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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아인슈타인 찾기 _ 울름과 뮌헨, 그리고 베를린>
아인슈타인이 학창 시절 성적이 좋지 못했다던 이야기는 거짓말일까? 뮌헨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에게 “넌 나중에 커서 절대로 제대로 된 사람이 못 될 거야.”라는 악평을 들었다는 유명한 일화 역시 꾸며 낸 것이란 말인가. 물론 이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 아인슈타인은 공부를 못했다기보다 뮌헨의 교육 제도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질문에든 빠르고 정확하게 대답하는 학생은 아니었다고 한다. 한 문제에 대해 진지하고 끈질기게 생각하는 그의 성적은 뮌헨의 고등학교 교육 시스템과 잘 맞지 않았다. 또한 그 학교에서는 라틴 어나 그리스 어에 비해 수학이나 자연 과학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어에 흥미가 없었던 아인슈타인이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104~105쪽에서


<수학아, 놀자! _ 기센 수학 박물관>
함수와 도형 관련 전시물들이 많은 2층에서 가장 재미있던 것은 바로 내 몸의 황금 비율을 알아보는 체험이었다. 학생들이 벽에 붙은 자로 키를 재며 깔깔거리고 있는 곳으로 가 보니, 단순히 키만 재는 것이 아니었다. 자의 가운데에 막대가 하나 더 붙어 있었던 것. 그것은 배꼽의 높이를 측정하는 것이었다. 배꼽의 높이는 왜? 그것은 바로 키와 배꼽까지의 높이인 하반신 길이 간의 비율이 황금 비율에 해당하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즉 ‘키 : 하반신 길이’가 ‘1 : 0.62’가 되는지 측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내 키와 배꼽의 위치를 그래프에서 찾아보았더니 황금 비율을 이루는 선을 비껴나 있었다. 내 배꼽의 위치에 맞으려면 178cm인 내 키가 무려 10cm 정도는 작아야 했다. 결국 난 키에 비해서 하체가 짧은 숏다리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다리가 길다고 자부했는데……. 그 충격은 꽤 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샘도 키가 145cm 정도가 되어야 황금 비율을 이루는 숏다리였다는 사실! 우리 둘은 황금 비율이 서양인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서로를 위로했다. ―163~164쪽에서 

 <과학 선생님, OO가다> 시리즈는 계속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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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는 그렇게도 더디게 가던 시간이, 서른을 넘겨 마흔을 지나니 쏜살같이 느껴진다. 나이 먹을 만큼 먹고서도 시간은 여전히 알쏭달쏭한데 하물며 아이들에게야. 하지만 점점 더 ‘시간’이 중요해지는 이때, 시간에 대해 아는 것은 무척 필요하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시간은 존재할까? 시간은 절대적인 것일까, 상대적인 것일까? 우리는 과연,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을까? 짐짓 철학적인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란 쉽지 않다.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전 세계가 표준 시간을 만들어 쓴 지는 불과 100년도 채 안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 이전에는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었을까? 철학자들과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시간의 실체를 파헤치고 그 보이지 않는 질서를 찾으려 노력했다.

이 책은 종교, 문화, 역사, 그리고 과학의 바탕 위에서 저마다의 철학을 가지고 시간을 맞들어 온 인간의 역사를 들려주고 있다. 달력과 시계 속 시간만이 유일하다고 믿는 현대 청소년ㄴ과 어린이들에게 진정 시간이란 무엇이고, 인간은 시간을 어떻게 규정지어 왔으며, 시간이 어떻게 우리 생활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자연의 순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과 세상을 인간의 의지대로 경영하고자 했던 역사와, 그 과정에서 오히려 시간의 종속적인 관계가 되어 버린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반추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내심 ‘보이지 않는 질서’라는 책 제목에서 느껴지는 문제의식의 무게감을 청소년과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책은 구체적인 사례들로써 그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했다. 주제와 메시지의 무거움을 역사속의 생생한 사례와 친절한 어투로 풀어낸 것이다. 또한 이제껏 어린이 책이 무기로 했던 감성적인 접근을 과감히 버렸다. 총체적이고 인문학적인 접근과 논리적인 전개, 균형잡힌 시각은 어린이 책에서도 정공법이 통한다는 걸 보여 주고 있다. 더불어 책을 읽는 독자들의 생각을 확장시키는 목판화와 시간에 관한 명언들은 이 책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

