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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가장 무모한 그러나 행복한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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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30 09:24
미약하게 시작한 일이 창대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민희 씨가 두 번에 걸쳐 단행한 유럽 음식 여행이 그러했다. 처음에는 치즈가, 그 다음에는 파스타가 목적이 되어 여행을 이끌었다. 두 번의 여행 이후 도합 700페이지에 이르는 두 권의 음식 기행 서적이 출간됐다. '민희, 치즈에 빠져 유럽을 누비다'와 '민희, 파스타에 빠져 이탈리아를 누비다'이다. 치즈와 파스타를 좋아하는 평범한 여행가는 어느새 베스트셀러 여행작가로, 인터넷 파워 블로거로, 문화센터 인기 강사로 지경을 넓혔다.
◆캐나다로 가출하기
이민희식 여행법은 낯설다. 유명 관광지의 고색창연한 건축물이나 예술품은 뒷전이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보다 뒷골목 시장의 치즈 가게에 더 큰 의미를 둔다.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 들렀을 때도 명품 브랜드나 화장품 코너가 아닌 지하층 식품 매장으로 향했다. 목적이 이끄는 여행은 관광 명소 순례의 일반적인 여행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녀의 남다른 여행법은 어쩌면 처음부터 예정된 것이었는지 모른다. 첫 해외여행이 가출이나 다름없었으니 말이다. 4남매 중 막내이고 바람 불면 쓰러질 것 같은 몸집인지라 집안에선 늘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로 여겨졌다. 겁이 많아 불을 켜놓고 잠자리에 드는 막내딸이 혼자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가족 전체가 심사숙고할 문제였다. 반대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예약해놓은 항공권 출발일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결국, 어느 가을날 책상 위에 장문의 편지를 올려놓고 가출을 감행한다. 그리고 하루 뒤 캐나다 밴쿠버 공항에서 공중전화로 집에 연락을 취한다. '파란만장 미스 리'의 여행기가 첫 페이지를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캐나다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손엔 김포공항에서 출국하며 구입한 가이드북 '캐나다 100배 즐기기'와 20만 원이 전부였다. 노숙을 하지 않는 한 열흘도 버티기 힘든 금액이었다. 여행보다도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다행히 평소 닦아놓은 영어 구사력 덕분에 카페 점원으로 채용돼 경비를 마련할 수 있었다.
캐나다에서 일과 여행을 병행하며 다섯 달을 보낸 후 유럽으로 향했다. 한 달 남짓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를 여행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거의 반년 만의 귀환이었다. 통 크게 결행한 가출은 몇 가지 수확을 남겼다. 식구들은 자급자족하며 지구를 한 바퀴 돌아온 막내에게 성인식에 준하는 환영식을 베풀어주었다. 그야말로 '막내의 재발견'이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냈다는 것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치즈에 관한 여행 책을 써보고 싶었어요. 파리 콩코르드 광장 부근의 치즈 가게가 계기가 됐죠. 진열대 위 치즈들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구경했어요. 별천지 같았어요. 치즈를 테마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만 4년. 거듭난 막내딸이 스스로 하고픈 일을 이루기 위해 쏟아 부은 준비 기간이다. 계절이 16번 바뀌는 동안 사진과 운전을 배우고 유럽 문화와 치즈에 관한 책을 읽었다. 또 카메라와 노트북을 장만하고 은행 계좌에 3천만 원을 모았다. "그래, 이쯤 하면 됐지?" 서른 살 생일날 아침에 사표를 썼다.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치즈 여행을 떠나겠다는 선언에 식구들 모두 반대표를 던졌다. 당시 파리에서 생활하던 선배 언니도 "치즈 농장이 어디 붙어 있는 줄 알고 찾아가겠다는 거야?"라며 극구 말렸다. 하지만 거사는 망설임 없이 단행됐다.
◆치즈와 파스타에 빠져들다
유럽 치즈 탐사는 2006년 1월 시작됐다. 한겨울 새벽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내렸다. 불어는 전혀 몰랐고 손에 쥔 것은 주한 프랑스,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받아 온 두 나라의 치즈 공장 리스트뿐이었다. 가출 여행 후 4년이 흐르는 동안 무모함도 무르익었다.
파리에선 석 달을 머물렀다. 선배 언니의 소개를 받아 교민 가정의 베이비시터로 일하면서 불어 학원을 다녔다. 또 보물찾기하듯 파리 곳곳의 치즈 가게를 매일 찾아다녔다. 그중 좁고 긴 골목에 형성된 무프타(Mouffetard) 시장은 치즈 가게 주인들이 귀찮아할 만큼 자주 들렀다.
불어와 프랑스라는 나라가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 본격적인 치즈 여행 채비를 꾸렸다. 처음에는 기차와 버스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치즈로 이름난 마을 중 상당수가 자가용이 아니면 찾아가기 힘든 위치였다. 결국, 예정에 없던 자동차 캠핑으로 방향이 정해졌다.
자동차 캠핑은 지금까지의 결정 중 가장 무모한 축에 속했다. 어떤 날은 추위에 손이 곱아 일기조차 쓸 수 없었다. 고단함에 향수병이 더해져 사흘 중 이틀은 울면서 보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몸도 마음도 빠르게 적응해갔다.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하루 600~700㎞ 운전이 대수롭지 않았고 10분이면 텐트를 칠 수 있었다.
치즈에 이은 파스타 탐사는 2008년 3월에 시작됐다. 계기는 치즈와 동일했다. 2007년 어느 여름날 동네 마트에 진열된 파스타에 홀려 30분간 넋이 나가는 경험을 한 후 이탈리아 여행을 구상했다. 첫 여행에서 겪은 고된 시간들이 떠올랐지만 결국 다시 한 번의 모험을 선택했다.
"이번에도 목적은 분명했어요. 이탈리아 시골의 허름한 부엌에서 양손 가득 밀가루를 묻힌 할머니가 만든 진짜 파스타를 보고 싶었어요. 파스타가 그것을 함께 만들어 먹는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직접 확인해 전해주고 싶었어요."
'무모한 호기심 대장'이 치즈와 파스타 이후 탐사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답은 ‘레스토랑 주방’이다. 치즈가 어떻게 음식에 접목되는지, 한국인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파스타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샐러드, 뷔페, 브런치, 디저트 등 음식에 대해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서울 강남 파크 하얏트 서울의 양식당 코너스톤(Cornerstone)에 주방 출입 비자를 신청했다. 그리고 총지배인, 총주방장과의 인터뷰를 거쳐 비자를 얻어냈다.
호텔 주방 여행은 일정에 빈틈이 없었다.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음식과의 전쟁이 벌어지는 공간이었다. 주방복을 입은 종군기자는 요리사들의 곁에서 음식이 탄생하는 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사진을 찍었다. 물론, 직접 전투에 뛰어들어 음식 재료를 다듬는 일도 맡았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날, 가냘픈 팔목에는 뜨거운 오븐에 데인 화상 자국들이 선명했다. 손바닥에도 날카로운 랍스터 껍질에 찔린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무엇 일이든 처음에는 많이 두렵고 실수도 있어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용기가 나지 않을 때도 있고요. 그렇게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할 때 제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은 '우선 해 보자'예요. 지금까지 그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사진/김주형 기자(kjhpress@yna.co.kr)ㆍ글/장성배 기자(up@yna.co.kr)
(대한민국 여행정보의 중심 연합르페르, Yonhap Rep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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