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각에 빨대를 꽂아서 먹는 우유는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나온 후 마셨던 우유의 맛이 난다. 하지만 주둥이를 벌려서 마시는 우유 맛은 전혀 그 맛이 나지 않는다. 혀끝으로 느껴지는 맛도 분명 다르다


주둥이를 벌려서 마시는 우유는 초딩 때 억지로 매일 받아서 먹어야 했던 우유의 맛이 있다. 바로 마시지 않고 집으로 들고 오면 배가 부른 아이처럼 부풀어있었다. 빨대를 꽂아서 먹던 우유는 목욕 후에 아버지의 손을 잡고 느리게 마셨던 맛이 있다


박찬일 요리사의 책,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에도 잘 나와 있지만 추억의 절반이 아니라 70%는 맛이 아닐까 싶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매일우유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폴라압둘의 러시러시를 듣는다


러시러시의 뮤직비디오에는 미소년인 키아누리브스가 나온다. 폴라압둘의 미모가 최고일 때 러시러시를 불렀다. 뮤직비디오에서 폴라압둘이 키아누리브스에게 키스 할 것 같더니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숙맥인 키아누리브스를 애타게 한다. 고소영의 점보다 폴라압둘의 점이 더 섹시하다고 생각했고 폴라압둘은 노래를 정말 잘 불러서 노래를 듣는 동안에는 몸을 이렇게, 이렇게 흐느적거리지 않고서는 못 배긴다. 폴라압둘은 정말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다. 오디션프로그램에서 도전자들의 감정에 가장 많이 이입이 되어서 슬퍼하고 기뻐하고 모두에게 긍정적이다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농산물 시장으로 왔다. 밤이라 모두가 문을 닫고 퇴근을 했는데 아직 집으로 가지 못한 초원상회 안에서는 난로를 피워놓고 느긋하게 의자를 붙여서 다리를 쭉 뻗고 반쯤 누워있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보았다. 70이 다 된 것 같았지만 더 나이가 많은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 모른다


그들은 느긋했다. 오늘은 일요일 밤이니까 이렇게 좀 있다가 들어가자며, 느긋하게 누워서 과일을 입으로 넣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했다. 평소 주위는 빠르게 흘러간다. 모두가 시간이 없어서 빨리 무엇인가가 되어야 한다. 오늘 됩니까? 바로 됩니까?가 내가 평소에 가장 많이 듣는 소리다


생계를 위해 일하고, 누군갈 만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어딘가에 올리는 글을 적고, 메일을 받고 수정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하루키를 조금씩 읽고,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피규어를 정리하고, 잠들기 전에 영화 한 편을 보고,,, 이런 일은 하루를 금방 지나가게 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은 실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사각의 매일우유 각에 빨대를 꽂아서 천천히 빨아 먹으며 폴라압둘의 러시러시를 들으며 초원상회의 주인 부부처럼 느긋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느리게 보낸다. 느리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다면 아마도 인생은 꽤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얄라알라북사랑 2020-01-26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이 글 유난히 좋습니다!! 공감버튼 누르고, 읽으며 저절로 웃고 갑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교관 2020-01-28 12:01   좋아요 0 | URL
명절 잘 보내셨습니까. 올해 복 듬뿍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