프랑스 책을 번역 출간하면서 ‘우리가 보는 시간의 역사’를 따로 집필해 부록으로 다룬 점이 돋보인다. 본문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우리 민족의 시간관과, 조선 시대의 눈부신 과학적 업적을 보여주는 해시계와 물시계, 그리고 우리의 환경적 특징을 반영한 역법 등을 소개하는 친절은 이 책에 한 가지의 미덕을 더 보탠다.

그러면서 세계 여러 문화권이 가진 다양한 시간관과 시간 체계들을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책의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바를 더 크게 확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이 책을 어린이/청소년 책이라도 만만히 볼 수만은 없는 건 메시지에서 편집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알차기 때문이다.

“태양은 ‘눈에 보이는 신’이자, ‘세계의 눈’이며,
‘낮의 창조자’이다. 어떤 신도 태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태양은 시간의 근원이다. 행성과 항성들, 자연력,
생명의 신들, 바람과 불의 주인, 그 밖의 모든 신은 태양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브라비시아-푸라나》

한국출판인회의 ‘이달의 책’ 선정 위원회 

 <인류의 작은 역사>시리즈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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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5월 25일 늦은 오후. 서울 충정로의 한 맥줏집으로 대학생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맑고 청명한 그날의 공기를 우리 모두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과학의 대중적 글쓰기에 뜻이 있는 대학생을 모집한다’는 정재승 선생님의 글을 보고 찾아온 이공계 학생들은 모두 28명.


그 자리에 모인 이유는 저마다 달랐지만, 모두들 과학책 읽기를 즐기고 글쓰기에 관심이 많으며, 무엇보다 과학을 사랑하는 친구들이었다. 매주 과학책을 함께 읽고 논쟁적인 과학 주제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할 만한 곳이 또 어디에 있던가! 내가 쓴 과학 글을 읽고 조언해 줄 친구들이 세상 어디에 또 있던가! ‘꿈꾸는 과학’은 모임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겐 하나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매주 금요일 저녁 이화여대의 한 강의실에서 모임을 가졌다. 우리가 했던 첫 번째 프로젝트는 《있다면? 없다면!》이었다. 정재승 선생님은 과학적 상상력이 때론 만화적 상상력보다 더 기발할 수 있다며 우리에게 이 프로젝트를 제안하셨다.


내용은 단순했다. ‘만약 인간에게 꼬리가 있다면?’ ‘만약 방귀에 색깔이 있다면?’ ‘만약 태양이 두 개라면?’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이 질문에 대해 강의실에 둘러앉은 학생들이 두 시간 동안 엉뚱한 상상과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는 것이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것을 다시 합리적 이성과 비판적 사고로 꼼꼼히 검토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처음엔 엉뚱해도 좋으니 기발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쏟아내는 시간을 가졌고, 그 과정이 끝나고 나면 ‘그 상상이 돼 불가능한지’에 대한 과학적 고찰이 뒤따랐다. 우리들의 상상이 몰고 올 또 다른 효과들을 고민하다보면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우리의 브레인스토밍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손가락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손가락이 없으면 운동화 끝은 어떻게 묶지?”
“끈만 못 묶니? 리본이나 각종 매듭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매듭만 문제가 아니야. 정교한 수술처럼 고도의 손동작을 필요로 하는 일은 꿈도 못 꿀걸?”
“근데, 손가락이 없는 사람은 생긴 것도 이상할 것 같아. 먹고는 살아야겠고,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을 수는 없으니까, 음, 그러니까 늑대처럼 입이 비죽 나오고 이빨이 날카로워지지 않겠어? 음식을 뜯어먹어야 하잖아.”
“직립 보행에 대한 이점이 전혀 없겠군.”

