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조던 필이라는 이름 때문에 자칫 속아서 보게 된다. 조던 필은 이 영화의 제작에 참여를 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참여를 했지만 조던 필의 느낌이 나는 건 흑인이 주인공이라는 것과 영상미 정도뿐이다.

조던 필이 만든 영화는 그 영화가 인종차별이든, 미디어를 까던, 의미를 굳이 모르더라도 영화 자체를 보는 것만으로 재미있었는데, 이 영화는 뭘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조던 필을 따라 하는 영화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욕심이 차고 흘러넘쳐 욕망이 뇌를 지배하면 어두운 부분을 건드리는데 스포츠 선수와 호러를 합쳤다고는 하나 공포를 준다거나 무서운 장면은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풋볼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미국과는 다르다.

웬즈데이가 한국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했음에도 시청률이 떨어지는 이유와 비슷하다. 웬즈데이의 아담스 패밀리의 시작은 아주 오래전부터 다.

미국인들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아담스 패밀리를 티브이 드라마로, 어린이용으로 계속 죽 봐왔었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서 웬즈데이가 나오니 열광을 할 수밖에.

이런 럭비에 관한 영화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전혀 관심이 없다. 쿼터벡이 얼만 큼의 슈퍼스타인지 대충은 알지만 미국인들만큼 깊게 관여하기가 싫다.

그런 주인공이 광팬에게 습격당해 뇌손상을 입고 전설의 쿼터백이 내 손을 잡아, 내가 하라는 대로 하고, 먹으라는 음식만 먹으면 다시 영광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어.

그래서 갇힌 공간에서 점점 반복과 통제 속에 광기로 사로잡히는 종교의식처럼 어떤 경계가 허물어지는데, 영화가 재미가 너무 없다.

뭔가 숨겨둔 의미 같은 게 영상 곳곳에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재미가 없어서 찾는 거 포기.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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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은 날은 랄프로렌을 잔뜩 입고 나왔던 [애니 홀]의 다이안 키튼이 떠오른다. 애니를 보며 올비가 말했다.

“나는 실은 말이지, 아주 비관적인 인생관을 갖고 있어. 말하지만 인생은 호러블 한 것과 미저러블 한 것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어. 호러블 하다는 것은 글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치명적인 경우랄 수 있지. 예를 들으면 눈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장애라든가, 그리고 음, 미저러블 한 것은 그 밖의 모든 것이지. 그러니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미저러블 한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지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심연의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는 기분이 든다. 그 기분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더러운 먼지처럼 퀴퀴한 느낌일 때도 있고, 푹신한 솜사탕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조금은 부드럽고, 조금은 딱딱해서 조금은 안타깝고 조금은 안정된, 그런 기분이 든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싸구려 스킨 냄새가 난다.

후퇴한 시간의 냄새가 시월의 첫 주말에 흐린 바람을 타고 풍겨온다.

애니 홀의 냄새다.

싫지 않은 냄새. 할머니의 살갗에서 나는 냄새.

좋은 냄새는 아니나 나쁜 냄새도 아닌, 아무리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 냄새. 아버지 등에 붙어있던 작업복 냄새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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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시즌 1이 가장 재미있지만, 나는 시즌 3을 가장 재미있게 봤다. 집중해서 봤다는 말이다. 시즌 3에는 범인이자 주인공이었던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나오지 않는다.

시즌 2의 마지막에 총을 맞고 죽었기 때문이다. 루가 법정에서 나오면서 브래디의 얼굴에 대고 3D로 만든 총으로 쏴버리고 만다. 브래디는 죽으면서도 미소를 짓는다.

시즌 1, 2에서는 사이코패스 브래디의 재능이 여실히 드러난다. 시즌 1에서 차로 사람들을 밀어버려 많이 죽이고도 똑똑한 머리로 폭탄을 만들어 차에 설치를 하는 등 여러 사람을 또 처참하게 죽인다.

전자마트에서 같이 일을 하며 서로 마음이 통하던 루를 칼로 찔러 죽이려고 했고, 죽은 사람들 중에 이모를 둔 홀리에게 머리를 맞아서 뇌사상태에 빠진다.

시즌 2에서 뇌사상태로 계속 나오면서 약물주입으로 인해 어떤 사람들에게는 브래디가 눈으로 말을 걸고 조종을 한다.

홀리나 루 역시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고, 시즌 1에서 브래디를 뇌사상태로 만든 홀리는 호지스 탐정 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되고, 루는 브래디가 아직 살아 있음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렇게 마음이 통하고 사랑하기까지 했던 브래디가 살인마에다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니. 정부와 의사들은 뇌사 상태인 브래디가 약물에 의해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이 희대의 살인마를 살려서 치료를 하려고 한다.

거기에 화가 난 루가 법정에서 총으로 브래디를 죽인다. 시즌 3에서는 브래디가 나오지 않지만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전부 정신적으로 아프거나, 다쳤거나, 힘들어한다.

