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 감독의 옥자를 보면 미국 슈퍼돼지 콘테스트를 할 때 창문 밖으로 거대 돼지 인형이 천천히 지나간다. 이 장면은 봉 감독이 이와이 슌지 감독의 하나와 엘리스의 한 장면을 오마주 했다.


이와이 슌지는 데츠카 오사무를 너무나 좋아했기에 철완아톰의 여러 부분을 영화 속에 오마주해서 넣었다. 기차역의 이름이라든가 등등.

예술가들은 나라를 막론하고 전부 끈끈한 끈으로 연결이 되어 있고 친하게 지낸다. 예술은 정치를 초월하고 [인류]라는 엄청난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게 만든다.


독일의 플럭서스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백남준은 초년 시절 함께 열심히 예술 운동을 했던 예술가가 있었는데 오노 요코였다. 그 덕분인지 존 레넌, 팝 아트의 거장인 엔디 워홀과도 교류를 활발히 했다.


하루키는 윌리엄 포크너의 [헛간 타오르다]를 좋아해서 [헛간을 태우다]라는 단편 소설을 탄생시켰고, 그 덕에 이창동 감독의 [버닝]을 여러 번이나 보게 되었다. 이렇게 예술은 서로가 연결이 되어있다. 좀 비켜간 얘기로 코카콜라 한글체가 있다. 68년에 등록된 이후 지금까지 코카콜라는 이 글씨체를 유지하고 있다.

이 글씨체는 우리나라 1세대 그래픽 디자이너로 2017년에 작고하신 봉상균 화가의 작품이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아버지다. 봉상균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검색해서 보면 감탄이 나온다. 아니, 감탄보다는 감동이 온다.


재미있는 건 봉 감독의 외할아버지도 시대의 이름을 남긴 소설가였다. 그는 김해경(이상), 이효석 등과 함께 구인회 활동을 했고, 가장 유명한 소설은 조선중앙일보에 연재되었다.


봉 감독의 영화를 보면, 영화라는 예술은 영화 이전에 나온 예술(미술, 사진, 건축, 의상, 음악 등)에 신세를 지고 있어서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봉 감독의 영화는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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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해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해를 받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해가 아주 뜨겁게 하늘에 떠 있었는데 흐려지고 바람이 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구름이 가득하고 몸도 뜨거워져 일어나려는데 비둘기 한 마리가 내 쪽으로 머리를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왔다. 그리고 뭔가를 쪼아서 먹더니 다시 뱉어냈다. 먹지 못하는 나무 조각 같았다.

비둘기 새끼, 분명 못 먹는 건데 여러 번 입으로 넣어서 다시 뱉어냈다. 바닷가에서 어느 순간부터 갈매기보다 비둘기를 더 많이 본다.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모습보다 머리를 앞뒤로 까닥까닥하면서 걷는 모습을 많이 본다.

비둘기는 먹는 게 아닌 걸 알고는 저 먼 곳으로 걸어서 가버렸다. 비둘기의 삶을 생각하면 단순하다. 하루 종일 먹을 걸 찾아다닌다. 천적도 없고, 가끔 사람들이 먹을 걸 던져 주니까 유유자적, 바닷가에서 먹이를 찾아서 하루 종일 다닌다. 진짜 평화로워 보인다. 그래서 평화의 상징인가? 그러다가 아까 갔던 비둘기가 다시 왔다. 절대 날아다니지 않는다. 먼 거리지만 걸어 다닌다. 까닥까닥 거리며 오더니 아까 집었던 그 나무 조각을 또 집어서 입에 넣었다. 저 머저리 새끼.

그리고 다시 뱉어내고, 다시 입에 넣었다가 뱉었다가. 그제야 아, 이건 먹을 게 아니구나.라고 받아들였는지 다시 걸어서 갔다.

그런데 비둘기가 친구를 데리고 오더니 나무 조각 있는 곳으로 갔다. 저 끈질긴 새끼, 왜 나무조각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지.

비둘기 두 마리는 연인인지, 가족인지 뭔 관계인지, 두 마리가 까닥까닥 거리며 와서 나무 조각을 입에 넣었다가 뱉어내고, 다시 입에 넣었다가 뱉어냈다.

그 꼴이 보기 싫었던지 내 뒤의 가로등에 내 팔뚝만 한 까마귀가 앉아서 깍 깍 거렸다. 그 소리를 듣고 비둘기 두 마리는 그 자리를 떠났다. 날아가지 않았다. 까닥까닥 거리며 그 애처로워 보이는 두 발로 걸어서 멀리 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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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누구에게나 추억이 깃든 곳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추억으로 덧 입혀져서 아름답게 채색된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꺼내듯 떠올리면 배시시 웃음이 난다. 나에게 추억이 깃든 어린 시절의 곳들은 전부 사라지고 없지만, 그곳을 요즘도 자주 지나쳐 온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때의 추억 속에 잠시 머물 수 있다.


