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같은 날은 랄프로렌을 잔뜩 입고 나왔던 [애니 홀]의 다이안 키튼이 떠오른다. 애니를 보며 올비가 말했다.
“나는 실은 말이지, 아주 비관적인 인생관을 갖고 있어. 말하지만 인생은 호러블 한 것과 미저러블 한 것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어. 호러블 하다는 것은 글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치명적인 경우랄 수 있지. 예를 들으면 눈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장애라든가, 그리고 음, 미저러블 한 것은 그 밖의 모든 것이지. 그러니까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미저러블 한 것에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지난 영화를 보고 있으면 심연의 바닥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는 기분이 든다. 그 기분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더러운 먼지처럼 퀴퀴한 느낌일 때도 있고, 푹신한 솜사탕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조금은 부드럽고, 조금은 딱딱해서 조금은 안타깝고 조금은 안정된, 그런 기분이 든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싸구려 스킨 냄새가 난다.
후퇴한 시간의 냄새가 시월의 첫 주말에 흐린 바람을 타고 풍겨온다.
애니 홀의 냄새다.
싫지 않은 냄새. 할머니의 살갗에서 나는 냄새.
좋은 냄새는 아니나 나쁜 냄새도 아닌, 아무리 씻어도 없어지지 않는 냄새. 아버지 등에 붙어있던 작업복 냄새 같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