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브레인 - 삶에서 뇌는 얼마나 중요한가?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전대호 옮김 / 해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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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우리 신체 기관 중에 가장 비밀도 많고 신기한 기관은 뇌가 아닐까 싶구나. 사람이 죽었다고 판단하는 기준에 있어서도 일반적으로 심장이 멈췄을 때를 죽었다고 하지만, 심장은 뛰어도 뇌가 죽었을 경우를 죽었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어. 그만큼 뇌라는 것이 우리 신체에서 중요한 부분이고 말이야. 그래서 단단한 머리뼈로 보호할 수 있도록 진화된 거겠지. 그런 뇌에 대한 비밀을 풀기 위한 연구는 오랫동안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 뇌가 아닐까 싶구나.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뇌에 대한 책들도 시중에 엄청 많이 나와 있고, 아빠도 그런 책들을 여럿 읽어 보았단다.

이번에 읽은 <더 브레인>이라는 책도 뇌에 관한 책이란다. 지은이는 데이비드 이글먼이라는 뇌과학자인데, 뇌에 관한 책들을 여럿 쓰신 분이라고 하는구나. <더 브레인>은 미국과 영국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영된 TV 방송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고 했어. TV 프로그램을 책으로 엮은 것이라서 그런지 중간중간 사진들도 많이 나오고, 어렵지 않게 설명되어 있어 읽기 편했단다. 정말 뇌라는 것은 신기하구나. 1.4 킬로그램 밖에 되지 않는 쭈글쭈글한 것이 우리 몸을 통제하고 우리 정신 세계를 구축하고 인간의 존재를 만들어내니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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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신경과학은 내가 매일 하는 예사로운 일이지만, 지금도 나는 인간의 뇌를 손에 받쳐들 때마다 경외감에 빠진다. 뇌의 상당한 무게(성인의 경우 1.4킬로그램), 기이한 균질성(꼭 탄탄한 젤리 덩어리 같다), 쭈글쭈글한 겉모습(둥그스름한 전체에 깊은 골들이 패여 있다)을 살펴보고 나면, 뇌가 순전히 물리적인 대상이라는 점이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 보잘것없는 물질 덩어리와 그것이 산출하는 정신적 과정들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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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은 다른 동물과 달리 머리가 커서, 태어날 때 머리는 미성숙한 상태에서 태어난다고 알고 있어. 태어난 이후에도 뇌는 계속 성장하고, 20대가 넘어서야 완전한 뇌가 된다고 들었어. 그래서 뇌를 이루는 주요 요소인 시냅스가 계속 늘어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시냅스의 개수는 아기일 때가 최대치라고 하는구나. 처음 알게 된 사실이야. 뇌가 자란다는 것은 최대치에 이른 시냅스의 개수를 적절하게 제거하면서 최적화하는 과정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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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이제 아기의 스냅스 개수는 최대치에 도달했으며, 그 개수는 앞으로 아기에게 필요한 개수보다 훨씬 더 많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연결들의 만발 대신에 신경학적 가지치기가 새로운 전략으로 채택된다. 당신이 성숙하는 동안, 당신이 가진 시냅스들의 50퍼센트가 감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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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의 동작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걸까? 수많은 시냅스와 뉴런은 어떻게 데이터를 저장할 수 있을까? 컴퓨터의 저장디스크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원리를 알고 있다면 뇌라는 것에 데이터가 저장되는 것은 방식은 정말 신비롭단다. 그리고 왜 어떤 기억은 오랫동안 기억되고, 어떤 기억은 금방 잊혀지고 말이야.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이런 뇌를 구현하기는 어려울 거야. 이 책에서 말하길 뇌의 동작을 도시에 비유했단다. 도시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상호 작용을 하면서 작동하는 거처럼 뇌도 여러 뉴런들의 상호작용으로 작동한다고 말이야. 그런 상호작용들이 우리가 지금 행동하고 생각하고 보고 맛보고 냄새 맡는 등 모든 몸의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거라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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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뇌의 작동도 마찬가지다. 뇌의 작동은 한 지점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뇌의 어떤 구역도 격리되어 홀로 작동하지 않는다. 뇌의 도시에서 모든 일은 거주지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한다. 그 상호작용은 온갖 규모에서 일어난다. 국소적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먼 거리를 가로질러 일어나기도 한다. 열차들이 도시로 들여온 천연자원과 직물이 가공되어 도시의 경제에 편입되듯이, 감각기관들에서 유래한 미가공의 전기화학적 신호들은 뉴런들로 이루어진 초고속도로로 운반된다. 그러면서 그 신호들은 가공과 변환을 거쳐 우리가 의식하는 실재에 편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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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상호작용이라는 것이 뇌의 뉴런들 사이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란다. 뇌와 뇌도 서로 상호작용을 하여 뇌를 변화시키고 있어. 그러니까 너희들의 뇌와 아빠의 뇌가 서로 영향을 준다는 것이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도 뇌가 그렇게 다른 뇌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특징이 있어서 가능한 거야. 너희들의 뇌 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이 가장 가까이 있는 엄마와 아빠의 뇌라는 것이구나. 갑자기 책임감이 확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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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

