로 한다.

연필로 선을 가늘게 긋거나 굵게 그으면 그림이 된다는 걸 느끼고 싶어서, 추울 때 손을 비비는 그 단순함 행동을 하기 위해서, 귀찮지만 매일 자라는 수염을 면도를 하고 터키인 가게에서 마사지도 받기 위해서 천사는 인간이 되기로 한다.

하늘에서 천사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인간과 같은 눈높이에서 인간을 알고 싶어서 천사는 인간이 되기로 한다. 천사는 아픔도 없고, 늙지도 않고, 죽지도, 허기도 모르는 흑백의 세계에서 희로애락이 있는 컬러의 세상으로 온다. 천사가 하늘에서 본 인간은 엉망진창이지만 그걸 바꿀 수 있는 사랑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인간은 그 어려운 삶 속에서 사랑으로 세상을 바꾸고 완성해 간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요즘에 보면 더 마음에 들지 모른다. 이 영화는 시대에 따라, 시기에 따라 보는 느낌이 달라진다. 영화 속 시대적 배경은 극단으로 나눠졌다. 요즘처럼 선과 악, 흑과 백이 뚜렷하게 나누어지는 시기에 보기에 더없이 좋을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

베를린 천사의 시에는 네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두 명은 천사로 인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인간과 같은 눈높이로 인간을 보기를 바라는 다미엘과 인간사회에 간섭하기를 싫어하며 관조의 눈으로 인간세계를 내려다보는 카시엘.

다미엘은 그러다 인간이면서 천사처럼 하늘을 곡예하는 마리온을 사랑하게 된다. 마리온은 인간이지만 천사가 되지 못한 인간 같은 느낌으로 땅보다는 공중에서 생활하며 지내다가 실직할 위기로 땅으로 내려와서 외로움과 불안을 지니고 있다. 마리옹의 불안, 초조함, 기쁨, 걱정, 과거는 다 보지만 마리옹의 미래만은 보이지 않는다. 바로 사랑을 해 버렸기 때문이다. 마리옹의 눈에는 천사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다미엘은 카시엘의 충고에도 인간이 되기로 한다.

그리고 원래 천사였지만 인간이 된 피터 포크다. 피터 포커는 실제 자신을 연기해야 한다. 피터 포커는 형사 드라마 [형사 콜롬보]의 배우로 그 배우를 연기해야 한다. 영화 촬영을 위해 베를린에 온 피터 포크는 전직 천사로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다미엘의 존재를 느끼며 그 존재에게 인간이 되었을 때의 느낌을 말해주며 인간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멋지고 즐거운 일인지 알려준다.

베를린 천사의 시는 온통 시로 만들어진 영화다. 시는 시인의 고통으로 세상에 나오지만, 나오는 순간 시인의 것이 아니라 읽는 이의 것이 되는 것처럼 이 영화 역시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로 시작하는 영화는 요즘처럼 빠르고 화면 전환이 순식간에 이뤄지는 시대에 전하는 바를 어쩌면 뚜렷하게 전달한다. 시는 사실 추상적이어서 어려운 게 아니라 구체적이어서 어렵다.

시는 인간의 삶과 닮았다. 인생이 구체적이어서 늘 어렵다. 천사는 인간이라는 시를 알고 싶었다. 베를린 천사의 시 말미에 나오는 밴드는 실제 밴드로 [닉 케이브 앤 더 배드 씨즈]다. 노래들도 좋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탄생의 비화

-정성일 평론가 참조

빔 밴더스는 1940년대에 독일에서 태어났다. 빔 밴더스는 10대 시절 미국 대중음악에 심취했다. 음악을 광적으로 들었다. 짐 모리슨, 벨벳 언더그라운드, 롤링 스톤즈와 기타의 신 지미 핸드릭스에 빠져 있었다. 빔 밴더스 아버지는 의대를 나와서 의사로서 살기를 바랐지만 화가가 된다면서 가출을 한다.

그 후 2년 동안 파리로 도망쳐 생활을 한다. 빔 밴더스가 파리에서 발견한 것은 그림이 아니라 영화였다. 파리에는 시네마테크라는 상영관이 있었는데 빔 밴더스는 그곳에서 2년 동안 1200편의 영화를 보며 지냈다.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될 거라는 다짐을 하고 1967년 뮌헨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독일의 가장 유명한 뮌헨 영화 학교에 들어간다. 1971년 관객모독[공연 중에 옷을 벗고 물을 집어던지는 연극]의 각본은 쓴 페터 한트케를 만난다. 빔 밴더스는 페터 한트케와 [페널티킥을 맞이한 골키퍼의 불안]이라는 영화를 찍는다.

