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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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소개할 책은 몇 달 전에 아빠 친구가 추천해 준 책이란다. 책 제목은 인터넷 서점을 서핑하다가 본 적이 있는 <불안의 책>이라는 책이야. 지은이는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포르투갈 사람인데, 아빠는 처음 알게 된 사람이란다. 이 사람은 잡지를 출간하기도 하고, 번역가로 일하기도 하고 출판사 겸 무역회사를 차리기도 했대. 자신이 만든 출판사를 통해 당시 사회적으로 문제 있다는 작가들의 작품을 출간해서 나라로부터 경고를 먹기도 했대. 정작 자신은 살아 생전에 책을 많이 출간하지는 않았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가 죽고 나서 출간하지 않은 그의 원고가 발견되었는데, 그 양이 2 7500장이나 된다고 하더구나. 페르난두 페소아를 연구하던 이들이 그의 글들을 정리하여 출간하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가 되었고, 죽은 후에야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 반열에 올랐대.

아빠가 이번에 읽은 <불안의 책>도 그가 남긴 원고들 중에서 미완성 원고들을 엮은 책이란다. 그래서 편집본마다 글의 수와 순서가 조금씩 다르다고 하더구나.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이 책이 번역 출간된 이력이 있는데, 모두 중역본이었고, 아빠가 이번에 읽은 책이 리처드 제니스의 포르투갈어 편집본 원전을 완역한 것이라고 하는구나. 아빠는 페르난두 페소아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인데, 그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여 다른 이름으로 글을 쓴 것처럼 글을 썼다고 하는구나. <불안의 책>도 지은이가 우연히 알게 된 베르나르두 소아르스라는 사람의 글을 알게 되어 소개하는 식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지은이 페르난두 페소아의 생각이라고 생각하면 된단다. <불안의 책> 1913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 약 20년 동안 틈틈이 썼던 글을 모은 것이란다. 앞서 베르나르두 소아르스라는 가상의 인물의 글로 설정했다고 했잖아. 그래서 책의 부제는 회계사무원 베르나르두 소아르스의 작품이란다.

 

1. 촌철살인

이 책을 너희들에게 어떻게 소개해주어야 할지 조금은 막막하구나.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책은 20년 동안 틈틈이 적은 글이기 때문에 이 책에 실린 481개의 글들은 각각 독립적인 글들이란다. 굳이 순서를 두고 읽을 필요는 없으며, 읽다가 나랑 맞지 않으면 다음 글로 건너뛰어도 된단다. 정말 짧은 글은 한 줄로 끝나는 것도 있고, 긴 글은 몇 장에 걸친 글들도 있단다. 그렇다고 짧은 글이 가치도 없는 것이냐? 그것은 아니고 오히려 짧은 글들은 촌철살인의 글들이었어.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 글. 사랑에 대해 이렇게 짧으면서 완벽한 글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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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

우리가 했던 모든 일이 사랑이라면 죽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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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주체는 지은이 페르난두 페소아가 만들어낸 가상인물 베르나르두 소아르스란다. 그의 직업은 회계사이고 그의 회사가 있는 곳은 리스본 도라도레스라는 거리란다. 그는 늘 도라도레스에 있는 사무실에 출근으로 하면서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지만 그의 머릿속에서는 세상을 여행하고 삶을 생각하는 것 같았어. 그리고 그의 글들 내면에는 아빠가 느끼기에 약간의 비관주의와 약간의 염세주의가 담겨 있었단다. 그런 글들 내면에 불안이 조금씩 담겨 있었기 때문에 책제목을 <불안의 책>이라고 하지 않았나, 싶구나.

....

그의 글들을 읽다 보면 한 인간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단다. 아빠가 책을 읽을 때 좋은 구절이 있으면 그 페이지를 책의 앞면지에 적어두곤 한단다. 그리고 그 글들을 키보드로 두들기면서 다시 한번 음미한단다. 그런데 이 책의 앞면지에 정말 수많은 페이지들이 적혀 있단다. 아마 아빠가 지금까지 책을 읽으면서 적은 페이지 개수 신기록을 세웠을 거야. 그리고 그 페이지의 글들을 다시 키보드로 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단다. 그런데 이걸 키보드로 치는 것이 아니고 직접 손으로 써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단다. 그의 글들이 약간은 불안을 담고 있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라서 배우고 싶었거든. 그의 글을 따라 적다 보면 좀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

이 책의 좋은 부분이 많지만, 몇몇 더 좋았던 부분을 발췌하는 것으로 오늘 독서 편지를 대신하련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이 책의 감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단다. 그냥 천천히 정독하면서 책 전체를 그대로 느껴보는 것을 추천해 본다. 물론 너희들은 이다음 큰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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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9)

완성을 미루고만 있는 우리의 작품이 형편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아예 시작하지도 않은 작품은 그보다 더 형편없다. 무엇인가를 만든다면 적어도 남아는 있게 된다. 초라하지만 그래도 존재한다. 다리를 저는 내 이웃의 정원에 놓인 하나뿐인 화가에 핀 조그마한 식물처럼. 그 화분은 내 이웃에게 기쁨을 주며, 때로는 나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내가 쓰는 글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의 글 덕분에 상처받은 슬픈 영혼이 잠시 시름을 잊을 수도 있으리라. 그것으로 충분하고, 혹시 충분하지 않다 해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인생사 모든 것이 다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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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독서로 자유를 얻는다. 독서로 객관성을 획득한다. 나는 내가 되기를 멈추고,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존재가 되기를 그만둔다. 내가 읽는 것은 때로 나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의복 같은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명료함이고, 만물을 비추는 태양이고, 고요한 대지에 그림자를 드리운 달이고, 바다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이고 녹색 이파리를 흔드는 나무의 견고함이고, 농장 연못에 깃든 평화이고, 포도나무 덩굴이 우거진 해안이 비탈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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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 내 안에 살아 있고 내 안이 아니면 어디에도 존재할 수 없는 죽은 과거여! 들판의 작은 집 정원의 꽃들은 오직 내 안에만 있구나! 뜰의 채소와 과일나무와 소나무들은 오직 내 꿈속에만 있구나! 내가 상상한 전원생활과 시골 산책은 한 번도 존재한 적 없어라! 길가의 나무와 오솔길과 돌 들, 지나가던 시골 사람들…… 모든 것은 단지 꿈이었을 뿐, 내 기억에 새겨진 채 나를 아프게 한다. 그것들을 꿈꾸며 수많은 시간을 보내던 나는 지금은 꿈꾸던 순간을 회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사실은 나의 진정한 그리움이자 나를 눈물짓게 하는 과거이고 죽어버린 진정한 삶이다. 나는 그 삶이 엄숙하게 관에 누운 모습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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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나는 국가와 인류에 종속되길 거부한다. 소극적으로라도 저항한다. 국가는 나에게 어떤 행동을 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꼼짝 않는 이상 내게서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한다. 오늘날 사형제도도 폐지되었으니 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봐야 나를 귀찮게 하는 정도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영혼을 더욱 단단히 무장하고 내 꿈속 더 깊은 곳에서 살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다. 국가는 나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운명이 나를 봐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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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8)

