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 눈을 뜨면 컬러가 가장 먼저 반긴다. 컬러가 가득한 세상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만약 어떤 문제로 인해 눈으로 보이는 세상이 흑백이라면 아마도 사람들은 그만 두려움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도 흑백사진이 컬러사진보다 더 좋은데 흑백사진이 더 좋은 이유는 흘러넘치는 컬러사진 속에서 소수의 흑백사진이 빛을 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온통 흑백사진뿐이라면 또 지금처럼 흑백사진이 멋지고 드라마틱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 ‘자산어보’는 정말 재미있었다. 아마도 흑백이라서 더 재미가 배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눈을 뜨는 순간 잠이 들기까지 형형색색의 컬러를 본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든 사물이 컬러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게 일상이 되어 버리니까 컬러의 미학에 쉽게 빠져들지 못한다. 이 말은 아마도 에르메스가 너무 갖고 싶어서 몇 날 며칠을 뼈 빠지게 일해서 가방을 구입을 했을 때 그 심정이 3년 뒤에는 다 사라진다는 말이다. 슈퍼카를 몰아도 그게 일상이 되어 버리면 아무렇지 않게 된다. 그게 인간의 단점이자 장점이다.


그래서 컬러의 미학을 잘 볼 수 있는 것이 사진이다. 눈으로 보면 평범한 것들도 사각의 카메라 뷰로 보면 조금은 특별하게 보인다. 카메라를 통해서 컬러를 담으면 이 컬러 속에 또 다른 미학이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모든 컬러는 인공적인 컬러다. 컴퓨터, 키보드, 책 표지, 텀블러, 색상, 피규어의 컬러는 전부 인공적이다. 그래서 자연적인 컬러를 담을 수 있는 과일과 채소를 찍으면 그 컬러에 빠져든다.

귤은 귤만의 색이 확고하다. 흔히 주황색이라고 하는데 이 주황색이 어울리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귤이다. 다니다 보면 가끔 주황색을 보기도 하지만 귤만큼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아파트의 색이 주황색이면 참 좋겠는데 여름이면 더워 보일까.


채소의 녹색도 꽤 아름답다. 녹색의 시원시원한 컬러는 산으로 가면 볼 수 있다. 녹색은 눈을 편안하게 해 준다. 꽃이나 풀 같은 녹색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녹색은 연꽃의 녹색이다. 연꽃은 녹색이 아주 짙을 때 그 향은 은은하게 멀리멀리 나아가게 하는 것 같다. 연꽃이 한창 피어있을 텐데 이제 잘 가지지 않는다.


과일은 아니지만 인공적인 컬러도 한 번 담아봤다.


마치 크리 종족의 머리카락 같다. 크리 종족의 머리털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이 미칠 것 같은 토마토의 붉은 컬러는 사람을 빠져들게 한다. 토마토는 라면에 넣어서 먹으면 더 맛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렇다. 찌개나 붉은 양념이 들어간 탕에도 토마토가 들어가면 맛있다. 찌개나 탕을 자주 해 먹지 않지만 라면은 왕왕 먹기 때문에 토마토를 어김없이 풍덩 빠트려 먹는다.


나는 지브라 패턴만큼 수박의 이 무늬도 패션에 분명하게 확고한 자리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한다. 녹색의 바탕에 검은 줄이 그어진 수박의 이 무늬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데 다 다르며 다 아름답다. 검은 줄무늬도 스포이트로 물에 약물을 떨어트리면 퍼지는 것처럼 몹시 형이상학적이다. 디자인에 대해서 고민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면 수박의 무늬를 패션에 입히라고 하고 싶다.


참외의 노란색도 꽃이 가지는 노란색만큼 확고하다. 확고한 노란색이다. 음식 중에 노란색이 있다면 사람들은 카레라고 하지만 카레는 노란색이 아니다. 참외는 정말 노란색이다. 나는 참외를 껍질 채 먹는 것을 좋아한다. 토마토는 시원하지 않은 토마토가 맛있는데 참외는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참외가 좋다. 잘 씻은 다음 껍질 때 와작와작 씹어 먹는 맛이 좋다.


멜론의 사진을 찍을 때 멜론의 무늬가 너무나 신기해서 한참을 허리를 구부리고 들여다보고 있으니 직원이 와서 무슨 문제가 있냐고 물었다. 내가 5분이나 멜론의 무늬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직원은 내가 멜론의 무늬를 본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멜론을 보며 뭔가 문제를 발견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끔 글을 봐야 하는데 글씨를 보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과 비슷할까. 아무튼 멜론의 무늬가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보고 있었다는 말은 하지 못한다. 그런 말을 해봐야. 이런 멜론의 무늬를 환 공포가 있는 사람들은 보지 못한다. 나는 그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 하지만 환 공포가 없는 나는 마치 지구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멜론의 이 무늬를 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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