 

브레인스토밍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혼자서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때는 도저히 떠오르지 않던 기발한 생각들이 함께 둘러앉아 조금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여기저기에서 엉뚱한 생각의 단초들이 튀어나왔다. 뻔하거나 따분해 보이던 소재들도 그룹 토의를 거치고 나면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는 멋진 글감으로 재탄생했다.


브레인스토밍의 결과물은 우리 중 한 명이 정리해 에세이로 만들어 왔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모여 함께 그 글을 읽고 조언하고 고쳐 가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덧붙였다. 퇴고를 할 때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날카로운 지적과 따끔한 조언이 여기저기서 날아와 원고를 낱낱이 해부했고, 그럴 때면 나의 머릿속은 친구들에게 벌거벗겨진 채로 적나라하게 공개되었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깊이 고민했는지 속속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퇴고 과정에서 나온 다른 학생들의 지적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많았다. 내가 쓴 글에 담긴 진짜 의도를 친구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억울함이 치밀어 오를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대체로 글에 대한 비평이 날카로우면 날카로울수록 그것은 진실에 가까웠다. 미국의 소설가 스티븐 킹도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글을 쓸 때에는 문을 닫고 글이 완성되면 문을 활짝 열어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을 읽혀라. 언제나 독자는 옳고 저자는 틀렸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의 《있다면? 없다면!》원고는 퇴고의 모진 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다듬어졌다.


모임을 거듭하여 어느 정도 초고가 완성됐을 때, 우리는 제주도로 퇴고 여행을 떠났다. ‘꿈꾸는 과학’ 최초의 글쓰기 여행이었다. 중문 바닷가 근처에 있는 작은 호텔에 자리를 잡고, 두 조로 나누어 밤을 새 가며 글을 쓰고 또 썼다. 아침이면 모두 모여 밤새워 썼던 글을 돌려 읽었다. 그리고 다시 퇴고, 퇴고, 또 퇴고.


왜 볼 때마다 고칠 부분이 나올까? 왜 볼 때마다 더 좋은 문장이 떠오를까? 쓰면 쓸수록, 고치면 고칠수록, 글에서 모자란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막막함이란 글 쓰는 감각을 서서히 익혀 가던 우리의 성장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에게 책으로 엮어도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쓴다는 것이 너무나 거대한 목표로만 느껴졌다. 《있다면? 없다면!》원고에 대한 퇴고는 제주도에서 돌아온 뒤에도 계속되었다.


《있다면? 없다면!》은 분명 과학책이지만,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과학이라는 이름의 상식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위대한 과학은 과학적 상상력과 비판적 사고로 이루어진다.


“멀리 가기를 마다하지 않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는 T.S. 엘리엇의 말처럼, 과학적 상상력은 우리를 당대의 과학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과학적 합리성으로 길들여진 비판적 사고만 잃지 않는다면 엉뚱한 함정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세상은 존엄한 상상력의 산물이다.”라는 미국의 문학가 윌리스 스티븐스의 말처럼, 이런 노력들이야말로 ‘백 년 전 사람들에게는 엉뚱하게만 여겨질’ 지금과 같은 세상을 만들어 낸 힘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그리고 우리가 이 책을 쓰면서 나누었던 브레인스토밍 과정을-아직 과학이라는 상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청소년들에게 각별히 권해 주고 싶다.


놀랍게도, 현실과 동떨어진 엉뚱한 상상력으로 가득 찬 이 책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새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다. 왜 하늘에선 주스비가 내리지 않는지, 왜 얼굴은 음각이면 안 되는지, 왜 입이 배꼽 옆으로 이사 가면 안 되는지를 따져 묻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세상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데에는 나름의 과학적인 이유가 존재하고 있었다.


《있다면? 없다면!》은 ‘꿈꾸는 과학’의 수많은 손을 거쳐 완성됐다. 1기였던 김민경, 김송희, 김승희, 김태양, 서재형, 이용일, 정유진, 조덕상은 모든 원고의 브레인스토밍에 참여하고 초고를 썼으며 글의 뼈대를 잡았다. 2기였던 김호식, 박찬석, 안성희, 이언경, 장승연, 전헤리, 최승원, 홍성준은 마무리 퇴고 작업에 열심히 참여해 1기의 부족한 점을 채워 주었다.