전통적으로 뇌 연구는 고립된 뇌를 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이 접근법은 엄청나게 많은 외 회로들이 다른 뇌들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우리는 깊은 수준에서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는 우리의 가족들, 친구들, 동료들, 거래 상대들이 중첩되어 이룬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구성된다. 주위의 모든 곳에서 우리는 관계의 형성과 결렬, 친밀한 유대, 강박적인 사회연결망 형성, 충동적인 동맹을 본다. 이 모든 사회적 결합을 위한 접착제는 뇌 속의 특별한 연결망들에서 생산된다. 어지럽게 퍼져 있는 그 연결망들은 타인들을 주시하고, 타인들과 소통하고, 타인들의 고통을 느끼고, 타인들의 의도를 파악하고, 타인들의 감정을 읽어낸다. 우리의 사회생활 솜씨는 뉴런 회로 속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 그 회로를 이해하는 일은 사회신경과학이라는 신생 분야의 기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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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공지공 로봇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란다. SF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도 인공지공 로봇을 소재로 한 것들이 많아. 과학이 발달하게 되면 정말 인간과 비슷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 수 있을까? 다른 기관들은 비슷하게 만들 수 있는데, 인간의 뇌를 잘 구현할 수 있을까? 계산능력 데이터처리능력 판단능력 등은 이미 인간의 뇌를 넘어섰어. 인공지능의 바둑실력을 이제는 인간이 이길 수 없다고 하잖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행하는 인간의 능력을 컴퓨터로 구현할 수 있을까. 걷거나 달리거나 자전거 타는 것들은 무의식적으로 하는데, 컴퓨터가 하게 되면 수많은 계산을 통해서 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을 구현할 수 있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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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그러니 다음번에 사람이 걷거나 달리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보거든, 잠깐 멈춰서 인체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그 동작을 완벽하게 지휘하는 무의식적 뇌의 능력에도 감탄할 시간을 가지기 바란다. 우리의 가장 기초적인 동작들의 복잡한 세부 사항은 수조 회의 계산에서 나온 결과다. 그 모든 계산은 당신이 볼 수 없을 만큼 작은 공간적 규모에서 당신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일어나는 신호 전달의 형태를 띤다. 지금까지 제작된 로봇들의 움직임은 인간의 신체 동작에 훨씬 못 미친다. 게다가 슈퍼컴퓨터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하는 반면에, 우리의 뇌는 놀라운 에너지 효율을 자랑한다. 인간 뇌에 에너지 소비량은 대략 60와트 전구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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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 머릿속의 데이터를 뽑아 내어 디스크에 저장하는 이야기가 나오곤 한단다. 과연 이 기술이 가능할까? 이런 것 또한 시도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우리 머릿속의 의식을 데이터로 뽑아서 저장이 가능하게 되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지은이는 다른 별로 가는 여행이 가능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구나. 그런데 아빠가 생각하기에 이건 정말 불가능해 보이는구나. 가능하더라도 인간의 멸종이 더 빠르지 않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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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5)

만일 의식의 업로드가 가능하다고 밝혀진다면, 다른 별들로 가는 여행의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우리 우주에는 제각각 1000억 개의 별들을 거느린 은하가 최소 1000억 개나 있다. 우리는 그 별들 주위를 도는 외계 행성들을 이미 수천 개 발견했다. 그것들 중 몇몇은 지구와 꽤 유사하다. 문제는 우리가 현재 지닌 생물학적 몸으로는 그 외계 행성들로 가는 여행이 영영 불가능하리라는 점이다. 우리가 그토록 먼 시공을 가로질러 그곳들에 도달할 전망이 전혀 없다. 그러나 당신이 디지털화되어 있다면, 당신의 시뮬레이션을 중단시킨 상태로 먼 우주로 발사한 다음에 1000년 후 어느 외계 행성에 도착할 때 재가동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의식은 당신이 지구에서 발사된 다음에 곧바로 새 행성에 도착했다고 느낄 것이다. 의식을 업로드하는 기술의 등장은 웜홀의 발견과 마찬가지로 일 것이다. 그 기술은 우리가 우주의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주관적인 관점에서) 순식간에 이동하는 것을 가능케 해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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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 중에 일부를 소개해 주었는데, 아빠가 소개하지 않은 내용들 중에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 많았단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뇌의 동작에 대해 몰랐던 점을 알게 된 것도 있지만, 뇌에 대해 더욱 궁금해지더구나. 이 책이 다큐멘터리를 바탕으로 한 책이라고 했잖아. 그 다큐멘터리 원본을 볼 수 있는지 함 찾아봐야겠구나. , 그럼은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뇌과학은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다.

책의 끝 문장: 우리가 누가 될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요컨대 그 생일잔치에 대한 당신의 기억은 이미 퇴색하기 시작했다. 왜 그럴까? 첫째, 당신이 보유한 뉴런의 개수는 유한하며, 모든 뉴런은 여러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각각의 뉴런이 때에 따라 다른 연결망에 참여한다. 그 생일잔치에 대한 기억을 담당하는 ‘생일’ 뉴런들이 다른 기억 연결망에 동원되는 일이 거듭됨에 따라, 그 생일잔치 기억은 퇴색한다. 기억의 적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기억들이다.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유한한 개수의 뉴런들 사이에서 새로운 연결망이 형성되어야 한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기억이 퇴색했는데도 당신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신은 그날의 장면 전체가 기억에 남아 있다고 느끼거나 최소한 추측한다. - P38

시각이란 눈에 들어온 광자들을 뇌의 피질이 손쉽게 해석하는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시각은 온몸이 참여하는 경험이다. 뇌로 들어오는 신호들은 훈련을 거쳐야만 유의미하게 해석될 수 있고, 그 훈련은 그 신호들을 우리 활동의 감각적 귀결들과 비교하는 작업을 필요로 한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만 우리의 뇌는 시각 데이터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할 수 있게 된다. - P64

결론적으로, 당신의 머리 바깥에 있는 세계의 ‘참모습’은 어떠할까? 그 세계에는 색깔이 없을뿐더러 소리도 없다. 그 세계에 있는 공기의 압축과 팽창이 당신의 귀에 포착되어 전기 신호로 변환될 뿐이다. 그러면 뇌는 그 신호들을 감미로운 음악과 ‘쌩’하는 소리와 덜거덕거리는 소리와 쨍그랑거리는 소리로 가공하여 우리에게 제공한다. 냄새도 실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뇌 바깥에는 냄새 따위가 없다. 공중에 떠도는 분자들이 우리의 콧속 수용기들과 결합하고 뇌에 의해 다양한 냄새로 해석될 뿐이다. 실재 세계는 풍부한 감각적 사건들로 가득 차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의 뇌가 손전등으로 대상을 비추듯이 고유한 감각 능력으로 세계를 비추는 것이다. - P86

