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 전까지는 마라톤 중계를 착실하게 챙겨 봤었다. 마라톤은 농구, 축구와는 다르게 중계로 보는 게 훨씬 재미있다. 그저 달리는 것뿐인데 뭐가 재미있지?라고 대부분 생각하겠지만 두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해설자와 캐스터가 중계를 이끌어 가는데, 그러다 보니 세세한 이야기, 별의별 이야기를 다 들을 수 있다.
사진 속 마라톤 대회는 서울마라톤 대회로 2018년에 개최되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오전부터 씩씩하게 긴 거리를 달렸다. 아마 몇몇은 아주 천천히 달리고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달린다고 해서 나무라는 사람은 없다. 프로가 아닌 다음에는 기록에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마라톤은 항상 주제가 있다. 이때는 [달리자, 나답게]였다.
서울 마라톤답게 많은 연예인과 셀럽들도 함께 뛰었다. 서울 마라톤은 항상 재미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피에로 분장으로 반환점을 도는 사람, 정장을 입고 달리는 사람, 세종대왕 복장을 한 사람. 무엇보다 줄넘기를 하며 40킬로미터가 넘는 구간을 달리는 중년의 한 남성이 있었는데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아주 안정된 자세로 줄넘기를 하며 반환점을 도는데 나이가 많지만 등 근육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었다. 이 사람은 평소에서 줄넘기를 하며 최소 10킬로 미터이상 달린다는 말이다. 평소의 경험치가 없이는 절대 이렇게 안정적으로 줄넘기를 하며 마라톤을 완주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주제에 맞게 ‘나답게’ 달렸다.


사진 속 흑인은 서울마라톤의 1등과 2등이며 시간 차이가 거의 없다. 1위부터 10위까지는 대체로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인들이고 국내 남자 1위는 코오롱의 아주 젊은 최민용 선수였다. 최민용 선수는 전체 16위를 했는데 ~시간 2분 16초 57인데, 바로 15위 선수가 일본인으로 ~시간 2분 16초 27이었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16위가 되었다.


1, 2위를 차지한 에티오피아 선수들에 비해 결승점에 들어온 최민용 선수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30킬로미터 지점에서 페이스메이커가 떨어져 나가고 그때부터 스피드를 냈기 때문에, 인간이 뽑을 수 있는 에너지를 마지막 10킬로미터에 다 쏟아부었다. 그 때문에 골인 후 정신력이 허물어지면서 탈수현장이 온몸을 급습하고 다리의 근육이 뒤틀리는 고통을 맞이했을 것이다.

국내 여자 1위는 삼성생명 선수인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역시 30킬로미터에서 페이스메이커가 떨어져 나간 후 홀로 마지막까지 달려야 하는데 컨디션이 굉장히 좋은 상태가 아니라 힘겨워 보였다.

마라톤 같은 긴 거리는 달리는 운동은 여자에게는 가혹하다. 가슴 때문에 오랜 시간 달리고 나면 상체가 앞으로 쏠리기도 하고 허리가 아프다. 그렇다고 가슴을 꽉 묶고 달리는 것도 몸에 이로울 리 없다. 일반적인 브라를 착용하고 긴 거리를 달릴 수도 없다. 땀이 엄청나기 때문에 와이어가 닿는 부분의 피부가 쓸려 찢어질 수 있다.
혹자는 마라톤용 브라를 착용해라고 하지만, 소방대원들이 무더운 여름에 더위를 호소하면서 불을 끄려 들어가는데, 착용하는 장비 안에 시원한 냉조끼 같은 걸 입으면 안 되냐? 하는 것과 비슷하다. 세상에는 생각처럼 마구 돌아가지 않는다.
이전에 일본에서 열린 육상대회에서 여성 선수가 PMS 때문에 하혈을 하면서 그대로 코트를 달렸다. 피를 철철 흘리며 달린 것이다. 마지막에 와서야 쓰러졌는데 여론의 비난이 이어졌다. 피를 그렇게 많이 쏟아내는데도 메달에 눈이 먼 감독과 코치는 선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경기 방식에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4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달린다는 건 여자들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가혹하다. 그러나 극복하며 그동안 달려왔고, 지금도 달리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달릴 것이다. 30킬로미터를 넘어서면 오로지 자신과 싸우고, 자신과 타협하며 달릴 수밖에 없다.
고통을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설명할 수 없는 쾌감 내지는 카타르시스에 도달하기도 한다. 데드포인트에 도달하는 범접할 수 없는 기이한 순간을 경험한다. 어떤 단어들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