《있다면? 없다면!》은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꿈꾸는 과학’모두의 아이디어를 흡수했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며 초고를 썼던 사람조차 몰라볼 정도의 다른 글로 변신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글 한 편 한 편은 어느 한 사람의 글이 아닌 ‘꿈꾸는 과학’ 모두의 집단 지성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다시 읽어보면 여전히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글이지만, 이 글에는 투박하지만 거칠게 꿈틀거렸던 우리의 젊음이 담겨 있다.


누군가 우리에게 “당신은 20대 때 무얼 했나요?”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기꺼이 “책을 읽고 글을 썼습니다.”라고 답하겠다. 계통 없이 책을 읽었고 혼자만의 몽상에 흥분했으며 질그릇처럼 투박한 글을 썼지만, 어쨌든 우리는 ‘꿈꾸는 과학’을 만났고 20대의 절반을 책과 글로 채웠다. 그렇게 풋사과처럼 시큼한 ‘날것의 젊음’을 공유했던 우리들이 빚어낸 첫 작품이 바로 이 책 《있다면? 없다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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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마크 트웨인은 세계 명작, 즉 고전(古典)을 “누구나 한번쯤 읽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은 책”으로 정의한 바 있다. 명작의 가치를 폄하했다기보다는 고전에 대한 부담이 자칫 독서 자체에 흥미를 잃는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리라. 

《국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 명작 1·2》는 이와 같은 명작 읽기의 당위성과 부담감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고전의 지혜를 발판 삼아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계관과 인생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작가의 삶과 작품의 문학사적 의미, 작품 탄생의 시대적 배경과 현재적 의미 등 기본적인 작품 분석에도 물론 충실하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작품을 여러 가지 관점으로 살펴보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 앎과 삶을 자연스레 연계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데까지 그 범위를 확장시킨다. 옛 시대의 고전을 오늘날의 우리가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가스통 르루, 제인 오스틴에서 너대니얼 호손까지  

《국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 명작 1》에서는 매혹적인 줄거리와 뮤지컬, 영화 등의 공연 예술로 널리 알려진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이 품은 의미 등을 파헤치는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담은 스탕달의 《적과 흑》,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과 《올리버 트위스트》, 아서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가의 개》와 허버트 조지 웰스의 《우주 전쟁》 등을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국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 명작 2》에서는 포경이라는 소재에 인간과 자연의 위대함을 절묘하게 녹여내 선구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인정받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인간의 이중적인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지킬 박사와 하이드》, 무모하고 어리석은 이상주의를 다루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순수하고 열정적인 주인공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 보게 만드는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 19세기 미국 청교도 시대의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은 《주홍 글씨》등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글 읽기와 삶 읽기

가스통 르루가 1910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파리의 오페라 극장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오페라와 유령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단숨에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신비롭고 흥미진진한 줄거리 설명에 그치지 않고, 소외된 사람에 대한 사회적 배려의 필요성, 편협한 이분법적 시각의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개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까지 나아간다.  

 
《오페라의 유령》은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깊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지금도 오페라 극장의 지하 어둠 속에서 가면으로 자신을 가리고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없는지……. …… (중간 생략)……

성적인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받는 동성애자들이 있다. 장애인 복지와 고용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만들어진 지도 이미 오래이건만, 장애우들은 지금도 인간적인 권리와 복지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

이 시대의 또 다른 에릭인 외국인 노동자들은 힘없는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온갖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하소연할 데조차 없다. 또 혼혈인들은 어떤가? 같은 혼혈인이어도 피부색에 따라 달리 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과연 이것이 21세기의 모습인가? 이런 모습으로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관심과 편견으로 19세기의 에릭처럼 그들이 어둠 속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게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에릭은 이제 오페라 극장의 지하가 아니라 무대 위로 당당하게 올라와야 한다. 사회적 소수자, 힘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에게 씌운 가면을 벗겨 주어야 할 책임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
2009년 2월에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도시 빈민들을 찾았을 때 했다는 말씀이 귓가를 울린다.
“정부와 대기업 또는 어떤 개인일지라도 이 세상에 집 없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호화 주택을 짓거나 가질 권리가 없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그 말씀대로 살고 있을까?
 ―1권 ‘오페라의 유령_그에게 허락되었던 단 한 번의 사랑’ 34~35쪽에서  
 