컵 쌓기 챔피언 오스틴 네이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몰입 상태에 진입한 극한 스포츠 선수의 뇌파는 의식적 숙고의 재잘거림(내가 멋있게 보일까? 내가 이러이러한 말을 해야 할까? 내가 집에서 나올 때 문을 잘 잠갔나?)으로 요란하지 않다. 몰입 상태의 뇌에 서는 ‘이마엽 저하(hypofrontality)’가 일어난다. 이 용어는 앞이마엽피질의 몇몇 부위에서 일시적으로 활동이 감소하는 것을 뜻한다. 그 구역들은 추상적 사고, 미래 계획, 자아감에 주의 집중하기를 담당한다. 이 배경 활동들을 줄이는 것은 선수가 암벽을 타는 비법의 핵심이다. 딘이 발휘한 것과 같은 솜씨는 내면의 재잘거림이 없을 때만 발휘될 수 있다. - P121

당신의 뇌는 경쟁하는 정당들로 구성된 의회와 유사하다. 정당들은 국가라는 배를 조정하기 위해 끝까지 싸운다. 당신은 때때로 이기적으로 결정하고, 때로는 자비롭게, 때로는 충동적으로, 또 어떤 때는 장기적인 전망을 고려하면서 결정한다. 우리는 복잡한 존재다. 왜냐하면 우리는 수많은 욕망들로 이루어졌고, 그 모든 욕망들이 저마다 통제권을 쥐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 P142

개별 뉴런은 어둠 속에서 산다. 뉴런 각각은 다른 뉴런들과 함께 이룬 연결망 속에서 단순히 신호들에 반응하면서 평생을 보낸다. 개별 뉴런은 자신이 셰익스피어를 읽는 당신의 눈을 움직이는 일에 참여하는지, 혹은 베토벤을 연주하는 당신의 손을 움직이는 일에 참여하는지 알지 못한다. 애당초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른다. 당신의 목표, 의도, 능력은 이 작은 뉴런들의 존재에 전적으로 의존하지만, 이 뉴런들은 자신들이 모여서 이루는 결과를 알아채지 못하는 채로 더 작은 세계에서 산다.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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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나치가 강제 수용소에서 사용한 독가스의 전신인 치클론A는 수십 년 전 캘리포니아 오렌지 살충제로 뿌려졌으며 멕시코인 수만 명이 미국에 밀입국하려고 몰래 탑승한 기차의 이를 구제하는 데 쓰였다. 객차의 나무판은 고운 파란색으로 물들었는데, 오늘날까지도 아우슈비츠의 벽돌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색깔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시안화물의 진짜 기원은 1782년에 최초의 현대적 합성 안료 프러시안블루에서 분리된 부산물이다.

 

(42)

프리츠 하버가 죽을 때 지니고 있던 몇 안되는 소지품 중에는 아내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편지에서 그는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이 아니라 공기 중에서 질소를 뽑아내는 자신의 방법이 지구의 자연적 평형을 무지막지하게 교란하는 바람에 인류가 아니라 식물이 세계를 차지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단 몇십 년 동안이라도 인구가 산업시대 이전으로 감소한다면 인류가 공급한 잉여 영양소 덕에 식물이 무한히 증식하여 지구에 두루 퍼지고 땅을 완전히 뒤덮어 모든 생명을 끔찍한 초록 아래 질식시킬 테니까.

 

(48)

일반적인 항성의 경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공간은 아인슈타인의 예측대로 완만하게 휘어졌으며 항성 본체는 마치 해먹에 누운 두 아이처럼 함몰부 중앙에 떠 있었다. 문제는 거성이 연료를 다 써버려 붕괴하기 시작할 때처럼 너무 큰 질량이 매우 작은 면적에 집중될 때 일어났다. 슈바르츠실트의 계산에 따르면 그런 경우에는 시공간이 단지 휘어지는 것이 아니라 찢어진다. 항성이 짜부라들어 밀도가 계속 커지다보면 중력이 너무 세지는 바람에 공간이 무한히 휘어져 스스로를 감싸고 만다. 그 결과는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영영 단절되어 빠져나갈 수 없는 심연이다.

사람들은 이를 슈바르츠실트 특이점이라고 불렀다.

 

(153)

아인슈타인이 1905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을 주장했을 때 다들 그가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다. 비판자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물론 빛은 비물질적이니 이런 기이한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물질은 고체 아닌가. 그들은 물질이 파동처럼 행동하리라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빛과 물질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결국 물질의 입자는 작은 금알갱이와 같아서 한정적 공간에 존재하며 세상에서 그 하나의 장소만을 점유한다. 입자의 정확한 위치를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그 물질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앞쪽으로 발사된 물체는 장애물에 부딛히면 뒤로 튕겨져나가 특정한 점에 떨어진다. 이에 반해 파동은 드넓은 바다의 물처럼 끝없는 수면을 따라 뻗어 있으며 이런 식으로 동시에 여러 위치에 존재한다. 파동은 바위에 부딪히면 바위를 에돌아 제 길을 같다. 정면으로 마주친 두 파동은 서로 상쇄하여 소멸할 수도 있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대로 진행할 수도 있다. 해변에서 부서지는 파도는 바닷가의 모든 장소를 동시에 때리지 않으면서도 여러 장소를 때린다.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현상은 본질 면에서 대립하고 모순되며 행동 면에서 상반된다. 그럼에도 드 브로이에 따르면 모든 원자는 빛과 마찬가지로 파동이자 입자이며 때로는 파동처럼 때로는 입자처럼 행동한다.