오늘 나는 거리를 걷다가, 자기들끼리 서로 다투었던 두 친구를 따로 마주쳤다. 각자가 왜 상태에게 화났는지 내게 말해줬다. 둘 다 진실을 얘기하고 있었다. 둘 다 자신의 이유를 말하고 있었다. 둘 다 옳았다. 둘 다 틀림없이 옳았다. 한 명은 이것을 보고 나머지 한 명은 다른 면을 보는 게 아니었다. 두 사람은 발생한 일의 진상을 정확히 보고 있었고, 모든 같은 기준에 근거해 사태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둘은 뭔가 다른 것을 보았고, 결국 둘 다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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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나를 찾는 순간 나는 나를 잃어버렸고, 내가 찾아낸 것은 의심스러우며, 내가 얻었던 것은 이미 내게 없다. 나는 길을 걷듯 잠을 자지만 사실은 깨어 있다. 나는 잠을 자듯 깨어 있고, 나는 내게 속해 있지 않다. 결국 삶이란 근본적으로 거대한 불면이고,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의식이 또렷한 인사불성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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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

여행은 독서와 같고, 독서는 다른 모든 것과 같다…… 나는 고전과 현대물이 고요히 공존하는 박학다식한 삶을 꿈꾼다. 그 삶에서 나는 다른 이들의 감정을 통해 내 감정을 새롭게 할 수 있고 명상하는 이들과 대체로 생각만 했던 자들, 대부분의 작가들이 그러한데, 그들 사이의 모순에 기반한 사고로 나 자신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서에 대한 이러한 꿈은 책상 위에서 책을 한 권 집어들자마자 사라져버리고, 책을 읽는 실제 행위는 읽고 싶다는 모든 욕구를 없앤다…… 마찬가지로 어쩌다 기차역이나 항구 같은 출발지에 가까이 가는 순간, 여행에 대한 모든 상상은 창백하게 시들어버린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확실한 두 가지, 나처럼 아무 가치 없는 두 가지로 돌아온다. 바로 아무도 모르는 나그네 같은 나의 일상, 그리고 잠들지 못한 자의 불면증 같은 나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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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4)

시간이란 무엇인지 모르겠다. 시간을 재는 정확한 척도가 무엇인지. 있기는 한 건지 모르겠다. 시계로 시간을 잰다는 건 외부에서 시간을 공간으로 나누는 것이므로 가짜다. 감정으로 시간을 잰다는 건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느끼는 감각을 재는 것이므로 역시 가짜다. 꿈에서 시간을 재는 건 역시 잘못됐다. 꿈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급하게 시간을 스칠 뿐이고, 성격을 파악할 수 없는 흐름 속의 무언가로 인해 바쁘거나 느리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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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

인생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나는 실험적인 여행이다. 물질을 통해 떠나는 정신의 여행이고, 여행하는 것은 정신이므로 우리는 정신 안에 산다. 그러므로 외향적으로 사는 사람들보다 더욱 강렬하고 폭넓고 격동적으로 사는, 관조하는 영혼이 있다. 중요한 건 마지막 결과다. 살면서 느꼈던 것이 바로 그가 살았던 삶이다. 육체노동을 한 다음처럼 꿈을 꿀 때도 사람은 피로해진다. 어느 누구도 머릿속으로 깊이 생각할 때처럼 그렇게 열심히 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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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

신문을 읽는 것은 미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항상 불쾌한 일이고, 도덕적인 관점에서도 종종 그러하다. 심지어 도덕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전쟁 아니면 혁명이 항상 신문에 나오는데, 전쟁이나 혁명이 미치는 영향을 신문에서 읽다보면 공포보다도 권태를 느끼게 된다. 읽다보면 우리의 영혼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은, 그 모든 죽음과 부상의 잔인함이나 싸우다 죽은 자들 또는 싸우지도 못하고 죽은 자들의 희생이 아니다. 무의미할 수밖에 없는 것들 때문에 인명과 재산을 희생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우리를 혼란스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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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 문장: 리스본에는 제법 품격 있는 주점 이층에 자리잡고 꽤 알찬 가정식 식사를 내놓는 식당이 몇 군데 있다.

책의 끝 문장: 그리고 내가 했던 모든 일, 내가 느끼고 살아왔던 모든 것은 어느 도시에나 있는 일상의 거리에서 사라진 한 명의 행인일 뿐, 아무것도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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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오래된 책을 정기적으로 펼쳐 읽는 행위는 생의 곁길로 빠지면서 즐기는 잠깐의 군것질이 아니라 정신의 식탁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즐기는 정찬의 의례에 가까웠다. 묵은내가 폐부 끝까지 전해지는 도서관을 에어포켓 삼아 숨 쉬어보는 몽상을 거듭한 나는 수은을 삼키고 불가사의하지만 흡족한 미소를 짓는 표정으로 귀가하곤 했다. 일회적이지 않고 영원성을 간직한 책들을 내 안에 꾹꾹 눌러 담고 나오는 날의 노을빛은 아름다웠다. 생활인으로서, 한 명의 독자로서 그것은 내가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책은 누군가의 삶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86)

켄 리우는 이 소설에서 먼저 과거의 정보와 기억을 그래도 체험할 수 있는 기술의 발견을 언급한 뒤, 그 기술이 인간 사회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했습니다. 반일 소설만은 아니고, 중국과 미국까지 동시에 비판한 작품입니다. 소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은 켄 리우의 단편 14편이 실린 <종이 동물원> 맨 끝에 수록됐는데, 일본에서는 이 소설만 빼고 작품집을 펴냈습니다. 그의 책은 중국에서 4권 이상 출간됐는데, 중국어판에는 공산당을 비판한 대목이 곳곳에서 삭제된 채 출간됐다고 전해집니다. 한중일 가운데 이 소설을 온전한 형태로 읽을 수 있는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123)

해외의 한 출판사 편집장이 국내의 유명 평론가에게 해준 이야기를 떠올려옵니다. 이 평론가가 좋은 책의 조건을 편집장에게 묻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고 하네요. 저도 사석에서 전해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옮겨봅니다. “첫째, 흥미진진할 것. 둘째, 새로울 것. 그리고 셋째가 가장 중요한데, 바로 독자를 불편하게 할 것. 별생각 없이 드러누워 보다가 엇, 하고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잡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입니다.” <인비저블 몬스터>는 이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췄습니다. 흥미진진하면서 전에 없던 새로움까지 있는데, 독자에게 하나의 불편한 질문을 남기기 때문이지요. 그 질문은 이렇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인 나의 참된 자아는 과연 어떤 모습인가.’ 나 자신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까요, 저주일까요. 척 팔라닉은 바로 그 점을 묻습니다.


(137)

셀라의 문학적 위상은 독특합니다. 그의 생애와 작품은 두 가지 아이러니를 형성합니다. 셀라는 스페인 내전을 겪은 시민들의 무의식을 건드려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는 프랑코의 군부에 참전한 군인 출신이었습니다. 폭력의 원인에 대한 소설을 썼는데 작가 스스로가 폭력의 가담자였다는 예기지요. 또 그는 금서의 작가였지만 프랑코 정권이 들어선 이후 금서를 결정하는 검열관으로 참여했습니다. 그가 검열관으로 일한 이후에도 그의 다음 소설 <벌집>은 또 금서가 됩니다. 금서를 결정하는 검열관의 작품이 금서가 되는 아이러니라니 인생이든 문학이든 참으로 복잡한 요물입니다. 셀라가 논쟁적인 인물일지라도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이 가진 사회문화적 위상까지 부정하진 못할 겁니다.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그 작품은 작가만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자와의 공동 소유물이 되니까요. 어쩌면 어머니를 살해한 소설이 아직도 살아남아 우리에게 읽힌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을 둘러싼 가장 큰 아이러니일 테지만요.