이 영화가 빔 밴더스의 데뷔작이다. 이 영화의 완성도보다 빔 밴더스는 패터 한트케라는 평생의 지인을 만났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후 빔 밴더스는 자신의 영화 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1976년에는 [시간의 통과]라는 영화로 칸느국제비평가상을 받는다. 1977년에는 [미국친구]로 칸느심사위원상을 받고, 1981년에는 [사물의 상태]로 베니스그랑프리를 받았고, 87년에는 그 유명한 [파리 텍사스]로 칸느영화제 그랑프리를 받는다.

이제 세상은 영화의 정점, 끝까지 올라온 이 감독이 과연 어떤 영화를 만들 것인가? 어떻게 또 한 번 사람들을 감동시킬 것인가? 였다. 밴더스는 파리 텍사스를 끝내고 잠시 쉬고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서 스위스에 사는 페터 한트케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내게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말이야, 특별한 이야기는 없는데 천사에 관한 이야기를 찍어보면 어떻겠어?]라고 한다. 이것이 아이디어 전부였고, 이게 바로 [베를린 천사의 시]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진척이 없었다.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한트케는 시나리오를 수십 번 고쳐 썼지만 탈고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러자 빔 밴더스는 같이 하고픈 세 명에게 일단 먼저 연락을 하여 영화를 같이 하고 싶다고 한다. 그 첫 번째가 앙리 알레캉이라는 촬영 감독이었다. 이 촬영 감독은 1909년 생이다. 이 당시에도 이미 할아버지였다. 이 할아버지 촬영 감독은 빔 밴더스와 함께 천사의 눈으로 보는 세계를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이 부분 감동이다).

밴더스는 앙리 알레캉에게 사라진 흑백 시대의 영화를, 천사의 눈으로 보면 흑백인 이 세상을 다시 한번 담아보자고 한다. 앙리 알레캉은 장 콕도의 [미녀와 야수], [안나 카레니나]등 씨네필에서는 이미 최고의 촬영감독이었다.

두 번째로 영화 속 마리온으로 나온 솔베이그 도마르탕이라는 아가씨였다. 당시 빔 밴더스는 실제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솔베이크 도마르탕을 사랑하던 빔 밴더스는 이런 여자라면 천사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야, 이번 영화는 쉬울 것 같지 않아. 여자 주인공이 공중그네를 타야 하거든] 그러자 솔베이그는 간단하게 [알았어요]라고 대답했다. 다음 날 밴더스는 솔베이그에게 전화를 걸어 줄거리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들려온 것은 자동응답기의 소리뿐이었다.

그 내용은 지금부터 6개월간 파리의 서커스 단에 들어가서 공중곡예를 배워올 작정이니 6개월만 기다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빔 밴더스는 이 영화는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배우가 이토록 영화에 진심이니 감독은 더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콜롬보 형사]의 콜롬보 역의 피터 포커에게 연락을 한다. 국제전화로 피터 포커에게 전화를 한 밴더스는 아직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아서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서 [제가 빔 밴더스라는 감독입니다]라고 하자마자 피터 포커의 대답이 [파리 텍사스를 찍은 그 감독 말입니까?]였다. [네, 그렇습니다. 지금 시나리오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천사가 나오는 영화에 선생님을 꼭 출연시키고 싶습니다]라고 하니

피터 포커가 [유럽 사람들은 그렇게 영화를 진행하는군요, 오 좋아요. 그럼 베를린 구경도 할 겸 어디 한 번 출발해 불까요]. 그렇게 빔 밴더스는 꼭 부르고 싶은 세 사람을 불러 영화를 촬영하게 된다. 그리고 사랑이 세상을 바꾸고, 다정함이 세상을 만들어 낸다는 이 아름다운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가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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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3부작을 다시 봤다. 비하인드를 듣고 다시 보는 오리지널 3부작은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블루레이에서 바뀐 장면들과 그래픽이 입혀진 장면들이 눈에 들어와서 신기했다. 스타워즈는 시작을 빰빰빰빠 빰빠 하는 존 윌리암스의 음악이 유명하다. 그때 스타워즈 글자는 정면인데 대략 이야기는 비스듬한 사선으로 올라간다. 설명이 끝나면 끝에.... 하며 마침표 네 개로 끝난다. 그러나 어떤 편에서는 세 개의 마침표로 끝난다. 스타워즈 어떤 버전일까.