 

(200)

이 새로운 파동역학의 중요성을 감히 부정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은 빌라 헤어비히 요양원에서 슈뢰딩거의 골머리를 썩인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파동 함수가 실재에 대해 실제로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처음으로 질문을 던진 사람 중 하나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썼다. “참으로 아름다운 이론이다. 인류가 발견한 것 중에서 가장 완벽하고 정확하고 우아한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뭔가 기이한 구석이 있다. 마치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는 듯하다.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내가 보여주는 세상은 당신이 나를 적용하명서 생각하는 세상과 같지 않다고.” 슈뢰딩거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개념을 설명하는 일에 열중했으며 어딜 가든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216-217)

하이젠베르크가 자신의 새 개념을 뒷받침하는 수학적 근거를 적어둔 종이를 꺼내 건네자 보어는 눈밭에 앉아 읽었다. 하이젠베르크에게 영원처럼 느껴진 시간 동안 보어는 말없이 계산을 검토했으며, 다 끝나자 일어나는 것을 도와달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추위를 떨치려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보어는 이것이 실험적 한계와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있으냐고, 기술이 발전한 미래 세대는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하이젠베르크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물질 자체에 관계된 것이고, 만물이 창조되는 방식을 지배하는 원리이며, 어떤 현상이 완벽하게 정의된 특징들을 한꺼번에 가질 가능성을 배제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애초 직관은 옳았다. 양자의 실체를 보는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양자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양자의 성질들 중 하나를 규명하면 다른 것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양자계를 기술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림도 은유도 아니라 숫자의 집합이다.

 

(253)

전 세계를 장악한 스마트폰 뒤에는, 인터넷 뒤에는, 신과 같은 연산 능력이라는 가슴 벅찬 약속 뒤에는 양자역학이 있다. 양자역학은 우리 세상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우리는 양자역학을 이용할 줄 알며 양자역학은 마치 신기한 기적처럼 작동하지만, 이것을 실제로 이해하는 사람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막론하고 단 한 명도 없다. 우리의 정신은 양자역학의 역설과 모순을 감당할 수 없다. 양자역학은 마치 다른 행성에서 지구로 떨어진 이론 같아서 우리는 유인원처럼 그 주위를 뛰어다니고 만지작거리고 노리개로 쓸 뿐 결코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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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로 가는 사람들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
김보영 지음 / 새파란상상(파란미디어)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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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최근 SF 소설을 좀 읽어서 그런지 SF 소설이 눈에 많이 들어오는구나.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SF 소설을 전문적으로 쓰는 소설가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었어. 이번에 읽은 <미래를 가는 사람들> SF 소설을 찾아보다가 알게 된 소설이란다. 지은이는 김보영이라는 분인데, 2004년 등단하신 이후 많은 SF 소설들을 써 오셨단다. 이번에 아빠가 읽은 <미래를 가는 사람들>이란 책은 스텔라 오디세이 트릴로지시리즈 중에 하나라고 하더구나. 그렇다고  그 소설들이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읽는 순서가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더구나. 다른 책들도 찾아보니 같은 시리즈라서 그런지 책 표지의 디자인이 비슷비슷하더구나.


1.

<미래로 가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이 비유적이거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줄 알았는데, 소설 속에 실제로 미래로 가는 사람들이 나오더구나.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거지. 보통 시간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면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능력이 있는 경우와 타임머신이라는 기계를 이용하는 경우가 있단다. 이번에 읽은 소설에서는 광속우주선이라는 것이 개발되어 시간여행을 하는 이들이 생겨난 거야. 광속우주선으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특수상대성이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단다.

특수상대성이론을 간단히 이야기하면, 빠른 속도를 가진 물체는 시간이 천천히 간다는 것이고, 만일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면 그 물체의 시간은 멈춰 있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광속우주선 속의 사람은 시간은 멈춰 있고, 그 우주선 밖의 사람은 시간이 흘러가니까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이지. 우주선 밖의 시간이 수백 년이 흘러도 광속우주선 안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 거야. 그랬다가 광속우주선의 속도를 줄이게 되면 다시 시간이 흐르니, 미래로 갈 수 있다는 것이지. 아빠는 그렇게 이해를 했단다.

시간은 멈췄다고 해도 영양분은 섭취해야 하지 않을까? 기술이 발달하여 광합성을 하는 나노봇이란 것을 핏속에 넣을 수 있었어. 그러면 그 나노봇이 광합성을 일으켜 식물처럼 영양분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지. 그럴 듯한 설정이었단다.

그런데 이야기의 소재는 좋았지만, 스토리 라인은 아빠 취향이 아니랄까 아빠에게는 별로였단다. 주인공 성하라는 사람이 항법사 셀레나를 만나서 우주여행을 하는 스토리였어. 어떤 행성에서는 자신처럼 시간여행을 하는 사람이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이제 막 문명을 싹 틔우려고 하는 사람들 속에서 ()’으로 군림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어. 성하에게 자신과 같은 ()’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이내 성하는 그곳을 떠나 다시 시간여행이자 우주 여행을 했단다. 또 다른 여행자들도 만나기로 하고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생명체도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였단다.

소설이 짧아서 금방 읽었는데, 며칠 지나니 그 줄거리가 잘 생각나질 않는구나. 무슨 뜻인지 알겠지?^^ 오늘은 이렇게 간단히 끝낼게.


PS:

책의 첫 문장:  가장 큰 문제는 이 집에 밤과 낮의 구분이 없다는 사실이다.

책의 끝 문장: 이 작은 별 가득히 자라나게 될 수많은 생물과, 앞으로 펼쳐질 그들의 찬란한 삶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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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하지만 신라의 입장에서 헤아려 본다면 생각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지금의 경상도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나라 신라가 북쪽의 강대한 세력인 고구려와 최대의 라이벌 백제, 끊임없이 침략을 자행하는 왜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당시엔 지금처럼 고구려, 백제, 신라를 민족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던 시대가 아니었음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서로 별개의 나라로 오직 국가를 유지하는 것이 지상과제였고, 신라도 그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신라가 백제의 땅을 지키지 못하고 신라 땅마저 당나라에 병합됐더라면, 고려와 조선의 역사가 있었을까?