(157)

예술가의 창작이란 당이 추구하는 이념적 지평 위에서만 유효하다고 보기 때문이었지요. 일체의 낭만과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주의 예술의 엄숙주의가 지닌 문제점을 쿤데라는 간파했습니다. 예술의 도구화는 사회주의 예술, 좀더 구체적으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실체이자 한계점입니다. 핸드리흐와 같은 사회주의 당직자들은 예술의 자유를 제한하고 이로써 예술의 한계를 규정하는 데 열중했습니다. 예술의 한계를 규정하는 순간 인간이 추구하는 자유의 한계가 노정된다고 쿤데라는 확신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알듯이 예술은 스스로를 도구화하지 않는 무한한 자유 위에서의 진보적 창조이며, 문학이란 자유와 옹호를 위한 인간의 총체적인 언어활동이 아니던가요. 현실의 의미를 밝혀내고 해석하는 것이 언어예술로서 문학의 유일하고도 입체적인 목적이며, 예술에 굴레를 확정하는 순간 이는 죽어버린 예술이자 예술의 종막이 됩니다.


(170-171)

한탸라는 인물의 하층민적 지위, 그리고 작가 흐라발이 한탸를 그려낸 방식은 흥미롭습니다. 보후밀 흐라발과 밀란 쿤데라는 같은 체코 출신 작가이면서 여러 면에서 대조적 위상을 지닙니다. 위기의 시대를 문장으로 견뎌낸 작가라는 점에서 둘은 동질적이지만 쿤데라는 프랑스로 망명해 프랑스어로 소설을 썼고, 흐라발은 끝까지 체코에 체류하며 체코어를 고집했습니다. 이는 단지 거주지 차이만이 아닙니다. 쿤데라와 흐라발의 소설 속 주인공도 차이를 보이니까요. 쿤데라가 창조한 문학적 인물이 시대를 내려다보며 고뇌에 빠진 허무주의적 지식인인 반면, 흐라발의 피조물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사회에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바보로 묘사됩니다. 또 쿤데라의 소설에는 성적 자유를 획득했지만 만족하지 못하는 인물이 줄곧 등장하는 반면, 흐라발의 소설에는 성적 불구의 인물이 자주 나타난다는 것도 차이점입니다. ‘()의 실현이 한 인물의 자아를 형성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볼 때 흐라발의 남성상은 좌절된 동시대인들의 정서를 대변합니다.


(173)

여러분에게 책이란 무엇이었나요. 이제 종이책 고유의 물성은 가치가 사라져가고, 집이 좁아진다는 이유로 책을 무가치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한다 해도 책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한탸와 같은 사람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소수라 하더라도 말이지요.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책이라는 형식에 삶을 바쳤던 작가들, 책과 함께한 공간에서 삶의 한때를 보냈던 독자들을 위한, 고요하고도 빛나는 걸작입니다.


(206)

문학은 정치와 동떨어진 예술로 간주되곤 합니다. 문학이 현실과 괴리되었다는 반감은 독자와 문학 사이의 거리를 멀게 만듭니다. 그러나 문학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예술 장르이며 때로는 정치 그 이상일 수 있음을 이스마일 카다레는 삶으로 또 작품으로 증명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러므로 영원히 빛날 겁니다.


(277)

참된 종교란 자기 종교의 완전무결함을 주장하지 않고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마음 위에서 건립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종교적 자기비판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종교보다는 교의의 불완전성과 미흡함을 수용하면서 그 자장 속에서 인간을 포용하는 것이 좋은 종교라고도 감히 생각해봅니다.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종교의 이름 뒤에서 희생됐던 연민까지 기억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이겠지요. 사라마구의 작품은 바로 이 지점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룹니다. 인간의 고통에의 연민, 그리고 신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을 그가 대신 수행한 것이지요.


(289-290)

선배 작가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문학적 성취를 당대 후배 작가들은 모르지 않았습니다. 카잔차키스는 아홉 차례나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고 1957년 단 한 표 차이로 수상 기회를 놓쳤는데, 그해 수상자는 <페스트> <이방인>을 쓴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였습니다. 카뮈는 수상 이수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나보다 노벨상을 받을 이유가 수백 배 더 크다고 말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은 동시대 최고의 작가임을 인정받는 일이지만 그걸 받지 못했다고 해서 동시대 최고의 작가가 아니라는 일이지만 그걸 받지 못했다고 해서 동시대 최고의 작가가 아니라는 진실을 카잔차키스와 카뮈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은 인간이 처한 생래적 조건과 불안한 현실,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모순을 고민한 선구자들이 받는 상입니다. 하지만 때로 이러한 합의는 빗나가며, 저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카잔차키스라고 생각합니다. 신에게 더 다가가기 위하여 신을 모독했다는 평가를 받은 그는 유죄일까요, 무죄일까요. 크레타섬에 안치된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소설가이자 구도자로서의 카잔차키스의 삶 전체를 움켜쥐는 문장입니다.


(320)

이슬람교도 충분히 관용의 종교인 것이지요. 그렇다면 문제는 경전이 아니라 이를 악용하거나 오독했던 인간 아닐까요. 다카에서 벌어진 학살처럼 말입니다. 경전을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이면 근본주의 광신도가 출몰하기 마련이고, 그건 비()종교인이 종교와 신앙을 경멸하는 치명적인 근거가 되곤 합니다. 경전은 그 문구가 집필했던 당대의 시대상과 역사적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니 시간이 흐름에 다라 재해석되어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그것이 경전을 대하는 바람직한 독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힌두교인의 바브리 마스지드의 철거도, 무슬림들의 방글라데시 다카에서의 학살도 종교적 관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333)

<눈먼 부엉이>를 읽은 일부 독자의 우울증과 자살은 이 책에 담긴 문장들로 생()의 근원을 염탐했다는 좌절과 막막함 때문이었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결과 자기 삶에서 유의미성을 발견하지 못한 영혼들은 영영 삶을 포기한 것이겠지요. 물론 이 책도, 이 글도, 삶을 지양하고 죽음을 찬미하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인생이란 살 만한 가치가 있으며, 세상에 주어진 모든 삶에는 섭리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적 죽음은 문학 바깥에서는 제한되어야 하며, 죽음을 다룬 문학은 삶의 깊이를 고민할 기회를 제공하는 선에서 그쳐야 합니다. 다만 삶의 이유가 모두에게 다르더라도, 우리가 제대로 된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는 삶으로부터 죽음을 격리하고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좀더 삶 가까이에 두고 정확하게 통찰하면서, 삶의 유의미성을 발견해야 한다는 진리만큼은 영원히 불변할 것입니다.


(380)

벨라루스와 러시아의 이런 차이가 무척 흥미롭지요. 러시아에서는 <1984> 출간과 독서가 권장될 정도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이 소설이 러시아 등 동유럽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구 자유민주주의를 비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윈스턴의 국적이 오세아니아이고, 오세아니아는 미국과 영국의 서구 문명 복합체라는 논리이지요. 하지만 오웰이 생각한 오세아니아가 미국이나 영국을 닮았는지, 구소련과 러시아를 닮았는지의 답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미국 역사상 딱 한 명의 지도자만이 <1084> 속 오세아니아 독재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입니다. 푸틴과 트럼프, 한때 스트롱맨으로 불렸던 국가 지도자의 시대에 <1984>가 소환된 것이다.


(384)

런던에 세워진 조지 오웰의 동상의 벽면에 그의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자유가 무엇인가를 의미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선과 악의 격렬한 대립 속에서 인간의 자유를 갈망했던 오웰의 이 한마디를 저는 오래 간직할 생각입니다. 그의 이름은 필명으로, 오웰(orwell)은 그의 부모가 사는 지역에 흐르는 강의 이름입니다. 책의 바다에서 조지 오웰이라는 이름의 강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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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수, 통계, 기하에 관한 최소한의 수학지식 처음 시작하는 교양 수학
EBS MATH 제작팀 지음, 염지현 글, 최수일 감수 / 가나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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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 이야기할 책은 <함수, 통계, 기하에 관한 최소한의 수학지식>이라는 긴 제목의 책이란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수학에 관한 책이란다. 책 제목부터 머리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이 책에는 수학에 관한 재미있는 상식들도 많이 들어 있어 재미있었단다. EBS에서 출간된 교양 서적들은 대부분 읽기 편한데, 이 책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어 좋았어.