인간과 시대를 비추는 거울

유명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칭송해 마지않았던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읽고 나서도 그 숨은 의미를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위대한 개츠비》가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작품이 담고 있는 시대의 풍속, 주인공들의 변화하는 내면 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저 멀리 조그맣게 반짝이는 단 하나의 초록색 불빛을 바라보며 끝없는 어둠 속을 헤쳐 나가는 개츠비. 아무리 작은 가능성이더라도 삶의 희망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과 그 희망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삶의 자세는 기회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미국의 꿈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개츠비의 위대성은 미래에 대한 이상과 꿈을 포기하지 않는 데에 있다.

물론 개츠비의 꿈에 더러운 먼지가 끼어 있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를 사랑하고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를 돌이키느라 그의 꿈은 변질되고 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위대한 개츠비》가 사랑을 받는 이유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혼돈의 시대, 광란의 시대라 불리는 1920년대를 맞아 미국의 꿈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일러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츠비의 위대함과 그 한계를 통해 1920년대를 미국의 비판적 시각으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미국 최고의 소설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2권 ‘위대한 개정에 빠지다’ 93~94쪽에서

팁 _ 사소해 보여도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히스클리프가 꽃남인 까닭은?
히스(heath)는 쌍떡잎식물 진달래목 진달랫과 에리카 속의 총칭으로 ‘에리카(erica)’라고도 불린다. erica는 그리스 어의 ereike(깨뜨리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말로, 본래의 의미는 밝지 못하다는 뜻이다. 높이는 대개 15~30센티미터인데, 간혹 3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다. 줄기에는 잔가지가 많이 나 있으며, 떨기 모양으로 소복하게 난 것과 쭉 뻗은 것이 있다. 잎은 3~6개가 돌려나는데, 직선 모양인 것도 있고 달걀 모양인 것도 있다. 뒷면에 깊은 홈이 한 줄 있다. 가지 끝에는 여러 개의 꽃이 돌려나거나 작은 꽃이 옹기종기 모여서 달린다. 꽃받침은 종 모양이며, 끝이 네 개로 갈라진다.

꽃 빛깔은 백색·분홍색·적색·홍자색 등 여러 가지가 있다. 1개의 암술에 8개의 수술이 있는데, 수술은 짙은 흑자색이다. 종에 따라 봄·여름·가을 등에 핀다. 서유럽·지중해 연안·아프리카 등지에 분포하며, 현재까지 500여 종이 알려져 있다. 

이 꽃에 얽힌 전설이 하나 있다. 한 전쟁 영웅이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기 직전 전우에게 자줏빛 히스꽃을 내밀며 자신의 연인에게 사랑의 증표로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자줏빛 히스를 건네받은 여인은 그의 죽음을 알아차리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때 그 눈물이 히스에 닿자 꽃 색깔이 흰빛으로 변한다. 그 후로 하얀색 히스는 성실한 사랑의 상징으로 불린다.
이쯤 되면 수수께끼가 간단히 풀린다. 히스클리프가 꽃남인 까닭? 순전히 이름 때문이다!
―1권 ‘폭풍의 언덕_복수심에 사로잡힌 사나이, 사랑과 증오의 폭풍을 만나다’ 86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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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국민작가 아지즈 네신은 풍자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풍자는 세계를 웃음거리가 되는 것으로부터 구제해 준다.”

 아지즈 네신의 풍자세계로 들어가 보실까요 ^^ 

 



 전설의 도둑고양이가 돌아왔다!

쿵수 마을 사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 고양이 충반. 사실 충반에게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도둑질이었다. 충반의 감쪽같은 도둑질 솜씨로 마을 사람들이 입는 피해가 극심했지만, 사람들은 변함없이 충반을 사랑해 주는데, 거기에는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었다.  