(42-43)

탈해는 훌륭하고 지혜 있는 사람은 이가 많다고 하면서 떡을 깨물어 유리와 자기의 이의 수를 헤아려 보았다. 그 결과 유리의 이 수가 더 많자, 탈해는 자기의 측근들과 함께 유리를 받들었다. 그후로 이 자국이라는 뜻의 이사금을 왕호로 하였다고 전한다.


(73)

이렇게 볼 때, 신라 왕조는 시조 혁거세왕부터 제 8대 아달라왕까지 240년 동안은 박씨의 시대, 9대 벌휴왕부터 제16대 흘해왕까지 172년 동안은 석씨의 시대, 17대 내물왕부터 제52대 효공왕까지 556년 동안은 김씨의 시대, 그리고 멸망기 해당하는 제53대 신덕왕부터 제55대 경애왕까지 15년 동안은 다시 박씨의 시대로 구분될 수 있다.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후백제 왕 견훤이 세운 왕이었으므로, 이때는 이미 신라의 왕권이 무너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215)

눌지왕 대에 이르러 왕에 대한 칭호가 이사금에서 마립간(麻立干)으로 변경되었다. 김대문에 따르면 마립이란 말뚝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직위에 따라 놓는 것이니 조선 시대의 품석(品石, 품계를 새겨 나열한 돌)과 같은 것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조선의 품석은 임금의 것이 없지만, 신라의 마립엔 임금의 것도 있다는 점이다. , 신라 조정에는 왕의 마립의 최상석 한가운데 있고, 그 아래로 신하들의 마립이 나열되어 있는 형태였다. 따라서 마립간이란 마립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곧 임금을 의미했다.


(266)

이렇듯 목숨을 버려 신라에 불법을 퍼뜨린 순교자 이차돈은 죽을 당시 22세의 젊은 청년이었다. 성은 박씨이고 자는 염촉이다. 그는 궁중에서 자랐으며 조부는 아진찬 박종이요 아버지는 습보갈문왕이다.

염촉의 염은 향찰로는 이차 또는 이처라고도 하는데, 발음이 다를 뿐 번역하면 모두 싫다는 뜻이다. 또 촉은 해골이라는 뜻으로 사람의 골육을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이름에 붙이는 어조사로 쓰인 까닭에 뚜렷한 뜻이 없으며, 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 ‘()’, ‘()’, ‘()’ 등으로 대체할 수 있다. 따라서 염촉과 이차돈은 같은 이름을 다르게 발음한 것이다. 말하자면 염촉은 한자식 발음이고, 이차돈은 향찰식 발음인 것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된 신라인들의 이름 중 상당수가 이렇게 한자식 발음과 향찰식 발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지증은 지대로 또는 지철로, 태종은 이사부, 황종은 거칠부 등으로 불린 것도 그 예들이다.


(288)

김대문은 <화랑세기>에서 어진 재상과 충성스런 신하가 화랑도에서 나왔고, 훌륭한 장수와 용감한 병사가 또한 이에서 생겼다고 했다. 김대문이 <화랑세기>에서 거론한 풍월주는 총 32명이다. 그는 이 시기의 화랑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화랑도 출신이 많았다. 신라의 삼국 통일에 가장 크게 기여한 김유신이 화랑의 제15세 풍월주이고, 태종무열왕 김춘추가 제18세 풍월주였으며, 김춘추의 아버지 김용춘이 제13세 풍월주였다. 또한 가야 정벌의 영웅 사다함이 제5세 풍월주였고, 화랑 중의 화랑으로 이름을 날린 문노가 제8세 풍월주였다. 그 외에도 일일이 이름을 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장수가 화랑도 출신이었다. 김대문의 말대로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말엽까지 신라 사회를 떠받친 인물들은 모두 화랑도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40-341)

선덕왕이 647년 정월에 일어난 비담의 난 중에 죽자 그 와중에 승만이 왕위에 올랐는데, 왜 그녀가 왕이 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당시 성골로서 왕위를 이을 남자가 없었기 때문에 성골 여자인 승만이 왕이 되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성골이라는 신분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없어 이 또한 왕으로. 무열왕부터 경순왕까지를 진골 왕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런데 성골과 진골을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하여 이 기록의 진의조차 파악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따라서 진덕왕의 즉위를 성골과 진골의 구분에 따른 결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선덕왕의 영험한 지혜를 믿던 백성들을 달래기 위해 실권자 김춘추가 난국 타개를 목적으로 그녀를 왕위에 앉혔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503)

스물이 갓 넘은 나이에 대군을 일으켜 나라를 세운 점으로 봐서, 견훤은 꿈이 원대하고 용맹이 뛰어났으며 항상 미래를 계획하는 성품을 지닌 장부였다. 또한 상황에 따라 잘 대처하는 것으로 봐서 임기응변에 능하고, 적을 칠 때는 먼저 적을 안심시킨 다음 치는 것으로 봐서 다소 음흉하여 그 속내를 읽기 힘든 면에 있었으며, 빠른 시일 안에 중앙집권적 권력 구조를 형성한 점으로 미뤄 과단성 있고 남다른 주변 장악력을 소유했던 게 분명하다. 또 자기 손으로 열었던 후삼국 시대를 스스로 끝내는, 그래서 왕건에게 통일이라는 대업을 선물로 안기는 영웅의 면모를 가졌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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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긴 꽃잎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2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몇 년 전에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전기를 읽은 적이 있단다. 칠레의 민주화와 개혁을 이끌었던 분이었지. 아옌데 대통령은 반군 쿠데타 세력에 맞서 싸우다가 대통령궁을 끝까지 지키다가 자살로 삶을 마감을 했단다. 아옌데 대통령이 죽고 나서 가족 친지들은 모두 망명을 떠나게 되었다고 했어. 그런데 얼마 전에 우연히 아빠가 책 한 권을 봤는데 지은이의 성이 아옌데였어. 이사벨 아옌데. 아옌데 대통령이 생각나서 지은이의 이력을 읽어보니, 아옌데 대통령의 조카더구나. 몇 년 전에 아옌데 대통령에 대한 책을 읽고 검색을 해봤을 때 친척 중에 소설가가 있었다는 기억도 살짝 나는 것 같았어.