이 책은 사실 Jiny가 학교에서 이 책을 읽고 퀴즈 대회를 한다고 하길래, 궁금해서 아빠도 읽어 본 것이란다. 그리고 아빠도 이 책을 읽으면서 퀴즈를 한 번 뽑아볼까? 하면서 예상 문제를 뽑아봤단다. 아빠의 게으름으로 인해 뒷부분은 일부 문제를 뽑지 않았는데, 오늘 독서 편지는 이 책을 읽고 뽑은 문제로 대신하련다.

 

1.

<문제들>

1) x, y축 좌표를 처음으로 고안하여 사용한 사람은?

2) 그는 x, y축 좌표는 어떤 동물을 보고 힌트를 얻었나?

3) 그는 x, y축 좌표는 어떤 책에 처음 실었나?

4) 목성의 위성 4개를 발견한 사람은?

5)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 센서를 달아 그 움직임 정보를 컴퓨터로 인식해 영상으로 재현하는 기술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6) 많은 초소형 카메라로 배우의 표정과 감정까지 가상 캐릭터의 표정과 감정으로 바꾸는 기술은 무엇인가?

7) MRI로 뇌 구조를 알아내는 것은 무엇인가?

8) 범죄지도를 만들어 범죄 발생 장소를 지도에 표시하여 범죄가 많은 곳에 가로등 추가 설치, 순찰차 자주 돌아서 범죄 발생을 줄인 도시는?

9) 범죄지도에 이용한 기술은 무엇인가?

10) 일종의 냄새 분자로 개미의 의사 소통 수단은 무엇인가?

11)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새해의 시작은 언제인가?

12) 조선 태조 4(1395) 달의 주기를 기준으로 다양한 정보를 담은 별자리 지도는?

13) 저녁에는 쌍둥이자리, 새벽에는 전갈자리가 별이 뜬다는 뜻의 말은 무엇인가?

14) 최초로 함수를 수학적으로 정의한 사람은?(함수를 function으로 최초로 부름)

15) y=f(x) 라는 식을 정리한 사람은 누구인가?

16) 오일러가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를 한번에 모두 건널 수 없다고 증명할 때 이용한 개념은?

17) 2011년에 갔다가 2012년에 돌아온 화성탐사로봇 이름은?

18) 소리의 속도는?

19) 번개가 치고 천둥 소리가 4초 뒤에 들렸다면 번개가 친 곳의 거리는?

20) 농구 선수가 공이 그런 포물선은 어떤 그래프?

21) 포물선(이차함수 그래프)의 모양에 따라 최댓값과 최소값을 갖는데, 그 점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22) 전파를 탐지하는 안테나는 무엇인가?

23) 표면이 포물선 모양인 오목렌즈를 이용해 거대한 거울을 만들어 무기로 이용한 사람?

24) 톱니가 5, 높낮이가 5단계로 조절된 열쇠의 경우의 수는?

25) 확률의 기초가 된 주사위 게임의 법칙을 발견한 16세기 이탈리아 수학자는?

26) 조합(서로 다른 n개에서 순서를 생각하지 않고 r개를 택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공식으로 정리한 사람은?

27) 던지는 횟수가 무척 커지면 앞면이 나올 확률이 수학적 확률에 가까워진다는 법칙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28) 근대 확률론의 창시자는 누구인가?

29) 원래는 실패할 경우를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였으나, 훗날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계속 꼬이는 일이 생길 때 쓰는 말(법칙)?

30) 자신만의 이익만을 생각하다 결국 자신도 상대방도 좋지 않은 결과를 얻는 상황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31) 크림전쟁에 참여해서 병원의 위생 상태가 나빠서 생긴 질병이 전염병으로 퍼져 죽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사망한 군인들의 사망 원인을 통계로 분류하여 전염병으로 죽은 군인의 수를 크게 줄이는데 기여한 사람?

32) 인구조사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중국 한나라의 책은?

33) 17세기 전염병과 사망의 관계를 최초로 통계로 분석한 사람은?

34) 통계에서 줄줄이 나열된 자료를 무엇이라고 하는가?

35) 흩어져 있는 변량을 일정한 구간으로 나눠서 정리한 표?

36) 비교하려는 자료의 합계가 서로 다를 때 계급의 도수의 총합을 나누어 구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37) 상대도수분포표의 합계는 얼마인가?

38) 자료 중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값을 대표값으로 하는 것은?

39) 각각의 흩어진 정보를 하나의 숫자로 나타낸 것은 무엇인가?

40) 어떤 문제를 알 수 있는 기초적인 지식과 논리적 추론만으로 대략적인 근사치를 추정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41) 6명을 거치면 세상 모든 사람과 연결된다는 법칙은?

41) 기하학의 시작은 고대 어느 나라부터인가?

42) 기하학의 영어 단어 'geometry'는 그리스어로 무슨 뜻?

 

2.

<정답들>

1) x, y축 좌표를 처음으로 고안하여 사용한 사람은? (데카르트)

2) 그는 x, y축 좌표는 어떤 동물을 보고 힌트를 얻었나? (파리)

3) 그는 x, y축 좌표는 어떤 책에 처음 실었나? (기하학)

4) 목성의 위성 4개를 발견한 사람은? (갈릴레이)

5) 사람이나 동물의 몸에 센서를 달아 그 움직임 정보를 컴퓨터로 인식해 영상으로 재현하는 기술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모션 캡쳐)

6) 많은 초소형 카메라로 배우의 표정과 감정까지 가상 캐릭터의 표정과 감정으로 바꾸는 기술은 무엇인가? (이모션 캡쳐)

7) MRI로 뇌 구조를 알아내는 것은 무엇인가? (뇌지도)

8) 범죄지도를 만들어 범죄 발생 장소를 지도에 표시하여 범죄가 많은 곳에 가로등 추가 설치, 순찰차 자주 돌아서 범죄 발생을 줄인 도시는? 뉴욕

9) 범죄지도에 이용한 기술은 무엇인가? (GIS(지리 정보 시스템))

10) 일종의 냄새 분자로 개미의 의사 소통 수단은 무엇인가? (페르몬)

11) 고대 바빌로니아 사람들의 새해의 시작은 언제인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12) 조선 태조 4(1395) 달의 주기를 기준으로 다양한 정보를 담은 별자리 지도는? (천상열차분야지도)

13) 저녁에는 쌍둥이자리, 새벽에는 전갈자리가 별이 뜬다는 뜻의 말은 무엇인가? (혼정효미중)

14) 최초로 함수를 수학적으로 정의한 사람은?(함수를 function으로 최초로 부름) (라이프니츠)

15) y=f(x) 라는 식을 정리한 사람은 누구인가? (오일러)

16) 오일러가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를 한번에 모두 건널 수 없다고 증명할 때 이용한 개념은? (한붓그리기)

17) 2011년에 갔다가 2012년에 돌아온 화성탐사로봇 이름은? (쿠리오시티)

18) 소리의 속도는? (340m/s)

19) 번개가 치고 천둥 소리가 4초 뒤에 들렸다면 번개가 친 곳의 거리는? (1360m)

20) 농구 선수가 공이 그런 포물선은 어떤 그래프? (이차함수 그래프)

