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25일 늦은 오후. 서울 충정로의 한 맥줏집으로 대학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맑고 청명한 그날의 공기를 우리 모두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과학의 대중적 글쓰기에 뜻이 있는 대학생을 모집한다’는 정재승 선생님의 글을 보고 찾아온 이공계 학생들은 모두 28명.
그 자리에 모인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만, 모두들 과학책 읽기를 즐기고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며, 무엇보다 과학을 사랑하는 친구들이었다. 매주 과학책을 함께 읽고 논쟁적인 과학 주제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할 만한 곳이 또 어디에 있던가! 내가 쓴 과학 글을 읽고 조언해 줄 친구들이 세상 어디에 또 있던가! ‘꿈꾸는 과학’은 모임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겐 하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 저녁 이화여대의 한 강의실에서 모임을 가졌다. 우리가 했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있다면? 없다면!》이었다. 정재승 선생님은 과학적 상상력이 때론 만화적 상상력보다 더 기발할 수 있다며 우리에게 이 프로젝트를 제안하셨다.
내용은 단순했다. ‘만약 인간에게 꼬리가 있다면?’ ‘만약 방귀에 색깔이 있다면?’ ‘만약 태양이 두 개라면?’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이 질문에 대해 강의실에 둘러앉은 학생들이 두 시간 동안 엉뚱한 상상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것을 다시 합리적 이성과 비판적 사고로 꼼꼼히 검토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처음엔 엉뚱해도 좋으니 기발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쏟아내는 시간을 가졌고, 그 과정이 끝나고 나면 ‘그 상상이 돼 불가능한지’에 대한 과학적 고찰이 뒤따랐다. 우리들의 상상이 몰고 올 또 다른 효과들을 고민하다보면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의 브레인스토밍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손가락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손가락이 없으면 운동화 끝은 어떻게 묶지?”
“끈만 못 묶니? 리본이나 각종 매듭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매듭만 문제가 아니야. 정교한 수술처럼 고도의 손동작을 필요로 하는 일은 꿈도 못 꿀걸?”
“근데, 손가락이 없는 사람은 생긴 것도 이상할 것 같아. 먹고는 살아야겠고,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을 수는 없으니까, 음, 그러니까 늑대처럼 입이 비죽 나오고 이빨이 날카로워지지 않겠어? 음식을 뜯어먹어야 하잖아.”
“직립 보행에 대한 이점이 전혀 없겠군.”
브레인스토밍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혼자서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때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던 기발한 생각들이 함께 둘러앉아 조금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엉뚱한 생각의 단초들이 튀어나왔다. 뻔하거나 따분해 보이던 소재들도 그룹 토의를 거치고 나면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멋진 글감으로 재탄생했다.
브레인스토밍의 결과물은 우리 중 한 명이 정리해 에세이로 만들어 왔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모여 함께 그 글을 읽고 조언하고 고쳐 가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덧붙였다. 퇴고를 할 때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날카로운 지적과 따끔한 조언이 여기저기서 날아와 원고를 낱낱이 해부했고, 그럴 때면 나의 머릿속은 친구들에게 벌거벗겨진 채로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속속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퇴고 과정에서 나온 다른 학생들의 지적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내가 쓴 글에 담긴 진짜 의도를 친구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억울함이 치밀어 오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체로 글에 대한 비평이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그것은 진실에 가까웠다. 미국의 소설가 스티븐 킹도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글을 쓸 때에는 문을 닫고 글이 완성되면 문을 활짝 열어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읽혀라. 언제나 독자는 옳고 저자는 틀렸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의 《있다면? 없다면!》원고는 퇴고의 모진 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다듬어졌다.
모임을 거듭하여 어느 정도 초고가 완성됐을 때, 우리는 제주도로 퇴고 여행을 떠났다. ‘꿈꾸는 과학’ 최초의 글쓰기 여행이었다. 중문 바닷가 근처에 있는 작은 호텔에 자리를 잡고, 두 조로 나누어 밤을 새 가며 글을 쓰고 또 썼다. 아침이면 모두 모여 밤새워 썼던 글을 돌려 읽었다. 그리고 다시 퇴고, 퇴고, 또 퇴고.
왜 볼 때마다 고칠 부분이 나올까? 왜 볼 때마다 더 좋은 문장이 떠오를까? 쓰면 쓸수록, 고치면 고칠수록, 글에서 모자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막막함이란 글 쓰는 감각을 서서히 익혀 가던 우리의 성장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에게 책으로 엮어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나 거대한 목표로만 느껴졌다. 《있다면? 없다면!》원고에 대한 퇴고는 제주도에서 돌아온 뒤에도 계속되었다.
《있다면? 없다면!》은 분명 과학책이지만,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과학이라는 이름의 상식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과학은 과학적 상상력과 비판적 사고로 이루어진다.
“멀리 가기를 마다하지 않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는 T.S. 엘리엇의 말처럼, 과학적 상상력은 우리를 당대의 과학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과학적 합리성으로 길들여진 비판적 사고만 잃지 않는다면 엉뚱한 함정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은 존엄한 상상력의 산물이다.”라는 미국의 문학가 윌리스 스티븐스의 말처럼, 이런 노력들이야말로 ‘백 년 전 사람들에게는 엉뚱하게만 여겨질’ 지금과 같은 세상을 만들어 낸 힘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그리고 우리가 이 책을 쓰면서 나누었던 브레인스토밍 과정을-아직 과학이라는 상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청소년들에게 각별히 권해 주고 싶다.
놀랍게도, 현실과 동떨어진 엉뚱한 상상력으로 가득 찬 이 책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새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왜 하늘에선 주스비가 내리지 않는지, 왜 얼굴은 음각이면 안 되는지, 왜 입이 배꼽 옆으로 이사 가면 안 되는지를 따져 묻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세상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데에는 나름의 과학적인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다.
《있다면? 없다면!》은 ‘꿈꾸는 과학’의 수많은 손을 거쳐 완성됐다. 1기였던 김민경, 김송희, 김승희, 김태양, 서재형, 이용일, 정유진, 조덕상은 모든 원고의 브레인스토밍에 참여하고 초고를 썼으며 글의 뼈대를 잡았다. 2기였던 김호식, 박찬석, 안성희, 이언경, 장승연, 전헤리, 최승원, 홍성준은 마무리 퇴고 작업에 열심히 참여해 1기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었다.
《있다면? 없다면!》은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꿈꾸는 과학’모두의 아이디어를 흡수했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며 초고를 썼던 사람조차 몰라볼 정도의 다른 글로 변신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글 한 편 한 편은 어느 한 사람의 글이 아닌 ‘꿈꾸는 과학’ 모두의 집단 지성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읽어보면 여전히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글이지만, 이 글에는 투박하지만 거칠게 꿈틀거렸던 우리의 젊음이 담겨 있다.
누군가 우리에게 “당신은 20대 때 무얼 했나요?”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기꺼이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라고 답하겠다. 계통 없이 책을 읽었고 혼자만의 몽상에 흥분했으며 질그릇처럼 투박한 글을 썼지만, 어쨌든 우리는 ‘꿈꾸는 과학’을 만났고 20대의 절반을 책과 글로 채웠다. 그렇게 풋사과처럼 시큼한 ‘날것의 젊음’을 공유했던 우리들이 빚어낸 첫 작품이 바로 이 책 《있다면? 없다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