아무튼, 아옌데 대통령을 좋게 생각했던 아빠는 그의 조카가 쓴 소설책이 어떤 것들이 있나 검색해 보았단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들이 꽤 있고, 평들도 다들 좋았단다. 그래서 아빠가 몇 권 샀는데, 그 중에 가장 최근에 출간된 <바다의 긴 꽃잎>이란 책을 읽었단다. 바다의 긴 꽃잎? 제목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는데, 칠레의 유명한 정치인이자 시인인 네루다가 자신의 조국 칠레를 표현한 말이라고 하더구나. 칠레라는 나라가 남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하고 태평양에 맞닿아 있으면서 남북으로 길게 위치하고 있잖니. 그 모습을 긴 꽃잎으로 비유한 것이로구나.

책 제목에서 알다시피 이 책은 칠레 현대사가 담겨 있다고 했어. 몇 년 전에 읽은 아옌데 대통령의 전기를 통해 칠레 현대사를 대충 알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소설을 통해서 다시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낯선 공간과 낯선 시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서 읽기 어려우면 어쩌나, 생각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단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지은이의 글솜씨도 좋았고, 읽기 편하게 잘 번역한 옮긴이의 글솜씨도 좋았단다.


1.

, 그럼 책 속의 이야기를 해볼게. 때는 1938년 스페인. , 칠레의 역사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스페인부터 시작하네. 1938년 스페인이라면 한창 내전을 겪고 있던 시절이란다. 아빠도 잘 모르지만, 소설 속에 나온 것을 바탕으로 스페인의 사정을 이야기해줄게.

1936년 총선 때 좌파정당연합인 인민전선이 승리하여 정권을 잡게 되었단다. 하지만, 몇 달 뒤인 1936 7월 프랑코가 이끄는 우파와 군인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어. 그래서 두 세력은 전쟁을 하게 된 것이 스페인 내전이란다. 그 내전은 1939 4월 프랑코의 우파가 승리함으로 끝났고, 이후 프랑코의 장기 독재 집권을 하게 되었어.

아무튼 다시 1938년으로 돌아와서의대생 빅토르 달마우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란다. 아버지 마르셀루이스 달마우는 음대 교수였고, 어머니 카르메라는 분이고, 동생 기옘이 있었어. 빅토르 집안 좌파를 지지하는 가족이었고, 동생 기옘은 급진 좌파로 전쟁에 지원해서 참가하기도 했단다. 빅토르는 지원까지는 아니고 징병되어 군의관으로 참가했어. 아버지의 음대 제자 중에 로세르 브르게라라는 사람이 있어. 로세르는 집이 가난했었는데 우연이 어떤 부잣집의 후원을 받아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어. 로세르는 피아노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어. 집이 가난하여 마땅히 머물 곳이 없었는데, 아버지 마르셀루이스는 자신의 집에 머물도록 했어.

그런데 아버지 마르셀루이스는 얼마 후 돌아가시게 되었단다. 그래도 로세르는 계속 집에 머물렀어. 군대 갔던 기옘이 티푸스 병에 걸려서 집에 왔을 때, 로세르와 기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어. 하지만 기옘의 사상은 사랑보다 더 강했지. 기옘은 병이 낫자 다시 전쟁터로 돌아갔고 얼마 안 있어 빅토르는 기옘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단다. 하지만, 빅토르는 이 소식을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지 못했어. 더욱이 로세르는 임신을 하고 있는 상태였거든.

..

1939 1월 프랑코 장군이 승기를 잡았고, 좌파 세력들은 패배를 눈앞에 두고 있었어. 그래서 바르셀로나를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단다. 스페인에 남아 있어봤자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었거든. 많은 사람들이 바르셀로나에서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도망을 갔단다. 하지만 1월 추위는 장난이 아니었어. 빅토르는 부상병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군대에서 먼저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래서 친구인 아이토르에 부탁을 했어. 어머니 카르메와 로세르를 데리고 먼저 국경을 넘어가라고 말이야.

아이토르는 카르메, 로세르를 데리고 프랑스로 향했단다. 가던 길에 빅토르의 어머니 카르메는 자신은 짐만 된다고 생각하고 죽을 결심을 하고 밤에 그들을 떠났단다. 아이토르와 로세르는 프랑스로 향했어. 그런데 프랑스도 갑작스럽게 밀려드는 난민들을 어쩌지 못하고 국경을 닫아버렸어. 국제 여론이 안 좋아지자, 여자, 아이, 노인들만 받아주었단다. 그래서 아이토르와 로세르는 헤어지게 되었어. 로세르만 프랑스에 들어와 수용소에 머무르게 되었단다. 그 수용소에서 로세르는 빅토르의 옛 동료였던 간호병 엘리자베뜨를 만나게 되었고, 엘리자베뜨의 도움을 받아 정착을 할 수 있었단다.

빅토르도 뒤늦게 국경을 넘어와서 스페인 난민 수용소에서 의료진으로 일하게 되었어. 빅토르는 아이토르와 만나게 되는데, 어머니가 사라졌다는 소식과 로세르가 아이를 낳고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접했어. 빅토르는 로세르를 만나러 갔어. 그리고 그제서야 기옘의 전사 소식을 알려주었단다.


2.

프랑스도 그리 안전한 곳은 아니었어. 세계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고 있었지. 그 와중에 칠레에서 이민을 받아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앞서 이야기했던 칠레의 유명한 시인 네루다가 당시에는 외교관이었는데 네루다가 프랑스 영사관에서 이민 갈 사람들을 면접했어. 그런데 이민은 가족만 가능하다고 했어. 빅토르는 로세르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가짜로 결혼을 하고 칠레로 가기로 했단다. 그리고 로세르와 기옘 사이 낳은 아가의 이름을 빅토르의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마르셀이라고 했어.