21) 포물선(이차함수 그래프)의 모양에 따라 최댓값과 최소값을 갖는데, 그 점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이차함수 그래프의 꼭짓점)

22) 전파를 탐지하는 안테나는 무엇인가? (포물선 안테나 또는 파라볼라 안테나)

23) 표면이 포물선 모양인 오목렌즈를 이용해 거대한 거울을 만들어 무기로 이용한 사람? (아르키메데스)

24) 톱니가 5, 높낮이가 5단계로 조절된 열쇠의 경우의 수는? (5x5x5x5x5=3125)

25) 확률의 기초가 된 주사위 게임의 법칙을 발견한 16세기 이탈리아 수학자는? (지롤라모 카르다노)

26) 조합(서로 다른 n개에서 순서를 생각하지 않고 r개를 택하는 것)이라는 개념을 공식으로 정리한 사람은? (자코브 베르누이)

27) 던지는 횟수가 무척 커지면 앞면이 나올 확률이 수학적 확률에 가까워진다는 법칙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베르누이의 큰 수의 법칙)

28) 근대 확률론의 창시자는 누구인가? (피에르 라플라스)

29) 원래는 실패할 경우를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뜻으로 쓰였으나, 훗날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계속 꼬이는 일이 생길 때 쓰는 말(법칙)? (머피의 법칙)

30) 자신만의 이익만을 생각하다 결국 자신도 상대방도 좋지 않은 결과를 얻는 상황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죄수의 딜레마)

31) 크림전쟁에 참여해서 병원의 위생 상태가 나빠서 생긴 질병이 전염병으로 퍼져 죽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사망한 군인들의 사망 원인을 통계로 분류하여 전염병으로 죽은 군인의 수를 크게 줄이는데 기여한 사람? (나이팅게일)

32) 인구조사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중국 한나라의 책은? (한서지리지)

33) 17세기 전염병과 사망의 관계를 최초로 통계로 분석한 사람은? (존 그랜트)

34) 통계에서 줄줄이 나열된 자료를 무엇이라고 하는가? (변량)

35) 흩어져 있는 변량을 일정한 구간으로 나눠서 정리한 표? (도수분포도)

36) 비교하려는 자료의 합계가 서로 다를 때 계급의 도수의 총합을 나누어 구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상대도수)

37) 상대도수분포표의 합계는 얼마인가? (1)

38) 자료 중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값을 대표값으로 하는 것은? (최빈값)

39) 각각의 흩어진 정보를 하나의 숫자로 나타낸 것은 무엇인가? (표준편차)

40) 어떤 문제를 알 수 있는 기초적인 지식과 논리적 추론만으로 대략적인 근사치를 추정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페르미 추정)

41) 6명을 거치면 세상 모든 사람과 연결된다는 법칙은?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

41) 기하학의 시작은 고대 어느 나라부터인가? (이집트)

42) 기하학의 영어 단어 'geometry'는 그리스어로 무슨 뜻? (땅을 재는 것)

 

PS,

책의 첫 문장: 내비게이션은 정말 신기하고 편리한 도구예요.

책의 끝 문장: 완벽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게 된 덕분에 새로운 이론이 탄생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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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사랑,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사랑의 불길과 불꽃은 1년이면 꺼져 버리고 이후 30년은 그 재로 살아간다.


(108-109)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저녁에 인사를 나누었던 구름들은 어딘지 모를 곳으로, 죄가 크지 않아 진노한 신이 가혹하게 벌하지 않은 곳으로 떠나 버렸다. 별들은 흐릿했고 별빛은 더운 공기를 뚫고 나오려 애를 썼다. 돈 파브리초의 영혼은 별들을 향해, 손으로 만질 수도 닿을 수도 없는 별들을 향해 달려갔다.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기쁨을 주며 거래 따윈 하지 않는 별들을 향해. 그는 수없이 그랬듯이 공상에 빠졌다. 순수한 지성인이 자신이 계산용 수첩을 들고 곧 차디차고 광활한 공간으로 가는 상상이었다. 수첩에 풀어야 할 계산은 어렵고 복잡하겠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잘 풀릴 터였다. ‘별들만이 순수하지. 유일하게 선량한 피조물들이지.’ 그는 세속적인 공식에 따라 생각했다. ‘어느 누가 플레이아데스성단의 지참금을, 시리우스의 정치 경력을, 베가의 부부 침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신경 쓰겠는가?’ 그날은 운수가 좋지 않았다.


(134)

하지만 총으로 토끼를 죽이고, 찰디니의 대포가 나폴리 왕국 병사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정오의 열기가 사람들을 잠들게 했지만 개미 떼를 막을 수는 없었다. 돈 치초가 뱉어버린 썩은 포도 알 몇 개에 이끌린 개미들이 오르간 연주자의 침이 뒤범벅된 살짝 썩은 포도 알에 달라붙으려고 희망에 들떠서 새까맣게 떼를 지어 달려왔다. 대담한 개미 떼들은 무질서하지만 단호하게 앞장을 섰다. 서너 마리로 이루어진 몇몇 무리는 잠시 멈춰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몬테모르코산 정상의 4번 코르크참나무 아래 2번 개미집에 터잡은 조상 이래 이어진 영광을 개미들은 다른 개미들과 함께 확실한 미래를 향해 다시 행진하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개미의 등들이 기쁨으로 떨렸다. 틀림없이 개미들 위로 찬가가 울려 퍼졌으리라.


(191)

돈 파브리초는 이해가 잘 안 되었다. 둘 다 빨간 새우처럼 붉고 허름한 셔츠를 입었던 걸 기억했다. “이제 자네들, 가리발디 부대원들은 붉은 셔츠를 입지 않나?” 두 사람이 독사에 물린 듯이 그를 돌아보았다. “맞아요. 가리발디 부대원이었죠. 외삼촌! 예전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달라요. 카브리아기와 저는 몇 달 전부터, 지금은 사르데냐 국왕이지만 얼마 후 이탈리아 국왕이 되실 폐하의 정규군 장교로 근무하고 있어요. 가리발디군이 해산될 때 집으로 가든지 왕의 군대에 남든지 선택할 수 있었어요. 제대로 된 사람들이 다 그랬듯이 이 친구와 저도 진짜군대에 들어갔죠. 가리발디 부대원들과 함께해야 했다면 남지 못했을 거예요. 안 그런가, 카브리아기?” 물론이지, 대단한 패거리였어요! 기습 공격이나 하고 가끔 총격전이나 벌이는 데에 딱 맞는 자들이죠. 그게 전부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상적인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진짜 장교인 거죠.” 그가 혐오스럽다는 듯이, 사춘기 소년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짧은 콧수염을 추켜세웠다.


(206-207)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배경으로 죄 많은 인생을 살게 될 탄크레디와 안젤리카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그때가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로 구름과 바람으로만 이루어졌을 뿐인데, 구체적인 무엇이라고 생각했던 미래를 뒤쫓았다. 늙고 부질없이 지혜로워졌을 때 두 사람은 끊임없이 그 시절을 돌이켜 보았으며, 그리움과 후회를 떨칠 수 없었다. 그때는 욕망이 존재했으나 항상 패배하던 시기였고, 잠자리 기회가 수없이 주어지기도 하고 거부당하기도 했다. 억제된 관능적인 충동이 잠시 체념으로 변하기도 하는, 그러니까 진정한 사랑으로 승화되기도 하는 때였다. 그때는 성()적으로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던 결혼 준비기간이었다. 하지만 절묘하면서도 간결한, 완전체 같은 기간이었다. 잊힌 오페라, 그러니까 은근한 암시와 익살로 수치심을 가리고 공연 중에 조화롭게 연주되지 않아 실패한 아리아들이 담김 오페라의 서곡 같았다.


