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구름 가득한 하루가 지속되더니 이내 회색 비를 쏟아냈다. 권태와 단조로움을 등에 짊어지고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어떤 이가 그런 풍경에 반항이라도 하듯 고집스럽게 담배연기를 뿜어 잿빛 공간에 틈새를 만들어내지만 이내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틈새는 메꿔졌다. 오전 라디오에서 이소라, 이문세의 ‘슬픈 사랑의 노래’가 흘렀다.


슬픈 사랑의 노래

이영훈은 이렇게 시리고 아픈 노래를 만들었다. 이영훈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이고, 내 생애에 다시 작곡하기 힘든 곡이라고 말했다.


노래는 어째서 이렇게도 애달플까. 노래를 듣고 있으면 두 시간짜리 영화 필름이 테이크되듯 흘러간다.


새하얀 저 거리에서 쌓이던 첫눈 같은 사랑
너를 안고 숨을 쉬면 세상에 너밖에 없는데


가사가 전달하는 슬픔이 크게 다가와 심장을 쿵 찍고 가는 것 같다. 이 노래는 86년에 작곡하기 시작해서 6년 만에 멜로디를 완성했다. 그리고 96년에 가사를 완성했다. 10년에 걸쳐 노래 한곡이 완성되었다. 그 곡을 이문세가 부른다. 이문세의 목소리로, 이문세의 톤으로, 이문세의 감정으로 노래를 불러 완성에 이르는 곡이 되었다.


인간승리를 이문세도 해낸다. 이문세의 한계 극복은 내게는 큰 울림을 준다. 가끔 인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같은 타이틀로 티브이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의 몸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곳을 도전하고 정복하는 모습들. 얼굴이 톰 요크처럼 일그러질 정도로 힘듦을 참아가며 이겨내는 모습을 그동안 왕왕 봐왔다. 그들의 인간승리, 인간의 한계를 넘는 모습은 감격적이지만 정말 그런 일들만이 인간의 한계를 넘는 것일까.


오래전에 글을 쓰기 위해 갑상선을 제거한 30대 초중반 남녀 네 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인터뷰라고 하지만 나는 인터뷰어로서는 재능이 없기에 그저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어떠한 이유로 갑상선의 수술을 받았고 그 후의 생활을 듣는 것이 목적이었다. 있던 갑상선이 없어지면 하루에 8시간씩 잠을 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활동을 해도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오후 5시 정도가 되면 몹시 피곤하다. 그 피곤이 처음에는 적응이 안 될 정도라고 한다. 등에 쌀가마니 몇 개를 둘러 맨 것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거기에 눈이 몹시 탁해진다. 슬픈 일인 것이다.


무엇보다 주변성과 정체성에 고민을 하게 된다. 나는 주변에 스며들고 싶지만 설명할 수 없는 피곤이 덮치면, 그게 갑상선이 붙어 있을 때처럼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게 되고 ‘나는 왜 젊은 나이에 이럴까’ 같은 자기 비하를 하게 되며 결국 자기 멸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무너진 정신은 모래성 같아서 다시 쌓아 올리기 참 힘들다. 대체로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비록 나는 갑상선을 제거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나에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해준 덕분에 나는 그들의 힘듦에 아주 조금은 다가갈 수 있었다.


근래의 이문세를 보면서 이 사람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초능력을 지닌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초능력, 슈퍼맨이나 내는 그런 초능력. 이문세는 갑상선을 두 번이나 수술했다. 그 말은 노래를 부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나면 체력이 바닥이 난다. 내가 조깅을 세 시간 한 것처럼, 보통의 사람들이 24시간 꼬박 걸어 다닌 것처럼 저 밑바닥에 깔려있는 에너지가 완전히 소거되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세는 공연을 해서 한 시간 이상 노래 몇 곡을 예전처럼 부른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이 사람은 노래가 얼마나 하고 싶었으면, 그리고 그 노래를 자신을 좋아해 주는 팬들에게 얼마나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면 도저히 인간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인간의 한계를 그대로 뛰어넘어 버린 것이다. 이문세의 팬이라면 아마도 이문세가 노래하는 그 앞에서 그만 오열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이문세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어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노래를 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로 초능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근래의 이문세를 보면 보고 있으면 경외심이 든다. 산을 타고 식단 조절을 하고 맑은 공기를 찾아다니고 무엇보다 절벽 밑으로 떨어졌던 정신을 끌어올린 것은 정말 인간의 한계를 넘어 버린 것이다. 그는 초능력을 지닌, 나와는 다른 어떤 능력의 인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문세가 노래를 부르면 세상이 행복해진다. 그건 노래를 부르는 이문세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매일매일 행복할 수는 없다. 하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일어난다. 꿀 좋아하는 노란  곰돌이가 한 말에 제대로 동감이다.


https://youtu.be/Lx61vBPj_i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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