그중에 제1 순위는 문방구였다. 문방구는 나의 최애 놀이터였다. 문방구에서 프라모델을 구경하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4학년인가, 3학년 때인가, 여름방학에 아침에 나가서 오후가 되어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나를 찾으러 엄마가 문방구까지 와서 끌려갔던 적도 있었다. 어떤 날은 장 보는 데 따라갔다가 문방구 앞에서 프라모델을 진열해 놓은 문방구 앞에서 움직이지 않아서 엄마는 먼저 집으로 간 적도 있었다.


코난, 아톰, 마징가, 철인 28호 같은 장난감이 잔뜩 진열되어 있던 문방구. 학교 앞 문방구는 몇 군데 있었고, 학교에서 집 까지는 10분 정도 거리였다. 엄마는 나를 억지로 집으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비교적 얌전했던 나는 문방구 속 프라모델을 구경하는 것으로 허기 같은 것을 달래고 있었고, 엄마는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두었다.


한참을 서서 가지런하고도 멋지게 진열된 프라모델을 구경하느라 행복함에 젖어들었다. 용돈을 받으면 그 돈을 모아서 프라모델을 샀다. 집으로 와서 그걸 뜯어서 조립하는 시간은 행복 그 자체였다. 추석이나 구정 같은 명절에 받은 돈으로 좀 더 레벨이 높은 프라모델을 구입하면 혼자 만들지 못해서 아버지와 함께 만들었다. 아버지와 함께 문방구에서 사 온 프라모델을 만드는 건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일이었다.


문방구는 아이들의 백화점 같은 곳이었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초등학교 3군데가 거리를 두고 일렬로 죽 있다. 그래서 그 앞에는 문방구가 가득하다. 요즘도 가끔 꿈속에 그 문방구 거리가 나온다. 죽 붙어있는 문방구는 아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기술을 문방구 입구에 가득 채워 놨다. 문방구에서 사이다를 마시기도 하고, 뽑기도 하고, 병아리를 구경했다. 맵지 않은 닭발도 팔았고, 쥐포나 쫀드기 같은 맛있는 것들이 가득했다.


문방구마다 특색이 있어서 문방구를 찾는 학년도 달랐다. 나는 프라모델이 많은 문방구를 당연하지만 좋아했다. 입구 옆으로 된 유리 진열대 위에 가득한 만화 주인공들은 마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요즘은 문방구가 거의 사라졌다. 적어도 내가 다니는 문화권 내에서는 볼 수 없다. 프라모델은 전문점이 있고, 인터넷으로 구경과 동시에 구입이 가능해졌다. 너무 손쉽게 구 할 수 있어서 그런지 언젠가부터는 프라모델의 흥미가 좀 떨어졌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는 그대로 있지만 운동장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학교 건물이 늘어났다. 문방구가 있긴 하지만 문방구라는 간판만 문방구고 문방구의 모습은 아니었다. 기억은 퇴색됐지만, 행복하고 즐겁게 문방구를 추억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내가 다니던 학교 근처 문방구가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꽤나 오래 버텼지만 사라지고 말았다. 100년이 넘은 초등학교도 사라지더니 그 자리에 주차장이 생겼다. 뭔가 참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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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5-08-12 2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동네도 초등학교 정문옆 문방구가 사라지고 카페가 생기더니 결국은 선술집으로 바뀌더군요.

교관 2025-08-13 12:05   좋아요 0 | URL
문방구는 이제 대부분 사라지는가 봐요 ㅠ
 


코로나 전까지는 마라톤 중계를 착실하게 챙겨 봤었다. 마라톤은 농구, 축구와는 다르게 중계로 보는 게 훨씬 재미있다. 그저 달리는 것뿐인데 뭐가 재미있지?라고 대부분 생각하겠지만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해설자와 캐스터가 중계를 이끌어 가는데, 그러다 보니 세세한 이야기,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다.


사진 속 마라톤 대회는 서울마라톤 대회로 2018년에 개최되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오전부터 씩씩하게 긴 거리를 달렸다. 아마 몇몇은 아주 천천히 달리고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달린다고 해서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프로가 아닌 다음에는 기록에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라톤은 항상 주제가 있다. 이때는 [달리자, 나답게]였다.