빅토르와 로세르, 마르셀은 배를 타고 긴 항해 끝에 칠레에 도착을 했단다. 펠리페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그의 도움으로 당분간 그의 집에 머물게 되었어. 펠리페라는 사람도 주요 인물이니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할게. 펠리페의 아버지 이시드로는 칠레의 큰 사업가였어. 아버지 이시드로는 철저한 보수파였고, 펠리페는 진보 세력이다 보니 정치적 견해로 갈등이 많았단다. 우리나라도 그런 가족들이 많잖니. 펠리페는 급진 진보파 모임인 광란자 살롱에도 자주 나갔고 그곳에서 네루다를 만나 친분을 쌓기도 했어. 스페인 난민을 받아들이려는 여론을 조성하기도 했단다.

한편, 이시도르는 부인 라우라, 딸 오펠리아와 유럽 여행을 떠났어. 이시도르는 사업 구상을 위해 떠난 것이고, 딸 오펠리아는 유럽에서 유학을 시키려고 했어. 그런데 그들이 유럽에 도착한 지 얼마 안되어 세계2차대전이 일어나서 간신이 배를 구하고 다시 칠레로 돌아왔단다. 가족들이 유럽에 가 있을 동안 펠리페가 빅토르와 로세르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던 거야. 펠리페 집의 유모인 후아나는 주인이 없는 동안 난민들을 데리고 온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했었지만, 어린 마르셀에 푹 빠지고 말았단다. 빅토르는 칠레에서 의대 공부를 이어서 하고, 로세르는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기 시작했단다. 빅토르와 로세르가 가짜 부부라고 했잖아. 남들에게는 진짜 부부 행세를 했지만, 둘이 있을 때는 예를 잘 지켰단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마르셀을 잘 보살피는 것이었어.

얼마 후 펠리페의 가족들이 유럽에 돌아왔고, 오펠리아는 빅토르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단다. 오펠리아는 약혼녀가 있고, 빅토르는 유부남인데 말이야.

빅토르와 로세르는 돈벌이를 위해서 술집을 차리고 펠리페의 집에서 나왔단다. 오펠리아가 빅토로를 보고 한 눈에 반했다고 했잖아. 그건 빅토르도 마찬가지였어. 빅토르가 펠리페의 집을 나온 지 1년이 지나고 그들은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바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단다. 둘만의 비밀 사랑을 아주 뜨겁게 했단다. 오펠리아는 파혼까지 했어. 오펠리아의 아버지는 오펠리아를 집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고 감금했단다. 얼마 뒤 자신이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고, 빅토르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한 순간 불꽃이었음을 알고 후회를 하였단다. 하지만 아이는 낳고 싶어했어. 그래서 오펠리아의 아버지 이시드로는 오펠리아를 한동안 수녀원에 숨기고, 아이를 낳으면 입양 보내려는 작전을 세웠단다. 오펠리아는 임신 후반에 계속 몸이 좋지 않아서 약을 먹고 정신을 잃기도 했어. 결국 오펠리아는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단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빼돌린 것 같더구나.

오펠리아는 몸이 회복된 다음 이전 약혼자인 마티우스를 다시 만나게 되고 마티우스는 오펠리아를 용서해 주고, 그들은 얼마 후 결혼을 하게 되었단다.

빅토르도 갑자기 사라진 오펠리아의 사정을 몰랐어. 그리고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멀어지게 되었지. 다시 의학 공부를 열심해 해서 드디어 의사가 되었단다. 로세르는 피아니스트로 성공을 해서 공연을 자주 다녔단다. 그러다가 빅토르의 어머니가 스페인에 살아 계시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렇게 어머니와 다시 만나게 되고 어머니를 칠레로 모셔왔단다. 다시 만난 가족들그들은 칠레에서 정착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3.

살바도르 아옌데가 칠레의 대통령이 되었단다. 정권을 잃은 야당과 그들을 지지하는 우파 세력들은 태업을 주도했어. 그렇다 보니 물가는 계속 오르고 사회는 혼란에 빠졌단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이 뒤에서 우파 세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었던 거야. 혼란스러운 사회를 보고 있자니 빅토르는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기 전의 스페인이 떠올랐단다. 비슷한 상황이었던 거지.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우파는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아옌데 대통령은 대통령궁을 끝까지 사수하다가 죽고 말았단다. 그리고 측근들은 대부분 숙청당했어.

빅토르는 예전부터 네루다를 통해 아옌데 대통령과 친분이 있었어. 그 이야기는 빅토르는 안전하지 않다는 거야.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아들 마르셀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고, 로세르는 외국에서 연주 중이라서 칠레 국내에는 빅토르 혼자였어. 이웃집의 신고를 빅토르는 잡혀가게 되고 감금되었어. 가족들에게 연락도 하지 못하고 갇히게 되었는데, 무려 11개월이나 갇히게 되었어. 우연히 심장마비로 쓰러진 지휘관을 살려주게 되었는데, 그 덕에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되었단다.

빅토르와 로세르는 베네수엘라로 망명하기로 했어. 또다시 망명이라니스페인을 떠나 칠레가 정착하며 행복한 생활을 하나 싶었는데, 이제 칠레 사람 다 되었다고 생각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제2의 고향 칠레를 떠났단다. 그곳에서 빅토르는 의사로, 로세르는 피아니스트로 다시 시작했단다. 이제 그 둘은 서로 의지하며 살아갔어. 그러면서 서로 진정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

스페인에서 오랫동안 독재를 하던 프랑코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단다. 스페인 입국도 어느 정도 자유로워졌다고 했어. 빅토르와 로세르는 40년 만에 스페인에 돌아왔단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칠레 사람이었어. 스페인 생활을 적응하지 못하고, 몇 달 만에 다시 베네수엘라로 돌아왔단다. 그들이 돌아가야 할 조국이 있다면 그것은 칠레였던 거지.