(224-225)

제 말을 계속 들어 주세요. 슈발레. 이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 시칠리아인은 우리와 종교가 다르고 우리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통치자들에게 오랜 세월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나치리만큼 신중하게 행동하는 게 습관이 되었어요. 그러지 않았다면 비잔틴의 세금 징수관, 베르베르인의 아미르, 스페인의 총독들 치하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일이 그렇게 됐고 우리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나는 참여가 아니라 동의라고 했습니다. 최근 여섯 달 동안, 당신네 편 가리발디가 마르살라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구체제의 지배 계급에 속했던 사람에게 그 일을 발전시키고 완성시켜 달라고 요청하기는 무리일 정도로 말입니다. 지금 나는 잘잘못을 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는 상당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말이지요. 하지만 우선은 당신이 우리와 1년은 살아야만 이해가 가능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시칠리아에서는 잘하거나 못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우리 시칠리아인이 절대 용서하지 않는 죄는 그저 하는것뿐입니다. 우리 시칠리아 사람들은 늙었어요, 슈발레, 너무 늙었어요. 외부에서 완벽하게 완성되어 들어온 눈부시고 이질적인 문명을 우리 어깨에 짊어지고 산 지가 2500년은 되었어요. 우리에게서 싹트지 않았고 우리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는 문명을 말입니다. 우리는 슈발레 당신처럼, 영국 여왕처럼 백인입니다. 하지만 2500년 전부터 우리는 식민지에 살았어요. 불평하는 말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잘못은 우리에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지쳤고 공허합니다.”


(226-227)

슈발레, 의도는 좋아요. 하지만 너무 늦었어요. 게다가 제가 이미 말했듯이 대부분은 우리 잘못입니다. 당신은 조금 전에 경이로운 현대 세계에 새로운 모습을 보일 젊은 시칠리아를 이야기했지요. 내가 보기에는 휘체어에 앉아 런던 만국박람회에 끌려 나온 백 살 먹은 노파처럼 보여요. 노파는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것에도, 셰필드의 철강 공장에도 맨체스터의 방적 공장에도 관심이 없어요. 그저 침으로 얼룩진 베개와 요강을 밑에 둔 침대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생각뿐이지요.”


(235-236)

슈발레는 생각했다. ‘이런 상황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새롭고 민첩한 현대적인 행정부가 모든 것을 바꿀 것이다.’ 영주는 우울했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을 이렇게 지속되게 놔두어선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늘 지속되겠지. 물론 인간사라는 시각으로 볼 때의 이다. 100, 200….. 그후에는 달라지겠지. 하지만 더 나빠질 게 분명해. 우리는 표범, 사자였다. 우리를 대신할 사람들은 자칼, 하이에나가 될 것이다. 이들 모두, 그러니까 표범, 자칼, 양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믿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감사를 표하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슈발레는 토사물 색깔의 바퀴 네 개가 지탱하는 우편 마차에 올라탔다. 굶주리고 상처투성이인 말이 긴 여정을 시작했다.


(303-304)

다른 순간에는, 모래알이 사르륵 미끄러져 내려가는 소리를 듣고 시간의 입자들이 그의 삶에서 벗어나 영원히 떠나는 걸 느끼려면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이면 되었다. 게다가 그런 감각은 처음부터 어떤 불쾌감과 관련해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 지각할 수 없는 생명력의 손실은, 말하자면 살아 있다는 느낌을 뒷받침하는 증거이자 조건이었다. 그리고 무한한 바깥 공간을 면밀히 조사하고 광활한 내면의 심연을 살펴보는 데 익숙한 그에게는 전혀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특성이 지속적으로 미세하게 붕괴한다는 느낌을 주면서도, 어딘가 다른 곳에 덜 의식적이면서 더 큰 개성(하느님 감사합니다)을 다시 만들어 내리리라는 막연한 예감과 결합되었다. 그 모래 알갱이들은 잃어버린 게 아니다. 사라지기는 하지만 우리가 모를 어딘가에 축적되어 더 오래 지속되는 덩어리로 굳어진다. 하지만 그가 생각한 덩어리는 실제 무게에 걸맞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었다. 모래 알갱이도 마찬가지인데, 좀 더 비슷한 것은 좁은 연못에서 증발하는 수증기 입자다. 그것은 하늘로 올라가 가볍고 자유로운 큰 구름이 된다. 때때로 그는 생명이라는 저수지가 수십 년간 내용물을 유출했음에도 여전히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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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았더라 - 이중섭의 화양연화
김탁환 지음 / 남해의봄날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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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오늘은 김탁환 님의 <참 좋았더라>라는 소설 한 편을 이야기해줄게. 이 책은 부제 이중섭의 화양연화에서 알 수 있듯이 이중섭에 관한 책이란다. 이중섭은 우리나라 현대 화가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 중에 한 명이 아닐까 싶구나. 그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그가 그림에 진심이라는 것은 대부분이 알고 있을 거야. 예전에 <방구석 미술관> 2권에서 이중섭에 관한 글을 읽은 기억이 있구나. 그의 작품이 고가에 팔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의 삶은 불행의 연속이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

우리나라 불우한 현대사가 폭풍이 되어 그를 덮쳤다고 해야 하나사랑하는 가족들을 보러 가기 위해 노력했는데, 결국 홀로 삶을 마감해야 했으니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니. <방구석 미술과> 2권에서 이중섭의 관한 짧은 글을 읽고 나서, 그와 그의 작품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지. 하지만 아빠의 게으름으로 인해 계속 뒤로 미루었어. 그러다가 우연히 김탁환 님이 <참 좋았더라>라는 소설이 이중섭에 관한 소설이라는 것을 알고 읽게 된 것이란다. 김탁환 님은 역사적 인물을 소설로 각색하는데 소질이 있으신 것 같아. 그 인물에 감정이입을 하여 그 인물의 문체로 소설을 쓰시는 것 같았어. 이번 <참 좋았더라>라는 소설도 김탁환 님의 그 전 소설과는 다른 문체로 쓰신 것 같았어. 이중섭의 고단한 삶과 예술가적 재능이 묻어 있는 문체라고 할까.

 

1.

이중섭의 아내는 야마모토 마사코라는 일본인인데, 이남덕이라는 우리나라 이름을 가지고 있어. 해방 이후에도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었는데, 한국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안전을 위해 1952년 아내와 두 아이 태성, 태현을 일본에 보냈단다. 이중섭도 그 이후 가족을 만나기 위해 일주일간 일본에 다녀왔단다. 당시는 아직 일본과 국교를 맺지 않은 상황이라서 오래 있지 못하던 시절이래. 다시 한국에 와서 이중섭은 가족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돈을 벌려고 애를 썼단다. 하지만 어떤 영악한 놈에게 사기를 당해서 빚만 쌓였고, 가족들은 언제 만날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단다. 이중섭에게 가족은 그림만큼 중요한 존재였는데, 만날 수 없으니 얼마나 속이 타 들어갔겠니.