오리지널 3부작을 전부 조지 루카스가 감독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있는데 감독은 따로 있다. 조지 루카스는 다스 베이더의 어린 시절 스카이 워커 적 이야기 3부작을 감독했다. 오비완이 젊었을 적, 콰이콴이 나왔을 적 2000년대 초 버전을 감독했는데, 루크처럼 다스베이더가 되기 전 아나킨도 한쪽 팔을 잃는 장면이 나온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기 위해 영화협회, 감독협회 이런 곳에서 다 탈퇴를 했고 자신의 돈으로 제작을 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제작자들이나 협회에서의 간섭이 심하다. 그래서 꼭 감독판이 따로 나온다. 조지 루카스는 그러기 싫어서 처음부터 자기 혼자 하고 싶은 대로 영화를 만들었다.

그 덕분에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 시리즈를 만들어냈고 4, 50년이 흐른 지금도 열광적이다. 디즈니랜드처럼 스타워즈 랜드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조지 루카스는 인디애나 존스도 스필버그와 함께 만들었는데 감독을 스필버그에 양보하고 난 다음 인디애나 존스 속에서도 조지 루카스 만의 이스트 에그를 잔뜩 숨겨 놨다. 사원의 벽면이나 그림 속에 알투나 스타워즈 속 캐릭터 그림을 교묘하게 숨겨놨다.

지금 시점에 오리지널 속 보바팻이 다시 보인다. 무기나 비행 같은 것들이 다시 보이는데 잠깐 등장했다가 사막괴물 입 속으로 들어가며 금방 죽는다.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보바팻이 그렇게 인기가 많은 캐릭터가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1977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은 캐릭터를 설명하는 과정이 있고 70년대라 그래픽이나 이야기가 다른 편보다 재미가 떨어진다. 오리지널 3부작 중에서 제국의 역습이 나는 가장 재미있었다. 40년이 지나 후반작업이 다시 되어서 보는 재미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에 아주 재미있다.

70년대 루카스 필름 소속 한 그래픽 디자이너가 있었다. 70년대니 몹시 힘들고 어렵지만 디즈니 필름에 견학을 다니며 스타워즈의 그래픽을 해내고 있던 한 직원이 90년대에 스티브 잡스가 와서 손을 내미는데 그 사람이 픽사의 수장인 존 라세터였다. 근래에 성추행 논란으로 문제가 많던데.

아무튼 오리지널 3부작을 보면 빌핼름의 비명도 다시 들리고, 쓰리피오가 박살 나서 츄바카가 들고 갈 때 오른손만 두 쪽인 것도 보이고 재미있다. 요다가 처음 등장하는 편이 제국의 역습인데 루카스가 원래 없던 요다의 캐릭터와 모형을 주문했다. 캐릭터 디자이너가 요다를 완성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웃었는데 요다의 얼굴이 디자이너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정작 본인은 무의식이라 그걸 인지하지 못했다고.

현시점에서 스타워즈의 세계관은 이제 따라잡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애니메이션 스핀오프부터 만달로리안과 보바팻 시리즈와 이정재가 나오는 버전까지. 너무 크고 넓어졌는데 전부 다 재미있지는 않다. 오리지널 3부작과 프리퀄 3부작은 정말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으니까 다시 보고 싶다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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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 없이 몰아친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만 할 것처럼 빠르게 진행된다. 넷플은 이런 시리즈를 잘 만든다. 한 편짜리 영화는 실패할 확률이 많은 반면에 시리즈는 재미있다.

특히 한국 드라마는 재미있다. 넷플 정직원인 박해수가 나온다. 정직원인 만큼 이번 논란의 중심에 있는 대홍수에도 나왔다.

대홍수는 제목 때문에 논란을 키웠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제작진은 다 알면서 논란을 키우려고 제목을 리턴이나, 리셋보다는 대홍수로 했을지도 모른다. 무논란에 조용하게 넘어가는 것보다 논란이 영화입장에서는 훨씬 이득이다.

대홍수는 설정도 좋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아역부터 잘 보면 기억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자백의 대가에서도 검사로 나온 박해수는 꼭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모범택시 3에서도 김도기 기사가 요즘 중요한 회의는 햄버거 먹으면서 한다면서,라며 뭔가를 떠올리게 하더니, 장나라 편에서는 또 룸에서 젓가락을 찾네. 이런 이스트에그를, 큭큭 재미있게 말이야.

