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마크 트웨인은 세계 명작, 즉 고전(古典)을 “누구나 한번쯤 읽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아무도 읽고 싶어 하지 않은 책”으로 정의한 바 있다. 명작의 가치를 폄하했다기보다는 고전에 대한 부담이 자칫 독서 자체에 흥미를 잃는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리라. 

《국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 명작 1·2》는 이와 같은 명작 읽기의 당위성과 부담감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소년들이 고전의 지혜를 발판 삼아 건강하고 아름다운 세계관과 인생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작가의 삶과 작품의 문학사적 의미, 작품 탄생의 시대적 배경과 현재적 의미 등 기본적인 작품 분석에도 물론 충실하지만,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의 작품을 여러 가지 관점으로 살펴보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아 앎과 삶을 자연스레 연계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데까지 그 범위를 확장시킨다. 옛 시대의 고전을 오늘날의 우리가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가스통 르루, 제인 오스틴에서 너대니얼 호손까지  

《국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 명작 1》에서는 매혹적인 줄거리와 뮤지컬, 영화 등의 공연 예술로 널리 알려진 가스통 르루의 《오페라의 유령》이 품은 의미 등을 파헤치는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담은 스탕달의 《적과 흑》,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과 《올리버 트위스트》, 아서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가의 개》와 허버트 조지 웰스의 《우주 전쟁》 등을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국어 선생님과 함께 읽는 세계 명작 2》에서는 포경이라는 소재에 인간과 자연의 위대함을 절묘하게 녹여내 선구적이고 독창적인 작품으로 인정받는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인간의 이중적인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지킬 박사와 하이드》, 무모하고 어리석은 이상주의를 다루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없이 순수하고 열정적인 주인공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되돌아 보게 만드는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 19세기 미국 청교도 시대의 모순을 날카롭게 꼬집은 《주홍 글씨》등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글 읽기와 삶 읽기

가스통 르루가 1910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파리의 오페라 극장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아, 오페라와 유령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단숨에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신비롭고 흥미진진한 줄거리 설명에 그치지 않고, 소외된 사람에 대한 사회적 배려의 필요성, 편협한 이분법적 시각의 위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개인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까지 나아간다.  

 
《오페라의 유령》은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깊이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지금도 오페라 극장의 지하 어둠 속에서 가면으로 자신을 가리고 살아가는 사람은 과연 없는지……. …… (중간 생략)……

성적인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는 이유로 손가락질을 받는 동성애자들이 있다. 장애인 복지와 고용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이 만들어진 지도 이미 오래이건만, 장애우들은 지금도 인간적인 권리와 복지의 사각 지대에 놓여 있다.

이 시대의 또 다른 에릭인 외국인 노동자들은 힘없는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온갖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하소연할 데조차 없다. 또 혼혈인들은 어떤가? 같은 혼혈인이어도 피부색에 따라 달리 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과연 이것이 21세기의 모습인가? 이런 모습으로 과학 기술을 발전시키고,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관심과 편견으로 19세기의 에릭처럼 그들이 어둠 속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게 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 봐야 한다. 에릭은 이제 오페라 극장의 지하가 아니라 무대 위로 당당하게 올라와야 한다. 사회적 소수자, 힘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에게 씌운 가면을 벗겨 주어야 할 책임은 바로 우리에게 있다.
2009년 2월에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이 도시 빈민들을 찾았을 때 했다는 말씀이 귓가를 울린다.
“정부와 대기업 또는 어떤 개인일지라도 이 세상에 집 없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호화 주택을 짓거나 가질 권리가 없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그 말씀대로 살고 있을까?
 ―1권 ‘오페라의 유령_그에게 허락되었던 단 한 번의 사랑’ 34~35쪽에서  
 
인간과 시대를 비추는 거울

유명한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칭송해 마지않았던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읽고 나서도 그 숨은 의미를 쉽게 발견하지 못한다. 그러나 《위대한 개츠비》가 사랑받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작품이 담고 있는 시대의 풍속, 주인공들의 변화하는 내면 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저 멀리 조그맣게 반짝이는 단 하나의 초록색 불빛을 바라보며 끝없는 어둠 속을 헤쳐 나가는 개츠비. 아무리 작은 가능성이더라도 삶의 희망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과 그 희망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삶의 자세는 기회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미국의 꿈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개츠비의 위대성은 미래에 대한 이상과 꿈을 포기하지 않는 데에 있다.

물론 개츠비의 꿈에 더러운 먼지가 끼어 있었던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를 사랑하고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를 돌이키느라 그의 꿈은 변질되고 만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위대한 개츠비》가 사랑을 받는 이유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혼돈의 시대, 광란의 시대라 불리는 1920년대를 맞아 미국의 꿈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고, 절대로 잃어버려서는 안 될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일러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츠비의 위대함과 그 한계를 통해 1920년대를 미국의 비판적 시각으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미국 최고의 소설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2권 ‘위대한 개정에 빠지다’ 93~94쪽에서

팁 _ 사소해 보여도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히스클리프가 꽃남인 까닭은?
히스(heath)는 쌍떡잎식물 진달래목 진달랫과 에리카 속의 총칭으로 ‘에리카(erica)’라고도 불린다. erica는 그리스 어의 ereike(깨뜨리다)라는 뜻에서 유래된 말로, 본래의 의미는 밝지 못하다는 뜻이다. 높이는 대개 15~30센티미터인데, 간혹 3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다. 줄기에는 잔가지가 많이 나 있으며, 떨기 모양으로 소복하게 난 것과 쭉 뻗은 것이 있다. 잎은 3~6개가 돌려나는데, 직선 모양인 것도 있고 달걀 모양인 것도 있다. 뒷면에 깊은 홈이 한 줄 있다. 가지 끝에는 여러 개의 꽃이 돌려나거나 작은 꽃이 옹기종기 모여서 달린다. 꽃받침은 종 모양이며, 끝이 네 개로 갈라진다.

꽃 빛깔은 백색·분홍색·적색·홍자색 등 여러 가지가 있다. 1개의 암술에 8개의 수술이 있는데, 수술은 짙은 흑자색이다. 종에 따라 봄·여름·가을 등에 핀다. 서유럽·지중해 연안·아프리카 등지에 분포하며, 현재까지 500여 종이 알려져 있다. 

이 꽃에 얽힌 전설이 하나 있다. 한 전쟁 영웅이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기 직전 전우에게 자줏빛 히스꽃을 내밀며 자신의 연인에게 사랑의 증표로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자줏빛 히스를 건네받은 여인은 그의 죽음을 알아차리고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때 그 눈물이 히스에 닿자 꽃 색깔이 흰빛으로 변한다. 그 후로 하얀색 히스는 성실한 사랑의 상징으로 불린다.
이쯤 되면 수수께끼가 간단히 풀린다. 히스클리프가 꽃남인 까닭? 순전히 이름 때문이다!
―1권 ‘폭풍의 언덕_복수심에 사로잡힌 사나이, 사랑과 증오의 폭풍을 만나다’ 86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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