=================

(34)

이중섭은 날마다 두 가지에 집착했다. 하나는 그림, 또 하나는 가족. 화가들은 대부분 그림과 가족을 한자리에 두지 않았다. 그림을 그릴 땐 가족을 잊고, 가족과 머물 땐 그림을 잊었다. 이중섭은 그림 속에 가족을 두고, 가족 속에 그림을 두었다. 아내가 이남덕이기에 가능했다. 그녀 역시 문화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기에, 그림을 향한 남편의 진심을 투명하게 받아들였다. 이중섭이 기쁠 땐 화가로 기쁜 것이고 슬픈 땐 화가로 슬픈 것이며 화날 땐 화가로 화난 것이다. 부부의 대화는 그림에서 시작하여 그림으로 끝났다. 태현과 태성은 부부가 나눈 화담(畫談)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두 아들이 훗날 아빠처럼 그림을 업으로 삼을지는 미지수지만, 그림을 평생 가까이 둘 것은 확실하다. 네 사람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일궜다. 한국의 예의와 상식도 아니고 일본의 예의도 상식도 아니었다. 사람으로서의 예의와 상식은 너무 거창한 이야기다. 그들은 그림이라는 나라에서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이중섭은 평안남도 평원 출신으로, 오산학교에서 미술을 시작했단다. 도쿄 유학을 다녀온 이후에는 원산에서 그림을 그렸어. 이중섭의 형 이중석이 원산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형이 후원을 해주고 있어서 원산에서 정착하게 된 거야. 그랬다가 전쟁이 나서 부산에 내려왔다가 제주로 와서 지내고, 다시 부산으로 왔다가 식구들을 일본에 보내게 된 거야. 그림에 열중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졌어. 부산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는데, 함남 북청 출신인 유강렬의 제안으로 통영으로 이사 왔단다. 당시 통영은 많은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던 곳이야. 유강렬은 통영에서 나전칠기기술원 양성소를 차렸는데, 나전칠기 기술뿐만 아니라 그림 그리는 것도 가르치고 있었어. 이중섭에게 그곳에서 그림도 그리면서 학생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단다.

오랜만에 그림에 몰두할 수 있던 시기가 아닐까 싶구나. 1953 12월에는 다방을 빌려 개인전을 열었어. 유치환, 김춘수, 김상옥 등 문인들과 예술인들이 방문하여 성황리에 마쳤단다. 이중섭은 서피랑, 남망산 등 통영의 이곳 저곳을 화폭에 담았단다. 우리가 지난 겨울에 통영 여행을 가서 그런지 더욱 친근하더구나. 이 소설에는 통영을 붉음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는데,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더구나. 그런데 지은이 김탁환 님의 생각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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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통영은 붉다. 이렇게 밝히면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 ‘통영은 푸르다를 잘못 말한 것이 아닌지 묻는 이도 있다. 이중섭도 통영을 방문객으로 오갈 때는 푸르름에 압도되었다. 전혁림의 그림에서 넘쳐나는 파랑이 과장이 아니라며, 기분 좋게 술잔을 기울였다. 부산에서 그림을 싣고 강구안에 내린 다음 날 새벽, 통영이 붉은 항구란 사실을 목도했다. 늦게까지 마신 환영주에 목이 말라 깨지 않았다면, 숙취로 두통이 심해 바람이라도 쐬자 싶어 산책을 나서지 않았다면, 밤길이 서툴러 되돌아오지 못하고 헤매다가 남망산에 닿지 않았다면, 비가 그치지 않았다면, 중절모를 눌러쓰고 목도리까지 두른 사내가 오르막을 경쾌하게 앞서 걷지 않았다면 통영의 새뜻한 붉음을 영영 몰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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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우리나라 현대사가 이중섭을 괴롭혔다고 이야기했는데, 좀더 넓게 보면 세계 현대사, 특히 전쟁이 이중섭을 가로막았단다. 2차세계대전은 이중섭의 유학 생활을 중단하게 했단다. 일본 유학 중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 원산으로 돌아와야 했어. 원래 이중섭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유럽으로 유학 가려는 꿈이 있었는데 그것이 전쟁으로 중단되고 말았단다.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이 한국전쟁은 그를 방황하게 만들었고 가족과 헤어지게 했단다. 휴전이 되면서 고향 땅과 원산에도 못하고 타지 통영에서 홀로 지내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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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중섭하면 소를 빼놓을 수 없단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는 해바라기 있다면 이중섭에게는 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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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빈센트 반 고흐에게 해바라기가 있다면 이중섭에겐 단연코 소다. 대작을 그리겠노라고는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밝힌 적은 없다. 화우(畫友)들도 따져 묻기보다는 꼭 그리라고, 이제 때가 되었다고 했다. 완성하고 나면 축하주를 마시자는 이도 있었다. 고흐는 해바라기를 오랫동안 많이 그렸다. 두 송이부터 시작해서 열다섯 송이까지, 파리에서도 그렸고, 아를에서도 그렸다. 이중섭 역시 소를 계속 그렸다. 맘을 다 쏟아 그림을 그릴 조건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올리고 그린 것이 소였다. 도쿄에서도 그렸고 원산에서도 그렸다. 서귀포에서는 그리지 않았고, 부산에서는 그리고 싶어 끼적이긴 했지만 흡족하지 않았다. 해바라기를 그린 사람이 고흐 이전에도 많았고 당대에도 많았으며 후대에도 많듯이, 소도 마찬가지다. 조선의 화인들이 그린 소가 몇 마리가 될까. 헤아리기 힘들다. 이중섭과 가까운 선배 중에도 1941년 조선신미술가협회를 함께 만든 진환이 소를 좋아했고 자주 그렸다. 누가 먼저 그렸는가 혹은 얼마나 많이 그렸는가 하는 물음은 어리석다. 문제는 수준이다. 대작이란 두 글자는 작품의 크기가 아니라 최고의 성취를 가리킨다. 이중섭은 통영에서 소를 완전히 새롭게 그려보리라 결심했다. 고흐가 아를에서 전혀 다른 해바라기를 선보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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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은 다양한 소 그림을 그렸는데, 이 소설의 지은이는 김탁환 님은 다양한 소를 이야기했는데, 그 표현들이 재미있어 발췌해 보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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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3)

속삭이는 소, 친구가 많은 소, 여물을 맛보고 찡그리는 소, 코뚜레를 흔들며 나무 그늘에서 조는 소, 우는 소, 되새김질하며 거품 흘리는 소, 기뻐 껑충껑충 뛰는 소, 노리는 소, 송아지를 불러들이는 소, 뒷발질에 열심인 소, 실수하는 소, 떨어진 꽃잎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소, 교접하는 소, 어미 소에게 도움을 청하는 소, 코를 박고 물을 마시는 소, 올려다보다가 별을 발견하고 놀라는 소, 밭 가는 소, 날아가는 멧비둘기와 참새를 따라 고개 돌리는 소, 외톨이를 자처하는 소, 내달리는 소, 빼앗는 소, 머리에 머리를 부딪치는 소, 고집부리는 소, 벽을 들이받는 소, 엎드려 기다리는 소, 가지 않겠다고 버티며 뒷걸음질하는 소, 앞발을 땅을 파헤치는 소, 꼬리를 흔들어 벌레를 쫓는 소, 먼저 알아보고 다가와서 인사하는 소, 오르막길 앞에서 한숨 쉬는 소, 늙었지만 병들지 않은 소, 멍한 눈으로 세월을 되씹는 소, 웃는 소, 새끼 낳는 소, 먼저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소, 어미 소를 싫어하는 소, 숨는 소, 산책을 즐기는 소, 잠든 소, 병들어 마른 소, 절뚝거리는 소, 용서하는 소, 냄새 맡는 소, 멈춰 기다리는 소, 죽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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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에서 머무르면서 진해, 진주 등 주변 도시도 다니면서 예술인과 교류도 하고 그림도 그렸단다. 소를 많이 그렸기 때문에 소싸움이 열리는 곳에도 자주 갔어. 이 때 많은 작품을 그렸지만, 그의 마음 한켠에는 늘 가족이 있었단다. 외로운 타향이지만, 가족만 함께 있으면 좋았을 텐데이중섭이 그래도 통영에 머무를 수 있던 것은 그를 통영으로 이끌어준 유강렬의 힘이 컸단다. 그런데 유강렬이 국립박물관에서 제의가 와서 서울로 가게 되었어.