자백의 대가에서 살인의 동기가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인 게 너무 허술하다는 이야기가 많던데, 살인하는데 꼭 거창한 이유가 있어야 하나. 내가 구치소에서 2년 근무했을 때에도 살인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있었는데 우발적이 많았다.

생각해 보면 현실에서 사람을 죽이는데 목적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맞게 살인을 하는 경우가 몇이나 있는지. 실은 그렇게 많지 않다. 거의 드물다. 사람을 죽이고 난 다음 사후 처리는 어떻게 할지, 죽였을 때 나의 알리바이를 마련해 주고, 그 이후의 동선이나 행동을 미리 짜놓고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되지 않는다.

대부분 욱해서 어쩌다 보니 죽이게 된 것이다. 특히 지금 시대에 사람들은 분노 게이지가 대부분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나는 불행한데 내가 모르는 저 사람이 너무 행복해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죽이기도 한다.

미친놈들이 얼마나 많아졌나. 5세 아이에게 술을 먹이는 방송을 하고, 강아지를 안고 담배를 피우며 강아지에게 뱉어내기도 한다. 영화가 비현실적이라고 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나는 비현실적인 사건사고가 훨씬 많다.

자백의 대가에는 미친년들이 잔뜩 나온다. 전도연과 김고은이 들어간 사방에 이미 1등 먹은 미친년들이 있다. 김선영과 진미사 배우는 진짜 영혼까지 미친년 같다. 하지만 미친년 위에 더 한 미친년이 있다는 걸 사방에서는 잘 보여준다.

바로 김고은과 전도연 때문이다. 대 놓고 미친년은 숨기며 살고 있던 미친년에게 못 당한다. 교도소 안에서만 그런 게 아니고 현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도연이 입고 있던 파란색 무늬 바지가 너무 탐나데 나는.

자백의 대가에서 김고은이 전도연을 넘어버린 연기를 했다는 평이 많다. 드러나지 않는 독기를 표현했다. 그래도 드러내 놓고 독기를 분출하는 전도연의 연기가 나는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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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창 볼 때에는 거의 매일 봤으니까 한 서른 번은 본 것 같다. 소설도 여러 번 읽었다. 이와이 슌지의 마법에 빠져들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는데 나는 좋아하는 편이다. 미나가와의 이야기에 빠지게 되는 건 아무래도 미나가와의 모습에서 나를 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친구 없고 바보 같고 잘 속는 거 같고. 세상 모두가 적이고 자신을 적대시하고 소극적이고 목소리가 작다는 이유로 제자들에게까지 따돌림당하는 미나가와.

그 누구도 가까이 오려하지 않기에 누군가 다가오면 덥석 마음을 열어 버리는 미나가와다. 하지만 그런 사람 모두에게 배신을 당한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세계에서 진실은 사람들에 의해 늘 비켜가고, 거짓이라고 아무리 말해봐야 들어주는 이 하나 없는 세계에서 미나가와는 점점 줄어들어 소멸하기 직전이다.

그러나 자신을 알아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이 세상은 살아갈만한 용기를 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는 미나가와.

미나가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좋아해 주는 마시로를 만나고 나나미가 된다. 나나미가 된 미나가와는 한 번의 강력한 행복보다 모래 알갱이처럼 수많은 작은 행복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나가와는 생계를 위해 인터넷으로 일대일 수학을 가르친다. 화면 너머의 학생 역시 미나가와처럼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심한 학생이다. 그 학생이 어느 날 미나가와가 감기가 걸린 걸 알아챈다.

마지막 장면에서 화면 너머의 학생이 미나가와를 향해 도쿄에 가고 싶다고 말을 한다.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미나가와는 학생에게 도쿄를 구경시켜 주겠다고 말한다. 이 마지막 부분은 정말 멋진 장면이었다.

미나가와는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미나가와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보는 사람의 시선에 달렸다. 타인에게 나의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대로 봐주길 바라지만 그럴 일은 없다.

그래서 눈치를 보며 나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잘 보이려 노력을 한다. 그럴 때 마시로처럼 자신을 소중하게 여겨 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친구일지 모른다.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남이 바라보는 자신의 모습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편견만 가득한 인간이 된다. 우연으로 시작된 운명 같은 이야기, 미나가와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보자, 아주 재미있는 영화 [립반윙클의 신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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