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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오스터는 일찌감치 전업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에 목표를 두지 않고 무조건 글쓰기에 나섰다 그는 우연의 기적으로 독자들에게 희망을 주지만 정작 그는 어려운 선택을 낙관으로 극복했다 오스터가 내게 주는 메시지는 이것..과연 낙관의 본질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계속묻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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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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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그 첫 5천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부채 그 첫 5000

 

단군신화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반만년이라는 말이 입에 붙을정도로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강조해왔다. 빨갛고 묵직한 이 책은 첫 조우부터 부채감을 주었다. 책 제목처럼 무언가 밑줄치고 잘 읽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자리 잡았다. 그리고 서평이 늦어지는 지금도 그런 부채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산술적인 계산으로는 기원전부터 시작된 우리의 부채는 힘있는 자와 혹은 힘있는 자로 보호받는 우리에게 제도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이다.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물물교환의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화폐가 만들어졌고, 그 화폐가 신용거래로 이어졌다고 당연한 논리처럼 배웠는데 그 논리는 수 많은 증빙(?) 텍스트로 인해 산산히 깨어졌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인간존재의 진화에 비신용적인 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는 공동체속에서 인간다워진게 아니라 개개인으로 똑똑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린 나름의 결론은 서두에서부터 명확하게 이야기해버린 우리가 물물교환 이전시대의 신용사회, 화폐는 그 이후의 문제라고 이야기해버렸기 때문에 난 그 전제를 맞추기 위한 증거들을 확인하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전제들이 무너질때의 허망감도 있지만 새로운 전제에 대한 기대가 새로 생기는 희열또한 좋다. 당신은 신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원래 죄, 혹은 부채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리고 평생을 그 부채를 갚기 위해 일하고 살아간다. 상당히 비관적인 결론을 시작하고 있지만 시사하는 바는 많다. 우리가 부채를 진 이유는 존재자체가 아니라 그 존재자체를 규정하는 테두리, 국가와 사회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공통의 이해관계가 존재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공통의 이해관계보다는 부채- 다양한 형태-가 생겨나고 그 부채를 갚기 위한 삶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원시시대의 신용사회, 그리고 친한 관계에서는 절대 물물교환을 하지 않고 오히려 서로에게 give&take가 아닌 훈훈한 관계였다는 것에 좋은 느낌또한 받았다. 우리는 원시시대를 지금의 우리시대와 비교하여 너무 폄하하고 있지는 않은가하는 생각또한 들었다. 그리고 화폐와 물물교환이 생겨남과 동시에 전쟁, 국가, 그리고 규범적사회가 만드는 인간의 부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맛이 나는 책이다. 두껍게 책꽂이를 차지하는 만큼 내게 새로운 사고를 안겨주는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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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1. 유럽의 아날로그 책공간

 유럽에서 책들은 우리가 가지는 책의 의미와 사뭇 다를것 같다

그리고 그 다름은 책이 있는 다양한 곳의 문화를 대변할 것 같아서

이 책은 우리의 책문화와 독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을킬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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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자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맹신자들


개인적으로 대중운동이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는 사실에 주목해왔다. 그러한 대중운동의 동인이 어떻든지 간에 말이다. 그런데 이책의 저자 에릭호퍼는 대중운동의 사례로 나치의 유대인학살, 소비에트혁명, 프랑스혁명, 팔레스타인혁명, 그리고 종교운동을든다. 분석의 사례가 너무 멀어서 느끼는 거리감때문인가 아님 내 생각에 대한 보편성에 대한 과신인가에 고개를 갸웃 거릴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서문에서부터 대중운동에 대한 폄하가 아니라 객관적사실과 행태를 분석했다고 설

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운동의 성과로 역사발전의 과정이 있어왔다고 믿는 나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었다. 그중의 하나로 대중운동은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성을 신뢰함으로써 얻어지는 결과라고 생각해왔지만 그 반대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조금의 충격을 감내하고 읽어야 할듯... 월드컵붉은악마의 응원의 자부심, 그리고 미군장갑차에 짓밣혀숨진 미선이효순이를 추모하는 촛불집회, 그리고 광우병쇠고기수입반대 촛불집회, 희망버스 그리고 지금도 논쟁과 찬반이 이뤄지고 있는 FTA비준반대 집회와 시위까지 우리의 현대사의 변화와 발전이 대중운동과 함께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뉴스로도 쉽게 접하고, 맘만 먹으면 쉽게 참여도 할 수 있다. 몇 번의 선거를 통해서 확인한 바로는 부자들은 자신의 안정을 위해 계급투표를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대변할만한 사람에 대해서 냉소적이거나 지지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보고 의아해했었다. 이책은 이렇게 풀이했다. “ 가난한 사람이라고 전부 불만을 품는 것은 아니다. 도시 빈민가에 갇힌 채 자신의 쇠락을 뽐내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익숙한 구렁텅이에서 벗어난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서리친다. 건실한 사람들조차 가난이 길어지면 타성에 젖는다. 그들은 변치않는 세계의 질서에 위압된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들도 이러한 심리상태에서는 변화를 바라는 세력에게 투표하지 않는다는 것이 설명이 된다. 그리고 “ 좋았던 시절의 기억으로 피가 끓는다. 물려받은것 가진것을 다 빼앗긴 신빈곤층이 모든 대중운동에 반응한다“ 생각해보니 최근의 촛불집회또한 그러한 사람들의 정부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었다. 조금씩 대중운동의 동인이 내가 생각했던 피상적인 내용과 조금은 다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현실의 고통보다, 더 나은 현실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대중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대중운동이 지향하는 목표와 캐치프레이즈에 대한 가치중립적이고 개념적인 단어의 표현조차 내게는 부정적인 의미로 느껴졌다. 그것은 대중운동에 대한 환상이 나에게 있고 대중운동의 세상을 긍정적으로 변화시켜왔다는 맹신이 나에게도 있기때문이었다. 수 많은 대중이 일어나서 떠들면 세상이 바뀐다는 그러한 믿음이 나에게는 커다랗게 내속에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자기를 대중운동에 헌신하게 만드는 것은 “갈망”이다라는 명제또한 설득력있어보인다. 얼마전 우리는 어버이연합이라고 하는 단체가 무덤속에서 노무현을 꺼내 산자들을 훈계하는듯한 퍼포먼스를 보인적이 있다. 이들은 보수를 지향하는 사람들도 막나간다고 어이없어하는 대상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까지 막나가게<?>하는 것은 과거의 영광에 대한 회귀를 바라기 때문에 참여하는 대중운동의 이유로 설명이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대중운동에 대한 단상으로 정리되었지만 세상의 변화에 대한 꽤 냉정한 객관적 시선과 거리가 자리잡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함께 내가 맹신하고 있는것에 대한 의심을 시작하게 된다. 객관적 정보라고 여겨지는 단순한 기사에서도 그러한 의심은 벌써 이 책의 중반쯤을 지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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