유강렬 없는 통영. 이중섭은 고민 끝에 자신도 서울로 가기로 했단다. 그곳에서 개인전을 열어 그림을 팔아서 일본에 가족을 만나려 가려는 계획도 있었지. 하지만 서울 생활은 또 다른 험난한 도전이었단다. 이중섭이 서울로 가면서 이중섭 대신 양성소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것은 김환기가 대신하기로 했단다. 김환기는 도쿄 유학 때부터 친분이 있던 사람이란다. 김환기 또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현대 미술가인데, 그 분의 삶도 궁금해서 사 둔 책이 있는데, 아직 읽지 못하고 먼지가 쌓여가고 있구나. 그 책도 읽게 되면 이야기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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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온 이중섭은 드디어 첫 개인전을 열게 되는데, 소설은 여기서 끝을 맺었단다. ‘작가의 말에서 지은이 김탁환 님은 이중섭의 이후 삶은 일부러 소설에서 뺐다고 하는구나. 개인전은 나름 성공했지만, 그림이 많이 안 팔려서 일본은커녕 서울에서 생활도 쉽지 않았어. 대구에서 다시 한번 개인전을 열었지만 이번에도 큰 성과는 없었단다. 그렇다 보니 점점 생활은 어려워지고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걸려서 정신병원까지 가게 되고 쓸쓸히 삶을 마감했단다. 예술가의 삶은 이리 팍팍한 경우가 많은지하늘이 그의 재능을 시샘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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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이중섭의 작품들을 많이 실려 있단다. 그 각 작품에 대한 설명과 평가도 실려 좋았단다. 그림을 볼 줄 모르는 아빠에게 도움이 되는 설명들이었단다. 이중섭 님의 그림들은 그 만의 독특한 무엇인가 있는 것은 같은데, 현대 미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빠는 이중섭의 작품이 정말 뛰어난 작품인지는 잘 모르겠더구나. <방구석 미술과> 2권을 읽은 것이 2022 3월이었는데, 당시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 님이 생존해 계셨었는데, 지금 다시 검색을 해보니 2022 8월에 돌아가셨다고 하는구나. 이중섭과 이남덕오랜만에 다시 만나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계시려나.

오늘은 이만.

 

PS,

책의 첫 문장: 7월의 항구들은 다가오기가 무섭게 멀어졌다.

책의 끝 문장: 피랑에 홀로 섰다는 뜻이기도 했다.

 




가족을 그렸다. 그림 속에서 가족은 굶주리지 않았고 울지 않았고 아프지 않았고 춥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평화로웠다. 부산과 서귀포의 참담한 현실과 정반대로 그린 까닭을, 아내와 두 아들은 따지지 않았다. 그림에 담긴 이야기들을 일용할 양식처럼 삼키며 하루를 나고 한 달을 나고 일 년을 났다. - P35

밥은 굶어도 담배를 건너뛸 순 없었다. 술 또한 거의 매일 입으로 들어갔다. 이중섭에게 술과 담배는 갈매기의 두 날개처럼 어울리면서도 목적지는 상반된 생필품이었다. 술을 마시고 취기가 오르면 희망은 더 희망적으로 절망은 더 절망적이었다. 과장은 허풍이 술자리의 중요한 안주인 이유였다. 이중섭은 대부분 더 절망적인 쪽이지만, 그 감정을 이야기로 풀진 않았다. 담배는 혼자서는 피우지만, 술은 어울려 마셨다. 벗들이 희망적인 상상에 파안대소하고 절망적인 예감에 호곡성을 터뜨릴 때, 이중섭은 위장병이 도진 듯 우울하고 쓰린 얼굴로 듣기만 했다. 정말 견디기 힘들면 울음을 삼키며 눈물만 떨어뜨렸다. 울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서둘러 마시곤 아무 곳에서나 웅크려잤다. - P46

"시인을 견자(見者) 즉 보는 사람이라 하디. 무슨 것을 봔? 평범한 사람은 아니 보는 걸 본다 이거이야. 기렇게 본 걸, 글로 바꾸문 시인이구 그림으로 바꾸문 화가! 시인은 글 짓는 화가구, 화가는 그림 그리는 시인이다 이 말입네. 화가는 색깔에서 글자를 읽구, 시인은 글자에서 색깔을 본다! A는 흑색이구 E는 백색이며 I는 적색이구 U는 녹색이구 O는 청색이구, 불란서 시인 랭보래 말햇디. 시인이 모음들의 색깔을 맨들 듯, 화가는 색깔들의 모음으로 이야기를 발명해 왓어." - P89

통영에선 머리와 손이 따로 노는 이들을 최하로 친다. 말 대신 행동을 믿으며, 그 손으로 그 사람을 평한다. 재산도 학력도 품성도, 단련된 솜씨 앞에선 하찮다. - P92

두 사람을 묶어 비교하는 역사는 오래되었다. 카인과 아벨이 그러하고, 유비와 조조가 그러하며,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그러하다. 음악가인 베토벤과 모차르트, 작가인 괴테와 실러도 이 범주에 든다. 화가들도 종종 언급되었는데, 대중은 고흐와 고갱을 제일 많이 입에 올렸다. 이중섭과 그의 친구들이 자주 논한 화가는 피카소와 마티스였다.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질투도 하고 경쟁도 한, 서로의 작품 세계를 인정한 라이벌이었다. 열에 일곱은 피카소를 우위에 뒀고 마티스를 선호하는 화가는 셋이 될까 말까였다. 이중섭은 소수파에 속했다. - P131

이중섭이 가장 오래 가까이 두고 들여다본 화가는 루오였다. 루오를 접한 후부터는 마음의 시소에 얹는 화가들의 위치가 바뀌었다. 루오가 홀로 한쪽을 차지했고 고흐와 고갱과 마티스를 반대쪽에 묶어 얹었다. 고흐와 고갱과 마티스가 제 뜻을 발산하는 방식이라면, 루오는 그것을 색으로도 누르고 형상으로도 눌렀다. 곡진했다. 타인에게 내뿜지 않고 자신의 내면을 난타해 무너뜨렸다. 이중섭은 고흐처럼도 그려 보고 고갱처럼도 그려 보고 마티스처럼도 그려 보았다. 눌변과 머뭇거림과 내면을 파고드는 자신의 성향과 어울리는 화가는 루오였다. - P246

아우슈비츠 이후, 역사에 대한 낙관을 아예 접은 예술가들도 나왔다. 한국전쟁과 맞닥뜨린 이중섭은 도쿄에서 연애할 때처럼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줄기차게 그릴 수는 없었다. 피란민의 눈에 비친 세상은 만물이 화평하기는커녕 살아남기 위해 매일매일 죽고 죽이는 전쟁터였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러하기에, 아주 가끔은 아비규환을 잊을 만큼 강력한 유토피아를 그려보고 싶기도 했다. 사람은 희망 없인 살 수 없는 족속이다. 도쿄의 엽서화에서 둘만의 꿈을 속삭였다면, 월남 후 그린 유토피아는 끔찍한 체험에 바탕을 두되, 더 많은 이들이 따스함을 느끼고 미소 짓기를 바랐다. 현실엔 없는 행복이란 비판을 받았지만, 부산과 서귀포와 통영을 떠돈 이중섭만이 발견한 ‘신사실’이었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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