사실 대개의 고양이는 도둑질을 한다. 하지만 충반처럼 혀를 내두를 만큼 지독한 얌생이꾼은 이제껏 없었다. 그런데도 쿵수 사람들이 충반의 도둑질에 마냥 관대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이곳에서는 훔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다. 정작 수치스러운 일은 훔치다가 들키는 것이었다. 도둑질을 하다 들킨 사람들은, 어설프게 굴다가 일을 제대로 완수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마을에서 크게 비웃음을 샀다. 심지어 이 마을에서는 도둑질을 못하는 남자는 아내를 건사할 능력이 없다고 해서 딸을 주지도 않았다.

이런 이유로 충반은 쿵수 마을에서 영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다름 아닌 감쪽같은 도둑질 솜씨로.
  ……(중략)……
충반이 죽은 후 마을은 정적에 휩싸였다. 하지만 두 달 후, 기적이 일어났다. 가엾은 충반의 무덤 위에 위풍당당한 건물이 우뚝 솟았기 때문이었다.
  국·세·청!
쿵수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국세청 건물을 가리키며 한마디씩 했다. “충반의 혼이 부활했어!”       
                                ―19~21쪽 <도둑고양이의 부활> 중에서
 
당신의 적은 누구인가?  

베베리우스는 원로원과 정당에 상당히 자부심을 가진 순수 혈통 로마 인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고, 연극을 보고 평안한 하루를 보내던 그에게 갑작스레 위기가 닥쳤다. 바로 아들 카바키우스가 체포된 것! 그는 아들의 체포가 부당하다며, 이 일의 근원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일인가, 페루스? 무엇 때문에 내 아들을 체포하려는 거지?”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네. 들리는 소문으로는, 자네 아들이 시를 썼다고 하더군. 그 시에 ‘로마로 가는 길이 닫혔다’라는 구절이 있다던데.”
“그게 무슨 잘못인가? 하수구를 온통 파헤치는 바람에 모든 길목이 막힌 건 사실이잖나?”
“잘못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모든 사람이 아는 사실이라 해도 대놓고 얘기하면 종종 죄가 되는 수가 있잖은가? 메르시케키우스가 어쩌다 살해되었는지 기억하게나. 로마가 공화 정치를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도, ‘로마는 공화국이다.’라고 외쳤기 때문에 목숨을 잃었네.”                 

―40쪽 <당신을 선출한 죄> 중에서  

 개를 사랑한 카슴, 뇌물을 사랑한 재판관

  카슴은 열네 해 동안 함께 지냈던 개 카라바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카라바쉬의 장례식을 성대하게 치르기로 한다. 카슴은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고 거짓말을 하는데, 관을 매장하려는 순간, 카라바쉬의 꼬리 때문에 들통이 난다. 율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재판관 앞에 끌려가 선처를 바라는 카슴. 그는 카라바쉬가 대단히 훌륭한 개였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자신이 행한 선행도 카라바쉬가 한 것이라고 둘러댄다. 카슴을 윽박지르던 재판관은 카라바쉬가 재판관 앞으로 금화 오백 냥을 남겼다는 유언의 내용을 듣고 한순간에 태도를 바꾼다. 

“이 미친놈아! 너는 다른 사람들이 너처럼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하느냐? 어떻게 개가 유언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재판관님, 제발 믿어 주십시오. 정말로 유언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라고 했습니다.”
카슴은 주춤주춤하더니 허리춤에서 쌈지를 꺼냈다. 
“그리고 이 금화 오백 냥을 재판관님께 드리라고 부탁했습니다.”
카슴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재판관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신의 이름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겠네, 카슴 선생! 좀 더 말해 보시오. 고인이 무슨 말을 더 남겼나요? 제발 하나하나 다 읊어 주시오. 고인의 유언을 모조리 실행합시다. 그건 종교적으로 보나 뭘로 보나 선행 중의 선행이지 않습니까?”
                                    -84쪽 <개가 남긴 한 마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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