현대인은 대부분 정신적으로 크고 적든 간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시즌 3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지만 브래디의 망령은 끝까지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원래는 호지스가 은퇴 후 알코올 중독으로 가장 엉망진창의 생활과 정신적인 문제가 산적한 인간인데 시즌 3에서는 워낙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호지스가 멀쩡한 인간으로 보인다.

사이코패스는 어째서 그렇게 되는지, 법정과 법, 그리고 정의가 어떤 식으로 흘러가며 배심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도 잘 나온다. 멋진 대사들도 많이 나온다.

미국의 온도를 알고 싶다면 지금 대통령이 누군지 알면 된다 같은 대사는 머리에 콕 들어온다. 아무튼 지금 세상에는 마음이 아프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스티븐 킹의 원작이라 그런지 잔인한 장면이 많이 나옴을 유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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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티브이에 응팔은 하지 말았음 좋겠다.

몇 번을 봤는데도 재방하면 또 보게 된단 말이다.

오늘 한국과 브라질 축구를 보는데,

한국 선수들은 비에 쫄딱 맞았다는 게 누가 봐도 표가 나는데

브라질 선수들 머리는 철사야? 수세미야? 왜 젖지 않아?

경기 끝났는데 그 빗속에서도 전부 뽀송뽀송하게 보였다.

뭐야? 만화야?

어제 스벅에서 한 엄마가 3살? 딸에게 조각케이크를 가르키며,

우리 오늘은 요 아이로 먹자,라고 했다.

음식의 의인화가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다 이루어질 지니, 이 드라마 나는 재미있는데 어떡하지.

대사들에서 데드풀이 생각났어.

그나저나 수지가 찰지게 욕하니까 너무 좋더라.

나 변태인가.

응팔에서 진주가 야무지게 따라 불렀던 태양 소년 에스테반 들어보자.

https://youtu.be/Yz5cpToSZm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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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스티븐 킹의 장편 소설이자 시리즈 3까지 나온 미드(보다는 영드에 가깝다. 온통 영국 배우들에, 마을 이름도 그렇고, 모든 게 미국 스럽지 않다. 단지 발음이나 억양 뭐 이런 것들이)다.

시즌 3에 가서는 지귀연 같은 판사가 나온다. 정말 짜증이 나고 기가 막힌다. 판사는 너무나 터무니없는 판결을 내리고 법정 안에 있던 변호가, 검사 모두의 저항을 받지만 나는 판사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한다고 한다.

주인공 호지스가 남의 인생을 멋대로 결정하고 거만한 솔로몬처럼 분별력이 흐려져서 판결을 내린다고 하지만, 판사는 법은 완벽하지 않고 법은 집행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데 내가 자리를 지키는 한은 그렇게 한다고 한다. 법이 거지 같으니까 그런 것이다.

미스터 메르세데스는 소설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시리즈 역시 재미있다. 그저 전통 수사극처럼 흘러가는데, 스티븐 킹이 아닌가. 사이코패스가 메르세데스를 몰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돌진해서 여러 명을 죽이고 도망갔는데, 당시 담당 형사였던 호지스는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채 퇴직을 한다.

퇴직 후 나이는 들고 몸은 뚱뚱해졌지만 탐정으로 일하는 호지스에게 범인이 도발을 하면서 사건을 다시 파헤치는 이야기다. 범인은 누구인지 시즌 1에 다 나온다.

이 범인의 사이코패스 살인을 여실이 볼 수 있으며, 시즌 2에서는 뇌사상태에서 깨어나 정신적으로 약한 사람을 조종한다. 이런 부분은 스티븐 킹의 재능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그저 초자연적인 현상처럼 보이지만 시리즈를 보면 의학적으로 그게 가능하게끔 풀어간다.

이번 노벨 문학상 후보에 세계의 작가들이 거론되고 있다. 어김없이 하루키가 들어가 있다. 한림원은 하루키나 밀란 쿤데라, 움베르토 에코 같은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한림원은 인칭의 파괴와 뒤죽박죽 시점이 오고 가는 소설은 일단 열외 시킨다.

스티븐 킹도 이번에 거론되는 거 같은데, 오히려 스티븐 킹이 노벨 문학상을 받으면 괜찮지 않나. 공포소설가라고 알려졌지만 미스터 메르세데스 같은 소설은 사회문제를 적확하게 꼬집고 있다. 공포라는 건 하루키가 말한 것처럼 인간의 재산이다.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공포를 느낀다고 해서 못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근래에는 공포의 주체가 초자연 존재보다는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리즈 속의 저 판새 같은 사람, 그냥 공포의 대상이다. 하느님이나 신 그 위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선고를 내리면 그 누구도 뭘 어떻게 할 수 없다. 한 마디로 개좆 같다(사전에 나오는 용어다). 이미 국민 모두가 그런 공포를 경험했다. 노벨 문학상 그거 스티븐 킹에게나 줘라. 그래서 더욱 스티븐 킹의 소설이 퍼져서 이런 문제가 널리 널리 알려졌으면. 하고 적고 하루가 지나니 이름이 긴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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