1980년대 들어서면서 칠레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어. 망명객들이 속속 칠레로 돌아오기 시작했지. 빅토르와 로세르도 칠레로 돌아왔어. 빅토르는 철거촌에서 의료 봉사를 하면서 지냈단다. 그런데 세월은 그들도 가만두지 않았단다. 로세르가 그만 암에 걸렸어. 빅토르는 로세르가 가는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단다. 로세르가 죽고 나서 빅토르는 쓸쓸한 생활을 했어. 그런데 어느날 한 여성이 찾아왔어. 자신이 52살이고, 이름은 잉그리드라고 했어. 그러면서 덧붙인 충격적인 말. 빅토르, 당신의 딸입니다. 빅토르는 그제서야 오래 전에 오펠리아가 임신을 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그 아이가 죽지 않고 잘 살고 있었던 거야. 잉그리드는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어. 52살이면 원망할 나이도 지났지, .. 생존해 계시는 아버지를 만난 것에 대해 기뻐했단다.

그렇게 소설은 끝이 났단다.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인데, 그 사람의 역사에 스페인과 칠레의 굴곡진 현대사가 모두 담겨 있구나. 몇 년 전에 칠레가 민주화 시위로 뉴스에 자주 등장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네. 다시 사회가 안정화되어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몇 년 전에 읽은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 전기와 이번에 읽은 <바다의 긴 꽃잎>때문인지 칠레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좋았단다. 그 먼 나라를 가 볼 일이 없겠지만 말이야. 칠레 하면 축구를 잘 하는 나라로 알려졌는데, 이번 월드컵에는 본선 진출에 실패했었단다. 다음에 혹시 칠레 축구를 볼 일이 있으면 칠레를 응원해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어린 병사는 비베론 부대 소속이었다.

책의 끝 문장: 그것은 새로운 항해이며, 그렇게 그는 끝까지 갈 생각이었다.


그는 로세르의 사진 한 장을 가지고 있었다. 지갑에 넣어 둔 유일한 사진이었다. 로세르가 피아노 옆에 서 있었다. 어쩌면 연주회 중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짙은 색 소박한 블라우스에 평소보다 긴 치마를 입고 있었다. 반소매에 목에는 레이스가 달린 옷은 몸매를 감추는 촌스러운 교복 같았다. 그 흑백사진에서 로세르는 아마득하고 흐릿했다. 멋도 없고, 나이도 불분명하고, 무표정한 여인의 모습이었다. 그녀의 호박색 눈과 검은 머리카락, 조각처럼 곧은 코, 표정이 담긴 눈썹, 돌출된 귀, 기다란 손가락, 그녀에게서 나는 비누 향. 느닷없이 그를 덮쳐 고통스럽게도 하고 잠 못 이루게도 하는 섬세한 표정은 애써 떠올려야 했다. 그리고 이런 표정을 떠올리다 보면 깜빡 방심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 P55

그들은 칠레가 몹시 가난한 나라로 광물, 그중에서도 특히 구리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지만, 정착해서 성공할 수 있는 비옥한 땅도 많고, 어업에 종사할 수 있는 수천 킬로미터의 해안도 있고, 무수히 많은 숲과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달과 같은 북쪽 황무지부터 남쪽의 빙하까지 칠레의 자연은 경이로웠다. 칠레 사람들은 한순간에 모든 걸 무너뜨려 사망자와 이재민이 속출하는 지진 같은 자연재해와 가난에 길들여져 있었다. 하지만 망명자들에게는 자기네가 살아왔던 과거와 프랑코 권력하에 있는 스페인의 미래에 비하면 칠레는 불행 중 다행이었다. 칠레 사람들은 그들이 많은 것을 받을 테니 보답할 준비나 하라고 했다. 칠레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가난하지만 인색하지 않고, 오히려 친절하고 너그러웠다. 칠레 사람들은 늘 두 팔 벌려 자기네 집을 열어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나를 위해, 내일은 너를 위해." 그것이 슬로건이었다. - P180

쿠바 혁명에 영감을 받은 지지자 몇몇은 진정한 혁명을 이뤄 평화롭게 미국 제국주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무기를 들고 싸워야만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옌데에게 혁명은 견고한 칠레 민주주의에 넉넉히 들어맞았고, 그는 칠레의 헌법을 존중했다. 그는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나 한 손에 자기네 운명을 움켜쥘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고발하고 설명하고 제안하고 행동으로 옮기도록 요구하는 것이 문제라고 마지막까지 믿었다. 또한 그는 적들의 힘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공인일 때 아옌데는 약간 우쭐해하며 근엄하게 행동해 적들에게 건방지다는 트집도 잡혔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수수하고 농담도 잘하는 편이었다. 그는 자기가 한 말은 반드시 지켰다. 그로서는 배신은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마지막에 가서는 그 자신을 잃게 되었다. - P316

빅토르는 임종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의 로세르의 말을 듣는 것 같았다. 그때 그녀는 우리 인간은 모여 사는 생명체이고, 우리는 고독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기 위해 프로그램되어 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그가 혼자 살면 안 된다며, 심지어 그를 위해 애인까지 정해 주며 집요하게 굴었다. 빅토르는 느닷없이 매체를 정감 있게 떠올렸다. 그에게 고양이를 선물하고 텃밭의 토마토와 허브를 가져다주는, 마음이 열린 옆집 사람, 뚱뚱한 요정들을 조각하는 꽤 자그마한 여자였다. 빅토르는 딸이 떠나자마자 오징어 먹물 파에야와 크레마 카탈라나 남은 것을 메체에게 가져다주기로 했다. 그것을 새로운 항해이며, 그렇게 그는 끝까지 갈 생각이었다. - P4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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