서울 마라톤답게 많은 연예인과 셀럽들도 함께 뛰었다. 서울 마라톤은 항상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피에로 분장으로 반환점을 도는 사람, 정장을 입고 달리는 사람, 세종대왕 복장을 한 사람. 무엇보다 줄넘기를 하며 40킬로미터가 넘는 구간을 달리는 중년의 한 남성이 있었는데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아주 안정된 자세로 줄넘기를 하며 반환점을 도는데 나이가 많지만 등 근육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었다. 이 사람은 평소에서 줄넘기를 하며 최소 10킬로 미터이상 달린다는 말이다. 평소의 경험치가 없이는 절대 이렇게 안정적으로 줄넘기를 하며 마라톤을 완주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주제에 맞게 ‘나답게’ 달렸다.

사진 속 흑인은 서울마라톤의 1등과 2등이며 시간 차이가 거의 없다. 1위부터 10위까지는 대체로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인들이고 국내 남자 1위는 코오롱의 아주 젊은 최민용 선수였다. 최민용 선수는 전체 16위를 했는데 ~시간 2분 16초 57인데, 바로 15위 선수가 일본인으로 ~시간 2분 16초 27이었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16위가 되었다.

1, 2위를 차지한 에티오피아 선수들에 비해 결승점에 들어온 최민용 선수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30킬로미터 지점에서 페이스메이커가 떨어져 나가고 그때부터 스피드를 냈기 때문에, 인간이 뽑을 수 있는 에너지를 마지막 10킬로미터에 다 쏟아부었다. 그 때문에 골인 후 정신력이 허물어지면서 탈수현장이 온몸을 급습하고 다리의 근육이 뒤틀리는 고통을 맞이했을 것이다.

국내 여자 1위는 삼성생명 선수인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역시 30킬로미터에서 페이스메이커가 떨어져 나간 후 홀로 마지막까지 달려야 하는데 컨디션이 굉장히 좋은 상태가 아니라 힘겨워 보였다.

마라톤 같은 긴 거리는 달리는 운동은 여자에게는 가혹하다. 가슴 때문에 오랜 시간 달리고 나면 상체가 앞으로 쏠리기도 하고 허리가 아프다. 그렇다고 가슴을 꽉 묶고 달리는 것도 몸에 이로울 리 없다. 일반적인 브라를 착용하고 긴 거리를 달릴 수도 없다. 땀이 엄청나기 때문에 와이어가 닿는 부분의 피부가 쓸려 찢어질 수 있다.


혹자는 마라톤용 브라를 착용해라고 하지만, 소방대원들이 무더운 여름에 더위를 호소하면서 불을 끄려 들어가는데, 착용하는 장비 안에 시원한 냉조끼 같은 걸 입으면 안 되냐? 하는 것과 비슷하다. 세상에는 생각처럼 마구 돌아가지 않는다.


이전에 일본에서 열린 육상대회에서 여성 선수가 PMS 때문에 하혈을 하면서 그대로 코트를 달렸다. 피를 철철 흘리며 달린 것이다. 마지막에 와서야 쓰러졌는데 여론의 비난이 이어졌다. 피를 그렇게 많이 쏟아내는데도 메달에 눈이 먼 감독과 코치는 선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경기 방식에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4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달린다는 건 여자들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가혹하다. 그러나 극복하며 그동안 달려왔고, 지금도 달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달릴 것이다. 30킬로미터를 넘어서면 오로지 자신과 싸우고, 자신과 타협하며 달릴 수밖에 없다.


고통을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쾌감 내지는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기도 한다. 데드포인트에 도달하는 범접할 수 없는 기이한 순간을 경험한다. 어떤 단어들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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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 평론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가운데 ‘약간‘이라는 단어를 아주 많이 쓴다는 걸 알았다.

그걸 알고 난 후에는 계속, 약간, 약간, 약간, 만 들린다.

약간, 좀 많이 줘요. 이건 정말 이상한 말이다.

뉴스를 전할 때에도 ’조금 심각하다’라는 말을 하던데,

조금과 심각하다가 이렇게 같이 놓일 수가 있나.

심각하다에 이미 큰일이 났는데, 많이 심각하다고 하던지.

미드나 영드를 보면 맥주를 마실 때 병맥으로 깰짝깰짝 마신다.

그에 비해 우리는(일본 포함) 맥주는 시원할 때 벌컥벌컥 마신다.

그게 아주 맛있다.

미드에서 모여서 병맥 하나씩 들고 세월아 네월아 깰짝깰짝 마시면,

무엇보다 맥주의 시원함이 날아가서 맛이 별로인데 주인공들은 죄다 그렇게 마신다.

맥주를 가장 맛없게 마실 때가 언제냐면,

동네 슈퍼 앞 평상에서 아저씨들 모여서 맥주 픽처 병으로,

종이컵에 부어 마시다가 전부 술이 되어서,

맥주는 닝닝하니 시원함이 없고,

종이컵은 쭈글쭈글해졌는데 거기에 부어서 마시는 맥주는 지옥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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